[특집 : 학령인구 절벽이 바꾼 대학시장의 질서] ③ 한국 대학 구조조정이 답해야 할 질문

기관을 살릴 것인가, 기능을 남길 것인가

학령인구 감소는 한국 대학에 이미 도착한 현실이다. 이제 대학 위기는 먼 미래의 예고가 아니다. 신입생 충원난은 일부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과 대학 유형에 따라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현상이 됐다. 지방대학은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정부는 정원 감축과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대학 개편을 유도하고 있으며, 대학들은 생존을 위해 학과 통폐합, 무전공 선발 확대, 성인학습자 유치, 외국인 유학생 모집, 지역 산업 연계 등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대학 위기의 핵심은 단순히 학생 수가 줄어드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줄어든 학생이 어디로 이동하는가다. 학생과 학부모는 더 선호도 높은 대학, 더 취업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대학, 더 안전한 진로 선택지를 찾는다. 수도권 대학과 상위권 대학, 인기 전공으로 향하는 흐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학령인구가 줄어들수록 이 선택은 오히려 더 강화될 수 있다.

영국 고등교육정책연구소 HEPI가 최근 보고서에서 제기한 문제도 이와 닿아 있다. HEPI는 잉글랜드 고등교육에서 상위권 대학이 입학 문턱을 낮추고 모집 범위를 넓히면서 중하위권 대학의 학생 기반을 약화시키는 현상을 ‘약탈적 모집’이라고 불렀다. 표현은 강하지만, 보고서가 던진 질문은 중요하다. 학생 수 감소의 충격은 모든 대학에 균등하게 오지 않는다. 선호도 높은 대학이 자기 규모를 유지하거나 더 많은 학생을 흡수하면, 감소의 부담은 아래쪽 대학군에 더 크게 집중될 수 있다. 다만 이 관점을 한국에 그대로 가져와서는 안 된다.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을 ‘약탈’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더 나은 대학, 더 넓은 노동시장, 더 높은 취업 가능성, 더 안정적인 지역 인프라를 선택하는 것은 교육수요자의 자연스러운 권리다. 지방대학의 어려움을 이유로 학생에게 특정 지역이나 특정 대학을 선택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시장의 결과를 그대로 방치하면 된다는 뜻도 아니다. 학생의 합리적 선택이 모이면 특정 지역의 고등교육 기반이 급격히 약화될 수 있다. 대학은 단순한 학위 발급 기관이 아니라 지역의 청년 정주, 산업 인력 양성, 보건·복지·교육 인력 공급, 평생교육, 문화 기반, 산학협력의 거점이기도 하다. 대학이 줄어들 때 함께 사라지는 것은 정원 숫자만이 아니다. 지역이 미래 세대를 교육하고 붙잡아둘 수 있는 기반도 함께 흔들린다. 따라서 한국 대학 구조조정의 다음 질문은 “어떤 대학을 살릴 것인가”가 아니다. 더 정확한 질문은 “어떤 고등교육 기능을 남길 것인가”다. 모든 대학을 현재 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면, 대학이 담당해 온 기능을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재배치할 것인지 물어야 한다.

한국은 이미 인구 감소 이후의 대학시장에 들어섰다

한국 대학의 위기는 예고보다 빠르게 현실이 됐다. 출생아 수 감소는 이미 대학 입학 가능 인구 감소로 이어졌고, 그 충격은 지역과 대학 유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수도권 대학과 일부 상위권 대학은 여전히 높은 선호를 유지하는 반면, 비수도권 중소 사립대학과 일부 전문대학은 충원난과 재정 압박을 동시에 겪고 있다.

이 현상은 단순히 대학의 홍보 부족이나 입시 전략 실패로 설명하기 어렵다. 대학 선택은 지역의 노동시장, 교통 접근성, 산업 구조, 문화 인프라, 가족의 기대, 대학 브랜드, 전공의 취업 가능성, 장래 이주 가능성까지 결합된 판단이다. 학생과 학부모는 대학을 선택할 때 대학 자체만 보지 않는다. 그 대학이 위치한 지역, 졸업 후 이동 가능성, 취업 네트워크, 생활 환경까지 함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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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수도권 대학 선호는 그래서 단순한 쏠림 현상이 아니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위험을 줄이려는 선택이다. 대학 진학의 투자 대비 효과에 대한 의심이 커질수록 학생과 학부모는 더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선택지를 찾는다. 학령인구가 줄어든다고 해서 모든 대학이 비슷하게 학생을 나눠 갖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 수가 줄어들수록 선택은 더 압축되고, 선호는 더 상위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대학의 위기를 단순히 “경쟁력이 없어서 생긴 결과”로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물론 대학 스스로 교육의 질, 전공 경쟁력, 취업 지원, 학생 경험, 지역 연계 역량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지방대학 위기는 개별 대학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조건 위에 놓여 있다. 지역의 청년 일자리와 정주 여건이 약하면 대학의 매력도 함께 약해진다. 지역 산업이 대학과 충분히 연결되지 않으면 대학 교육의 실용성도 낮게 평가된다. 학생이 졸업 후 지역에 남을 이유를 찾기 어렵다면, 지역대학은 입학 단계에서부터 불리한 경쟁을 하게 된다.

결국 한국 대학의 위기는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 지역 불균형, 고등교육 가치 변화가 결합된 문제다. 이 문제를 대학 정원 숫자만으로 다루면 현상의 일부만 보게 된다.

수도권 집중은 약탈인가, 선택인가

영국 HEPI 보고서의 표현을 한국에 옮기면, 수도권 대학과 상위권 대학의 모집 확대를 지방대학 학생 기반을 잠식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수도권 대학이 정원을 유지하거나 첨단 분야 정원을 확대하고, 무전공 선발이나 전공 자율 선택을 통해 더 많은 학생을 흡수하면 비수도권 대학은 더 큰 압박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중위권 대학이 다시 하위권 대학의 학생 풀로 내려가는 연쇄 효과가 발생하면, 가장 취약한 대학은 더 빠르게 흔들린다. 그러나 이를 곧바로 약탈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학생은 대학의 소유물이 아니다. 특정 성적대의 학생이 반드시 특정 지역 대학으로 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수도권 대학이 문턱을 낮추고, 학생이 그 기회를 선택했다면 그것은 수요자의 선택이다. 학생과 학부모는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선택지를 고를 권리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수도권은 단순한 지리적 위치가 아니다. 취업 기회, 인턴십, 공공기관과 기업 네트워크, 문화적 경험, 또래 집단, 교통, 생활 인프라가 집중된 공간이다. 지방대학이 아무리 교육과정을 개선해도 학생과 학부모가 수도권에서 기대하는 기회 구조를 단기간에 대체하기는 어렵다. 이런 조건에서 수도권 대학 선호를 도덕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문제는 그 선택의 집합적 결과다. 한 명의 학생이 수도권 대학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합리적 판단이다. 그러나 수많은 학생이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면 지역대학의 기반은 빠르게 약해진다. 대학이 약해지면 지역의 청년 유입이 줄고, 청년이 줄면 지역 산업과 생활 인프라도 약해진다. 다시 그 지역의 대학 매력도는 낮아진다. 이 악순환이 반복되면 지방대학 위기는 지역소멸 문제와 결합한다.

따라서 한국의 대학 구조조정 논의는 두 가지 사실을 동시에 인정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 동시에 그 선택의 결과로 발생하는 지역 고등교육 기반의 약화도 사회가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 균형을 잡지 못하면 논의는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지방대학 보호론으로만 가면 수요자의 선택권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하고, 시장 선택론으로만 가면 지역의 공적 기능 붕괴를 외면하게 된다.

정부 정책의 현재, 감축과 집중지원과 퇴로 마련

한국 정부의 대학 정책은 이미 구조조정 단계에 들어서 있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대학의 자율 혁신과 적정규모화를 재정지원과 연결하고 있다. 글로컬대학 사업은 지역과 대학의 동반 성장을 내세우며 소수 대학에 대규모 재정을 집중하는 방식이다. RISE는 대학지원의 중심을 중앙정부에서 지역으로 옮기고, 지자체가 지역발전 전략과 대학 지원을 연결하도록 하는 체계다. 사립대학 구조개선 제도는 경영 위기에 놓인 사립대학의 구조개선, 통폐합, 해산과 청산을 제도적으로 다루기 위한 장치다. 이 정책들은 각각 필요성을 갖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학 정원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 지역대학 전체를 똑같이 지원하는 방식도 한계가 있다. 경쟁력 있는 대학을 중심으로 지역 혁신 거점을 만들 필요가 있고, 더 이상 정상 운영이 어려운 대학에는 질서 있는 퇴로도 필요하다.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현재의 정책 조합에는 긴장도 있다. 정원 감축은 필요하지만, 감축 이후 지역의 고등교육 기능을 누가 담당할 것인지는 충분히 논의되지 않는다. 글로컬대학과 같은 집중지원은 선정 대학의 혁신을 촉진할 수 있지만, 선정되지 못한 대학과 지역에는 상대적 박탈감과 추가 약화를 남길 수 있다. RISE는 지역 주도성을 강화할 수 있지만, 지자체의 기획 역량과 재정 여건에 따라 지역 간 격차가 커질 가능성도 있다. 사립대학 구조개선은 질서 있는 퇴로를 열 수 있지만, 폐교와 청산 과정에서 학생, 교직원, 지역사회 보호 장치가 충분하지 않으면 또 다른 갈등을 낳을 수 있다.

정책의 방향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 정책들은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 불가피하게 등장한 장치들이다. 다만 이 정책들이 하나의 통합된 질문 아래 놓여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그 질문은 “대학을 몇 개 줄일 것인가”가 아니라 “줄어드는 과정에서 어떤 기능을 남길 것인가”여야 한다.

정원 감축은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데 대학 정원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 정원 감축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정원 감축만으로 대학 구조조정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원 감축을 숫자의 문제로만 다루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

대학 입장에서 정원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재정의 기반이다. 정원이 줄고 학생이 줄면 등록금 수입이 줄어든다. 수입이 줄면 교원과 직원, 교육시설, 학생 지원 서비스, 실험실습 환경, 도서관, 상담, 취업 지원 등 교육의 질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감축이 빠르게 진행될수록 대학은 학과 통폐합과 인력 조정을 서두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재학생의 교육 경험이 나빠질 수 있다.

지역 입장에서도 정원 감축은 단순한 대학 내부 조정이 아니다. 한 학과가 줄어들면 그 분야의 지역 인력 공급이 줄어든다. 한 대학이 축소되면 지역 상권과 청년 인구, 산학협력 기반도 영향을 받는다. 특히 간호, 보건, 유아교육, 사회복지, 특수교육, 지역 산업 관련 전공처럼 지역사회와 직접 연결된 분야는 단순히 수요가 줄었다는 이유만으로 없앨 수 없는 기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정원 감축은 기능 분석과 함께 가야 한다. 어떤 전공은 수요가 줄어 감축이 필요할 수 있다. 어떤 전공은 학생 모집이 어렵더라도 지역사회에 필수적일 수 있다. 어떤 대학은 독자 생존이 어렵지만, 다른 대학이나 지자체, 산업체와 연합해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어떤 캠퍼스는 학부 중심 기능을 줄이되 평생교육, 직업전환 교육, 지역 공공서비스 교육 거점으로 전환할 수 있다.

정원 감축은 출발점일 뿐이다. 핵심은 감축 이후의 재배치다.

모집 질서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한국 고등교육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는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다. 수도권 대학 정원을 엄격하게 묶으면 지방대학의 학생 기반을 일정 부분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학생 선택권을 제한하고, 산업 수요가 큰 첨단 분야 인력 양성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반대로 수도권 대학 정원을 풀면 학생과 산업의 수요에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지만, 지방대학의 충원난은 더 심해질 수 있다.

이 딜레마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도권 정원 문제를 단순히 규제냐 완화냐로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정원 규제는 지방대학 보호 장치이면서 동시에 수도권 대학 진학을 원하는 학생에게는 기회 제한으로 작동할 수 있다. 정원 완화는 학생과 산업의 선택권 확대이면서 동시에 지역 고등교육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모집 질서의 재설계다.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일률적으로 막거나 푸는 방식이 아니라, 분야별·지역별·기능별 영향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첨단 분야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면 그 확대가 비수도권 대학과 어떤 협력 구조를 만들 수 있는지, 지역 산업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수도권 집중을 더 키우지 않는 장치는 무엇인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무전공 선발 확대도 마찬가지다. 학생의 전공 선택권을 넓히는 방향은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선호도 높은 대학이 무전공 선발을 통해 더 많은 학생을 흡수하면, 중하위권 대학의 전통적 모집 기반은 약해질 수 있다. 학생 선택권 확대가 전체 대학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함께 봐야 한다.

결국 모집 질서의 문제는 학생 선택권과 지역 균형 사이의 조정 문제다. 학생을 특정 대학에 묶어두는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선택의 결과로 발생하는 지역 고등교육 기능의 공백을 무시하는 것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한국 대학 구조조정 논의가 빠지기 쉬운 함정은 기관 보존 논리다. 지방대학이 어렵다고 하면 특정 대학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으로 흐르기 쉽다. 반대로 부실대학 정리가 필요하다고 하면 특정 대학을 시장에서 퇴출하면 된다는 주장으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두 접근 모두 충분하지 않다.

대학이라는 기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교육의 질을 유지하지 못하고, 학생 모집을 위해 기준을 지나치게 낮추며, 지역사회와도 충분히 연결되지 못한 대학이라면 변화가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 통폐합이나 기능 전환, 질서 있는 퇴출이 불가피할 수 있다.

반대로 대학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지역의 고등교육 기능까지 함께 사라져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한 대학이 담당하던 기능은 여러 방식으로 재배치할 수 있다. 인근 대학 간 연합 캠퍼스, 공유학과, 공동교육과정, 지역 산업 연계 교육센터, 지자체-대학 공동 평생교육원, 국립대와 사립대의 기능 분담, 전문대학과 일반대학의 연계, 온라인 기반 지역 학습센터 등이 가능하다.

정책의 초점은 대학 이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지키는 데 있어야 한다. 어떤 지역에 간호·보건 인력이 필요한가. 어떤 지역에 교원과 돌봄 인력이 필요한가. 어떤 산업단지에 직무 전환 교육이 필요한가. 어떤 지역의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떠나지 않고도 고등교육과 취업을 연결할 수 있는가. 어떤 대학이 연구 기능을 담당하고, 어떤 대학이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담당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대학 수만 줄이면 구조조정은 지역의 교육 기반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끝날 수 있다. 반대로 모든 대학을 유지하려고만 하면 고등교육의 질과 재정 지속 가능성이 흔들릴 수 있다. 기관 중심이 아니라 기능 중심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질서 있는 퇴출은 학생 보호에서 시작된다

한계 대학의 퇴출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폐교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대학이 문을 닫으면 재학생의 학습권, 졸업생의 학위 가치, 교직원의 고용, 지역 상권, 지역사회 신뢰가 함께 흔들린다. 폐교 이후 학적 기록 관리, 편입학 지원, 유사 전공 이수 보장, 등록금과 장학금 문제, 기숙사와 생활 지원 문제도 발생한다.

따라서 질서 있는 퇴출의 첫 번째 원칙은 학생 보호여야 한다.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 법인이나 정부의 재정 문제이기 전에 학생의 교육권 문제다. 재학생이 전공을 마칠 수 있는 경로, 인근 대학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 온라인과 공동교육과정을 활용해 학업을 지속할 수 있는 경로가 먼저 설계되어야 한다.

두 번째 원칙은 교직원 보호와 전환이다. 대학이 축소되거나 통폐합되면 교원과 직원의 고용이 흔들린다. 모든 고용을 그대로 보장할 수는 없더라도, 전환 교육, 타 대학·공공기관·지역 교육기관으로의 이동 지원, 연구·교육 자산의 활용 방안은 필요하다. 대학 구조조정의 비용을 구성원 개인에게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세 번째 원칙은 지역 자산의 재활용이다. 폐교 대학의 캠퍼스와 시설은 지역사회에 중요한 자산일 수 있다. 이를 방치하면 지역 쇠퇴의 상징이 되지만, 평생교육센터, 공공보건·복지 교육 거점, 창업지원 공간, 지역 산업 재교육 센터, 공공기숙사, 문화시설 등으로 전환하면 새로운 기능을 만들 수 있다.

사립대학 구조개선 제도가 의미를 가지려면 바로 이 지점까지 들어가야 한다. 구조개선은 대학 법인의 재정 정상화나 청산 절차만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학생과 지역사회가 감당해야 할 충격을 줄이고, 사라지는 대학 기능을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평생교육은 대안이지만 자동 해법은 아니다

성인학습자와 평생교육은 학령인구 감소 시대의 중요한 대안으로 자주 언급된다. 청년 신입생이 줄어든다면 대학은 재직자, 경력 전환자, 중장년층, 은퇴 전후 세대, 지역 산업 종사자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대학의 사회적 역할을 넓히는 방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평생교육이 청년 학령인구 감소를 자동으로 메워주지는 않는다. 성인학습자는 전통적인 대학생과 다르다. 이들은 직장과 가정, 경제적 부담, 시간 제약을 갖고 있다. 평일 낮 시간대 강의, 4년제 중심 학사 구조, 전일제 학생을 전제로 한 캠퍼스 운영은 성인학습자에게 맞지 않는다. 온라인 수업, 야간·주말 과정, 단기 집중 과정, 학점 누적형 과정, 직무 기반 교육, 학비 지원, 기업 연계가 함께 필요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사회적 인정이다. 대학이 마이크로디그리나 비학위 과정을 만들어도 기업과 공공기관이 이를 채용과 승진, 임금에 반영하지 않으면 학습자는 비용과 시간을 투자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평생교육이 대학의 새 수요가 되려면 노동시장과 자격 체계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지역대학에는 이 지점이 기회가 될 수 있다. 지역 산업과 가까운 대학은 재직자 교육, 직무 전환 교육, 지역 기업 맞춤형 교육, 공공서비스 인력 재교육에서 강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성인학습자를 모집하라”는 구호로 가능하지 않다. 지자체, 기업, 고용기관, 대학이 함께 수요를 만들고, 교육 이수의 보상을 제도화해야 한다.

평생교육은 대학의 보조 수입원이 아니라 고등교육 기능 재배치의 핵심 축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외국인 유학생은 충원 대책을 넘어 정주 전략이어야 한다

한국 대학들은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중요한 생존 전략으로 보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국내 신입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유학생은 대학 재정과 충원율을 보완할 수 있다. 특히 일부 지방대학에는 유학생 모집이 이미 중요한 운영 기반이 되고 있다.

하지만 유학생 정책이 단순한 충원 대책에 머물면 한계가 크다. 유학생 수만 늘리는 방식은 교육의 질, 언어 지원, 생활 지원, 취업 연계, 지역 정주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지 못한다. 유학생이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업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졸업 후 지역에 남지 못하고, 지역 산업과 연결되지 못하면 대학과 지역 모두 지속 가능한 효과를 얻기 어렵다.

앞으로의 유학생 정책은 정주 전략과 결합해야 한다. 지역 산업이 필요로 하는 전공, 한국어와 직무 교육의 결합, 졸업 후 취업 비자와 지역 취업 경로, 생활 지원, 지역사회 적응 프로그램이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유학생을 단순히 부족한 신입생 숫자를 채우는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히 지역대학의 경우 유학생 유치는 지역 인구 전략과 연결될 수 있다. 국내 청년이 줄어드는 지역에서 해외 청년 인재가 공부하고 일하며 정착할 수 있다면, 대학은 지역의 국제 인력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대학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 지자체, 기업, 출입국 정책, 고용 정책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RISE와 글로컬대학, 지역 기능 재설계의 실험대

RISE와 글로컬대학은 한국 고등교육 정책에서 중요한 전환을 의미한다. 중앙정부가 모든 대학을 같은 기준으로 지원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이 대학과 함께 발전 전략을 세우고, 대학이 지역 산업과 사회 문제 해결에 더 깊이 연결되도록 하겠다는 방향이다. 글로컬대학은 지역 혁신을 이끌 대학을 선정해 대규모 재정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대학의 과감한 혁신과 통합, 특성화를 유도한다.

이 방향은 필요하다. 지방대학의 위기를 대학 내부 문제로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대학이 살아나려면 지역 산업, 청년 일자리, 지자체 정책, 정주 여건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대학이 지역과 분리된 채 독자적으로 생존 전략을 세우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RISE와 글로컬대학이 성공하려면 조심해야 할 점도 있다. 첫째, 선정 대학 중심의 승자 구조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 특정 대학을 키우는 것은 필요하지만, 선정되지 못한 대학이 담당하던 지역 기능까지 사라지면 지역 전체의 고등교육 기반이 약해질 수 있다. 둘째, 지자체의 대학 지원 역량이 지역 간 격차를 키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재정과 기획력이 강한 지역은 대학과 좋은 전략을 만들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은 더 뒤처질 수 있다. 셋째, 대학 혁신의 기준이 단기 성과나 취업률, 재정 효율성에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 지역사회에 필요한 교육 기능과 공공적 역할도 함께 평가되어야 한다.

RISE와 글로컬대학은 단순한 재정지원사업이 아니라 지역 고등교육 기능을 다시 설계하는 실험대가 되어야 한다. 어느 대학이 얼마를 받았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지원을 통해 지역에 어떤 교육 기능이 남고, 어떤 인력 양성 체계가 만들어지며, 어떤 청년 정주 경로가 생기는가이다.

학생 선택권을 존중하면서 지역 기능을 지키는 방법

학생 선택권과 지역 고등교육 기능은 충돌할 수 있다. 그러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이 원하지 않는 대학에 가도록 강제할 수는 없지만, 지역대학이 학생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는 있다.

첫째, 지역대학은 지역 산업과 더 강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지역 기업, 공공기관, 병원, 학교, 복지기관과 연계된 전공과 실습, 취업 경로가 분명해야 한다. 학생이 “이 대학에 가면 이 지역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대학 간 연합과 공유가 필요하다. 모든 대학이 모든 전공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인근 대학이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하고, 강의와 실습 시설을 공유하며, 학생이 여러 대학의 과목을 자유롭게 이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학의 경계를 낮추는 것이 대학 기능을 지키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셋째, 지역대학의 교육 경험을 개선해야 한다. 학생은 단순히 등록금이 낮거나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대학을 선택하지 않는다. 좋은 수업, 실질적 진로 지원, 교수와의 상호작용, 현장 경험, 국제 교류, 생활 인프라가 필요하다. 지방대학 지원은 건물이나 사업비 중심이 아니라 학생 경험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넷째, 지역 정주 정책과 대학 정책이 연결되어야 한다. 지역에서 대학을 다닌 학생이 졸업 후 남을 수 있으려면 일자리, 주거, 문화, 교통, 결혼과 출산, 자녀 교육까지 이어지는 생활 조건이 필요하다. 대학 정책만으로 지방대학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다.

학생 선택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뜻이 아니다. 학생이 지역에서도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드는 것이 정책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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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의 목표는 대학 수가 아니라 고등교육 생태계다

한국 대학 구조조정은 앞으로 더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일부 대학은 통폐합을 선택할 것이고, 일부 대학은 학과를 줄일 것이며, 일부 대학은 평생교육이나 외국인 유학생 중심으로 기능을 바꾸려 할 것이다. 일부 대학은 더 이상 운영을 지속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구조조정의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목표가 단순히 대학 수를 줄이는 것이라면 정책은 숫자 관리에 머물 수 있다. 목표가 특정 대학을 살리는 것이라면 정책은 기관 보호로 흐를 수 있다. 그러나 목표가 고등교육 생태계의 재설계라면 질문은 달라진다.

어떤 지역에 어떤 고등교육 기능이 필요한가. 어떤 전공은 국가와 지역 차원에서 유지해야 하는가. 어떤 대학은 연구 중심으로, 어떤 대학은 직업교육 중심으로, 어떤 대학은 평생교육과 지역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는가. 폐교가 불가피한 대학의 학생과 교직원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유학생과 성인학습자는 지역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수도권 대학의 성장과 지방대학의 기능 유지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이 질문들이 대학 구조조정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 시대의 고등교육 논의는 쉽게 양쪽으로 갈라진다. 한쪽은 시장의 선택을 강조한다. 학생이 선택하지 않는 대학은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주장이다. 다른 한쪽은 지방대학 보호를 강조한다. 지역을 살리려면 대학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두 관점 모두 일정한 진실을 갖고 있지만, 어느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장 선택은 학생과 학부모의 현실적 판단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경쟁력이 낮은 대학까지 모두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시장은 지역 고등교육 기능의 공백을 스스로 해결하지 않는다. 학생이 떠난 지역에 필요한 보건·복지 인력, 교원, 산업 인력, 성인학습 기회, 청년 문화 기반은 시장의 선택만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지방대학 보호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기관 보존 논리로만 흐르면 설득력을 잃는다. 교육의 질을 높이지 못하고, 학생에게 선택받을 조건을 만들지 못한 대학을 단지 지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지하기는 어렵다. 보호의 대상은 대학이라는 이름 자체가 아니라 대학이 수행하는 공적 기능이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 대학 구조조정의 방향은 시장도, 보호도 아닌 재설계여야 한다. 학생의 선택은 존중하되, 선택의 결과로 사라지는 기능은 사회가 책임 있게 다뤄야 한다. 경쟁력 없는 구조는 바꾸되, 지역에 필요한 교육 기능은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야 한다. 대학을 줄이되, 교육 기회와 지역 인력 양성 체계까지 함께 줄여서는 안 된다.

HEPI 보고서가 영국 고등교육에 던진 질문은 한국에서도 유효하다. 인구 감소의 충격은 균등하게 오지 않는다. 선호도 높은 대학이 더 많은 학생을 흡수하면, 취약한 대학과 지역은 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그 현상을 단순히 ‘약탈’로 부를 수는 없다. 학생에게는 선택권이 있고, 대학에는 생존 전략이 있으며, 사회에는 공공 기능을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다.

결국 한국 대학 구조조정의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기관을 살릴 것인가, 기능을 남길 것인가. 모든 대학을 그대로 살릴 수 없다면, 어떤 기능을 어디에 남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 시대의 고등교육 정책은 대학 생존 경쟁을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줄어든 시대에 필요한 고등교육 생태계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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