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어디까지 다시 가르쳐야 하나

기초학력 보완교육과 대학 질 보장의 충돌

대학 강의계획서에 ‘be동사의 기본 기능’이나 ‘분수와 소수의 계산’, ‘방정식과 부등식의 기초’가 등장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학에서 중·고등학교 수준의 내용을 다시 가르치는 것이 과연 타당하느냐는 비판이 먼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대학이 고등교육기관이라면 그에 걸맞은 수준의 교육을 해야 하고,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에게 학위를 주는 것은 대학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주장도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강의계획서에 적힌 몇 개의 단어나 수식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대학이 기초교육을 제공한다는 사실과 낮은 교육 수준을 방치한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핵심은 대학이 어떤 학생을 받아들였으며, 그 학생을 졸업할 때까지 어느 수준으로 성장시켰는가에 있다.

일본의 대학 전문매체 ‘대학저널’ 2026년 7월호에 실린 교육 저널리스트 고바야시 데쓰오의 칼럼은 이 오래된 논쟁을 다시 꺼낸다. 제목부터 직설적이다. ‘대학에서 be동사와 초·중학교 수준의 수학을 가르쳐 무엇이 나쁜가’라는 문제 제기다.

대학 구조조정과 기초학력 논쟁이 만나는 지점

칼럼이 소개한 일본의 상황은 단순한 교육방법 논쟁에 머물지 않는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구조조정 문제와 연결돼 있다.

해당 칼럼에 따르면 일본 재무성 재정제도분과회에서는 2040년까지 대학 규모를 적정화하려면 국립대 학부 정원을 매년 약 1,700명, 사립대 학부 정원을 매년 약 8,700명 줄이고, 사립대학도 매년 최소 16개교 정도 감축할 필요가 있다는 추산이 제시됐다. 칼럼은 이를 2024년 624개인 사립대학을 2040년에는 217~372개 수준으로 줄이는 구상으로 해석한다.

대학 수를 줄여야 한다는 논거 가운데 하나는 학위의 질이다. 일부 대학에서 사칙연산, 중학교 수준의 수학, be동사와 일반동사 같은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 대학 교육의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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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표면적으로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대학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배워야 할 내용을 다시 가르치고 있다면, 대학 입학자 선발과 학위 수여 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학생 수를 확보하기 위해 충분한 학업 능력을 확인하지 않고 입학생을 받아들인 대학의 책임도 분명히 따져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물어야 한다. 대학이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만으로 존재 이유를 잃는 것인가. 아니면 그 학생을 실제로 변화시키지 못했을 때 비로소 대학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다시 가르치는 것’과 ‘그대로 졸업시키는 것’은 다르다

대학의 기초학력 보완교육을 비판할 때 흔히 두 가지 문제가 하나로 묶인다.

첫 번째는 대학이 중·고등학교 수준의 내용을 가르치는 문제다. 두 번째는 대학이 학위에 필요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에게도 졸업장을 주는 문제다. 두 문제는 서로 관련돼 있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입학생이 대학 교육을 따라갈 준비가 부족하다면 대학은 선택해야 한다. 학생을 탈락시키거나, 부족한 부분을 다시 가르치거나, 아무런 조치 없이 수업과 졸업 절차를 통과시키는 것이다. 이 가운데 대학의 질을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은 기초교육을 제공하는 일이 아니라, 학생의 부족한 역량을 확인하고도 실질적인 교육 없이 학위를 수여하는 일이다.

대학저널의 칼럼에는 과거 일본 언론으로부터 기초수준의 영어와 수학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조롱받았던 한 대학의 사례가 등장한다. 해당 대학의 학장은 영어와 수학을 싫어하게 된 학생들 상당수가 중학교 시절의 학습 실패 이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며, 이들에게 다시 고등교육을 받을 의욕을 회복시키는 것까지 대학이 맡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설명에는 주목할 만한 관점이 담겨 있다. 대학 교육의 출발점을 모든 학생에게 동일하게 설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떤 학생은 이미 고등학교 단계에서 대학 수준의 학습을 준비하고 입학한다. 반면 어떤 학생은 특정 교과의 기초에서 오랫동안 막혀 있다. 같은 입학 자격을 가졌다고 해서 실질적인 학업 준비도가 같은 것은 아니다. 대학이 다양한 학생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서로 다른 출발점을 외면한 채 동일한 수업만 제공하는 것이 반드시 공정한 교육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대학의 질은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기초학력 교육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대학의 질을 무엇으로 평가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입학생의 성적이 높은 대학을 좋은 대학이라고 보는 것은 간단하다. 선발된 학생의 학업 능력이 높을수록 높은 수준의 교육과 연구가 가능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입학 당시 학생의 역량만으로 대학의 교육력을 판단하면 대학이 실제로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학생의 입학 성적은 대학이 만들어낸 성과가 아니다. 상당 부분은 학생 개인과 가정, 학교 교육, 지역 환경이 대학 입학 이전에 축적한 결과다. 대학의 역할을 평가하려면 입학 당시의 수준뿐 아니라 재학 중 얼마나 성장했는지, 졸업할 때 어떤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을 받아들여 대학 수준의 읽기와 쓰기, 수리적 사고, 전공 학습 능력을 갖추게 했다면 그 대학의 교육적 기여는 작지 않다. 반대로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을 선발했지만 재학 기간 동안 특별한 성장을 제공하지 못했다면 높은 입학 성적만으로 교육의 우수성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대학의 질 보장은 ‘어떤 학생을 뽑았는가’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어떤 교육을 제공했는가’, ‘학생이 실제로 무엇을 배웠는가’, ‘학위가 어떤 역량을 보증하는가’까지 이어져야 한다.

보완교육이 대학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든 기초교육을 대학의 포용적 역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이 충원율을 높이기 위해 학업 준비가 부족한 학생을 무리하게 선발하고, 이후에도 제대로 된 지원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육 기회의 확대가 아니라 학생에게 비용과 시간을 전가하는 일이다. 기초학력 과목을 개설했다는 사실만으로 대학의 책임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보완교육이 대학 교육의 정당한 일부가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입학생의 학업 준비도를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무엇을 모르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모든 학생에게 획일적인 기초과목을 이수하게 하면 보완교육은 또 하나의 형식적인 교과목이 된다.

기초교육과 전공교육의 연결도 필요하다. 중학교 수학을 다시 가르쳤다면 그 학습이 대학의 통계, 경제, 공학, 자연과학 교육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여줘야 한다. 영어 문법을 복습했다면 그것이 전공 문헌의 독해와 학술적 의사소통으로 발전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위 기준은 분명해야 한다. 입학 당시의 수준은 다를 수 있지만, 졸업 시점에 요구되는 핵심 역량까지 낮춰서는 안 된다. 학생에게 다시 배울 기회를 주는 것과 학위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구분돼야 한다.

기초교육은 학위의 수준을 낮추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학생이 학위 수준에 도달하도록 돕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고등교육의 보편화 이후 달라진 대학의 역할

과거 대학은 소수의 학생을 선발하는 엘리트 교육기관에 가까웠다. 이 체제에서는 대학에 들어온 학생이 이미 일정한 수준의 읽기·쓰기·수리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전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 교육의 대상이 넓어지면 그 전제도 달라진다. 학생의 배경과 학업 경험이 다양해지고, 대학이 담당해야 할 교육의 범위 역시 넓어진다. 이전에는 대학 바깥에서 해결됐다고 여겼던 학습 결손과 학업 적응 문제도 대학 내부의 과제가 된다.

문제는 많은 대학이 다양한 학생을 받아들이면서도 교육체제는 여전히 소수 엘리트형 대학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의실에서는 학생들이 이미 대학 수업을 따라갈 준비가 돼 있다고 가정하고,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개인의 노력 부족이라는 평가를 내리기 쉽다.

그러나 입학을 허가한 이상 대학도 일정한 책임을 진다. 학생을 선발해 등록금을 받은 뒤 “대학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학은 자신이 받아들인 학생을 교육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 답해야 한다.

대학의 자율성은 누구를 뽑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한만을 뜻하지 않는다. 선발한 학생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떤 기준으로 학위를 수여할 것인지 책임지는 일까지 포함한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의 규모 조정은 피하기 어려운 과제가 될 수 있다. 모든 대학을 현재 규모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기초학력 교육을 실시한다는 사실만으로 대학을 낮은 수준의 기관으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는 대학이 맡고 있는 학생과 교육의 맥락을 보지 않고, 입학생의 초기 수준만으로 대학의 가치를 판단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면 대학이 기초교육을 하는지를 볼 것이 아니라, 그 교육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학생들이 입학 후 얼마나 성장했는지, 기초과정 이수 후 전공 학습으로 진입하고 있는지, 중도탈락을 줄이기 위해 어떤 지원을 제공하는지, 졸업생이 학위에 상응하는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교육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기초교육만 반복하는 대학과, 학습 결손을 보완해 학생을 실질적으로 성장시키는 대학은 구분돼야 한다.

대학의 질 보장은 낮은 출발점을 문제 삼는 데 있지 않다. 낮은 출발점에 머물도록 방치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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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어디까지 다시 가르쳐야 하는가

대학이 모든 학습 결손을 무한정 책임질 수는 없다. 초·중등교육의 문제를 고등교육이 모두 떠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기초교육이 확대될수록 초·중등교육과 대학 입학제도에 대한 점검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럼에도 대학이 학생을 선발한 뒤에는 “이것은 중학교에서 배웠어야 할 내용”이라는 말만으로 교육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이미 학생은 대학 안에 들어와 있고, 대학은 그 학생에게 교육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부터 가르치느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도달하게 하느냐다.

be동사를 다시 가르치는 대학이 반드시 낮은 수준의 대학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4년 뒤에도 학생이 기초적인 문장을 읽고 쓰지 못한 채 졸업하는 경우다. 중학교 수학을 복습하는 것 자체가 대학의 실패는 아니다. 그 복습이 대학 수준의 사고와 전공 학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때 대학의 실패를 물어야 한다.

고등교육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대학의 역할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 대학은 준비된 학생만 골라 가르치는 기관이면서 동시에,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학생을 성장시키는 기관이어야 한다.

기초학력 보완교육과 대학의 질 보장은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다. 제대로 설계된 보완교육은 오히려 대학의 질을 지키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만 그 출발점이 학위 기준의 완화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대학에 필요한 것은 기초교육을 숨기는 일이 아니라, 그 교육을 통해 학생을 얼마나 성장시켰는지 증명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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