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기억에서 지워진 피터 파커, 상처를 품고 다시 스파이더맨이 되다

더 강한 영웅이 아니라 분열되지 않은 한 사람의 탄생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마지막 장면은 톰 홀랜드가 연기한 피터 파커에게 사실상 하나의 세계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메이 숙모는 죽었고, 피터를 가장 가까이에서 이해하고 사랑했던 MJ와 네드는 더 이상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주문으로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피터 파커’라는 존재가 사라졌지만, 정작 피터 자신에게는 모든 기억이 남아 있었다. 그는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함께 웃고 싸웠던 시간도 기억한다. 자신을 믿어준 메이의 목소리도, 언제나 곁에 있겠다고 약속했던 MJ와 네드의 표정도 기억한다. 그러나 그 기억을 공유할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한다.

이 영화의 피터 파커는 소중한 사람들을 단순히 잃어버린 인물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 있고, 같은 세상 어딘가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의 기억 속에서 자신만 지워진 사람이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과도 다르고, 관계가 깨진 뒤의 이별과도 다르다. 관계의 모든 역사를 한 사람만 기억해야 하는 기묘하고 잔인한 고립이다. 그렇기 때문에「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의 출발은 새로운 모험에 대한 기대보다 상실 이후의 공백에 가깝다. 제목은 ‘새로운 날’을 말하지만, 피터에게 새날은 희망차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백지가 아니다. 사랑과 관계가 지워진 자리에 홀로 남아, 어제의 기억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날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 고립을 단순한 비극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피터가 잃어버린 관계와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낯선 변화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른 상처 입은 사람에게 건네는 과정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하는 이야기로 나아간다.

이 영화에서 피터는 더 강한 스파이더맨이 된다. 그러나 그 성장은 새로운 기술을 얻거나 더 강한 적을 쓰러뜨리는 방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피터는 자신이 두려워하고 거부했던 거미의 DNA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메이의 죽음을 지울 수 없는 상처로만 간직하는 대신, 그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위로를 진에게 건넨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가 보여주는 성장은 능력의 상승이 아니라 정체성의 통합이다. 더 강한 힘을 지닌 영웅의 탄생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와 능력, 인간성과 괴물성까지 끌어안은 한 사람의 탄생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것

피터 파커는 이전에도 수많은 상실을 경험했다. 부모를 잃었고, 토니 스타크를 잃었으며, 메이 숙모까지 잃었다. 그러나 《노 웨이 홈》의 결말이 특별히 잔인했던 것은 죽음뿐 아니라 기억의 단절까지 피터에게 남겼기 때문이다. MJ와 네드는 살아 있다. 피터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 함께했던 시간을 설명하고, 자신이 누구였는지 말할 수도 있다. 사진이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더라도, 기억을 되찾게 할 방법을 찾아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피터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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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전히 MJ를 사랑하고 네드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두 사람의 새로운 삶을 멀리서 바라보고, 자신이 그들의 삶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순간 두 사람을 다시 위험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 선택은 《노 웨이 홈》 마지막에서 이미 한 차례 제시됐다. 피터는 MJ에게 모든 사실을 말하려 했지만, 그녀가 입은 상처를 보고 말을 멈췄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그때의 선택을 일시적인 감정이나 순간적인 희생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선택 이후 피터가 치러야 했던 대가를 영화 전체에 펼쳐놓는다.

그 대가는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다.

피터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면서도 그 안에 참여할 수 없다. 그들이 웃는 모습을 보며 안도하면서도, 그 웃음 속에 자신과의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견뎌야 한다. 자신이 함께했어야 할 자리, 자신의 이름이 있었어야 할 관계에서 스스로 물러서야 한다.

여기서 피터의 사랑은 이전과 다른 형태로 변한다. 이전 시리즈에서 피터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직접 사건에 뛰어들었다. 관계를 지키고, 사람들을 구하고, 잘못된 선택을 되돌리기 위해 세계의 질서까지 흔들었다. 《노 웨이 홈》에서 닥터 스트레인지의 주문을 망가뜨린 출발점 역시 자신과 친구들의 관계와 미래를 지키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의 피터는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는 대신 그들의 삶을 침범하지 않는 길을 택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이 기억되지 않더라도, 자신이 그 관계에서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상대가 안전하고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이는 숭고한 희생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위험한 자기 고립이기도 하다. 피터는 타인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자기 삶의 모든 관계를 끊어낸다.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스파이더맨이라는 역할에 자신을 몰아넣는다. 피터 파커로서 살아가는 시간을 줄이고, 가면을 쓴 영웅으로 존재하는 시간만 늘려간다. 세상은 스파이더맨을 기억하지만 피터 파커를 기억하지 않는다. 결국 피터는 가면을 쓰고 있을 때만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 된다.

영화가 보여주는 피터의 고립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가장 아프다. 그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지웠지만, 그렇게 지워진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과연 책임인지 자기 파괴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기억은 관계를 이어주지 못하고 피터를 가둔다

기억은 일반적으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힘이다.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기 때문에 관계가 지속되고, 한 사람이 떠난 뒤에도 그가 남긴 의미가 이어진다. 그러나 피터에게 기억은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 MJ와 네드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피터가 간직한 기억은 공유되지 못한다. 같은 사건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확인해줄 사람이 없다. 아름다웠던 기억조차 현재의 관계를 이어주는 자원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지 않는 관계를 증명하는 흔적이 된다.

피터가 MJ와 네드를 멀리서 지켜보는 장면들이 애틋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피터는 낯선 사람에 불과하지만, 피터에게 두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가장 소중한 존재다. 기억의 양이 같지 않고, 사랑의 시간도 대칭적이지 않다.

한 사람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이 불균형은 피터를 과거에 붙잡아둔다. 그는 두 사람의 새로운 삶을 존중하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빠진 그들의 삶을 끊임없이 바라본다. 관계를 되돌리지 않겠다고 선택하면서도 그 관계에서 완전히 떠나지는 못한다. 이런 피터의 모습은 단순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인물로 볼 수 없다. 피터에게 MJ와 네드는 연인과 친구를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스파이더맨의 가면 뒤에 있는 피터를 알고 있었다. 영웅으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두려움과 실수, 유머와 서툶까지 받아들였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피터를 잊었다는 것은 관계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피터의 인간적인 모습을 기억해주는 증인이 사라졌다는 뜻이다.그래서 피터는 점점 스파이더맨 쪽으로 기울어진다. 피터 파커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스파이더맨으로서의 행동만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 된다. 범죄자를 잡고 시민을 구하며 밤거리를 누비는 일은 책임감의 표현이지만, 동시에 피터가 인간으로서의 공백을 잊기 위해 선택한 도피이기도 하다. 영화는 영웅 활동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영웅으로 살아가는 일이 자기 자신을 지우는 방법이 될 때, 책임과 자기 파괴의 경계가 얼마나 흐려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피터의 몸에서 시작된 반란

피터가 감정을 억누르고 스파이더맨으로서의 활동에 자신을 몰아넣을수록 그의 몸에는 이상이 나타난다. 눈이 검게 변하고, 폭력적인 충동이 강해지며,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거미의 능력이 발현된다. 피터는 이 변화를 능력의 발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위험한 변이이자, 인간성을 침식할지도 모르는 이상 현상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몸 안에 들어온 거미의 DNA가 점점 인간인 자신을 밀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변화는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익숙한 ‘새로운 힘의 각성’처럼 보일 수 있다. 새로운 형태의 거미줄과 강화된 감각, 이전보다 강해진 신체 능력은 전투 장면의 규모와 속도를 높인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스파이더맨의 업그레이드로 받아들일 만한 요소다.

그러나 영화가 이 변화를 다루는 방식은 단순한 파워업과 다르다. 피터의 몸은 그가 억눌러온 감정에 반응한다. 분노와 공포, 죄책감과 상실감이 커질수록 거미의 본능도 강해진다. 피터가 마음속 고통을 인정하지 않을수록 그 고통은 몸을 통해 밖으로 나온다. 이때 신체 변이는 피터의 내면을 시각화하는 장치가 된다.

피터는 메이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MJ와 네드를 잃은 슬픔도 누구에게 말하지 못했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묻고 싶어도 대답해줄 사람이 없다. 모두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뒤로 미뤘고, 그렇게 미뤄둔 감정은 사라지지 않은 채 몸속에 남았다.

몸은 피터가 외면한 것을 대신 드러낸다. 눈이 검게 변하는 것은 피터 안의 괴물성이 갑자기 생겨났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분노와 폭력성, 상실감이 가면 밖으로 흘러나오는 순간이다. 유기적으로 발현되는 거미줄 역시 외부 장비와 기술을 넘어, 거미의 힘이 그의 신체와 완전히 결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피터에게 이 변화가 공포스러운 이유는 자신의 능력이 강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을 ‘거미의 능력을 지닌 인간’이라고 생각해왔다. 인간인 피터 파커가 중심에 있고, 거미의 힘은 필요할 때 사용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몸의 변화는 그 구분을 무너뜨린다. 거미의 힘은 더 이상 슈트나 기계 장비를 통해 조절되는 외부 기능이 아니다. 피터의 감정과 신체, 본능에 깊숙이 연결된 정체성의 일부다. 이 때문에 피터가 거미 DNA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새로운 힘을 획득하는 장면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는 장면이다.

거미에게 잠식된 것이 아니라 거미를 받아들인 피터

피터는 처음에는 거미의 DNA를 제거하거나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거미의 본능을 통제하고, 이전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서 그는 다른 선택을 한다. 거미의 힘을 질병처럼 취급하거나 자신과 분리하려 하지 않는다. 그 능력이 자기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두려움과 분노까지 포함해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 순간 피터는 한 단계 강해진다. 하지만 힘이 커졌기 때문에 성장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두려워했던 부분과 싸우는 일을 멈췄기 때문에 그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영화의 중요한 성취는 ‘자기 수용’을 추상적인 심리적 메시지로만 말하지 않고, 슈퍼히어로의 신체와 능력을 통해 구현했다는 데 있다.

피터의 인간성과 거미의 본능은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존재가 아니다. 거미의 능력을 부정한다고 해서 피터가 더 인간다워지는 것도 아니고, 거미의 힘이 강해진다고 해서 반드시 괴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힘을 어떤 선택과 책임 속에서 사용할 것인가다. 결국 피터는 더 이상 거미를 자기 안의 침입자로 보지 않는다.

그는 거미에게 잠식된 것이 아니라 거미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인간인 피터와 스파이더맨이라는 영웅, 따뜻한 마음과 폭력적인 힘, 상처받은 소년과 책임지는 성인이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사람 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때의 성장은 ‘업그레이드’보다 ‘통합’이라는 말에 가깝다.

더 강한 스파이더맨이 된 것이 아니라, 분열되지 않은 피터 파커가 된 것이다.

타인의 의식을 지배하지만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한 진

진은 다른 사람의 의식에 침투하고 정신을 지배할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을 지녔다. 겉으로 보기에 그녀는 피터와 정반대의 인물이다. 피터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졌다. 타인의 의식 안에 자신의 흔적을 남길 수 없다. 반면 진은 타인의 의식 안으로 강제로 들어갈 수 있고, 그 사람의 행동과 판단까지 지배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반대이면서도 닮아 있다.

피터는 누구의 기억에도 온전히 존재하지 못한다. 진은 다른 사람의 의식 안에 들어갈 수 있지만 누구와도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피터는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감추고, 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타인을 지배한다. 두 사람 모두 연결을 원하지만 연결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피터는 관계를 침범하지 않기 위해 완전히 물러선다. 진은 버려지거나 상처받지 않기 위해 타인의 마음을 침범한다. 한 사람은 지나치게 사라지고, 다른 한 사람은 지나치게 들어간다.

이 때문에 진은 피터가 쓰러뜨려야 할 적이라기보다 피터의 상처를 비추는 거울에 가깝다. 진이 자신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는 행위는 분명 위험하고 폭력적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녀를 단순한 악인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통제하기 어려운 능력과 반복된 상처 속에서, 자신의 고통을 다루는 방법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바라본다.

피터 역시 다르지 않다. 그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타인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자신을 지나치게 고립시키고 있다. 감정을 억누른 결과 몸과 힘이 폭주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상처를 감추거나 통제하려 할수록 더 큰 파괴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두 사람의 최종적인 충돌은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누구의 능력이 더 강한지를 겨루는 싸움도 아니다. 상처를 지배하려는 사람과 상처를 억압하려는 사람이 서로의 내면을 마주하는 과정이다.

피터의 기억 속에서 진이 만난 메이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진이 피터의 기억 안으로 들어간 뒤 메이 숙모의 위로를 만나는 순간이다. 진은 피터의 정신을 지배하려 한다. 피터의 의식 속으로 침투해 가장 깊은 기억과 감정에 접근한다. 일반적인 슈퍼히어로 영화의 구조라면, 이 장면은 피터가 강한 정신력으로 진의 공격을 밀어내거나 자신의 기억을 무기화해 상대를 제압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진이 피터의 기억 속에서 만나는 것은 분노나 공격이 아니다. 메이가 피터에게 건넸던 위로와 사랑이다. 피터에게 메이의 기억은 가장 아픈 상처다. 메이의 죽음은 피터가 지금까지 겪은 상실 가운데 가장 직접적이고 깊은 사건이다. 그는 메이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메이가 남긴 책임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바로 그 고통스러운 기억 안에 진을 치유하는 위로가 남아 있다.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메이가 죽었지만 그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메이는 더 이상 피터 곁에 없지만, 메이가 피터에게 건넨 말과 태도, 믿음과 위로는 피터의 내면 안에서 계속 살아 있다. 기억은 피터를 고립시키는 힘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살리는 힘이 된다.

앞서 MJ와 네드에 대한 기억은 피터만 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그를 과거에 붙잡아두었다. 그러나 메이에 대한 기억은 피터 안에서 머무르지 않고 진에게로 건너간다. 피터가 받은 사랑이 다른 상처 입은 사람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피터는 메이의 위로를 의도적으로 무기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진을 설득하기 위해 준비한 말도 아니다. 진이 피터의 가장 깊은 기억 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곳에 이미 메이의 사랑이 존재했을 뿐이다.

그 사랑은 피터만을 위한 것이었지만 피터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진은 타인의 의식을 지배하기 위해 피터의 기억에 들어갔다가, 자신을 지배하지 않는 사랑을 처음 경험한다. 누군가를 통제하거나 억압하지 않고도 그 사람 곁에 머물 수 있다는 것, 상처 입은 사람을 제거하거나 가두지 않고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피터의 기억을 통해 접한다.

메이의 위로는 피터가 진을 구하기 위해 꺼내든 초능력이 아니다. 피터가 과거에 받은 사랑이 그의 존재 안에 남아, 또 다른 사람을 감싸는 힘이 된 것이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영웅의 힘을 새롭게 정의한다. 영웅이 상대보다 강하기 때문에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도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그 상처 속에서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 있기 때문에 구하는 것이다.

상처는 제거되지 않고 전달 방식을 바꾼다

피터의 상처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메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MJ와 네드가 갑자기 모든 기억을 되찾는 것도 아니다. 피터가 겪은 고통이 마법적으로 해소되거나, 과거의 선택이 되돌려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피터는 달라진다. 영화 초반의 피터에게 상처는 숨겨야 할 것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 약해지고, 다른 사람을 다시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혼자 감당하는 것이 영웅의 책임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진과의 만남을 통해 피터는 자신의 상처가 반드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한다. 상처를 인정하고 나눌 때, 그것이 누군가를 이해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피터는 상처를 극복한 사람이 아니다. 상처를 가진 채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 사람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성장 서사와 조금 다르다. 많은 영화는 인물이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과거를 벗어나는 것으로 성장을 표현한다. 그러나 《브랜드 뉴 데이》는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피터가 메이를 잊어야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MJ와 네드에 대한 마음을 지워야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기억을 자기 안에 품고, 그것이 현재의 삶을 파괴하지 않도록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성장이다.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상처가 작동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피터를 고립시키고 몸을 폭주시켰던 상처가, 마지막에는 진의 고통을 알아보게 하는 감각이 된다. 자기 자신을 파괴하던 기억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공감으로 전환된다. 메이의 죽음은 여전히 비극이지만, 메이가 남긴 사랑은 비극에 갇히지 않는다. 그것은 피터를 거쳐 진에게 전달된다.

거리로 돌아온 스파이더맨, 그러나 더 깊어진 내면

이번 영화는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을 다시 뉴욕의 거리로 돌려놓는다.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첨단 기술과 거대한 어벤져스 네트워크는 더 이상 피터를 보호하지 않는다. 그는 혼자 생활하며 직접 슈트를 관리하고, 가까운 거리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사건에 대응한다. 이는 오랫동안 팬들이 기대해온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의 복원으로 읽힐 수 있다.

《홈커밍》과 《파 프롬 홈》에서 피터는 토니 스타크의 유산과 어벤져스의 세계 안에서 성장했다. 《노 웨이 홈》에서는 멀티버스와 다른 차원의 스파이더맨들,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까지 동원된 거대한 사건에 휘말렸다. 반면 《브랜드 뉴 데이》는 다시 한 개인의 삶과 뉴욕의 구체적인 공간으로 시선을 좁힌다. 세계가 무너지는 위기보다 피터의 일상과 심리, 거리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액션 역시 이러한 방향과 연결된다. 웹스윙은 단순히 도시를 빠르게 이동하기 위한 장면이 아니라, 피터가 뉴욕이라는 공간과 맺는 관계를 보여준다. 골목과 건물, 도로와 시민들의 삶 가까이에서 움직이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은 그가 거대한 세계관의 부속품이 아니라 한 도시의 영웅임을 다시 확인시킨다. 근접 전투와 신체 변화가 강조된 액션은 피터의 심리와도 맞물린다. 이전 작품의 액션이 첨단 슈트의 기능이나 멀티버스의 시각적 스펙터클에 집중했다면, 이번 영화의 액션은 피터의 몸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직접 보여준다.

강해진 힘은 화려하지만 불안하고, 빠른 움직임은 통쾌하지만 언제 폭주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품는다. 액션이 곧 인물의 내면을 설명하는 장치가 된다. 이러한 변화는 MCU가 다시 캐릭터 중심의 서사로 돌아갈 가능성을 보여준다. 거대한 세계관과 연결성을 앞세우기보다, 한 인물이 무엇을 잃었고 그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집중할 때 마블 영화가 다시 감정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가 MCU 전체에서 갖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멀티버스는 마블이 수많은 캐릭터와 과거 시리즈를 연결할 수 있도록 만든 강력한 장치였다. 《노 웨이 홈》은 그 장점을 극대화한 영화였다. 역대 스파이더맨과 악당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여러 세대의 관객이 공유해온 기억이 거대한 팬서비스와 감정적 사건으로 결합했다.그러나 멀티버스의 확장은 동시에 피로를 만들었다. 인물 한 사람의 선택보다 세계관의 규칙과 다음 작품을 위한 연결 장치가 앞서는 경우가 많아졌고, 관객은 모든 작품을 따라가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그런 흐름에서 스케일을 줄이고 인물에게 돌아간다. 물론 영화에는 퍼니셔와 헐크, 데미지 컨트롤을 비롯한 MCU의 여러 요소가 등장한다. 진의 존재 역시 향후 돌연변이와 엑스맨 세계관을 확장하기 위한 중요한 연결점으로 읽힌다. 이 영화가 거대한 MCU 계획에서 완전히 독립된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중심은 피터 파커다.

다른 캐릭터들은 피터의 이야기를 대체하기보다 그의 선택을 비추는 역할을 한다. 퍼니셔는 위협을 제거하는 폭력의 논리를 보여주고, 헐크는 통제하기 어려운 힘과 함께 살아가는 문제를 제시한다. 진은 피터가 외면해온 상처와 능력을 거울처럼 되돌려준다. 이 연결들이 효과적인 이유는 세계관을 넓히기 위해 피터의 이야기를 희생하기보다, 피터의 내적 갈등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MCU의 향후 방향성도 이 지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블이 다시 관객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차원과 더 강한 악당만이 아니다. 관객이 한 인물의 상실과 선택을 이해하고, 그가 성장하는 과정을 따라갈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세계의 운명을 구하는 이야기보다, 기억에서 지워진 한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다시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영화가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인물 중심의 서사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퍼니셔, 헐크, 데미지 컨트롤, 스콜피온과 여러 범죄 세력, 진의 돌연변이 설정까지 많은 요소가 한 작품 안에 들어온다. 각각의 캐릭터와 설정은 흥미롭지만, 피터의 고립과 자기 수용이라는 중심 이야기에 충분히 집중할 시간을 빼앗기도 한다.

특히 진의 이야기는 피터의 서사와 가장 깊이 연결되면서도, 향후 MCU의 돌연변이 세계관을 위한 도입부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다. 진이 피터의 거울이자 독립적인 상처 입은 인물로 충분히 그려지기보다, 더 큰 세계관을 열기 위한 인물로 기능한다면 영화가 만들어낸 감정적 의미도 약해질 수 있다. 헐크와 퍼니셔 역시 피터에게 필요한 대조적 인물이지만, 이들의 존재감이 커질수록 영화는 다시 ‘스파이더맨 단독 영화’와 ‘MCU 크로스오버’ 사이에서 흔들린다.

스트리트 레벨로 돌아가겠다는 방향과 향후 어벤져스 및 엑스맨 세계관을 준비해야 한다는 프랜차이즈의 요구가 한 작품 안에서 충돌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가 끝내 중심을 잃지 않는 이유는 클라이맥스를 거대한 파괴나 카메오의 등장으로 해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피터와 진, 그리고 메이의 기억이다. 수많은 MCU 캐릭터와 설정이 지나간 뒤에도 영화의 결론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알아보는 순간으로 수렴한다. 마블 영화가 세계관의 규모보다 감정의 밀도로 관객을 설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더 강한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더 온전한 피터 파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피터가 모든 것을 되찾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메이를 되찾지 못한다. MJ와 네드의 기억도 돌아오지 않는다. 잃어버린 관계와 시간은 그대로 남는다. 피터의 외로움 역시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영화의 결말은 절망적이지 않다. 피터는 자신이 잃은 것만 바라보던 자리에서 벗어나, 그 관계들이 자신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를 보기 시작한다. 메이가 남긴 사랑과 책임, MJ와 네드에게서 배운 신뢰와 우정은 기억의 복원 여부와 관계없이 피터 안에 존재한다.

그 기억은 피터를 과거에 가두기도 했지만, 진을 이해하고 살리는 힘이 되기도 한다. 피터가 거미의 DNA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변화한 몸을 제거하거나 억제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인정하고, 그 힘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지 선택한다.

성장은 과거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 변화 속에서도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피터의 진정한 업그레이드는 능력의 강화가 아니다. 자신 안의 거미를 받아들이고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것, 자신이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되돌려주지 않는 것, 오히려 그 상처 속에서 발견한 사랑을 또 다른 상처 입은 사람에게 건네는 것이다.

피터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 영웅이 되지 않는다. 상처가 있어도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영웅이 된다. 메이를 잃은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MJ와 네드를 향한 사랑도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피터는 그 기억과 사랑을 자신을 파괴하는 힘으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메이의 위로는 피터의 기억 속에서 진에게로 건너간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사랑이 또 다른 사람을 살린다. 상실은 되돌릴 수 없지만 사랑은 전달될 수 있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가 말하는 새로운 날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하는 날이 아니다. 잊을 수 없는 사람들과 상처를 자기 안에 품고도, 다시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날이다. 기억에서 지워진 피터 파커는 그제야 다시 스파이더맨이 된다.

더 강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더 온전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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