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진학의 문턱은 높아지고, 학자금 지원은 불확실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크고 아름다운 법안’은 단지 예산안이 아니라, 고등교육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정치적 선언이었다.
법안 통과의 정치적 배경: 고등교육은 왜 표적이 되었나
2025년 7월 4일, 독립기념일 비행 퍼레이드 직후 백악관 남쪽 잔디밭. 트럼프 대통령은 B-2 폭격기 편대가 상공을 가로지른 직후, 『One Big Beautiful Bill Act』(이하 OBBBA)에 서명했다. 870쪽에 달하는 이 법안은 조세, 복지, 국방, 이민, 에너지 정책을 포괄하는 초대형 패키지였지만, 그 중에서도 전문가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분야 중 하나는 바로 고등교육이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오랫동안 미국 대학에 대해 두 가지 비판을 반복해왔다. 첫째는 “이념적으로 좌편향된 학계에 연방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주장, 둘째는 “연방 학자금 제도가 부실 대학의 재정에 의존하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이번 OBBBA는 이 두 비판에 기반하여 ‘책임 있는 학자금 지원’과 ‘정부 개입 축소’라는 명분 아래, 고등교육 재정 구조에 커다란 균열을 일으켰다.
학자금 대출 개편: 한도 설정과 Grad PLUS 폐지
가장 큰 변화는 연방 학자금 대출제도의 전면 개편이다. Grad PLUS 프로그램의 폐지와 대출 한도 설정은 미국 내 대학원 및 전문대학원 진학자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 대학원생: 연방 대출 한도는 10만 달러
- 전문대학원생(법대·의대 등): 연방 대출 한도는 20만 달러
이전까지는 학비 전액과 생활비까지 포함해 차용이 가능했던 Grad PLUS 프로그램이 폐지되면서, 학비가 높은 대학원·전문대 진학자들은 사설 대출 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질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사립 의대·로스쿨 진학을 꿈꾸던 학생들, 그리고 취약계층 중 가족지원이 어려운 이들에겐 진학 자체가 사실상 봉쇄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미국 고등교육 재정의 ‘숨겨진 기둥’이었던 Grad PLUS가 사라진 자리에는, 신용 점수에 따라 금리가 결정되는 민간 금융시장이 들어설 것이다.
Parent PLUS 대출 한도: 소수계와 중산층 가정의 위기
OBBBA는 또 다른 대출제도인 Parent PLUS에도 학생 1인당 65,000달러의 상한선을 설정했다. Parent PLUS는 부모가 자녀의 학자금 부담을 떠안는 구조로, 특히 흑인·라틴계 가정에서 많이 사용되던 제도다. 이번 한도 설정으로 인해, 중산층 이하 가정은 사립대학 진학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저소득층 학생들의 대학 선택지가 더 좁아지는 효과가 예상된다. National College Access Network의 한 분석에 따르면, “Parent PLUS 제한은 인종 간 고등교육 기회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법안은 소득 기반 상환 제도(IDR: Income-Driven Repayment)도 개편했다. 기존에는 소득에 따라 월 $0 납부도 가능했으나, 새 제도에서는 최소 납부액을 $10로 고정하고, 상환기간을 최대 30년으로 연장한다. 이는 언뜻 완화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상환 압박을 완화하는 대신, 부채를 더 오래 유지시키는 구조”로 바뀐 셈이다. 특히 이자 누적의 구조에 따라, 총 상환액이 커지고 실질적인 부채 압박이 늘어날 수 있다.
OBBBA는 고등교육 기관에 대해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연방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은 이제 단순히 인가 여부나 졸업률이 아니라, “해당 프로그램을 이수한 졸업생이 고졸 대비 더 높은 소득을 얻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된다. 이른바 소득 기반 성과지표(earnings test)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졸업생 소득이 낮은 학과·대학은 연방 학자금 대출에서 배제
- 2년제 프로그램의 약 절반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추정
- 예술·인문학·사회복지 등 비상업적 전공은 대출 불가 대상 우려
이는 연방 정부가 학문 자체의 공공성과 다양성을 축소하고, ‘취업률’과 ‘연봉’ 중심의 대학 운영만 장려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Pell Grant 동결과 세제 혜택 축소: 저소득층 대학 진학의 현실
OBBBA는 연방 Pell Grant(저소득층 대학생 대상 무상 장학금)의 최대 지원 금액을 2026년까지 동결하기로 했다. 현재 기준 최대 $7,395인 Pell Grant는 물가와 등록금이 꾸준히 오르는 현실을 감안할 때, 사실상 ‘실질 축소’ 효과를 낳는다. 더 큰 문제는 해당 금액이 전체 학비의 절반도 충당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주립대 비거주자, 사립대 진학생의 경우 등록금+생활비의 격차가 연간 20,000~40,000달러 이상으로 벌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OBBBA는 고등교육과 관련된 세금 감면 제도(예: Lifetime Learning Credit, American Opportunity Tax Credit)의 구조를 손보고 감면 혜택 대상을 제한하면서, 저소득 가정이 학자금 대출 대신 활용하던 비세금 직접지원도 줄어들게 됐다.
Diversity, Equity, Inclusion(DEI) 프로그램 예산 중단
OBBBA는 대학 내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프로그램에 대한 연방 예산 지원을 전면 중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조치를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치적 훈육”이라 규정하며, 고등교육기관이 더 이상 “좌파 이념 생산 공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조치로 영향을 받는 항목은 DEI 센터 인건비 및 운영비, 소수자 전공(ethnic studies, gender studies 등) 관련 장학금, 장애인 접근성·심리상담 확대 프로그램 등이다. 이는 단순히 운영비 삭감 차원이 아니라, 공공 대학의 사명과 캠퍼스 문화 전반에 걸친 체계적 전환을 의미한다. 많은 연구자들은 “DEI 프로그램은 단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안전망”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편 OBBBA는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 직업·기술교육기관에 대해서는 지원을 확대했다. 대표적인 변화는 고용 연계형 단기 프로그램(6~18개월)에 Pell Grant 적용을 확대하고 , 특정 기술 자격증(CDL, 전기공, 간호보조 등)에 연방 학자금 허용하고 ‘성과 기반 예산 배분제도’를 커뮤니티 칼리지에 우선 적용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고등교육의 실용성과 ROI(투자 대비 수익률)를 강조하는 방향이며, 트럼프 진영의 핵심 메시지인 “대학은 꼭 4년일 필요 없다”, “학위보다 기술”의 제도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교육계 인사들은 “이는 오히려 저소득층을 기술노동자 계층에 고착시키는 신계급화 구조”라고 경고한다.

대학의 재정 불확실성과 구조조정 가속화
OBBBA의 정책 변화는 대학들에게 극심한 재정 불확실성을 안겨준다. 연방 대출이 금지되는 학과, 지원이 중단되는 프로그램이 늘어남에 따라, 대학들은 인문학, 사회과학 전공을 폐지하거나, 수익성 낮은 학과 통폐합하고, DEI 담당 조직 해체, 학내 상담, 멘토링 서비스 축소하고, 특히 재정 상태가 취약한 지방 소규모 대학의 도산 위험 증가될 우려가 있다. 이는 고등교육의 지식 다양성, 접근성, 공공성에 전방위적 타격을 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OBBBA는 유학생 관련 조항을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았지만, 그 여파는 국제 고등교육에도 확산될 수 있다. STEM 외 전공 약화는 유학생 전공 다양성 감소로 이어지고, 연방 대출 중심 지원 축소는 장기 체류를 통한 시민권 획득 경로 축소로 유학생유인 요인이 사라지며 DEI 폐지로 유학생 대상 문화 적응 및 멘토링 제도 위축되어 더 이상 미국을 동경하는 유학지로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이로 인해, 미국 유학의 매력도는 중장기적으로 하락할 수 있으며, 이는 영국·캐나다·호주 등 경쟁국으로 유학생 이동을 촉진하는 구조로 작용할 수 있다.
『One Big Beautiful Bill Act』는 고등교육 재정의 판을 갈아엎었다. 트럼프 정부는 “실용, 책임, 성과 중심의 개혁”이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저소득층과 소수계 학생, 인문사회 전공자, 소규모 지역대학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번 법안은 교육을 공공재가 아닌 개인의 투자와 수익의 함수로 환원시켰으며, 정부는 더 이상 ‘교육의 평등한 기회 제공자’가 아닌 ‘재정 건전성을 따지는 투자심사자’로 변모했다. 궁극적으로 OBBBA는 고등교육을 더 비싸고, 덜 접근 가능하게 만들었고, 특히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 사다리를 약화시키는 구조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대학은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그 대학의 문은 과거보다 훨씬 무겁게 닫혀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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