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를 넘어 산업과 글로벌 무대로 확장되는 대학의 혁신 실험
혁신기획서가 그리는 미래의 청사진
2025년 글로컬대학 예비지정의 핵심은 대학이 지역사회의 요구를 반영하고, 동시에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고등교육 혁신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 있다. 교육부는 단지 대학 간의 경쟁을 유도하기보다는, 각 대학이 보유한 강점과 지역의 특성을 결합한 고유한 혁신 전략을 설계하도록 요구했다. 따라서 예비지정 심사는 단순히 형식적 기준을 충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대학이 지역의 산업과 인구 구조, 미래 성장 가능성에 대해 어떤 비전을 제시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실현 가능한 전략인지에 집중되었다. 2025년 예비지정에 선정된 18개의 혁신기획서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 고등교육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적 설계도이며, 한편으로는 구조 개편에 대한 국가적 실험의 전위이기도 하다.
혁신모델의 네 가지 유형 분류
예비지정 대학들이 제시한 혁신 전략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 성격과 지향점을 기준으로 몇 가지 공통된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는 향후 본지정 심사에서도 핵심 평가 요소가 될 수 있으며, 글로컬대학 전체 정책의 전략적 방향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① 통합·연합형 구조 혁신 모델
통합형 모델은 특히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초광역 협력전략과 맞물려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충남대학교와 공주대학교의 국립대학 간 초광역 통합 모델이 있으며, 이는 대전·충남 지역의 산업 및 연구 역량을 대학 구조와 연계하여 집약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전략이다. 이 모델은 캠퍼스 간 기능을 분화하여 대전은 글로벌 연구 거점, 공주는 지역사회 특화 거점, 천안은 산업 기반 거점으로 나누고 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조선대학교와 조선간호대학교의 통합이 있으며, 이는 초고령화 사회 대응을 위해 ‘웰에이징’을 키워드로 바이오메디, 에이지테크, 라이프케어 분야의 학사 구조를 통합적으로 개편하고 있다. 울산과학대학교와 연암공과대학교는 동남권 제조벨트를 배경으로 한 공학기술교육 연합대학을 구성하였고, 지역 내 SimFactory 실습공장을 통해 가상현실 기반 생산훈련이 가능하도록 하는 교육체계를 구축하였다. 이 모델들의 공통점은, 대학 간 중복기능을 통합하고 운영 효율성을 제고함과 동시에 지역 산업 생태계와 연결하여 실질적인 교육-산업 연계를 달성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② 캠퍼스 기능 전환형 공간혁신 모델
두 번째 유형은 캠퍼스를 단순한 교육시설이 아닌, 산업적 기능과 시민사회와의 연결점을 갖춘 복합적 공간으로 전환하는 전략이다. 경성대학교는 MEGA(Media, Entertainment, Gala/MICE, Arts) 융합 캠퍼스를 구축하여, 기존의 교실 기반 수업을 초실감 기반 실습 중심으로 전환하고자 한다. 30개 이상 학과를 단일 단과대학인 MEGA42로 통합하고, 해당 단과대학이 직접 콘텐츠 프로덕션을 운영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를 설계하였다. 순천향대학교는 AI 의료융합 캠퍼스를 천안(실습), 내포(상용화), 아산(교육·연구)으로 분산하여 조성하였고, 이를 통해 학과간 장벽을 허물고 지역과 기능 중심의 공간 분산형 캠퍼스를 구축하였다. 연암대학교는 전국 농업계 고교와 공유캠퍼스를 조성하여 스마트팜 교육·실증클러스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단순 농업기술 교육을 넘어 스마트농업 기술 자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모델들은 물리적 공간 혁신을 통해 교육, 연구, 생산, 체험, 관광 등 다양한 기능을 통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대학이 지역경제와 사회문화의 중심축으로 기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③ 학사구조 및 교육모델 혁신형
학사 구조와 교육모델에 대한 혁신은 전통적인 대학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도이다. 한밭대학교는 신입생 전원을 대상으로 한 학석사 통합과정과 1년 3학기제를 도입하고 있으며, 학부생의 연구 참여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는 입학부터 졸업까지의 전 교육과정을 산업 수요와 직접 연결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계명대학교는 국제학생 유치와 교육을 위한 표준 학사 모델을 구축하여, 외국인 유학생이 입학부터 귀국 이후까지 안정적으로 한국에서의 경험을 누릴 수 있도록 체계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국제화 전략을 넘어서, 고등교육의 수출 모델로서 기능할 수 있는 구조를 담고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대학들이 기존 전공체계 개편, 융합전공 신설, 프로젝트 중심 학습(PBL) 정규화 등을 통해 학사제도의 유연화와 실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④ 글로벌 진출 전략형 모델
국내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무대로 눈을 돌리는 전략도 여러 대학에서 주목된다. 제주대학교는 ‘글로벌 런케이션 기항지’라는 전략을 내세우며, 세계 석학과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체류하며 교육과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제학교 입학 지원, 비자발급, 병원 예약 등 온가족 정주 지원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한국해양대학교와 목포해양대학교는 ‘1국 1해양대’ 통합모델을 통해 해양 첨단 분야와 글로벌 해양산업 클러스터를 연계하는 전략을 세웠다. 한서대학교는 항공 분야의 글로벌 교육 수출을 목표로, 몽골·남미 등 해외 공항 및 항공기관과의 위탁교육 계약을 통해 항공로드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모델들은 고등교육을 하나의 수출 산업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국내 교육 인프라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동시에 지역의 글로벌 브랜드화를 꾀하고 있다.
혁신 키워드로 본 전략의 본질
18개 기획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들을 중심으로, 혁신 전략의 본질적 지향점을 추출할 수 있다. 다음은 그 대표적 키워드 네 가지다.
① 교육혁신: 구조 개편을 넘어선 학습 생태계 재편
대학의 혁신은 단순히 학과나 학제를 바꾸는 것을 넘어, 전반적인 학습 생태계를 전환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성대학교의 MEGA42 모델은 학생이 수동적으로 강의를 듣는 방식을 넘어,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며 실시간 피드백을 받는 실습 기반 융합교육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한밭대학교는 빠른 인재 배출과 현장 적응을 위해 학사·석사 연계형 5년 통합과정을 기본모델로 삼았으며,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가능한 구조를 목표로 하고 있다.
② 산학협력: 캠퍼스가 생산기지로
이제 산학협력은 단순한 인턴십이나 공동연구를 의미하지 않는다. 동신대-초당대-목포과학대 연합은 전남 각 기초지자체별 특화산업에 기반한 캠퍼스를 구축하고, 실제 기업의 기술개발 및 제품 실증에 대학 공간이 활용되도록 설계하고 있다. 연암공과대와 울산과학대는 SimFactory라는 가상현실 기반 실습 병행 생산공장을 중심으로, 중소기업과 학생들이 함께 제품을 개발하고 시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모델은 대학이 단순 교육기관을 넘어 지역 산업의 엔지니어링 허브로 기능하게 한다.
③ 지역특화와 산업융합: 지역의 문제를 산업과 연결
순천향대학교는 AI 의료융합이라는 특정 산업을 중심으로 충남 지역의 세 도시(아산, 천안, 내포)를 기능적으로 연결하여 지역 단위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금오공과대는 구미국가산단과 연계하여 캠퍼스를 직접 입주시켜, 기업의 디지털 전환과 교원의 기술 개발이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이러한 모델은 산업 육성과 지역문제 해결을 교육과정과 직결시키며, 대학이 지역 사회 변화의 촉매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었다.
④ 국제화: 유학생 전주기 모델과 교육 수출
계명대학교는 유학생 유치를 넘어서, 교육부터 졸업 후 취업, 귀국 후 경력관리까지 전주기 지원 모델을 설계하였다. 이는 유학생 개개인이 한국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궁극적으로는 국가적 외교 자산으로 기능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한서대학교는 항공교육을 해외에 수출하는 모델을 구체화하고 있으며, 미국·체코·프랑스 등 항공 선도국과의 협약을 통해 글로벌 인증제도까지 도입하였다. 이 모델은 고등교육의 산업화라는 새로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실현 가능성과 정책적 과제
이처럼 다양한 혁신 전략이 제출되었지만, 그것이 모두 실현 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재정의 지속성, 규제 환경, 지역사회와의 파트너십 구축 등에서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교육부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예비지정 대학들은 실행계획서 작성 과정에서 공동연수, 전문가 컨설팅, 규제개혁 우선 검토 등 실질적 지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정책적 과제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있다.
① 재정 지속성: 현재는 5년간 약 1,000억 원 규모의 지원이 약속되어 있지만, 이후 사업 종료 후 대학이 독자적으로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② 지역 협력 수준 :지자체와의 협력이 선언적 수준을 넘어서 실질적 자금과 인력, 정책 연계로 이어질 수 있는지 여부는 각 대학의 역량뿐만 아니라 지역의 행정 리더십에 달려 있다.
③ 글로벌 전략의 현실성: 교육 수출이나 외국인 석학 유치 등의 전략은 글로벌 네트워크와 브랜드 파워를 필요로 하며, 중소규모 대학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도 존재한다.
혁신의 실험실에서 미래를 보다
글로컬대학 예비지정은 단지 선정된 18개의 대학이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는 의미만을 담고 있지 않다. 그것은 전국의 모든 대학이 직면한 구조적 한계와 정체성 위기 속에서, 한 줄기 출구를 향해 시도되고 있는 전략적 실험이다. 각 기획서는 단순한 사업계획서가 아니라,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가치와 철학을 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좌표다.
앞으로 실행계획서 평가와 본지정을 통해 이들 전략이 어떻게 구체화되고, 실제로 어떤 대학이 모범사례로 자리매김하게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한국의 고등교육은 글로컬대학이라는 혁신 실험실을 통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스스로 묻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대학만이, 앞으로의 생존과 성장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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