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하버드에 30억 달러 연방 자금 회수 위협… 학문 자유와 정치적 간섭 사이의 치열한 줄다리기
하버드대학교는 미국 내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학 중 하나다. 그러나 이 위상은 최근 몇 달간 미국 연방정부,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행정부와의 전면전으로 인해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했다.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를 “진보적 편향의 온상”이라며, 연방 정부가 제공하는 연구 보조금과 계약, 비자 발급 권한 등을 무기로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공세는 단순한 정책 대립을 넘어, 학문 자유와 대학 자율성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하버드가 상징하는 것: 엘리트주의와 진보의 충돌
하버드는 단지 학문기관 그 이상이다. 1636년에 설립된 이 대학은 미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엘리트 양성소이자, 세계 지성의 본산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 상징성은 보수 진영에서는 종종 반감의 대상이 된다. 특히 트럼프 지지층 사이에서는 하버드가 “좌파 정치의 보루” 혹은 “국민과 동떨어진 엘리트주의의 상징”으로 묘사되곤 한다.
이러한 배경은 트럼프 행정부의 하버드 공격이 단순한 정책 충돌을 넘어, 상징 전쟁(symbolic war)의 성격을 띠게 만들었다. 보수 진영은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 등의 가치가 오히려 반대 이념을 배척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른바 “보수 탄압”에 대한 보복 조치로 하버드를 겨냥하고 있다.
2025년 3월 10일, 미 교육부 시민권국은 하버드를 포함한 60개 대학에 대해 유대인 학생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민권법 제6조(Title VI) 위반으로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이 경고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주도한 ‘반유대주의 대응 태스크포스’의 주요 성과 중 하나로 강조되었다.
같은 날, 하버드는 봄 학기 신규 고용을 전면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공식 이유는 연방 정부의 정책 급변에 따른 “재정적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불과 몇 주 후, 정부는 하버드가 보유하고 있는 약 87억 달러의 연방 보조금과 2억5천만 달러 규모의 계약에 대한 전면 검토에 착수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4월 3일과 11일 두 차례에 걸쳐 하버드에 각종 요구사항을 담은 공식 서한을 전달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문 프로그램 재편, 고용 관행 변경, DEI 프로그램 완전 철폐,제3자에 의한 학생 및 교직원들의 정치적 견해 감사, 특정 교수진의 권한 축소 이는 단순한 행정 명령 수준을 넘어, 사실상 대학 자율성의 핵심을 흔드는 조치였다. 하버드는 즉각 반발했다. 4월 14일, 앨런 가버 총장은 정부의 요구가 헌법적 권한을 초월했다고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트럼프의 정치 전략과 DEI 공세
트럼프 대통령의 하버드 공격은 단순한 정책 조치라기보다는 정치적 상징조작의 일환이었다. 그는 2024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이후, 공화당 내 극우 지지층의 결집을 위해 진보 성향의 상징적 기관들에 대한 공격을 강화해왔다. 하버드는 그 상징 중에서도 가장 크고 눈에 띄는 목표였다.
특히 트럼프는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프로그램을 미국 사회 분열의 원흉으로 지목하며 이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DEI가 오히려 백인과 남성,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배제한다고 지적하며, 이를 통해 하버드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교육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이러한 담론은 공화당 내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었고, 트럼프는 이를 활용해 교육 정책을 선거 전략의 핵심 요소로 삼았다. 이는 하버드에 대한 연방 자금 중단, 비자 발급 제재, 세금 특혜 철회 협박 등으로 이어졌다. 정치적 메시지 전달과 동시에, 실제 압박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법적·법률적 충돌
하버드와 트럼프 행정부 간 갈등의 핵심에는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대학 자율성, 그리고 연방정부의 재정 집행 권한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정부는 연방 자금은 국민 세금으로 마련된 만큼, 대학이 이를 받기 위해서는 공공의 이해에 부합하는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민권법 제6조를 들어 하버드가 차별을 방지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하버드 측은 이러한 조치가 단순한 차별 방지의 차원을 넘어, 연방정부가 자금 집행을 빌미로 학문과 행정에 직접 개입하려는 시도라고 반발한다. 2025년 4월 21일, 하버드는 공식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첫째, 연방정부는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자금 집행을 중단했으며, 둘째, 자금의 성격은 특정 연구와 학문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므로, 정치적 이유로 이를 중단하는 것은 학문 자유 침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헌법학자들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대학 운영 문제가 아니라, 미국 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연방 권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법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제3자 사상 감시 요구는 사생활 침해와 정치적 보복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 향후 대법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교육계 및 시민사회의 반응
트럼프 행정부의 하버드에 대한 전방위 압박은 미국 고등교육계 전반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하버드 교수진은 연대의 뜻을 담아 자발적으로 급여의 10%를 기부하며 학교의 법적 방어를 지지했다. 5월 1일 발표된 공개서한에는 수십 명의 저명한 교수들이 서명했고, 이들은 하버드가 “학문 자유를 수호하다가 심각한 재정적 타격을 입고 있다”고 선언했다.
미국대학협회(AAU), 미국교수협회(AAUP), 전미대학연맹 등은 공동 성명을 통해 “정부의 압박이 고등교육의 핵심 원칙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대학은 하버드와의 공동 연구 과제를 지지하며, 중단된 연방 자금으로 영향을 받은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자체 재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단지 하버드에 대한 지지를 넘어서, 학문 공동체 전체가 정부의 정치 개입에 저항하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또한 반트럼프 성향의 법률단체들과 시민자유연맹(ACLU) 등은 사상 감시와 비자 철회 등 조치가 명백한 표현의 자유 침해에 해당하며, 다수의 헌법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교육의 정치화’로 규정하며, 대학이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구조적 방어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일부 보수 단체와 매체는 하버드의 DEI 정책을 비판하며 정부의 조치를 지지하고 있다. 자유수호센터(Center for Free Enterprise)는 “하버드는 다수의 목소리를 억압해왔다”며 이번 사태를 기회로 삼아 “대학의 이념적 편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교육계 내에서도 의견이 양분되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국제사회 및 유학생 커뮤니티의 우려
국제사회 역시 하버드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유학생 비자 박탈 조치는 특히 큰 파장을 낳았다. 하버드 재학생의 약 25%가 외국인 유학생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들의 학업과 미래에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4월 말, 하버드 학부 입학처는 국제 신입생에게 미국 외 대학에 이중 등록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전례 없는 조치였으며, 입학 안내 이메일에는 “하버드뿐 아니라 미국 내 다른 대학들도 유사한 상황을 겪을 수 있다”는 경고가 담겼다. 이는 미국 대학의 국제 경쟁력과 매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졌다.
한국, 중국, 인도 등 주요 유학생 송출국의 언론은 이 사안을 집중 조명했다. 일부 국가는 자국 학생 보호를 위해 외교 채널을 통해 우려를 표명했으며, 다수의 교육 상담기관은 대안국가로 캐나다, 호주, 유럽 대학에 대한 문의가 급증했다고 밝혔다.

국제학술협의회(IAU)와 세계대학총장협의회(WCHE)는 공동 성명을 내고 “학문의 자유는 국경을 초월한 가치이며, 국제 유학생에 대한 차별은 세계 고등교육의 퇴보”라고 비판했다. 미국 내 일부 주 정부는 독자적으로 유학생 보호 조치를 강구 중이며, 이민 전문 로펌들도 대규모 소송을 예고하고 있다.
하버드와 트럼프 행정부 간의 충돌은 단순한 대학과 정부 간의 정책 갈등을 넘어서, 미국 민주주의와 고등교육의 방향성을 둘러싼 근본적인 대결로 진화하고 있다. 이 사태는 한편으로는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학이 얼마나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계기가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입장 차이가 어떻게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법적 측면에서는 하버드가 제기한 연방정부 상대 소송이 향후 대법원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대학의 자율성과 정부의 감독 권한 사이의 경계가 법적으로 정립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하버드가 패소한다면, 이는 미국 내 고등교육기관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판례로 작용할 수 있으며, 반대로 승소할 경우 정부의 재정 조건 설정 권한에 일정한 제약이 가해질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하버드 압박이 보수 진영 내 결속을 다지는 데는 일정 부분 성공했지만, 동시에 국제적 비판과 국내 시민사회, 교육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양면성은 향후 공화당 내 교육 정책 방향에 중요한 영향을 줄 것이다.
국제적 관점에서는 미국 대학이 더 이상 학문 자유와 안정성을 보장하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유학생 유치에 심각한 타격이 가해질 수 있다. 이는 미국 고등교육의 글로벌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학문 교류와 연구 혁신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이번 사태는 하버드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은 정치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는 보편적 질문을 미국 사회 전체에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앞으로 수개월간 이어질 법정 공방과 교육계의 대응, 시민사회의 감시 속에서 조금씩 형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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