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의회 보고서가 짚은 데이터센터의 과제를, 대학 사례를 통해 읽다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
21세기의 원유가 데이터라면, 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데이터센터는 정유공장에 비견할 수 있다. 그러나 정유공장이 늘 환경·지역 갈등의 중심에 서듯, 데이터센터 역시 오늘날 사회적 논쟁의 한복판에 있다. 전력 소모, 물 사용, 탄소 배출, 그리고 토지 이용 문제까지 얽히면서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기술적 시설을 넘어 정치와 환경, 지역사회의 쟁점이 되고 있다. 영국 하원 도서관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 「Data centres: planning policy, sustainability, and resilience」(CBP 10315, 2025년 8월 26일)은 이러한 쟁점을 집약적으로 다룬다. 데이터센터의 확장 속도, 이에 따른 에너지·물 사용, 기후위기 속 회복력 문제를 차분하게 짚어내며 정책적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논의는 단지 국가 차원의 과제에 그치지 않는다. 대학 캠퍼스라는 작은 도시에서도 같은 문제가 전개되고 있다. 연구와 교육을 위해 막대한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대학들은 이미 데이터센터를 캠퍼스 내부나 인근에 구축하며 디지털 인프라 실험실이 되고 있다. 이 글은 영국 의회의 문제 제기를 출발점으로 삼아, 대학 사례를 통해 데이터센터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살펴본다.

영국 하원 보고서의 문제 제기
보고서는 크게 다섯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첫째, 데이터센터의 성장 배경과 영국 내 산업 현황. 둘째, 토지 계획과 건설 과정에서 불거지는 정책적 과제. 셋째, 에너지 소비의 급증과 탄소중립 목표와의 충돌. 넷째, 물 사용 문제와 환경적 부담. 다섯째, 기후재난과 사이버 위협 속에서 데이터센터가 어떻게 회복력을 확보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데이터센터가 더 이상 단순한 민간 산업시설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보고서는 데이터센터를 전력망, 수도망, 교통망처럼 공공적 인프라로 간주하며, 이에 걸맞은 정책적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중앙정부는 국가 차원의 디지털 경제 전략을 고려하고, 지방정부는 지역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토지 이용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학은 연구와 행정, 교육 모두에서 데이터 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졌으며, 따라서 데이터센터는 대학의 핵심 인프라가 되고 있다. 동시에 캠퍼스는 하나의 지역사회와 맞닿아 있기에 토지, 에너지, 물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캠퍼스와 데이터센터 – 작은 도시의 실험실
대학 캠퍼스는 사실상 작은 도시다. 수만 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생활하며, 주거·교통·문화·에너지 시스템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런 공간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 도시와 동일한 문제가 재현된다. 토론토 미시소가 대학(UTM)이 2024년에 완공한 과학 연구 건물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 건물은 고성능 데이터센터를 내장하고 있으며, 지열 냉난방, 태양광 패널, 빗물 재활용 시스템을 통해 LEED 골드 인증을 목표로 했다. 이는 단순히 연구 효율성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대학이라는 작은 도시가 어떻게 데이터센터를 지속가능하게 통합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대학은 공공성과 연구 기능을 동시에 갖추고 있기에, 데이터센터의 사회적·환경적 문제를 가장 먼저 실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영국 보고서가 지적한 에너지·물·레질리언스 과제는 대학 현장에서 이미 현실의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보고서는 데이터센터 건설 과정에서 토지 이용 규제와 지역사회 반발을 중요한 과제로 꼽는다. 지역 주민들은 대규모 건물과 전력 시설이 들어서는 것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지방정부는 개발 승인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대학 역시 다르지 않다. 새로운 데이터센터 건물이 캠퍼스에 들어설 때, 학생과 교수, 인근 주민들은 미관·소음·환경 영향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UC 시카고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센터를 여러 건물에 분산 배치하는 전략을 택했다. 단일 대형 건물 대신 소규모 센터를 다수 운영함으로써 토지 이용 갈등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보안과 연구 효율성을 높였다.
이는 영국 보고서가 강조한 ‘균형 있는 계획 정책’과도 연결된다. 중앙 차원의 디지털 전략과 지역사회의 수용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 바로 대학 캠퍼스라는 축소판 도시에서 이미 실험되고 있는 방식이다.
전력 소비와 탄소중립 과제
보고서의 핵심은 전력 소비 문제다. 데이터센터는 전력 집약적 시설이며, 영국의 탄소중립 목표(Net Zero) 달성과 충돌할 수 있다. 대학들은 이를 친환경 설계로 돌파하고 있다. MGHPCC(Massachusetts Green High Performance Computing Center)는 보스턴 지역 6개 대학이 연합해 설립한 센터로, 수력 발전 중심의 전력을 활용해 90% 이상을 탄소중립 전력으로 충당한다. 이는 대학이 탄소중립 시대의 데이터센터 모델을 제시한 대표적 사례다. 프린스턴 대학은 자체 태양광 발전과 효율적 냉각 시스템을 통해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을 줄이고 있다. 이는 보고서가 제안한 ‘기술적 효율성 제고와 재생에너지 활용 확대’라는 정책 권고를 현실에서 구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냉각 시스템에서 소모되는 물은 데이터센터의 또 다른 부담이다. 보고서는 특히 기후위기 속 가뭄 지역에서 물 사용이 정책적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한 대학의 대응은 다양하다. UTM은 지열 냉각 시스템과 빗물 재활용 설계를 도입했다. 일부 미국 대학들은 재활용수와 대체 냉각 기술을 실험하며, 캠퍼스 내 연구자들이 곧바로 기술적 검증을 이어간다. 대학 데이터센터는 연구실과 인프라가 결합된 특수한 공간이기에, 지속가능한 냉각 기술이 가장 먼저 시험되는 무대가 된다. 보고서는 데이터센터가 폭염, 홍수, 사이버 공격 같은 복합 위협에 노출되어 있음을 경고한다. 따라서 회복력(resilience)을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학은 이 분야에서도 선도적이다. SciNet(토론토 컨소시엄)은 데이터센터를 캠퍼스 외곽의 안정적인 창고형 건물에 설치해 물리적 회복력을 확보했다. 일리노이 시카고 대학(UIC)은 다중 백업 체계를 도입하고 사이버 보안 훈련을 강화했다. 이는 보고서가 강조한 ‘복합 위협에 대비한 거버넌스 강화’를 현실화한 사례다.
글로벌 캠퍼스 사례 – MGHPCC, UTM, 프린스턴, UC 시카고
MGHPCC – 연합형 ‘그린 HPC’의 표준
미국 매사추세츠주 홀리오크에 위치한 MGHPCC는 보스턴대·하버드·MIT·UMass·노스이스턴·예일 등 6개 대학이 함께 설립한 HPC 센터다. 홀리오크시의 수력 전력망에 직결돼 전력의 90% 이상을 탄소중립 전력으로 충당하며, 광섬유망 연결을 통해 안정적 데이터 전송도 보장한다. 개별 대학이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HPC 인프라를 공동으로 분담하고, 최근에는 AI·양자 컴퓨팅 설비까지 확장하고 있다. 이는 연합형 데이터센터 모델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UTM – 건물 속 데이터센터, 저탄소 실험의 쇼케이스
캐나다 토론토 미시소가 대학의 새 과학관은 건물 내부에 HPC 데이터센터를 탑재한 내장형 모델이다. 지열 냉난방, 태양광, 빗물 재활용 시스템을 결합해 LEED 골드 인증을 목표로 하며, 캠퍼스 중심부에 위치해 연구자와 학생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는 데이터센터를 도시와 캠퍼스의 중심부에 친환경적으로 융합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프린스턴대 – 전용 HPC 캠퍼스의 전략
프린스턴대는 본교에서 3마일 떨어진 포리스트럴 캠퍼스에 4만7천 평방피트 규모의 HPC 데이터센터를 두고 있다. 최대 5MW 전력을 수용할 수 있으며, 학과별로 랙을 할당하는 공유 코로케이션 방식도 병행한다. 이는 중앙 집중형 HPC와 분산 코로케이션을 혼합한 모델로, 확장성과 거버넌스를 동시에 확보한 사례다.
UC 시카고 – 분산형 데이터센터의 운영 혁신
시카고대는 세 개 건물에 여섯 개의 데이터센터를 분산 배치해 운영한다. 이를 통해 부하와 위험을 분산시키고, 시설별 용도를 최적화하며, DEEP(데이터센터 효율성 인증)을 통해 운영 성과를 공개한다. 또한 도서관 리노베이션을 통해 기존 학문 공간을 데이터·컴퓨터 과학 허브로 전환하며, 도심 속 분산형 데이터센터 모델의 방향을 보여준다.
정책과 대학의 만남 – 실험실이자 모델
대학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시설을 넘어, 국가 정책을 시험하는 실험실이다. 영국 보고서가 지적한 과제들은 이미 대학에서 시험되고 있으며, 이 경험은 국가 차원의 정책 수립에 중요한 레퍼런스를 제공한다. 대학은 공공성과 혁신성을 동시에 갖춘 기관이다. 따라서 데이터센터 운영에서도 지속가능성과 효율성을 함께 추구할 수 있다. 이는 기업 데이터센터와의 가장 큰 차별점이며, 정책 설계자들이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영국 하원 보고서는 데이터센터가 직면한 정책적 과제를 명확히 제시한다. 그러나 그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세계의 대학 캠퍼스가 이미 그 해법을 실험하고 있다. 토지와 지역사회 갈등을 줄이는 분산형 설계, 재생에너지와 지열 냉각을 활용한 탄소중립 모델, 기후위기와 사이버 위협에 대비한 회복력 전략. 이 모두가 대학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실험되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미래는 거대한 산업 단지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캠퍼스 강의실 옆, 연구실 지하, 그리고 대학 마을 한켠에서 이미 모색되고 있다. 대학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인프라를 넘어,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중요한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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