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적 세계관 없는 퇴마는 왜 몰입을 방해하는가
2025년 4월, 마동석 주연의 영화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가 개봉했다. 액션과 호러, 그리고 퇴마라는 키워드를 앞세운 이 작품은, 마동석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흥행을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는 실망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 이유는 단순한 기대 이하의 연출이나 서사의 문제가 아니라, 이 영화가 장르적 정체성과 세계관의 논리를 갖추지 못했다는 데 있다. 퇴마물이라는 장르가 관객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그것만의 뿌리 깊은 서사 구조와 논리가 필요하다. 《거룩한 밤》은 이를 충족하지 못한 채 껍데기만을 차용한 작품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영화는 악령이 창궐하는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구마 조직’이 존재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마동석이 연기하는 주인공은 이 조직의 핵심 인물로, 악귀를 물리치는 데 앞장서는 전사다. 그는 초자연적 존재들과의 전투에서 무기와 도구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강력한 ‘주먹’을 무기로 삼는다. 이야기 전개는 수많은 악귀의 습격, 인간의 내면에 파고든 악의 실체, 그리고 이를 둘러싼 음모를 중심으로 흘러가며, 퇴마 액션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퇴마의 방식, 신학적 또는 주술적 근거, 조직의 기원 등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장르 혼합인가, 장르 붕괴인가?
《거룩한 밤》은 액션, 호러, 코미디, 종교적 요소까지 다양한 장르적 장식을 시도한다. 문제는 그 혼합이 유기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포감을 자아내야 할 장면에 느닷없이 슬랩스틱 유머가 끼어들고, 종교적 상징을 들고 나오면서도 그 상징에 대한 존중이나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마동석의 캐릭터 역시 무조건적인 힘의 상징으로 기능하며, 그의 ‘주먹’은 세계관 내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관객은 몰입보다는 당혹감을 느낀다. 퇴마 장면에서의 긴장감은 커녕, 액션과 호러의 간극에서 이탈된 정서만이 남는다.
서양 퇴마물은 흔히 기독교, 특히 가톨릭의 신학 위에 세워진다. 그 핵심은 신과 악의 대립, 그리고 인간을 무대로 한 영적 전쟁이다. 《엑소시스트》나 《컨저링》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퇴마는 단순한 물리적 싸움이 아니다. 악령의 존재를 식별하고, 이름을 밝혀내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추방하는 절차는 모두 신학적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 이름을 묻는 행위는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상대를 지배할 권한을 확보하기 위한 본질적 단계다. 마가복음 5장에서 예수가 귀신 들린 자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묻고, “군대”라는 이름을 얻은 후 축출한 사건은 가톨릭 구마의식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동양 퇴마물은 유교적 조상 숭배, 불교적 윤회관, 도교적 도술, 샤머니즘 등이 혼합된 독자적인 세계관을 형성한다. 대표적으로 《강시선생》 시리즈, 《사바하》, 그리고 한국영화 《검은 사제들》은 그 계보 안에 있다. 이들 영화는 도사나 무당, 혹은 음양사와 같은 인물이 수련을 통해 도력을 얻고, 귀신이나 악령을 제압하는 구조를 따른다. 부적, 방울, 부채, 염주, 향 등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세계관 내에서 실질적 효과를 가지는 도구들이다. 동양 퇴마물의 핵심은 ‘수련’과 ‘조화’에 있다. 인간은 신과 귀신 사이의 매개자이며, 도술은 그 중재의 수단이다.
《거룩한 밤》은 성경과 부적, 십자가, 도장 등 다양한 퇴마 도구들을 무분별하게 차용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제시되지 않는다. 성경을 들고 등장하지만, 기도도 없고, 신의 이름을 통한 권능 행사도 없다. 부적은 나오지만, 그 부적이 어떻게 제작되며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도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는 마치 퇴마라는 장르의 외양만을 흉내 내며, ‘주먹’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 이런 설정은 장르적 상징성을 소비할 뿐, 서사의 긴장감이나 신학적/주술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이 영화는 결국 ‘퇴마’를 다루지만, 그 어떤 퇴마 논리도 구축하지 못한 작품이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미장센과 CG의 부조화
퇴마 장면에서의 미장센과 CG 역시 몰입을 방해한다. 어둠과 조명을 활용한 긴장감 조성이 부족하며, 악귀의 등장 장면에서도 공포보다는 허술한 특수효과가 눈에 띈다. 이는 장르 영화에서 중요한 시각적 언어의 실패로 이어진다. 퇴마의식은 시각적으로도 상징과 리듬을 통해 설득력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거룩한 밤》은 그 시각적 연출조차 일관성을 잃고, ‘B급 정서’로 전락해버린다. 오히려 차라리 명랑한 B급 영화로 명확한 입장을 취했다면 덜 아쉬웠을지도 모른다.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는 퇴마물을 표방했지만, 장르의 본질적 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 껍데기만 빌려 쓴 작품이다. 퇴마 장르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귀신잡기 액션이 아니라, 귀신이 존재하는 세계관과 그것을 제어하는 인간의 방식이다. 이름을 통해 실체를 밝히고, 상징을 통해 권능을 행사하며, 도구와 절차를 통해 구마의식을 수행하는 과정이 없다면, 그것은 퇴마물이 아니다. 마동석이라는 배우의 힘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려 했지만, 그 힘은 결국 장르의 부실을 감출 수 없었다. 영화는 그럴듯한 퇴마 의상을 입었으나, 논리적 근거도, 상징도 없이 무대 위에 선 배우의 코스프레에 불과했다.
장르 영화는 그 장르의 전통과 문법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존중을 필요로 한다. 《거룩한 밤》이 보여준 실패는 단지 영화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장르 영화가 때때로 겪는 ‘표면적 차용’의 한계를 상징한다. 관객은 이제 단순한 비주얼과 스타파워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장르가 제시하는 규칙과 세계관, 내적 논리가 충족될 때 비로소 감동과 몰입이 가능하다. 《거룩한 밤》은 이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다음 작품이 진정한 의미의 퇴마물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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