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인공지능(AI)을 이야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AI가 교수를 대체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강의를 대신하는 생성형 AI, 자동 채점 시스템, 학생 질문에 즉각 응답하는 챗봇이 확산되면서 이런 질문은 점점 더 현실적인 불안처럼 소비된다. 그러나 이 질문은 기술의 진보를 정확히 반영한다기보다, 대학이 스스로의 역할을 어떻게 상상해왔는지를 드러내는 신호에 가깝다. AI가 교수를 대체할 것이라는 상상은 사실 교육을 ‘정보 전달’로 축소하는 관점에서만 성립한다. 강의는 지식을 전달하고, 평가는 정답을 가려내며, 학습은 입력된 정보를 얼마나 정확히 재현하는가의 문제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면, 기술은 언제든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전제가 고등교육의 실제 작동 방식과 점점 더 어긋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맥락 속에서의 이해와 판단, 실패를 해석하는 능력, 그리고 학습을 지속하게 만드는 동기와 관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의 대체’라는 담론이 반복되는 이유는, AI가 실제로 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어서라기보다 대학이 스스로의 교육적 핵심을 충분히 언어화하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무엇이 기술로 대체 가능하고, 무엇이 끝까지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부재한 상태에서,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위협처럼 등장한다. AI를 둘러싼 불안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의 자기 이해가 흔들리고 있다는 징후에 가깝다.
AI가 바꾸고 있는 것은 ‘강의’가 아니라 ‘설계’다
최근 고등교육 현장에서 실험되고 있는 AI 활용 사례를 보면, 교수의 역할을 대체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AI는 강의 자체보다 그 이전 단계, 즉 수업을 어떻게 설계하고 구성할 것인가의 영역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 학생 개별 성취도 분석, 수업 진행 맥락 파악, 학습 단계별 활동 제안 등은 모두 강의실 안에서 말하는 교수의 역할을 줄이기보다는, 강의실에 들어오기 전 교수의 판단을 정교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이 변화는 교수의 노동을 자동화한다기보다 재배치한다. 반복적인 자료 제작과 변형 문제 생성, 사례 수집과 같은 작업은 AI가 상당 부분 담당할 수 있다. 대신 교수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떤 순서로 학습을 경험하게 할 것인가, 그리고 이 수업이 학생의 사고를 어디까지 밀어붙일 것인가라는 질문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된다. 이는 교수의 역할이 약화되는 장면이 아니라, 오히려 본래 교육적 판단이 요구되던 지점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에 가깝다.
AI를 ‘자동 강사’로 상상하는 접근은 이 지점을 놓친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의미 있게 사용되는 AI는 강의를 대신하지 않는다. 대신 교수의 교육 철학과 수업 목표를 전제로, 그 비전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재료와 구조를 제공한다. 기술은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작동하며, 수업의 방향과 책임은 여전히 교수에게 남는다. AI가 개입할수록 교수의 판단이 더 중요해지는 역설적인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개인화 학습이 드러내는 착각
AI가 고등교육에서 가장 큰 가능성을 보이는 영역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개인화 학습’이다. 학생의 수준과 속도에 맞춰 콘텐츠를 조정하고, 반복 연습을 제공하며, 취약한 개념을 집중적으로 보완하는 기능은 기술적으로도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AI 튜터는 교수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교육 현장에서 개인화는 단순한 맞춤 제공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개인화 학습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을 제공하느냐보다,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해석하는 데 있다. 학생이 특정 개념에서 반복적으로 틀린다고 해서 그 이유가 항상 동일하지는 않다. 이해의 결손일 수도 있고, 개념 간 연결이 끊겼을 수도 있으며, 학습 동기가 이미 크게 저하된 상태일 수도 있다. AI는 결과를 분류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가 만들어진 맥락을 해석하는 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이 지점에서 교수의 역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맞춤형 학습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누군가는 그 ‘맞춤’의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무엇을 보완할 것인지, 어디까지 반복할 것인지, 언제 개입을 멈추고 다른 학습 경로를 제안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교육적 가치 판단의 영역이다. AI가 개인화를 확장할수록, 교수는 더 자주 이런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기술은 선택지를 늘려주지만, 선택의 책임은 인간에게 남는다.
개인화 학습 논의가 설득력을 잃는 순간은, 그것이 학습 지속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다. 이 점은 대규모 온라인 공개 강좌, 이른바 MOOC의 경험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콘텐츠의 질도 결코 낮지 않았지만, 수료율은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학습자는 필요한 모든 자료를 가지고 있었지만, 끝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이 실패는 기술의 미성숙 때문이라기보다 교육을 정보 전달로만 이해한 결과에 가깝다. 학습은 혼자서 소비하는 콘텐츠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유지되는 과정이다. 누군가 나의 진도를 알고 있다는 감각, 나의 고민이 해석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학습을 포기하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책임의 구조가 없다면, 아무리 정교한 개인화도 쉽게 무너진다. 기술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학습을 버티게 만드는 관계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AI가 개인화 학습에서 한계를 드러내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학생에게 무엇을 더 제공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이 학습 과정을 함께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교육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반복적으로 같은 실패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개인화는 교수의 부재를 전제로 할 때가 아니라, 교수의 개입이 전제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AI 시대에 교수의 역할은 줄어드는가, 달라지는가
AI를 둘러싼 논쟁이 반복될수록, 핵심 질문은 종종 흐려진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 변화 속에서 교수의 역할이 어떻게 재정의되는가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면, AI는 교수의 역할을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업무는 기술이 맡을 수 있지만, 교육의 방향과 의미를 결정하는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AI가 강점을 보이는 영역은 콘텐츠 생성, 연습 문제의 변형, 학습 경로의 조정과 같은 작업이다. 반면 교수의 역할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디까지 이해를 요구할 것인가, 그리고 이 학습이 학생의 사고와 태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데 있다. 이 둘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 분업 관계에 가깝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교수의 판단은 더 자주, 더 깊게 요청된다.

문제는 대학이 이 변화를 ‘역할 재편’이 아니라 ‘역할 축소’로 해석할 때 발생한다. AI를 비용 절감이나 인력 대체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교수의 역할은 불필요한 것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교육의 핵심을 학습 설계와 관계 형성, 동기 유지로 재정의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AI는 이 영역을 대신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중요성을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결국 AI는 대학의 민낯을 비춘다. 교수의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지 못한 대학일수록, 새로운 기술은 위협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교육의 본질에 대한 합의가 있는 조직에서는 기술이 도구로 자리 잡는다. AI가 교수를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기술이 너무 강해서가 아니라 대학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AI 시대의 대학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기술을 앞세워 교육을 자동화하려는 길과, 기술을 활용해 교육의 인간적 요소를 더 강화하려는 길이다. 전자는 단기적으로 효율적일 수 있지만, 학습의 지속성과 깊이를 보장하기는 어렵다. 후자는 더 많은 성찰과 설계를 요구하지만, 교육이라는 제도의 이유를 지켜낼 가능성이 크다.
AI는 교수를 없애지 않는다. 대신 대학에게 묻는다. 교수는 무엇을 하는 존재인가, 그리고 대학은 그 역할을 어떻게 지지하고 있는가라고.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기술만 도입하는 대학은, AI 이전에도 이미 흔들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AI는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계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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