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시계 유전자 ‘COL5’, 개화와 향기 방출 동시에 조절
꽃은 단순히 피고 지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시간’을 선택하는 생명체에 가깝다. 아침에 피는 꽃과 밤에 향기를 내는 꽃은 각각 다른 생존 전략을 갖고 있으며, 이 차이는 우연이 아니라 정교한 생체 조절의 결과다. KAIST 생명과학과 김상규 교수 연구팀은 꽃이 열리는 시점과 향기 방출을 하나의 유전자 네트워크로 통합적으로 조절하는 원리를 밝혀냈다고 27일 밝혔다. 연구는 식물이 수분 매개 곤충의 활동 시간에 맞춰 개화와 향기 방출을 조절하는 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식물은 하루 주기에 맞춰 스스로 시간을 인식하는 생체시계를 통해 다양한 생리 현상을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꽃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 열리고, 향기를 방출하는 과정이 생체시계 유전자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 밤에 꽃을 피우고 향기를 방출하는 식물인 코요테담배를 모델로 분석을 진행했다. 이 식물은 야간에 활동하는 나방을 유인하기 위해 밤에 꽃을 열고 향기를 내는 특징을 가진다. 분석 결과, ‘CONSTANS-LIKE 5(COL5)’라는 유전자가 꽃의 개화 시점과 향기 방출을 동시에 조절하는 핵심 인자로 확인됐다. 이 식물의 꽃은 하루 동안 꽃이 열리고 닫히는 리듬, 향기 물질을 방출하는 리듬, 그리고 꽃이 움직이는 리듬을 함께 나타내는데, COL5가 이 세 가지 리듬을 통합적으로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유전자 기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COL5의 발현을 억제한 식물을 제작해 분석했다. 그 결과 해당 유전자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 꽃이 정상적으로 완전히 열리지 못하고, 동시에 향기 물질인 벤질아세톤 생성도 크게 감소하는 현상이 확인됐다. 이는 꽃의 개화와 향기 생성이 서로 독립적인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조절 체계 안에서 함께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다.
꽃이 언제 피고 언제 향기를 내는지는 식물의 번식 성공과 직결된다. 낮에 활동하는 벌을 유인하는 식물은 낮에 꽃을 피우고, 밤에 활동하는 나방을 유인하는 식물은 밤에 꽃을 연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전략이 단순한 환경 반응이 아니라 생체시계 유전자에 의해 정밀하게 설계된 결과임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해당 메커니즘이 특정 식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 확인했다. 페튜니아에서도 유사한 유전자가 개화 시기와 향기 방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 COL5 계열 유전자가 식물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작동하는 조절 네트워크일 가능성이 제시됐다.
이번 연구는 기초 생물학적 발견에 그치지 않고 응용 가능성도 함께 제시한다. 개화 시기와 향기 방출을 조절하는 유전적 원리를 활용하면 작물의 개화 시기를 조절하거나 향기 특성을 개선하는 등 농업과 원예 분야에서의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에는 KAIST 최유리 박사와 강문영 박사가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The Plant Cell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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