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 인준의 권력이동 – 주(州)가 품질을 정의한다

플로리다·조지아·텍사스 등 6개 주, 새로운 대학 인준기구 설립 추진… ‘연방 통제’에서 ‘주권형 품질보증’으로의 전환 신호

2025년 미국 고등교육계의 흐름은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이다. 그 중심에는 ‘인준(accreditation)’이라는 단어가 있다. 대학 인준은 미국의 고등교육 체계에서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권한으로, 이를 통해 연방 정부는 대학의 질과 재정 건전성, 그리고 학생 지원 자격을 사실상 통제한다. 대학이 인준을 잃는다는 것은 곧 생존권을 잃는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이 체계에 대한 반발이 본격화된 것은 남부 지역에서였다. 올해 초 플로리다, 조지아, 노스·사우스캐롤라이나, 테네시, 텍사스 등 여섯 개 주는 공동으로 ‘공립고등교육위원회(Commission for Public Higher Education, CPHE)’를 창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기구는 주정부가 직접 대학 인준을 수행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며, 연방정부와 기존 인준기관이 장악해온 고등교육 권력구조에 균열을 예고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AEI)는 최근 보고서(2025년 10월)에서 “CPHE가 연방 교육부로부터 인준기관으로 공식 승인된다면, 미국의 대학 품질 관리 체계는 근본적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보고서의 표현대로라면, 이는 단순한 제도 설계의 변화가 아니라, 미국 고등교육의 통제 구조가 ‘워싱턴’에서 ‘주정부’로 옮겨가는 권력 이동의 시작이다. CPHE의 등장 배경에는 단순한 행정 효율성보다 더 복잡한 정치적 맥락이 깔려 있다. 남부 주정부들은 오래전부터 연방정부와 인준기관이 고등교육의 이념적 방향까지 통제한다고 비판해왔다. 그 비판의 핵심은 ‘누가 대학의 품질을 정의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기존 체계에서 그 권한은 소수의 민간 인준기관과 연방정부에 있었다. 그러나 남부 주들은 이제 그 정의의 권리를 자신들의 손으로 되찾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오래된 시스템, 그리고 누적된 불만

미국의 대학 인준 체계는 오랜 기간 동안 민간 독립기관에 위임된 형태로 유지되어 왔다. 연방 교육부는 이들 기관을 승인하고, 승인받은 기관은 대학의 학문적 질과 재정 건전성을 평가한다. 이를 통과한 대학만이 연방 학자금 지원(Federal Student Aid)에 참여할 수 있다. 이 구조는 처음에는 효율적이고 자율적인 품질 관리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준기관이 사실상 ‘정책적 권력집단’으로 성장했다. 대표적인 기관인 남부대학학교협회(Southern Association of Colleges and Schools, SACS)는 남동부 지역의 대학을 광범위하게 관리하며, 커리큘럼 구성이나 행정 운영, 심지어 이념적 프로그램까지 평가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플로리다와 노스캐롤라이나는 이런 체계의 문제점을 가장 먼저 드러낸 주였다. 플로리다 주의 론 드산티스(Ron DeSantis) 주지사는 2023년 “대학이 특정 인준기관의 정치적 성향에 종속되어 있다”며 모든 공립대가 7~10년마다 다른 인준기관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배경에는 다양성·형평성·포용(DEI)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주정부가 추진한 DEI 프로그램 축소와 인사 개혁이 인준기관의 반발로 제동이 걸리자, 드산티스 행정부는 이를 ‘연방의 간섭’으로 규정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역시 유사한 경험을 했다. 주정부는 UNC 채플힐(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에 ‘시민생활·리더십대학(School of Civic Life and Leadership)’을 신설하려 했으나, SACS가 절차적 문제를 이유로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주정부는 이를 정치적 검열로 받아들였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남부 지역 주정부들이 ‘자체 인준기구’를 모색하게 된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AEI 보고서는 이러한 흐름을 “기존 인준기관이 연방 행정부의 정책 방향과 지나치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불신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플로리다의 시도는 법정 다툼 끝에 기각되었지만, 남부 주들의 불만은 오히려 제도화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CPHE의 출범이다.

CPHE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 접근 방식이 단순한 반발이 아니라 체계적 대안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CPHE는 기존 인준기관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절차를 유지하되, 관할권을 주정부가 직접 행사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는 공립대학을 대상으로 한 ‘주권형 인준제도’의 실험이다. CPHE는 기본적으로 공립대학만을 인준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사립대학의 이해관계와는 다른, 주정부의 재정책임을 전제로 한 품질 관리 체계를 의도한 것이다. AEI는 보고서에서 “공립대학은 이미 주정부의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그 품질보증 또한 지역정부의 책임 아래 두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한다. CPHE가 내세운 원칙 중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분열적 이념(divisive ideological content)’의 배제다. 이는 기존 인준기관이 대학에 요구해온 다양성·형평성·포용(DEI) 의무를 더 이상 강제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CPHE는 학문적 자유와 자율성을 내세워 이러한 요구를 제외시켰고, 대신 학생의 학습성과와 졸업 후 고용성과 등 ‘산출 중심 평가(outcomes-based accreditation)’를 핵심 기준으로 삼았다. 또한 CPHE는 인준 과정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절차를 단순화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AEI는 이를 “행정 효율성을 높이면서 대학의 혁신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해석했다. 즉, CPHE는 정치적 의도를 넘어 제도적 유연성을 확보한 모델로 자신을 포지셔닝하고 있다.

인준권은 곧 대학의 생존권

인준은 대학의 자율성과 생존을 동시에 결정한다. 연방정부가 승인한 인준기관으로부터 평가를 받지 못하면, 해당 대학은 학위의 공신력을 상실하고 연방 학자금 지원 프로그램에서도 제외된다. 이는 학생 모집과 재정 운영 모두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인준권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대학의 존재를 정의하는 권력의 핵심이다. CPHE가 등장함으로써, 이 권력이 누구의 손에 있을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었다. 기존 체계에서는 인준기관과 연방정부가 그 권한을 독점했지만, CPHE는 이를 주정부로 이양하려는 시도다. AEI 보고서는 “CPHE의 출범은 연방 중심의 대학 통제 구조에 균열을 내며, 주정부가 품질보증의 실질적 주체로 등장하는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곧 대학의 품질과 운영에 대한 최종 책임이 ‘워싱턴’이 아닌 ‘주민과 납세자’에게로 이동한다는 뜻이다. 각 주의 공립대학은 자국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평가를 받고, 그 성과는 직접 유권자의 심판을 받게 된다. AEI는 이를 “교육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는 연방주의의 복원”으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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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CPHE를 둘러싼 논쟁은 제도 개혁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미국 사회의 깊은 문화적 분열과도 맞닿아 있다. ‘divisive ideological content’를 배제하겠다는 CPHE의 선언은 곧 DEI 정책에 대한 명백한 반대 입장을 의미한다. DEI는 민주당 행정부가 추진해온 고등교육 정책의 핵심 가치 중 하나로, 인종·성별·계층 간 형평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왔다. 하지만 공화당 주정부는 이를 “이념적 강요이자 학문 자유의 침해”로 보고 있다. 플로리다와 텍사스는 이미 주립대 내 DEI 전담기구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CPHE는 이런 움직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기구로 기능한다. 결국 CPHE 논의는 ‘품질보증의 분권화’라는 행정 개혁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속에는 교육을 둘러싼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가 작동하고 있다. AEI는 이를 “연방정부의 가치 기준이 아니라, 주정부가 선택한 가치가 대학의 품질을 정의하는 새로운 질서의 등장”으로 본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이 시도를 “교육의 정치화”로 규정하며, 학문의 다양성과 비판적 사고가 위축될 위험을 경고한다.

주정부의 자율성과 고등교육의 균형

AEI 보고서의 결론은 명확하다. “설령 CPHE가 연방의 공식 인준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 존재만으로도 기존 인준체계에 경쟁과 변화를 촉발할 것이다.” 이는 곧 고등교육의 권력 균형이 다시 논의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주정부의 자율성 강화는 교육 행정의 민주적 정당성을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각 주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대학의 운영 방향이 달라지는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연방 차원의 통합 데이터 관리, 학위 상호인정, 전국적 이동성 등의 측면에서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가 향후 논의의 핵심이 될 것이다. CPHE의 시도는 그 자체로 ‘연방주의적 실험’이지만, 동시에 ‘정치적 실험’이기도 하다. 대학의 품질보증을 누가 정의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결국 ‘교육의 공공성’과 ‘정치의 자율성’ 사이의 경계를 시험하는 과정이 되고 있다.

미국의 CPHE 실험은 한국 대학에도 유의미한 질문을 던진다. 한국 역시 대학평가·인준이 교육부 중심의 중앙집권적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대학기본역량진단’이나 ‘IEQAS(국제교육품질보증시스템)’ 같은 제도는 국가가 대학의 질을 통제하는 대표적 수단이다. 그러나 지방대학 육성, 평생학습 체제 확산, 산업 연계형 교육 강화 등 최근 정책 과제는 점점 더 지역성과 자율성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한국에서도 지방정부가 지역 거점대학의 품질관리 권한을 일부 이양받는다면, 대학은 교육부의 일률적 기준 대신 지역사회와 산업이 요구하는 교육 모델을 실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역 정치나 재정 편차가 교육의 질을 왜곡할 위험 역시 존재한다. 결국 CPHE가 제시하는 모델은 ‘대학자율-국가책임’의 균형을 새롭게 묻는다. 대학의 질을 중앙정부가 보장할 것인가, 아니면 지역사회가 책임질 것인가. 이 질문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고등교육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마주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AEI 보고서는 이렇게 맺는다. “The model CPHE proposes may look familiar—but the shift in who wields authority is profound.” 즉, 절차와 구조는 이전과 같아 보이지만, 권력을 쥔 주체가 달라지면 체계의 성격도 완전히 바뀐다는 의미다. CPHE는 아직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그 등장은 미국 고등교육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대학의 품질을 누가 정의하고, 학문의 자율성을 누가 보장하며, 교육의 방향을 누가 결정할 것인가—이 세 가지 질문이 지금 미국 고등교육의 중심에 있다. 그리고 이 논의는 미국을 넘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고등교육 체제에도 공통적으로 울린다. 교육의 품질은 행정 절차가 아니라 사회가 합의한 가치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CPHE의 실험은 단순한 제도적 변화가 아니라, 고등교육의 정당성과 권력의 관계를 다시 묻는 하나의 신호로 읽혀야 한다. 대학이 공공의 영역에서 자율성과 책임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을 때, 진정한 품질의 의미가 비로소 회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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