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블랙홀을 선명하게 관측하기 위해서는 여러 대의 전파망원경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망원경처럼 동일한 시각과 위상으로 우주 신호를 포착해야 한다. 그러나 관측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기준 신호의 미세한 흔들림은 피할 수 없는 한계로 남아 있었다. 이러한 기술적 제약을 ‘레이저 빛’으로 돌파하는 연구 성과가 국내에서 나왔다. KAIST는 광주파수빗(optical frequency comb) 레이저를 전파망원경 수신기에 직접 적용하는 기준 신호 기술을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고 1월 15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KAIST 기계공학과 김정원 교수 연구팀이 한국천문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막스플랑크 전파천문연구소와 공동으로 수행했다. 연구진은 ‘빛으로 만든 초정밀 자’로 불리는 광주파수빗 레이저를 전파망원경 내부 기준 신호로 활용해, 관측 시점과 위상을 근본적으로 정밀하게 맞추는 데 성공했다.
광주파수빗 레이저는 수만 개 이상의 정확한 주파수 성분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된 레이저로, 각 주파수와 그 간격을 원자시계 수준으로 제어할 수 있다. 기존 전자식 기준 신호 방식이 고주파 관측에서 불안정성을 노출해 왔다면, 이번 기술은 기준 신호 생성 단계부터 광학 시스템을 적용해 위상 정렬의 정밀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연구팀은 이를 ‘눈금이 흔들리는 자’에서 ‘극도로 안정적인 빛의 자’로 기준을 바꾼 것에 비유했다.
기술의 유효성은 실제 관측으로 검증됐다. 연구진은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평창 전파망원경에서 시험 관측을 진행해, 전파망원경 간 신호의 안정적인 간섭무늬를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서울대 평창 전파망원경에도 시스템을 추가 설치해, 여러 관측소를 동시에 활용하는 확장 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는 초장기선 전파간섭계(VLBI) 관측에서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돼 온 장비 간 위상 지연 오차를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이번 성과는 블랙홀 관측의 해상도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연구팀은 이 기술이 대륙 간 초정밀 시계 비교, 우주측지, 심우주 탐사선 추적 등 정밀한 시공간 측정이 요구되는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천문 관측 기술의 진보가 시간 표준과 주파수 계측이라는 기초 과학 영역으로 파급되는 구조다.

김정원 KAIST 교수는 이번 연구가 기존 전자식 신호 생성 기술의 한계를 넘어선 사례라며, 차세대 블랙홀 관측의 정밀도를 높이고 주파수 계측과 시간 표준 분야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Light: Science & Applications에 1월 4일 자로 게재됐다.
블랙홀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만드는 과정은 결국 ‘시간과 위상을 얼마나 정확히 맞출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KAIST 연구진이 제시한 이번 해법은 전파망원경 관측의 기준을 전자에서 빛으로 전환함으로써, 우주 관측의 정밀도를 한 단계 끌어올린 사례로 평가된다. 향후 이 기술이 국제 관측 네트워크로 확산될 수 있을지, 그리고 블랙홀 연구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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