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대 출판부, 중국 법무부 후원 과학 저널 출간 중단… 인권 윤리 논란이 결정타

출판 중단 선언, ‘윤리’에 침묵한 옥스퍼드대 출판부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학술 출판 기관인 옥스퍼드대학교출판부(Oxford University Press, 이하 OUP)가 중국 법무부 산하 기관이 후원하는 과학 저널 《Forensic Sciences Research》(FSR)에 대한 출간 계약을 올해를 끝으로 종료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OUP는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2025년 볼륨 10, 4호를 마지막으로 FSR의 출판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FSR은 중국 법무부 소속 법의과학연구원(Chinese Academy of Forensic Sciences)이 발간하는 법의학 전문 영문 계간지로, 2023년부터 OUP를 통해 국제 유통되고 있었다. 그러나 몇 년간 이 저널에 실린 논문들이 위구르인 등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연구에서 ‘자발적 동의 여부’와 ‘국제 윤리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OUP는 계약 종료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다수 전문가들은 “윤리적 우려가 계속 제기되어온 만큼 출판사의 책임 있는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동의 없는 DNA 연구, 국제 기준 위반”… 논란의 논문들

FSR의 문제 논문 중 대표적인 것은 2020년에 발표된 위구르인 유전자 연구다. 이 논문은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수도 우루무치에서 채취한 264명의 혈액 샘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논문은 연구 대상자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했으며, 개인정보는 익명 처리되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논문 제1저자의 소속은 ‘신장경찰대학(Xinjiang Police College)’으로, 연구 자금도 국가 보안 기관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학계는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지역의 주민들이 과연 연구 참여를 자유롭게 거부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며, 해당 연구가 ‘자발적 동의’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 논문은 철회되지 않았으나, OUP는 2024년 “문제 제기에 대한 우려 표명(expression of concern)”을 공식적으로 게재한 바 있다. 반면, FSR에 실린 다른 두 편의 DNA 연구 논문은 실제로 OUP에 의해 철회되었다. 두 논문 모두 연구진이 중국 공안기관과 관련되어 있었고, DNA 데이터가 적절한 윤리 검토 없이 활용되었다는 점이 문제로 지목됐다.

DNA 수집과 감시사회, 과학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법의학 연구는 일반적으로 경찰기관이나 사법당국 주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국처럼 국가 감시체계가 제도적 견제를 받지 않는 환경에서는, 이러한 연구가 국제 인권 기준에 위배될 가능성이 커진다.

벨기에 루벤대학교의 유전공학 전문가 이브 모로(Yves Moreau) 교수는 FSR과 OUP 간의 협업을 처음 문제 제기한 인물로, “DNA 식별 기술은 범죄 해결에 유용할 수 있지만, 감시 목적의 남용 가능성도 매우 크다”며 “윤리적 경계가 가장 철저히 지켜져야 할 분야가 바로 법유전학”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신장과 티베트에서의 대규모 DNA 수집 및 감시가 국제 인권 규범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발 과학 연구에 대한 국제 출판계의 역할과 책임이 부각되고 있다. 가디언이 입수한 OUP와 중국 법의과학연구원 간의 출판 계약서에 따르면, OUP는 FSR 지면에 유료 광고를 유치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으며, 해당 저널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공유받는 조건이었다. 단순한 출판 대행을 넘어 상업적 이해관계가 개입된 구조였던 셈이다.

출판 계약 체결 당시인 2023년, FSR 공동 편집장 두아르트 누노 비에이라(Duarte Nuno Vieira)는 “중국 법무부의 후원이 편집 독립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이후의 편집 방향과 논문 수록 기준에 대해선 투명한 설명이 부족했다.

OUP 측은 “계약 종료 이후 FSR 출판은 중국 내 합작사인 KeAi(Elsevier와 중국측이 공동운영)가 맡게 된다”고 밝혔지만, 윤리적 논란은 해소되지 않은 채 출판사가 바뀌는 ‘형식적 전환’에 그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강제 동의·감시 확장… ‘과학의 탈’을 쓴 인권 침해

FSR과 같은 과학 저널을 통한 인권 침해 우려는 단순히 ‘출판사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2016~2018년 사이 신장 지역에서 위구르인 100만여 명을 ‘직업교육센터’에 수용했고, 같은 시기 ‘건강검진’을 명분으로 대규모 DNA 채취가 이뤄졌다. 인권단체들은 이를 자발적 검진이 아닌 ‘강제 수집’이라고 규정한다.

UN은 중국 정부의 신장 정책이 “반인도 범죄의 소지가 있다”고 밝힌 바 있으며, 미국과 유럽의 주요 과학 출판사들도 최근 중국발 유전자 연구 논문을 다수 철회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또 다른 유명 유전학 저널이 중국발 논문 18편을 한꺼번에 철회한 사례가 있었고, 공안기관 소속 연구자의 논문은 보다 엄격한 윤리검토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국제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OUP의 결정은 단순히 하나의 출판 종료 이상을 의미한다. 이것은 “과학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가려져 있던 국가 감시와 인권 침해 문제를 국제 출판계가 더 이상 외면하지 않겠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다만 이브 모로 교수는 “OUP가 발표한 단 한 문장의 공지로는 이 사안의 심각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향후 더욱 투명한 정보 공개와 책임 있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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