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의 살을 덜고 영화적 운동성과 감각에 집중한 156분
칸의 환호와 국내 관객의 피로감은 같은 연출적 선택에서 갈렸다
영화를 보고 시간이 흐른 뒤 무엇이 남았는가. 「호프」에 이 질문을 던지면 다소 모순적인 답이 돌아온다. 사건의 순서와 인물들의 선택은 선명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쫓았는지, 어느 순간 인간과 외계 존재의 입장이 뒤집혔는지 다시 생각해야 할 만큼 줄거리의 세부는 빠르게 희미해진다. 그런데 영화가 지루했다는 기억은 없다. 달리고, 부딪히고, 소리치고, 뒤집히고, 폭발하던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모순은 「호프」의 실패를 보여주는 증거일 수도 있고, 영화가 처음부터 겨냥했던 성취일 수도 있다. 나홍진 감독의 네 번째 장편영화 「호프」는 관객이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도록 설계된 작품이라기보다, 상영 시간 동안 관객의 신체를 붙잡아 두는 영화에 가깝다. 정교한 인과관계를 따라가게 하기보다 인물들과 함께 뛰고, 넘어지고, 쫓기고, 오인하게 만든다. 사건을 충분히 이해할 여유를 제공하지 않은 채 다음 장면으로 밀어붙이고, 이야기를 복기할 언어보다 속도와 소리, 이미지의 잔상을 남긴다.
이 영화를 두고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된 평가가 아니다. 오히려 「호프」가 어떤 영화인지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감상일 수 있다. 이야기가 희미한데도 체험이 남았다면, 「호프」는 서사영화로서는 불완전하지만 극장에서 경험하는 운동의 영화로서는 자신의 목적에 상당 부분 도달한 셈이다.
서사보다 상황, 설명보다 운동
「호프」는 비무장지대 인근의 가상 항구마을 호포에서 시작한다. 가축이 끔찍하게 훼손된 채 발견되고 주민들은 호랑이나 곰의 소행을 의심한다. 호포 출장소장 범석과 마을 청년들은 정체불명의 존재를 추적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냥하러 나선 사람들이 사냥감으로 바뀐다. 영화는 시골 미스터리에서 출발해 크리처 호러와 생존 스릴러를 지나 대규모 추격 액션과 외계 SF로 몸집을 키운다.
일반적인 장르영화라면 이 과정에서 인물의 과거와 관계, 괴생명체의 기원과 목적, 사건이 발생한 원인을 순차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호프」는 그 설명을 최소화한다. 인물들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보다 지금 무엇을 보고, 어디로 달려가며,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에 집중한다. 영화의 전반부를 이끌어가는 범석도 영웅적 경찰로 소개되지 않는다. 그는 겁을 먹고 당황하며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성애와 성기, 양배 역시 심리적으로 깊이 구축된 인물이라기보다 사건을 움직이고 속도를 바꾸는 기능적 존재에 가깝다.
이 선택은 관객에게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만든다. 인물의 내면과 사건의 인과를 중심으로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호프」는 개연성이 부족하고 감정이입이 어려운 작품이 된다. 반대로 영화적 움직임과 현장감, 장르적 에너지를 중시하는 관객에게는 설명 때문에 멈추지 않는 보기 드문 대형 액션영화로 다가온다.
나홍진 감독은 개봉을 앞둔 인터뷰에서 한국 관객이 한 작품 안에 여러 장르가 뒤섞인 영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여러 요소를 늘어놓기보다 장르의 특성과 색감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칸 공개 이후에도 일부 장면을 추가하거나 덜어내고, 사운드와 색보정, 컴퓨터그래픽 후반작업을 이어갔다. 칸에서 공개된 160분 버전은 국내 개봉판에서 156분으로 줄었지만, 단순히 분량을 덜어낸 것이 아니라 일부 인물의 장면을 보강하고 다른 부분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리듬을 조정했다.
영화의 불친절함을 모두 “감독의 의도”로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의도적으로 설명을 줄인 것과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것은 다른 문제다. 그러나 「호프」의 경우 적어도 설명을 희생하고 운동성을 선택했다는 방향만큼은 분명하다. 감독과 제작진이 원했던 것은 관객이 영화의 설정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상태가 아니라, 인물들이 경험하는 혼돈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것이었다.
카메라는 인물을 설명하지 않고 함께 달린다
「호프」에서 가장 확실하게 기억되는 것은 촬영이다. 영화는 괴생명체가 등장하는 스릴러임에도 상당수 장면을 밤의 어둠이 아니라 대낮의 자연광 아래 배치한다. 어둠 속에서 괴물을 감추는 익숙한 방식 대신, 모든 것이 보일 것 같은 밝은 공간에서 오히려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호포의 거리와 시장, 산과 도로는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 카메라는 그 공간을 관객이 직접 통과하도록 만든다. 범석이 파괴된 마을을 지나갈 때 관객은 그가 보는 순서대로 불탄 건물과 쓰러진 사람, 부서진 차량을 목격한다. 한 화면에서 모든 상황을 정리해 보여주지 않고, 인물의 제한된 시야에 관객을 가둔다. 그 때문에 관객은 사건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기보다 범석처럼 뒤늦게 사태를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홍경표 촬영감독은 「호프」의 목표를 “관객이 영화관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듯 몰입하고 체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범석의 시선을 따라 폐허가 된 시장과 골목을 보게 함으로써 관객이 그 상황을 함께 겪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나홍진 감독 역시 기존 영화에서 이미 많이 사용된 말과 자동차, 총격을 새로운 이미지로 찍기를 원했다고 한다. 이 말은 「호프」의 성격을 거의 그대로 설명한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인물을 관찰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인물의 행동에 붙어 함께 질주한다. 말 위의 인물과 자동차, 괴생명체가 하나의 속도로 연결되고, 원경과 근경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카메라가 상황을 안정적으로 정리해주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액션을 감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액션에 휘말린 사람이 된다.
특히 도로 추격 장면에서 이러한 방식은 절정에 이른다. 보통의 자동차 액션이 차량의 위치와 이동 방향을 명확하게 보여주며 쾌감을 만든다면, 「호프」는 차량과 사람, 괴생명체가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며 달리는 상태를 강조한다. 누가 쫓고 누가 쫓기는지, 어느 순간 우세가 바뀌었는지를 생각할 겨를 없이 화면의 운동 자체가 관객을 끌고 간다.
CG의 완성도보다 중요한 것은 실재감의 연결
「호프」의 컴퓨터그래픽은 해외 공개 당시 가장 크게 평가가 엇갈린 요소였다. 실사 촬영과 대규모 액션은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외계 존재의 형상과 일부 움직임이 공개되는 순간 긴장감이 약해진다는 비판도 나왔다. 칸 상영 당시 일부 해외 평론은 외계 생명체의 질감이 이전 장면에서 쌓아온 사실적인 공간과 충분히 결합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나홍진 감독은 칸 이후에도 개봉 직전까지 CG 컷을 확인하고 사운드와 색보정 등 후반 공정을 이어갔다고 밝혔다. 국내 개봉판에서 CG는 한국영화의 기술적 규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괴생명체가 실제 인물과 차량, 도로와 충돌하는 장면도 상당한 물리적 무게를 확보했다. 특히 실사 스턴트와 로케이션 촬영, 세트 파괴가 CG와 결합하면서 화면 전체가 디지털 이미지처럼 가볍게 떠오르는 것을 막는다.

다만 모든 장면이 같은 수준의 설득력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외계 존재가 화면에 완전히 드러난 뒤에는 미지의 대상이 주던 공포가 구체적인 디자인에 대한 호불호로 바뀐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남긴 흔적은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실체를 확인한 순간 관객은 그 생명체가 무서운지, 낯선지, 익숙한 다른 영화의 외계인을 닮았는지를 판단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의 긴장도 함께 변한다. 전반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존재를 추적하는 미스터리라면, 후반부는 이미 모습을 드러낸 존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액션이다. 일부 관객이 전반부의 압박감을 더 높이 평가하고 후반부를 익숙한 크리처 소동극으로 받아들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호프」의 CG를 몇몇 장면의 완벽성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 영화가 이룬 성취는 외계 존재 하나를 정교하게 구현했다는 데 있지 않다. 한국의 산과 어촌, 오래된 파출소와 시장, 말과 차량, 총격과 괴생명체를 하나의 운동 안에 넣었다는 데 있다. 외계인이 한국적 공간을 침범한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그 공간의 일부처럼 함께 달린다. 이것이 「호프」가 기술적으로 보여준 가장 중요한 성취다.
웃어야 할지 망설이는 순간까지 계산된 영화
「호프」의 호불호를 가르는 또 하나의 요소는 유머다. 영화는 사람이 죽고 마을이 파괴되는 절박한 순간에도 인물들의 어리석은 행동과 엇박자 나는 대화를 끼워 넣는다. 비극적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농담과 실수가 반복되고, 관객은 웃음이 나면서도 지금 웃어도 되는지 잠시 망설이게 된다. 이 유머를 긴장감을 무너뜨리는 결함으로 받아들이는 관객도 적지 않다. 전반부에서 공포와 미스터리를 따라온 관객에게 중후반부의 과장된 반응과 우스꽝스러운 행동은 다른 영화가 갑자기 끼어든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평가가 나왔다. 가디언은 영화의 거침없는 질주와 디지털 기술, 고전적 액션의 결합을 높게 평가했지만, 3막의 설정과 괴생명체 디자인은 의견이 갈릴 수 있다고 봤다. 버라이어티와 인디와이어 등 일부 매체는 뛰어난 액션에 비해 긴 러닝타임과 인물, 후반부의 톤 변화가 영화를 약화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나홍진 감독에게 이 유머는 긴장을 잠시 완화하기 위한 서비스 장면이 아니다. 그는 가장 힘들고 웃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웃음이 발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심각한 상황에서 엉뚱한 말을 하며 웃었던 기억이 자신에게도 남았다고 설명하며, 관객들이 영화의 이상한 순간에 웃어주기를 바랐다고 밝혔다. 이 말에 따르면 「호프」의 블랙코미디는 장르적 통일성을 실수로 깨뜨린 것이 아니라, 나홍진 감독이 의식적으로 삽입한 균열이다. 인간은 위험 앞에서 언제나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공포에 질려 실수하고, 중요한 순간에 사소한 것에 집착하며, 이해할 수 없는 농담으로 상황을 견딘다. 영화 속 재앙도 악의를 지닌 거대한 계획보다 무지와 오판, 사소한 탐욕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영화의 우스꽝스러움은 비극과 반대되는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비극이 시작되는 방식과 닮아 있다. 인간은 악해서만 파국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성급하며,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에 파국을 만든다. 「호프」의 유머가 불편한 이유는 웃긴 장면이 비극을 방해해서가 아니라, 그 우스꽝스러움이 결국 비극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괴물의 실체보다 중요한 ‘입장의 차이’
영화 전반부에서 외계 존재는 명백한 괴물이다. 인간과 가축을 공격하고, 마을을 파괴하며, 총을 든 주민들을 압도한다. 관객은 인간의 제한된 시선을 따라가며 그것을 제거해야 할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 외계 존재들에게도 자신들만의 목적과 절박함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사건의 시작에는 양배가 있다. 그는 낯선 생명체를 발견한 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 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처리한다. 외계 존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들은 자식을 죽이고 시신을 가져간 존재들이다. 인간에게 외계인은 마을을 침략한 괴물이지만, 외계 존재에게 인간은 자신들의 가족을 훼손한 가해자다.
그렇다고 영화가 인간과 외계인의 입장을 완벽하게 대칭시키는 것은 아니다. 관객은 대부분의 시간을 인간 인물들과 보내고, 액션의 쾌감도 인간의 생존과 반격을 통해 얻는다. 외계 존재의 사정이 밝혀진 뒤에도 관객은 그들의 감정에 충분히 머무를 시간을 얻지 못한다. 영화는 인간 중심적 시각을 비판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총을 쏘고 차를 몰며 괴생명체와 싸우는 장면에서 가장 큰 오락적 쾌감을 만들어낸다.
이 모순은 「호프」의 한계이면서 흥미로운 지점이다. 영화는 “상대에게도 입장이 있다”고 말하지만,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시키는 대신 뒤늦게 정보를 공개해 관객이 자신이 오인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해보다 충격을 택하고, 공감보다 시점의 전복을 택한다.
그 결과 관객은 외계 존재에게 깊게 감정이입하기보다 자신이 앞서 보고 판단한 장면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영화가 원하는 것은 완전한 화해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 빨리 괴물을 결정하지 않았는지 묻는 데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사건이 없어서가 아니다
「호프」에는 사건이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난다. 문제는 사건 사이의 의미를 정리할 틈이 없다는 데 있다. 영화는 하나의 충돌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위험을 제시하고, 인물들이 방금 겪은 일을 해석하기 전에 다시 움직이게 한다. 관객의 기억은 일반적으로 인과관계를 통해 장면을 정리한다. 누가 무엇을 원했고, 어떤 선택을 했으며,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가 분명할수록 이야기는 오래 남는다. 그러나「호프」에서 인물의 욕망은 생존이라는 단순한 목표로 모이고, 세부 행동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영화를 본 뒤에는 사건의 구조보다 몇 개의 강한 이미지가 남는다. 대낮의 폐허,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차량, 총을 든 인물, 괴생명체의 움직임, 말과 자동차가 한 화면에서 충돌하는 순간, 적막 뒤 갑자기 밀려오는 거대한 소리 같은 것들이다.
이는 내용이 없어서 기억되지 않는 영화와는 다르다. 「호프」는 내용보다 사건의 밀도가 지나치게 높고, 그것을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힘이 너무 강해 의미가 이미지 뒤로 밀려난 영화다. 무엇을 말했는지보다 어떻게 말했는지가 앞서고, 어떻게 말했는지보다 관객이 어떻게 반응했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을 비롯해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 등 국내외 배우들이 참여했지만, 「호프」는 스타 배우들의 개별 서사를 길게 펼쳐 보이는 영화가 아니다. 배우들은 영화의 서로 다른 리듬을 담당한다. 황정민이 연기하는 범석은 전반부의 시점을 책임진다. 그는 관객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인물이 아니라 관객만큼 아무것도 모르는 인물이다. 겁을 먹고, 잘못 판단하고, 뒤늦게 상황을 발견한다. 황정민의 연기는 거대한 사건을 평범한 인간의 당혹감으로 붙잡는다. 영화가 우주적 규모로 확장되기 전까지 관객이 현실감을 잃지 않는 것은 범석의 반응이 지나치게 영웅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조인성의 성기는 영화가 본격적인 액션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담당한다. 그의 인물은 심리적으로 복잡하지 않지만, 말과 총, 차량을 연결하는 운동의 중심에 선다. 인물의 감정보다 신체와 동작이 먼저 기억되는 배역이다. 정호연의 성애는 범석의 혼란과 성기의 야성 사이에서 상황을 실제로 움직이는 인물이다. 운전과 사격, 판단을 통해 액션의 방향을 바꾸고, 영화가 자칫 남성 인물들의 소동에 갇히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다.
외계 존재를 연기한 배우들은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신 움직임과 감정을 크리처의 몸에 전달한다. 이들의 서사는 후반부에야 드러나기 때문에 인간 인물들과 같은 수준의 감정적 축적을 확보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알려진 배우들이 얼굴의 인지도를 포기하고 비인간 존재의 몸을 연기했다는 점은 이 영화가 스타 캐스팅을 활용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배우들의 이름을 보고 극장을 찾은 관객에게는 이 같은 배치가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호프」에서 배우는 자신의 서사를 완성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거대한 액션의 속도와 방향을 나누어 맡는 연주자에 가깝다.
‘희망’은 결론이 아니라 다음 질문으로 남는다
영화의 제목 ‘HOPE’는 배경인 호포를 영문으로 옮긴 이름이면서 동시에 희망을 뜻한다. 나홍진 감독은 처음부터 제목을 ‘희망’으로 떠올린 뒤 마을의 영어 명칭을 Hope로 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전쟁의 위기가 가까워 보이고 인간이 사는 세계가 불길하게 느껴지던 시기에 이 작품을 썼으며, 가장 낮고 외진 공간에서 시작한 사건이 우주적 규모로 확장되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희망의 성취가 아니라 희망을 가진 존재들의 충돌이다. 인간은 마을과 가족,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외계 존재 역시 자신의 가족과 종족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 양쪽 모두에게 희망은 있지만, 상대의 희망을 이해할 언어는 없다.
이 때문에 제목은 낙관적인 선언이 아니라 역설이 된다. 각자의 희망이 상대에게는 위협이 되고, 생존을 위한 행동이 다른 존재의 파국을 만든다. 영화는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악의가 없었다는 사실은 책임을 없애지 못하며, 자신이 몰랐다는 사실도 상대가 겪은 피해를 되돌리지 못한다.
결말은 이러한 상태를 완전히 정리하지 않는다. 나홍진 감독은 칸에서 후속편의 이야기를 이미 써두었다고 밝혔고, 다음 작품이 만들어진다면 외계 존재의 세계와 우주로 서사가 확장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아직 후속편 제작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호프」의 결말이 하나의 사건을 매듭짓기보다 더 큰 세계의 일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된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이는 한 편의 영화로서 약점이 될 수 있다. 관객이 156분을 따라온 뒤에도 충분한 해결을 얻지 못하고 다음 편을 기다려야 한다고 느낀다면, 열린 결말은 여운이 아니라 미완성으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호프」가 처음부터 이해할 수 없는 더 큰 세계의 일부만을 보여주는 영화였다면, 모든 답을 제시하지 않는 결말은 작품의 태도와 일치한다.

「호프」가 서사적으로 정교한 걸작인지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인물의 깊이는 충분하지 않고, 외계 존재의 사정은 뒤늦게 압축적으로 제시된다. 중반 이후의 유머와 장르 변화는 앞서 쌓은 긴장을 일부 해체하며, 열린 결말은 후속편을 위한 예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실패한 블록버스터로 규정하기도 어렵다. 영화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다. 대낮의 공포, 실제 공간을 가로지르는 카메라, 말과 차량과 괴생명체가 뒤엉키는 액션, 관객의 몸을 밀어붙이는 사운드는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한다. 영화가 끝난 뒤 이야기는 흐려져도 관람 중의 긴장과 속도는 남는다.
「호프」의 과잉은 감독이 통제하지 못한 부산물인 동시에 감독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전략이다. 더 짧고 친절하게 만들었다면 이야기의 완성도는 높아졌을 수 있다. 인물의 감정을 충분히 설명했다면 관객의 공감도 쉬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영화는 지금의 「호프」처럼 무모하게 질주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 영화의 성취와 한계는 분리되지 않는다. 인물이 얕기 때문에 사건이 빠르게 움직이고,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에 관객은 혼돈을 직접 경험한다. 장르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다음 장면을 예상하기 어렵고, 유머가 부적절하기 때문에 인간의 어리석음이 더 선명해진다. 외계 존재의 CG가 완전히 익숙한 현실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끝까지 낯선 이물감이 남는다.
「호프」는 서사의 결함을 극복하고 완벽한 영화가 된 작품이 아니다. 그 결함을 안은 채 감각적 체험의 극점까지 밀어붙인 영화다. 그래서 어떤 관객에게는 올해 가장 대담한 극장용 영화가 되고, 다른 관객에게는 156분 동안 소음과 혼란을 견뎌야 하는 피곤한 영화가 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이 영화는 무난하게 소비되고 잊히는 작품은 아니다. 좋아한 사람은 그 속도와 장면을 말하고, 싫어한 사람은 그 과잉과 불친절함을 말한다. 칸의 평론가와 국내 관객이 서로 다른 언어로 논쟁하지만, 모두 영화가 던진 거대한 에너지에는 반응하고 있다. 영화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감상도 이 논쟁에서 제외될 필요가 없다. 《호프》는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치밀하게 전달하기보다, 잊기 어려운 상태를 관객에게 경험시키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희미해질 수 있다. 인물의 이름과 사건의 순서는 뒤섞일 수 있다. 그러나 대낮의 마을을 가로지르던 카메라와 도로를 뒤흔들던 굉음, 사람과 말과 자동차와 외계 존재가 한꺼번에 달려들던 순간은 남는다.
나홍진 감독이 원했던 것이 바로 그런 영화였다면, 「호프」는 성공했다.
다만 그 성공은 모든 관객이 동의할 수 있는 완성된 승리가 아니다. 이야기의 살을 내주고 영화의 운동성을 얻은 선택, 이해시키는 대신 몰아붙인 선택, 희망을 말하면서도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은 선택이 남긴 불안한 성공이다.
「호프」는 결함 없는 걸작이 아니다. 결함까지 자신의 속도로 끌고 가는 야심작이다. 그리고 그 무모한 질주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영화가 끝난 지금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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