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도 배워야 한다 – 대학이 SEL을 도입하는 이유

AI 시대, 정서지능은 선택 아닌 필수… 감정 조절과 공감 능력을 가르치는 고등교육의 새로운 흐름

“대학은 이제 지식만 가르쳐선 안 된다”

2025년 7월 20일, Forbes에 실린 한 칼럼은 대학 교육의 새로운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칼럼의 제목은 「The Rise Of Social-Emotional Learning In Higher Education」.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TCU)의 에릭 우드 교수는 이 글에서 “이제 대학은 학생들에게 정서적 역량을 길러주는 교육까지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단순한 주장이나 유행이 아닌, 이미 여러 고등교육기관에서 실행되고 있는 흐름이다. 사회·정서학습(Social-Emotional Learning, 이하 SEL)이란 무엇인가? 왜 지금 이 개념이 대학 교육에서 중요해지고 있는가? 대학은 전통적으로 지식 전달과 전문성 함양의 공간으로 여겨져 왔지만, AI 챗봇과 가상관계, 불안장애와 소외감이 만연한 시대에 학생들은 더 이상 ‘지식만으로는 부족한’ 존재가 되었다.

SEL이란 무엇인가 – 지식이 아닌 ‘사람다움’을 기르는 교육

SEL은 단순히 ‘감정을 다루는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더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감정 인식과 조절,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 형성, 책임 있는 의사결정 등을 포함하는 전인교육 철학이다.

SEL의 가장 대표적인 모델은 CASEL(Collaboration for Academic, Social, and Emotional Learning)에서 개발한 것이다. 이 모델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핵심 역량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자기 인식(Self-awareness): 자신의 감정과 가치, 강점과 한계를 인식하는 능력, 자기 관리(Self-management): 충동 조절, 스트레스 관리, 목표 설정과 성취, 사회적 인식(Social awareness): 공감 능력, 다양성에 대한 존중, 사회적 규범 이해, 관계 기술(Relationship skills): 갈등 해결, 협력, 효과적인 의사소통, 책임 있는 의사결정(Responsible decision-making): 윤리적 판단, 문제 해결 능력, 개인 및 집단에 대한 책임감이다.

    이러한 역량은 단순히 유년기나 청소년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성인이 되어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에게도 여전히, 어쩌면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기술이 된다.

    AI 챗봇과 외로움 – 왜 SEL이 지금 더 중요해졌나

    Forbes 기사에서 에릭 우드 교수는 “대학생들이 인간처럼 반응하는 AI 챗봇과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유착되는 ‘비대칭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친구나 연인을 사귀는 대신, 감정을 조절하고 피드백을 주는 챗봇에게 의존하는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디지털 의존 현상을 넘어서, 감정을 공유하고 조절할 방법을 배우지 못한 세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SEL은 이런 맥락에서 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SEL은 감정교육이지만, 학업 성과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19년 미국심리학회(APA)는 감정조절과 대인관계 역량이 학업 성취를 높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2023년 예일대학교 의과대학은 전 세계 K-12 학생 50만 명 이상의 데이터를 메타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분석은 SEL 프로그램이 학생들의 자기효능감, 낙관성, 회복탄력성 증가, 불안, 스트레스, 우울 감소 , 자살 충동 감소, 학교생활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정서 반응 증진과 같은 긍정적 효과를 보인다고 밝혔다.

    결국, SEL은 학생의 내면과 관계, 학교생활의 전반을 개선하며, 이는 자연스럽게 학업 성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고등교육에서 SEL은 어떻게 도입되고 있는가?

    기존에는 SEL이 주로 초·중등 교육에서 활용되었지만, 최근에는 대학도 이를 본격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다음은 고등교육에서 SEL이 적용되고 있는 대표적 사례들이다.

    하버드대학교 산하 학습혁신센터(VPAL)는 2025년 ‘대학 강의실에서 SEL을 통합하는 가이드’를 제작했다. 이 가이드는 불안감 완화와 관계 중심 학습을 위한 실제 수업 전략을 제공한다. 영국의 고등교육기관에서는 2024년부터 SEL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긍정적 정서 반응과 웰빙 지수가 향상되었다는 연구결과가 『Social and Emotional Learning: Research, Practice and Policy』 저널에 실렸다. NOVA-EDU는 대학 캠퍼스 전반에 SEL을 통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수업은 물론, 학생상담, 기숙사 프로그램, 동아리 활동 등 캠퍼스 전역에서 SEL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수도, 직원도, 학생도 함께하는 ‘SEL 캠퍼스’

    SEL이 단지 하나의 과목이나 워크숍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대학 전체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실제로 많은 SEL 기반 대학들은 교수, 직원, 상담사, 운동코치 등 모든 구성원이 SEL의 원칙을 공유하고, 이를 교육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반영하고 있다. 이는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자’에서, 정서적 성장과 사회적 책임을 촉진하는 ‘멘토’로서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물론 고등교육 기관들이 SEL을 도입하는 데는 여러 현실적 제약도 있다. 우선 강의시간이 부족(학업 진도도 빠듯한데 SEL까지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하고, 교수 역량(정서교육에 익숙지 않은 교수들이 많음)과 학생의 다양성으로 어떤 학생은 SEL로 충분하지 않은 복합적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EdWeek.org가 2025년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1%의 교육자들이 SEL에 대해 “긍정적” 또는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반대 의견은 5%에 불과했다. 이는 교육계 전반에서 SEL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대학에도 필요한 논의

    한국의 대학은 과연 어떤가? 아직 SEL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한 경우가 많다. 상담센터나 심리상담 프로그램은 일부 존재하지만, 그것이 교육철학으로 연결되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 대학에서도 코로나19 이후 불안과 고립, 번아웃을 호소하는 학생이 많아졌고, 다문화와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증가함에 따라, 이제 SEL은 상담실 안에 머물 문제가 아니라, 강의실과 캠퍼스 전반으로 나야 할 교육적 의제다.

      사회는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을 종종 “약하다”고 본다. 그러나 SEL의 철학은 정반대다.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고, 타인의 감정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오히려 강한 사람이다. 대학은 이제 감정을 억누르거나 무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곳이 되어야 한다. SEL은 감정이 배움의 장애물이 아니라, 배움 그 자체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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