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행위인가 합리적 선택인가, 생성형 AI가 드러낸 대학의 민낯

AI 사용 논란은 개인의 윤리를 묻고 있지만, 정작 대학이라는 제도는 질문에서 빠져 있다

생성형 AI를 둘러싼 대학의 논쟁은 빠르게 ‘부정행위’라는 언어로 수렴되고 있다. 과제에 AI를 사용했는지 여부를 가려내는 기술이 도입되고, 시험은 다시 오프라인으로 회귀하며, 학생들에게는 “정직성”과 “윤리”가 강조된다. 그러나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수업이 확산됐을 때도 대학은 온라인 환경에 맞는 새로운 학습 설계를 고민하기보다, 오프라인 수업을 어떻게든 ‘복제’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지금 대학이 생성형 AI를 대하는 방식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문제는 이 대응이 과연 학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기존 질서를 지키기 위한 방어에 가까운 것인지다.

최근 불거진 여러 AI 사용 논란은 학생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환원되기 쉽다. 그러나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만약 학생들이 대학 교육의 목적을 ‘배움’이 아니라 ‘통과’로 인식하고 있다면, 생성형 AI를 활용해 과제를 완성하는 행위는 일탈이 아니라 합리적 선택에 가깝다. 제한된 시간 안에 성적을 확보해야 하고, 그 성적이 장학금·졸업·취업과 직결되는 구조에서 학생들은 주어진 규칙 안에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찾는다. 생성형 AI는 그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지점에서 질문은 개인을 향하기보다 제도를 향해야 한다. 학생들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는가 하는 물음이다.

대학은 오랫동안 ‘지식의 전당’이라는 이상적 이미지로 자신을 설명해왔다. 비판적 사고를 기르고, 시민을 양성하며, 사회의 성찰적 공간으로 기능한다는 서사다. 그러나 실제 운영 방식은 점점 산업적 논리에 가까워졌다. 대규모 강의, 표준화된 과제, 점수와 등급으로 환원되는 평가, 그리고 성과지표 중심의 행정은 대학을 하나의 ‘지식 생산 공장’으로 작동하게 만들었다. 이 구조 안에서 학습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로, 성장은 관계가 아니라 수치로 관리된다. 생성형 AI는 이 체제를 파괴한 외부의 적이 아니라, 오히려 그 체제가 가진 취약성을 드러낸 내부의 거울에 가깝다. 대학이 생성형 AI를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꺼내 든 카드는 통제였다. 사용 금지, 적발 기술 도입, 시험 방식의 회귀가 빠르게 논의됐다. 이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돼온 익숙한 장면이다. 그러나 이런 대응은 질문의 방향을 비껴간다. 대학이 지켜야 할 것은 특정 평가 방식이 아니라 학습의 의미일 텐데, 현실에서는 평가 체계 자체가 곧 대학의 질서가 되어버렸다. 생성형 AI는 그 질서를 위협했기 때문에 문제로 호명됐고, 그 결과 대학은 다시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유혹에 빠졌다. 하지만 시험을 종이로 바꾼다고 해서 학습의 본질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평가가 학습을 이끌기보다, 학습을 대체해버린 구조에 있다. 많은 대학에서 성적은 이해의 깊이나 사고의 확장을 보여주는 지표라기보다, 경쟁을 위한 서열화 장치로 기능한다. 과제는 탐구의 출발점이 아니라 점수를 얻기 위한 결과물이 되고, 시험은 배움을 점검하는 도구가 아니라 탈락과 통과를 가르는 문턱이 된다. 이런 환경에서 학생들은 질문을 던지기보다 정답을 찾고, 실패를 감수하기보다 안전한 선택을 선호하게 된다. 생성형 AI는 이 과정에서 ‘편법’이 아니라, 마찰을 최소화하는 합리적 도구로 인식된다. 이 구조는 AI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대형 강의와 표준화된 평가, 짧은 학기 안에 결과를 요구하는 운영 방식은 이미 학습의 여지를 좁혀왔다. 생성형 AI는 이 취약한 구조 위에 등장했을 뿐이다. 따라서 문제를 AI 사용 여부로 축소하면, 대학은 또다시 증상을 치료하면서 원인을 방치하게 된다. 학생들이 왜 AI를 사용하는지, 무엇이 그 선택을 합리적으로 만드는지 묻지 않는 한, 어떤 기술적 통제도 오래 작동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이 대학 구조에서 학습은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지식 공장’으로 작동해온 대학이라는 구조

오늘날 많은 대학은 학습 공동체라기보다 생산 조직에 가깝게 운영되고 있다. 교육은 투입과 산출의 관계로 설명되고, 학생은 일정한 역량을 갖춘 인력으로 ‘배출’되는 존재로 정의된다. 이 과정에서 대학의 성과는 얼마나 많은 졸업생을 얼마나 빠르게 사회로 내보내는지, 그리고 그 졸업생들이 노동시장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기능하는지로 측정된다. 이러한 구조는 대학을 비판적 사유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기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시스템으로 전환시켰다. 이른바 ‘지식 공장’ 모델에서 학습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된다. 강의는 탐구의 장이 아니라 전달의 통로가 되고, 과제는 질문을 생성하기보다 성취를 증명하는 서류로 기능한다. 성적은 학습의 흔적이 아니라 비교 가능한 지표로 환산되고, 학생들은 서로 다른 맥락과 속도를 가진 학습자가 아니라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되는 집단으로 관리된다. 이런 체제에서는 깊이 있는 이해보다 요구 조건을 충족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생성형 AI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강력한 도구로 등장한다.

대학이 지식 공장으로 작동할수록, 학습 과정에서의 마찰은 ‘비효율’로 인식된다. 고민, 실패, 수정, 토론 같은 요소들은 평가에 직접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비용으로 취급되기 쉽다. 학생들이 생성형 AI를 활용해 과제를 빠르게 완성하는 선택을 하는 것은, 이 체제 안에서는 오히려 합리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선택이 학습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점이 아니라, 이미 학습이 체제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었다는 사실이다. AI는 그 현실을 가시화했을 뿐이다.

광고
대학

취업 가능성이 교육의 목적이 되었을 때

대학이 지식 공장으로 작동하게 된 배경에는 노동시장과의 밀착이 있다. 고등교육은 점점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라 ‘즉시 활용 가능한 역량을 증명하는 절차’로 재정의됐다. 전공 선택은 흥미나 탐구의 문제가 아니라 취업률과 직결된 전략적 판단이 되고, 교과과정은 학문적 축적보다 산업 수요에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는지를 기준으로 재편된다. 이 과정에서 대학은 스스로를 비판적 거리두기의 공간이 아니라, 시장의 요구를 번역해 전달하는 매개자로 자리매김해왔다. 이러한 전환은 학생의 학습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학습은 장기적인 성장이나 사유의 확장이 아니라, 단기적인 성과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된다. 과제는 스스로의 질문을 구성하는 기회라기보다, 일정 점수를 얻기 위한 조건이 되고, 시험은 이해의 깊이를 드러내는 장치라기보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관문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생성형 AI는 ‘배움을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라, 이미 성과 중심으로 설계된 교육 환경에서 효율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받아들여진다.

대학이 취업 가능성을 교육의 핵심 목표로 설정할수록, 생성형 AI를 둘러싼 긴장은 더 커진다. 한편으로 대학은 학생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길 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능력이 AI의 도움 없이 증명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 두 요구는 점점 양립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노동시장은 이미 AI와 협업하는 능력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대학만이 이를 예외로 취급하려는 모습은 일종의 시간차를 드러낸다. 이 간극 속에서 학생들은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다.

‘부정행위’라는 도덕적 언어가 가리는 것들

생성형 AI 논쟁이 반복될수록 대학은 ‘윤리’라는 언어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AI 사용 여부를 규정하고, 허용과 금지의 경계를 세우며, 위반 시 제재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이 접근은 명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제의 초점을 개인의 태도로 좁힌다. 학생이 정직했는지, 규칙을 어겼는지, 올바른 선택을 했는지가 핵심 질문이 된다. 그러나 이 질문은 왜 그런 선택이 유혹적이었는지, 그리고 그 유혹이 구조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윤리 담론이 강해질수록 제도의 책임은 뒤로 물러난다. 과제와 시험이 어떤 학습을 전제하고 설계됐는지, 평가 결과가 학생의 미래에 어떤 압박으로 작용하는지, 실패를 감수할 수 없는 환경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그 결과 대학은 구조를 바꾸기보다 규칙을 세분화하고, 감시를 정교화하며, 기술로 기술을 통제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생성형 AI를 탐지하는 도구가 논의되고, 평가 방식은 다시 폐쇄적인 형태로 회귀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학습을 회복하기보다, 불신을 제도화할 위험이 크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학습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 된다. 의심은 전제가 되고, 증명은 의무가 된다. 학습 과정에서의 시행착오와 실험은 오히려 위험 요소로 간주되고, 학생들은 안전한 답을 빠르게 제출하는 전략을 강화한다. 역설적으로 윤리를 강조할수록 학습은 더 얕아지고, 생성형 AI에 대한 의존은 더 교묘해진다. 문제는 학생의 도덕성이 아니라, 대학이 만들어온 선택지의 구조다. 윤리라는 언어가 이를 가릴 때, 논쟁은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다.

AI 이전부터 흔들려온 평가 체계의 한계

시험과 과제는 오랫동안 대학 교육의 핵심 장치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이 장치들이 실제로 무엇을 측정해왔는지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의문이 제기돼 왔다. 시험은 이해의 깊이를 드러내기보다 암기와 속도를 평가하는 방향으로 굳어졌고, 과제는 탐구의 여정이라기보다 일정 형식과 분량을 충족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로 변질됐다. 학습 과정에서의 질문, 실패, 수정은 평가에서 거의 가시화되지 않았고, 결과만이 기록으로 남았다. 이런 평가 체계는 학습을 장려하기보다 관리하기 쉬운 형태로 단순화해왔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평가가 학습을 이끄는 나침반이 아니라, 행동을 규제하는 신호등처럼 작동한다. 학생들은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지보다 무엇이 점수로 환산되는지를 먼저 고려하게 된다. 과제의 목적은 주제를 깊이 탐구하는 데 있지 않고, 요구 조건을 정확히 충족하는 데 있다. 생성형 AI는 이 지점에서 기존 평가 체계와 충돌하기보다, 오히려 완벽하게 맞물린다. 주어진 조건을 빠르고 정확하게 충족하는 데 AI는 인간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이 문제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만약 평가가 학습의 과정을 드러내고, 사고의 전개를 중시하며, 학생이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를 중심에 놓았다면 생성형 AI의 영향은 지금과 전혀 다르게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은 오랫동안 결과 중심의 평가에 의존해왔고, 그 결과 AI는 ‘위협’이 아니라 ‘대체자’로 인식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지금의 혼란은 AI가 평가를 망가뜨렸기 때문이 아니라, 평가가 이미 학습과 분리돼 있었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대학은 왜 평가를 포기하지 못하는가

평가 체계는 단순한 교육 도구가 아니라 대학 운영 전반을 지탱하는 핵심 장치다. 성적과 등급은 학생을 선발하고 분류하는 기준이 될 뿐 아니라, 장학금 지급, 졸업 요건, 진급과 탈락을 결정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더 나아가 대학 외부에서는 평가 결과가 취업과 진학, 사회적 신뢰를 매개하는 언어로 사용된다. 이런 맥락에서 평가를 바꾼다는 것은 단지 수업 방식을 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대학이 유지해온 관리와 권한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대학이 생성형 AI 앞에서 불안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는 특정 과제나 시험을 잘 수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존 평가 방식이 얼마나 쉽게 대체 가능한지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대학이 오랫동안 신뢰해온 ‘평가를 통한 역량 증명’이라는 전제가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학이 AI를 위험 요소로 규정하고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학습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기보다 평가 체계의 권위를 지키려는 반응으로 읽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대학은 스스로 묻지 않게 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측정해온 것은 정말로 학습이었는가, 아니면 관리 가능한 성과였는가 하는 질문이다. 평가가 학습의 의미를 대변해왔다는 믿음이 무너질 때, 대학은 정체성의 위기를 맞게 된다. 생성형 AI는 이 위기를 만들어낸 주범이 아니라, 그 위기를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만든 촉매에 가깝다. 평가를 둘러싼 불안은 결국 대학이 무엇을 교육의 핵심으로 삼아왔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대안’이 해답처럼 보일 때 생기는 착시

생성형 AI 논쟁이 깊어질수록 대학 안팎에서는 다양한 대안이 제시된다. 언그레이딩, 과정 중심 평가, AI 리터러시 강화, 윤리 가이드라인 정비 같은 제안들이다. 이 접근들은 각각 의미 있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으며, 일부 수업과 프로그램에서는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방법의 문제를 목적의 문제보다 앞세울 때, 대안은 곧바로 새로운 관리 기법으로 흡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언그레이딩은 성적 중심 평가의 한계를 비판하며 등장했지만, 제도 전체가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또 다른 형식의 평가 기준으로 재정의되기 쉽다. AI 리터러시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들에게 AI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기존 성과 중심 구조 위에 덧붙여질 경우 AI는 여전히 효율을 높이는 도구로만 소비된다. 윤리 가이드라인 역시 대학의 운영 논리를 건드리지 않는 한, 책임을 개인에게 되돌리는 장치로 기능할 위험이 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대안의 목록이 아니라 질문의 방향이다. 우리는 어떤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보다, 대학 교육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먼저 묻고 있는가. 생성형 AI는 대학에 새로운 선택지를 던진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만들었다. 목적이 재정의되지 않는 한, 어떤 대안도 기존 질서의 변형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AI 이후의 대학은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생성형 AI 시대에 대학이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질문은 “무엇을 지킬 것인가”만이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에 더 가깝다. 모든 학습을 수치로 환원하려는 집착, 평가를 통해 역량을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다는 믿음, 교육을 취업 가능성의 함수로만 설명하려는 사고방식이 그 대상이다. 이러한 전제들이 유지되는 한, AI는 계속해서 위협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대학이 학습의 과정을 다시 중심에 놓기 위해서는 불확실성과 비효율을 감수해야 한다. 질문이 명확한 답으로 귀결되지 않아도 되는 수업, 실패가 성적의 손실로 즉시 환산되지 않는 평가, 학생과 교수가 함께 사고의 경로를 드러내는 학습 환경은 관리하기 어렵고 측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은 인간의 학습이 기계와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기도 하다. 대학이 이를 회피할수록, AI는 더 많은 영역에서 인간을 대체하게 된다.

이 선택은 단순히 교육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대학이 계속해서 효율과 통제의 논리 안에 머문다면, 생성형 AI는 경쟁자가 된다. 반대로 대학이 학습을 관계와 탐구의 과정으로 재정의한다면, AI는 보조적 도구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문제는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대학이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있다.

생성형 AI를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대학은 다시 규칙을 만들고, 학생들은 다시 그 규칙의 경계를 탐색할 것이다. 이 순환을 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감시나 더 엄격한 윤리 선언이 아니다. 왜 학생들이 ‘배우는 것’보다 ‘통과하는 것’을 우선시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대학은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직시하는 일이다.

“부정행위인가 합리적 선택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대학을 향한다. 생성형 AI는 학생의 도덕성을 시험하는 도구가 아니라, 대학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교육 구조를 시험하는 계기다.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AI 이후의 대학은 통제의 공간으로 남을 수도 있고, 다시 학습의 공간으로 재구성될 수도 있다. 선택의 책임은 기술이 아니라 대학에 있다.

#생성형AI #대학의위기 #AI부정행위 #고등교육 #평가체계 #대학개혁 #AI와교육 #지식공장 #학습의의미

Social Share

More From Author

명지대–마쓰야마대, 지방행정을 매개로 한·일 비교법 논의 확장…학생 참여형 국제 학술교류 정착

[공교육 혁신 특집 ②] 고교학점제는 왜 ‘선택권 확대’가 아니라 ‘선택 불가능한 제도’가 되었는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