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잘 쓰는 학생은 많다, 문제를 다시 묻는 학생은 드물다

대학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문제 해결 능력을 길러주는 공간이라고 설명해왔다. 창의적 사고, 비판적 사고, 협업 역량은 거의 모든 대학의 교육 목표 문서와 홍보 자료에 등장한다. 그러나 실제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보상받는 방식은 이 선언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시험과 과제, 평가 기준을 따라가다 보면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여전히 ‘정해진 질문에 얼마나 정확하게 답하는가’에 가깝다. 문제를 다시 정의하거나 질문의 전제를 의심하는 능력은 종종 평가의 바깥에 놓인다. 이 간극은 단순한 교육 방법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 수업이 무엇을 가치 있는 학습으로 인정해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밀어내 왔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적 징후에 가깝다. 정답을 잘 쓰는 학생은 많지만, 문제를 다시 묻는 학생이 드문 이유는 학생 개인의 태도 때문이 아니라, 그런 시도를 보상하지 않는 평가 구조가 오랫동안 유지돼 왔기 때문이다.

영국의 고등교육 전문 매체인 Times Higher Education에 실린 최근 기고문은 이 지점을 수업 설계라는 구체적인 차원에서 건드린다. 이 글은 대학 교육이 요구하는 역량과 실제 수업에서 길러지는 역량 사이의 괴리를 전면적으로 비판하기보다, 그 괴리가 어떻게 일상적인 과제와 평가 방식 속에서 재생산되는지를 차분하게 짚는다. 문제는 ‘무엇을 가르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평가하느냐’에 있다는 문제 제기다.

대학 수업은 언제부터 정답을 중심으로 굳어졌을까

정답 중심 수업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대규모 강의 운영, 표준화된 평가, 학점 관리의 효율성은 대학이 오랫동안 선택해온 현실적인 해법이었다. 명확한 기준과 채점 가능성은 공정성과 행정 효율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방식이었고, 그 과정에서 수업은 점차 예측 가능한 질문과 모범 답안을 중심으로 조직됐다. 이는 교수 개인의 교육 철학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구조적 선택이었다. 이 구조 안에서 학생들은 빠르게 학습한다. 무엇을 요구받는지, 어떤 방식으로 답해야 좋은 평가를 받는지를 파악하는 데 능숙해진다. 그러나 이 학습은 질문을 확장하기보다는 축소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문제의 전제를 다시 묻거나, 다른 방식의 접근을 시도하는 행위는 불확실성을 동반하고, 불확실성은 평가에서 위험 요소로 작용하기 쉽다. 결국 학생들은 ‘틀리지 않는 답’을 선택하는 데 점점 더 익숙해진다.

이 지점에서 대학 교육이 스스로 말해온 목표와 실제 수업의 작동 방식 사이의 긴장이 분명해진다. 대학은 변화하는 사회에서 적응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낸다고 말하지만, 정작 수업 안에서는 이미 정의된 문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재현하는지를 중심으로 학습 경험을 설계해왔다. 디자인 씽킹이 다시 호출되는 배경에는 바로 이 오래된 불일치가 자리하고 있다.

디자인 씽킹은 왜 대학으로 다시 돌아왔는가

디자인 씽킹은 대학 교육에 처음 등장한 개념이 아니다. 공감, 문제 정의, 아이디어 도출, 실험과 반복이라는 핵심 요소는 오래전부터 교육학과 교수학습 연구에서 중요하게 다뤄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씽킹이 최근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그것이 새로운 기술이나 유행이어서가 아니라 대학 수업이 오랫동안 회피해 온 질문을 정면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학생이 무엇을 아는지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묻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디자인 씽킹이 불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접근은 수업의 중심을 지식 전달에서 문제 설정으로 이동시킨다. 정해진 질문에 답을 쓰는 대신, 무엇이 문제인지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학생에게도 쉽지 않지만, 교수에게도 낯선 요구다. 문제를 미리 정리해주고 답의 범위를 설정해주는 방식에 익숙한 수업 구조에서는, 문제를 열어두는 순간 수업의 통제력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씽킹이 반복해서 호출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학이 말해온 ‘문제 해결 능력’이 실제 수업 안에서는 거의 연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문제를 정의해야 하지만, 대학 수업은 이 첫 단계를 생략한 채 곧바로 해결 단계로 진입해왔다. 디자인 씽킹은 이 생략된 단계를 다시 수업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장치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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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르치지 않은 것은 ‘사고’가 아니라 ‘과정’이다

대학 교육이 사고력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자신의 전공 영역에서 학생들이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근거를 제시하며, 일관된 주장을 펼치길 기대한다. 문제는 이러한 사고가 언제,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수업 안에서 충분히 다뤄왔는가라는 질문이다. 많은 경우 사고의 결과만이 평가되고, 그 과정은 설명되지 않거나 기록되지 않는다.

디자인 씽킹이 강조하는 반복과 실험, 실패를 통한 학습은 바로 이 지점을 건드린다. 아이디어는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 임시적인 가설이며, 검증과 수정의 대상이라는 관점이다. 그러나 기존 대학 수업에서 실패는 학습의 일부라기보다 감점의 사유에 가깝게 취급돼 왔다. 이런 환경에서 학생이 과감하게 질문을 바꾸거나 접근 방식을 실험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대학 수업은 학생에게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기보다, ‘어떻게 쓰면 틀리지 않는가’를 학습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해왔다. 디자인 씽킹은 이 익숙한 흐름에 제동을 건다. 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사고의 경로를 드러내라고 요구하고, 완성도보다 탐색 과정을 설명하라고 요구한다. 이 요구는 수업의 친절함을 높이기보다, 오히려 수업을 더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지금 대학 수업에 부족했던 요소이기도 하다.

수업을 바꾸는 가장 작은 단위는 과제와 평가다

대학 수업을 바꾸기 위해 반드시 커리큘럼 전체를 손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직접적으로 학생의 학습 경험을 규정하는 것은 개별 과제와 평가 방식이다. 무엇을 제출해야 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평가받는지가 명확해지는 순간 학생의 사고 방향은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그만큼 과제는 수업의 의도를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디자인 씽킹이 제안하는 변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지시사항을 나열한 과제 대신, 해결해야 할 상황과 조건만을 제시하는 ‘브리프’ 형태의 과제를 제안하는 것이다. 학생은 더 이상 무엇을 써야 하는지를 안내받지 않는다. 대신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고, 어떤 접근이 가능한지를 스스로 정리해야 한다. 결과물의 형식도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이때 수업은 지식 전달의 공간이라기보다, 판단과 선택이 반복되는 실험 공간에 가까워진다.

이러한 변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사소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학생의 입장에서는 학습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정답이 있는 문제를 푸는 데 익숙했던 학생은, 문제를 정의하는 단계에서부터 불안해진다. 무엇을 써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불확실성이 기존 수업과의 가장 큰 차이이자, 동시에 가장 큰 저항 지점이다.

결과보다 과정을 평가한다는 말의 실제 의미

대학 수업에서 ‘과정 중심 평가’는 자주 언급되지만, 실제로 구현되기는 쉽지 않다. 과정은 측정하기 어렵고, 평가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기도 까다롭다. 그래서 많은 수업에서는 여전히 결과물이 평가의 중심에 놓인다. 논문의 완성도, 보고서의 논리적 구성, 발표의 설득력은 비교적 쉽게 점수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디자인 씽킹이 강조하는 과정은 단순한 중간 결과의 나열이 아니다. 문제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어떤 가정을 세웠는지, 왜 특정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떻게 수정됐는지를 설명하는 사고의 기록에 가깝다. 이는 학생에게 단순히 더 많은 작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를 외부로 드러내는 연습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자신의 판단을 방어하고, 수정하며, 다시 설명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평가 방식이 교수에게도 상당한 부담을 준다는 점이다. 결과 중심 평가에 비해 시간과 노력이 훨씬 많이 든다. 평가 기준을 세분화해야 하고, 학생의 사고 과정을 읽어내야 하며, 때로는 하나의 ‘좋은 답’이 아니라 여러 개의 설득력 있는 접근을 인정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디자인 씽킹은 교수의 역할을 지식 전달자에서 판단의 동반자로 이동시킨다.

디자인 씽킹을 둘러싼 논의가 반복해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수업 현장에서 널리 확산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접근은 기술적으로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수업의 권력 구조와 평가 관행을 흔들기 때문이다. 정답을 제시하는 교수, 정답을 맞히는 학생이라는 익숙한 관계가 깨지고, 판단과 책임이 분산되는 수업은 예측 가능성을 낮춘다. 대학은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예측 가능성을 중시해왔다. 평가 기준이 명확해야 하고, 학생 간 형평성에 대한 이의 제기가 최소화돼야 하며, 행정 부담도 관리 가능해야 한다. 이런 조건 속에서 문제를 열어두고, 과정 자체를 평가하는 수업은 언제나 예외적인 시도로 남기 쉽다. ‘작은 변화’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유는, 그 변화가 실제로는 작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의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학 수업이 계속해서 정답 재현에 머무른다면, 문제 해결 역량은 선언 속에만 남게 된다. 디자인 씽킹은 완전한 해답이 아니라, 대학 수업이 무엇을 보상해 왔는지를 드러내는 하나의 시험대에 가깝다. 그리고 그 시험대 앞에서 대학은 여전히 선택을 미루고 있다.

경험은 누구의 몫인가, 형평성의 문제

대학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장 경험, 글로벌 역량, 실무 감각은 졸업 후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반복해서 언급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모든 학생에게 동일하게 제공되지 않는다. 해외 연수, 인턴십, 프로젝트 기반 학습은 종종 경제적 여유나 정보 접근성이 높은 학생에게 집중된다. 경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그 경험을 얻는 경로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이 지점에서 수업은 종종 무력해진다. 경험은 교실 밖에서 쌓는 것이고, 수업은 이론을 전달하는 공간이라는 암묵적인 분리가 작동해왔기 때문이다. 디자인 씽킹이 제안하는 접근은 이 분리를 흔든다. 지역 사회의 실제 문제, 조직이 마주한 구체적 과제를 수업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은, 이동성이나 자원에 의존하지 않고도 경험 기반 학습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수업 설계의 선택에 가까운 변화다.

물론 이러한 접근이 모든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경험을 수업 밖의 특권적 영역으로 남겨두지 않고, 학습의 일부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디자인 씽킹은 형평성을 별도의 정책 목표로 다루기보다, 수업이 무엇을 경험으로 인정하는지를 다시 묻게 만든다.

디자인 씽킹이 제기하는 질문은 단순하다. 문제를 정의하고, 이해관계자를 고려하며, 불완전한 조건 속에서 선택을 반복하는 경험이 수업 안에서 충분히 제공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많은 고용주가 요구하는 역량은 특정 기술보다 이러한 사고 과정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수업은 여전히 완성된 결과물을 제출하는 능력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이 간극은 고용주를 수업의 외부 평가자로만 상정하는 관점에서 비롯된다. 고용 가능성은 졸업 이후의 문제이고, 수업은 그 이전 단계라는 구분이 굳어져 왔다. 디자인 씽킹이 제안하는 방식은 고용주를 최종 소비자가 아니라, 문제를 함께 정의하는 주체로 끌어들인다. 이는 산학협력을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수업 설계의 일부로 재해석하는 시도다.

이 지점에서 디자인 씽킹은 더 이상 하나의 교수법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대학 수업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왔는지를 비추는 거울에 가깝다. 정답을 얼마나 정확하게 재현했는지, 요구된 형식을 얼마나 잘 따랐는지를 보상해 온 구조 속에서, 문제를 다시 묻고 접근 방식을 실험하는 역량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돼 왔다. 디자인 씽킹은 이 익숙한 질서를 뒤집지 않는다. 다만 그 질서가 가진 한계를 노출시킨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평가 구조에서 반복과 실험은 가능하지 않고, 과정이 기록되지 않는 수업에서 사고는 측정되지 않는다. 디자인 씽킹이 불편한 이유는 그것이 추가적인 부담을 요구해서가 아니라, 기존 수업이 무엇을 생략해왔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제 질문은 다시 대학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학생에게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정답을 빠르게 쓰는 능력인가, 아니면 문제를 다시 정의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판단하는 능력인가. 디자인 씽킹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아니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질문 자체를 수업 한가운데로 가져온다.

작은 변화는 방법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디자인 씽킹을 둘러싼 논의가 반복될수록 오해도 함께 쌓여왔다. 이것이 새로운 만능 교수법이거나, 모든 수업에 적용해야 할 정답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접근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수업을 택할 것인가, 무엇을 보상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에 가깝다. 정답 중심의 수업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질문을 열어둘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대학이 그동안 변화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변화가 가져올 결과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평가 기준은 더 복잡해지고, 교수의 부담은 늘어나며, 학생들의 불만은 단기적으로 커질 수 있다. 실패와 시행착오를 학습의 일부로 인정하는 순간, 수업은 더 이상 예측 가능한 공간이 아니다. ‘작은 변화’라는 표현이 반복되는 이유는, 그 변화가 실제로는 수업의 안정성을 건드리는 큰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택을 계속 미룰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대학이 스스로 말해온 교육 목표와 실제 수업의 작동 방식 사이의 간극은 이미 너무 커졌다.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른다고 말하면서, 문제를 다시 묻는 시도를 보상하지 않는 구조는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디자인 씽킹은 이 모순을 해결해 주기보다,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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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답이 아니라 질문으로 남는 수업

이 글이 다루는 논의는 디자인 씽킹을 옹호하거나 확산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접근이 왜 반복해서 등장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에 가깝다. 대학 수업이 오랫동안 무엇을 중심에 두고 설계돼 왔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떤 역량을 키우고 어떤 역량을 밀어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대학 수업은 언제나 완전할 수 없다. 모든 수업이 문제 정의와 반복 실험을 중심으로 설계될 수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질문은 분명해져야 한다. 우리는 학생에게 무엇을 배우게 하고 싶은가, 그리고 그 배움을 어떤 방식으로 인정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방법만 바꾸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정답을 잘 쓰는 학생은 분명히 중요하다. 그러나 정답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묻는 학생이 없다면, 대학 교육은 결국 이미 정해진 세계를 설명하는 데 그치게 된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대학이 맡아야 할 역할이 여기에 머물러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대학을 떠난 뒤에도 남는 것은 지식의 목록이 아니라, 사고의 방식이다. 문제를 받아들이는 태도, 불확실성을 다루는 방식,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시험지 위에서만 측정할 수 있는 역량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수업은 오랫동안 측정 가능한 것만을 중심으로 설계돼 왔다.

정답을 잘 쓰는 학생은 많다. 그러나 문제를 다시 묻는 학생은 드물다. 이 문장은 학생을 향한 평가가 아니라, 대학 수업을 향한 질문에 가깝다. 그 질문 앞에서 대학은 여전히 선택의 순간에 서 있다. 변화를 말하는 것은 쉽지만,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디자인 씽킹이 남기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 어려운 선택을 더 이상 미루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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