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곧 학술적으로 정직하다는 뜻은 아니다. 표절은 타인의 문장이나 아이디어를 부당하게 가져와 자신의 것처럼 제시하는 문제다. 그러나 논문의 윤리는 표절을 피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연구자는 자신이 인용한 문헌을 실제로 읽었는지, 그 내용을 이해했는지, 그 문헌이 자신의 주장을 실제로 뒷받침하는지, 그리고 그 문헌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생성형 AI가 학술 글쓰기의 현장으로 들어오면서 이 오래된 문제가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 AI는 기존 문장을 그대로 복사하지 않고도 그럴듯한 글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문장 유사도는 낮을 수 있다. 표절검사 결과도 비교적 깨끗하게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논문 끝에 붙은 참고문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본문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거나, 저자가 읽지 않은 문헌이라면 그 글을 학술적으로 정직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표절검사는 중요한 도구다. 학위논문, 학술지 투고 논문, 연구보고서, 학생 과제에서 표절검사는 학술윤리의 기본 절차로 자리 잡았다. 기존 문헌과 문장이 얼마나 유사한지 확인하고, 인용 누락이나 부적절한 복제를 찾아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표절검사는 학술윤리의 전부가 아니다. 표절검사는 주로 텍스트의 유사성을 확인하는 장치이지, 참고문헌의 실재성과 인용의 적합성을 보장하는 장치는 아니다.
대표적인 유사도 검사 도구인 Turnitin 역시 유사도 보고서가 제출물과 데이터베이스의 텍스트 일치 부분을 보여주는 도구이며, 표절 여부 자체를 직접 판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유사도 점수는 검토의 출발점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학술적 정직성을 판정할 수는 없다. 유사도가 낮다고 해서 논문이 학술적으로 성실하다는 뜻은 아니며, 유사도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표절이라는 뜻도 아니다. 결국 판단은 문맥과 인용 방식, 근거의 적절성을 함께 살펴야 가능하다.
이 점에서 허위 인용 문제는 표절검사의 바깥에 놓인다. 가짜 참고문헌은 기존 문헌을 베껴 쓴 것이 아닐 수 있다. 생성형 AI가 허위의 제목, 저자명, 학술지명, 출판연도, 권호, 페이지를 새롭게 조합해 만들어낸 것이라면, 그것은 기존 자료와의 유사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표절검사는 “비슷한 문장”을 찾는 데 강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문헌”을 찾는 도구는 아니다.
문제는 이 빈틈이 학술 글쓰기의 가장 기초적인 신뢰를 흔든다는 데 있다. 참고문헌은 논문 말미에 붙는 장식이 아니다. 참고문헌은 저자가 어떤 지적 토대 위에서 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다. 독자는 참고문헌을 통해 저자의 주장을 되짚어볼 수 있어야 한다. 인용된 문헌을 찾아 읽고, 저자가 그 문헌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그 문헌이 실제로 본문 주장을 뒷받침하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학술 글쓰기의 기본 약속이다.
그러나 허위 인용은 이 약속을 깨뜨린다. 존재하지 않는 문헌이 참고문헌에 포함되면 독자는 그 근거를 확인할 수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문헌이라도 저자가 읽지 않았거나, 원문의 취지와 다르게 끌어왔거나, 본문 주장과 직접 관련이 없는데 권위를 보태기 위해 붙였다면 인용의 윤리는 훼손된다. 표절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학술적으로 정직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읽지 않은 문헌을 인용하는 관행은 AI 이전에도 존재했다. 어떤 연구자는 다른 논문이 인용한 문헌을 원문 확인 없이 다시 인용한다. 어떤 경우에는 초록만 읽고 문헌 전체의 주장을 아는 것처럼 인용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특정 이론이나 개념을 언급하기 위해 이름난 고전 문헌을 습관적으로 참고문헌에 올린다. 문헌 목록은 길어지지만, 실제로 저자의 논지 안에서 내재화된 문헌은 많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관행은 학술 생태계 안에서 오랫동안 묵인되어 왔다. 논문에 참고문헌이 많으면 성실해 보이고, 유명 연구자나 국제 학술지명이 포함되면 논문의 권위가 높아 보인다. 그러나 인용문헌의 수가 연구자의 이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많이 인용했다고 많이 읽은 것은 아니며, 유명한 문헌을 달았다고 그 문헌의 문제의식을 자신의 논지 안에 제대로 흡수했다는 뜻도 아니다.
인용의 핵심은 양이 아니라 관계다. 이 문헌이 왜 여기에서 필요한가. 이 문헌의 어떤 주장이나 자료가 본문 논지를 뒷받침하는가. 저자는 해당 문헌의 맥락을 이해하고 있는가. 원문이 말하는 내용을 왜곡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인용은 학술적 장식에 가깝다. 참고문헌 목록은 채워졌지만, 학술적 책임은 비어 있는 상태다.
생성형 AI는 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AI는 사용자가 요청하면 문헌 검토 초안, 연구 배경, 선행연구 정리, 참고문헌 목록을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 문제는 AI가 실제 문헌을 정확하게 찾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통계적으로 그럴듯한 문헌 정보를 생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제목은 자연스럽고, 저자명은 실제 연구자처럼 보이며, 학술지명은 그럴듯하다. 출판연도와 권호, 페이지 정보까지 붙으면 사용자는 그것을 실제 문헌으로 오해하기 쉽다.
2023년 Scientific Reports에 실린 William H. Walters와 Esther Isabelle Wilder의 연구는 이 위험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연구진은 ChatGPT-3.5와 GPT-4가 생성한 문헌 검토 글 84편에 포함된 참고문헌 636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GPT-3.5가 생성한 참고문헌의 55%, GPT-4가 생성한 참고문헌의 18%가 실제 학술문헌으로 확인되지 않는 조작된 참고문헌이었다. 실제 존재하는 문헌이라도 저자, 제목, 연도, 학술지명, 권호, 페이지 등에서 실질적 오류가 나타났다.
이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AI가 단순히 틀릴 수 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AI는 틀린 정보를 학술적 형식으로 제시할 수 있다. 가짜 참고문헌은 허술한 메모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논문 말미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정돈된 서지 형식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위험하다. 형식이 갖춰질수록 사람은 덜 의심한다. 학술문헌처럼 보이는 것은 학술문헌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AI가 만든 참고문헌을 그대로 사용하는 행위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책임의 경계가 흐려지기 때문이다. 연구자는 “AI가 제시한 자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논문에 들어가는 순간 그것은 연구자의 인용이 된다. AI가 가짜 문헌을 만들었더라도, 그것을 확인하지 않고 사용한 책임은 저자에게 있다. 도구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논문의 저자는 사람이고, 인용의 책임도 사람에게 있다.
국제 학술출판계도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국제 의학학술지 편집인위원회(ICMJE)는 AI 보조 기술을 사용한 경우 저자가 이를 공개해야 하며, AI 도구는 정확성, 무결성, 독창성에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저자가 될 수 없다고 안내한다. 또한 인간 저자는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수정해야 하며, 적절한 인용과 완전한 참고문헌을 보장해야 한다고 설명한다.세계의학편집인협회(WAME) 역시 챗봇을 활용한 원고에서 인간 저자가 내용의 정확성, 표절 부재, 출처 표시의 적절성에 책임져야 한다고 권고한다.
이 원칙은 AI 시대 연구윤리의 핵심을 보여준다. AI를 썼다는 사실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AI가 만든 결과를 사람이 어떻게 검증했는가이다. AI가 제시한 문헌을 실제로 찾아보았는가. DOI가 맞는지 확인했는가. 저자와 출판연도, 학술지명이 일치하는지 확인했는가. 그 문헌이 본문에서 말한 내용을 실제로 뒷받침하는지 확인했는가.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AI를 활용한 글은 학술적 검증 가능성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다.
표절검사를 통과한 논문이라도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문장 유사도가 낮다는 것은 남의 문장을 그대로 베끼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근거가 정확하다는 뜻은 아니다. 가짜 참고문헌은 유사도 검사에서 오히려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 문헌은 기존 데이터베이스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표절검사를 통과했다”는 말은 “이 논문의 참고문헌은 모두 실제이고 적절하다”는 뜻이 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학술적 정직성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학술적 정직성은 남의 것을 훔치지 않는 데서만 성립하지 않는다. 자신의 주장에 붙인 근거가 무엇인지 알고, 그 근거가 실제로 존재하며, 그것이 본문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자가 인용한 문헌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면, 참고문헌은 학술적 근거가 아니라 장식에 가까워진다.
인용문헌의 내재화는 그래서 중요하다. 내재화란 단순히 문헌을 읽었다는 뜻이 아니다. 해당 문헌의 문제의식, 연구방법, 핵심 주장, 한계, 자신의 연구와의 관련성을 이해했다는 뜻이다. 어떤 문헌을 인용하려면 적어도 그 문헌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주장을 했고, 자신의 글에서 왜 필요한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되지 않는 인용은 형식적으로는 맞을지 몰라도 학술적으로는 취약하다.
물론 모든 참고문헌을 같은 깊이로 읽을 수는 없다. 연구 분야에 따라 문헌 수는 많고, 배경 설명을 위한 문헌과 핵심 근거 문헌의 중요도는 다르다. 그러나 적어도 핵심 주장에 직접 연결되는 문헌, 이론적 토대가 되는 문헌, 연구방법이나 분석틀을 제공하는 문헌, 논쟁적 주장을 뒷받침하는 문헌은 반드시 직접 확인해야 한다. 2차 문헌을 통해 알게 된 문헌을 인용할 때는 원문을 확인하거나, 원문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2차 인용임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 원칙은 대학원생에게 특히 중요하다. 연구 초보자는 선행연구를 빠르게 정리하고 싶은 압박을 받는다. AI는 이 과정에서 유혹적인 도구가 된다. 주제를 입력하면 관련 연구를 정리해주고, 그럴듯한 참고문헌까지 제시한다. 그러나 바로 이 편리함이 위험하다. AI가 제시한 문헌 목록을 그대로 믿는 순간, 연구자는 자신이 읽지 않은 문헌을 읽은 것처럼 가장할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 문헌을 실제 문헌처럼 인용할 수도 있다.
연구자는 AI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AI가 대신 읽어줄 수는 없다. AI가 요약한 문헌은 원문이 아니며, AI가 제시한 참고문헌은 검증된 근거가 아니다. 연구자가 해야 할 일은 AI의 답을 자신의 글에 붙여넣는 것이 아니라, 그 답을 의심하고 확인하고 자신의 논지 안에서 다시 구성하는 것이다. AI 시대의 연구 능력은 더 많은 문장을 생산하는 능력이 아니라, 생산된 문장의 근거를 판별하는 능력에 가까워지고 있다.
학술지와 대학도 이 문제를 개인의 성실성에만 맡겨둘 수 없다. 연구윤리 교육은 표절 예방과 인용 형식 교육을 넘어, 인용의 책임을 가르쳐야 한다. 학생에게 참고문헌 양식을 맞추는 법만 알려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왜 그 문헌을 인용해야 하는지, 원문을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지, 2차 인용은 어떻게 표시해야 하는지, AI가 제시한 문헌은 어떻게 검증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한다.
학술지 심사에서도 참고문헌은 더 이상 단순한 목록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참고문헌을 심사자가 하나씩 검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핵심 주장에 연결된 문헌, 낯선 학술지, DOI가 불명확한 문헌, 본문 논지와 직접 관련되어 보이지 않는 문헌은 더 주의 깊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AI 활용이 일반화될수록 심사 과정에서 참고문헌의 실재성과 적합성은 중요한 검토 항목이 될 수밖에 없다.
허위 인용은 학술 생태계의 신뢰를 내부에서 약화시킨다. 외부에서 보면 논문은 형식을 갖추고 있다. 제목이 있고, 초록이 있고, 본문이 있고, 참고문헌이 있다. 그러나 그 참고문헌이 읽히지 않았고, 이해되지 않았고, 확인되지 않았고,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학술의 형식은 남아 있어도 신뢰의 내용은 비어 있게 된다.
학술은 완벽한 확실성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연구는 언제나 수정되고 반박되고 확장된다. 그러나 그 과정이 가능하려면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하다. 독자가 저자의 근거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인용된 문헌이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연구자가 자신의 근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무너지면 학술적 토론은 주장과 권위의 외피만 남긴 채 검증 가능성을 잃는다.
표절은 아니지만 학술적으로 정직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문장은 AI 시대 연구윤리의 핵심 질문이 되어야 한다. 문장을 훔치지 않았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문헌을 인용했다면 정직하지 않다. 실제 문헌을 인용했더라도 읽지 않았다면 정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읽었더라도 본문 주장과 무관한 문헌을 권위처럼 붙였다면 성실한 인용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인용은 형식이 아니라 책임이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학술적 양심은 새로운 기술을 거부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기본적인 태도로 돌아가는 데서 시작된다. 자신이 인용한 문헌을 읽는 것. 읽은 내용을 자신의 말로 이해하는 것. 그 문헌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것.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 문헌을 과감히 빼는 것. 확인하지 못한 근거를 확인한 것처럼 쓰지 않는 것. 이것이 표절검사 이후에 남는, 그러나 더 근본적인 연구윤리의 최소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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