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발언도 허용해야 한다’는 영국 대학의 새 지침,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교육의 최전선
‘불편한 발언’은 대학에 필요할까
“학생들은 충격적이거나 불편한 발언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2025년 6월, 영국 고등교육감독기구 ‘Office for Students’가 발표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의 핵심 문장은 세계 교육계에 단순한 정책 이상의 파장을 불러왔다. 이는 단순히 특정 정치적 사건이나 시위 대응 차원을 넘어서,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가라는 고전적이지만 여전히 뜨거운 논쟁을 다시 소환한 조치였다.
해당 지침은 명확하다. 대학은 “합법적인 모든 발언”이 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학생들은 그것이 “불편하거나 충격적인 수준의 내용”일지라도 청취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발표 당시부터 성소수자 이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젠더 갈등과 같은 정치적·정체성적 논쟁이 포함된 발언들이 언급되며 사회적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되려 이러한 충돌이 “학생의 비판적 사고를 훈련하는 학문적 과정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물론 ‘표현의 자유’라는 이상이 언제나 순수한 의도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악용해 혐오를 조장하거나 차별을 강화하는 사례 또한 국제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발생해왔다. 그러나 영국의 이번 지침은 “불쾌하다고 해서 발언을 금지할 수는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며, ‘생각할 자유’와 ‘안전한 공간’이라는 두 교육적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을 정확히 겨냥한다.
영국 캠퍼스는 왜 지금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가
이번 지침의 배경에는 최근 수년간 영국 대학들이 겪은 ‘캔슬컬처(cancellation culture)’ 논란과 자기검열의 확대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2021년 서식스대학교(Sussex University)에서 발생했다. 젠더 비판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철학과 교수 캐슬린 스톡(Kathleen Stock)은 트랜스젠더 학생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고, 결국 사직에 이르렀다. 학계 내부에서도 이 사안을 두고 ‘학문적 표현의 자유’와 ‘소수자 인권 보호’라는 두 명분이 정면 충돌했다.
이와 유사하게, 친이스라엘 학자들의 강연이 취소되거나,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캠퍼스 내에서 제한되는 사례들이 잇따르면서 표현의 자유가 정치적 균형 감각에 밀려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었다. 영국 의회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2023년 ‘대학 내 표현의 자유 보호법’을 제정했고, 이번 지침은 이를 실질적으로 캠퍼스 운영에 반영하기 위한 정책적 연장선에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대학은 ‘지적 다양성’과 ‘학생 보호’라는 두 축 사이에서 균형을 요구받는 공간이 되었다. 특정한 사상이나 입장이 캠퍼스 내에서 금기시되거나,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학문적 탐구가 위축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교육기관이 갖춰야 할 개방성과 비판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 영국은 지금, 그 경계에서 스스로의 원칙을 다시 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불쾌함’과 ‘폭력’의 경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
영국의 가이드라인이 던지는 가장 불편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듣기 싫은 말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가?”
표현의 자유는 단지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듣기 싫은 말까지도 허용해야 하는 자유’를 전제로 성립한다. 이 원칙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구성하지만, 대학처럼 다양한 정체성과 감수성이 공존하는 공간에서는 곧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특히 최근 교육계에서 두드러진 개념은 ‘트리거 워닝(trigger warning)’과 ‘세이프 스페이스(safe space)’다. 특정 발언이나 콘텐츠가 소수자 집단에게 정서적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사전에 경고를 주거나, 아예 배제하는 방식이 제도화되고 있다. 이는 피해 경험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기준이 ‘불편함 자체’를 제거하려는 방식으로 작동할 경우, 교육 본연의 기능인 비판적 사고, 논쟁적 학습, 다양성 수용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일부 대학에서는 특정 사회적 이슈에 대한 강연이 학생들의 항의로 취소되거나, 강의 자료가 사전에 검열당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표현의 자유가 ‘집단 감정’이라는 비공식 규범에 의해 제한되는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결국 문제는 이 두 가지 가치가 대립하는 방식이 아니라, 교육기관이 어디까지 책임지고 균형을 조율할 수 있느냐에 있다. 학생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이견 자체를 제거한다면, 대학은 더 이상 사상의 자유시장이 아니라 사고의 균일성을 강요하는 공간이 될 위험이 있다.
교육은 무엇을 허용하고, 어디서 선을 그어야 하는가
자유로운 토론은 교육의 핵심이다. 그러나 현실의 대학은 갈수록 자율적 사고와 공동체의 안전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학문적 발언’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체성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 속에서, ‘합법적인 불편함’과 ‘불법적인 혐오’의 경계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갈수록 모호해진다.
영국 정부는 이번 지침을 통해 하나의 원칙을 제시했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이상, 어떤 발언도 금지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는 교육현장에서는 결코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수업을 방해하거나, 특정 학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식의 발언은 법적으로는 합법이지만, 교육적으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다시 말해, ‘말할 수 있는 자유’와 ‘말해야 하는 자유’는 구분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대학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면서도, 강의와 연구, 학생 간 상호존중의 질서를 유지하는 ‘시간, 장소, 방식(time, place, manner)’의 규칙을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현실에서는 정해진 기준 없이 학생과 교직원, 외부집단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대학은 이러한 논쟁을 피할 수 없다. 회피가 아니라 명확한 원칙과 절차를 통해 불편한 질문과 마주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표현의 자유가 ‘가르칠 수 있는 가치’로 기능하는 조건이다.
한국 대학의 현실: 표현의 자유는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가
한국의 대학 캠퍼스는 겉으로는 비교적 평온해 보이지만,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갈등은 수면 아래에서 팽팽히 흐르고 있다. 특히 정치·젠더·사회운동과 관련한 이슈에서는 학생, 교수, 학교 당국 간의 시각차가 점점 커지는 양상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대자보 검열’ 논란이다. 총학생회나 동아리 차원에서 게시한 대자보가 ‘정치적 편향’ 혹은 ‘학내 질서 위반’을 이유로 철거되거나, 사전 검열을 거치게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이에 반발해 “학교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지만, 학교 측은 “공공질서와 중립성 유지”를 내세운다. 이는 대학이 갈수록 ‘정치적 위험관리’의 관점에서 표현을 통제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 다른 예는 특정 이슈에 관한 강연 취소 사태다. 진보 성향 인사의 초청 강연이 “균형 잡힌 시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철회되거나, 보수 인사의 강연이 “학생들 정서에 해롭다”는 반발로 무산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상황은 대학이 사상의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한 채, 다수 의견에 기대어 특정 사상을 배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낳는다. 결국 한국 대학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려는 제도적 장치보다는 갈등 회피와 사전 검열이라는 편의적 선택에 익숙해져 있는 구조다. 이것이 누적될 경우, 대학은 다양한 관점과 불편한 진실을 수용해야 할 책무에서 멀어지고, 오히려 “안전한 침묵”을 권장하는 공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
듣고 싶지 않은 말까지 들어야 하는가: 학생의 권리와 책임
대학생은 성인이자 학습자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듣기 싫은 말까지 들을 책임’이 존재하는가? 이는 단지 철학적 질문이 아니라, 실제 교육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영국의 표현의 자유 지침은 학생들에게 단순히 ‘자유롭게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말도 들을 준비를 하라’고 요구한다. 이는 수동적 청자가 아닌, 비판적으로 듣고, 토론하고, 분석하는 능동적 학습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은 지식뿐 아니라 관점을 훈련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듣기 싫은 말’에 대한 감수성과 대응이 여전히 ‘회피’와 ‘차단’의 방식에 머물러 있다. SNS 상의 해시태그 캠페인이나 청원, 탄원서 등이 학교 당국에 전달되면, 대학은 이를 ‘정서적 안전’이나 ‘공공성 보호’의 이름으로 적극 수용하고, 해당 발언은 비공식적으로 봉쇄된다. 문제는 그 결과다. 학생들이 다양한 관점과 사상, 가치 체계를 직접 만나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기회를 잃는다는 점이다. 대학이 정서적으로 편안한 공간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사고의 안전지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습자에게는 불편함을 감내하고 의미를 발굴할 수 있는 사고의 근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근육은 오직 ‘말할 수 있는 공간’에서, ‘듣고 반박할 수 있는 기회’ 안에서 길러진다.
표현의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 혐오와 자유의 충돌
표현의 자유는 원칙적으로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누구의 말이 받아들여지는가에 따라 그 자유의 실효성이 달라진다. 특히 성소수자, 이주민, 여성, 정치적 소수파와 같은 집단은 자신의 정체성과 생존을 보호받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다른 이의 표현으로부터 위협받는 존재이기도 하다. 예컨대, “여성은 선천적으로 모성적이다”, “동성애는 비자연적이다”와 같은 발언은 학문적 주장이나 개인의 신념으로 제시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발언이 학생의 존재를 부정하고, 정체성을 왜곡하며, 실질적 불이익을 조장하는 효과를 가질 때, 단순한 의견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폭력의 일부가 된다.
이런 이유로 대학 현장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무제한적으로 허용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이 존재한다.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는 “증오에 기반한 표현”을 제한하거나,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발언”에 대해서는 학내 규율 위반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판단의 기준이 모호하고, 누가 결정권을 가지는가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학내 커뮤니티, 총학생회, 젠더센터, 교무위원회 등 여러 주체들이 표현의 경계를 각기 다르게 해석하면서, 오히려 표현 규제 자체가 정치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때 표현의 자유는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할 원칙’이 아니라, ‘이익을 위한 수단’이 된다. 대학이 이를 방치한다면, 가장 목소리가 큰 집단의 의견만이 표현되고, 소수 의견은 침묵당하는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
법과 윤리 사이: 대학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법적 기준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이며, 대학 차원의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일부 대학은 교칙이나 인권센터 규정을 통해 표현과 혐오의 경계를 설정하고자 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약하고 사안별 대응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갈등은 단순히 ‘발언의 내용’만으로 판별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교수의 수업 중 발언이 일부 학생에게는 “학문적 해석”으로, 다른 학생에게는 “개인에 대한 비하”로 인식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은 어느 쪽의 입장을 수용해야 하는가? ‘모두를 만족시키는 중립’은 불가능하다. 결국 대학은 “무엇을 기준 삼아 판단할 것인가”를 스스로 정의하고 공론화해야 한다.
영국처럼 법률로 표현의 자유 보호를 명시하거나, 독립적인 ‘자유표현 위원회’를 두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대학은 아직 갈등을 제도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구조나 문화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그러다 보니 각종 논쟁이 ‘학생 대 교수’, ‘진보 대 보수’, ‘당사자 대 비당사자’의 정치적 대립 구도로 전이되며, 표현의 문제는 본질보다 감정과 세력 균형에 휘말리기 쉽다. 대학이 진정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려면, 단순히 발언을 허용하는 수준을 넘어, 갈등을 다룰 수 있는 민주적 절차와 신뢰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자유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제도적 조건이다.

자유를 가르치는 대학의 조건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그것이 학교, 특히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과 환경이 필요하다. 대학은 단지 발언을 허용하는 장소가 아니라, 발언이 다뤄지고, 비판받고, 숙성되는 과정을 함께 학습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대학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역할을 스스로에게 부여해야 한다.
첫째, 명확한 원칙의 설정과 공개다. 무엇이 표현의 자유에 포함되고, 어떤 행위가 공동체의 존엄을 침해하는지를 사전에 합의된 기준을 통해 구성원에게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공론의 구조다. 표현으로 인한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충돌이 무너짐이 아닌 성찰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학생회, 인권센터, 교수자문기구 등이 협력하여 문제를 다루는 숙의형 의사결정 모델이 필요하다.
셋째, 자유의 윤리를 가르치는 교육이다. 자유는 방임이나 방종이 아니다. 듣기 싫은 말을 들어야 할 책임, 반박을 통해 설득해야 할 노력, 다른 의견을 지지할 수 있는 용기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는 공허한 선언에 머무를 뿐이다.
결국, 표현의 자유는 스스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지속적인 훈련과 제도적 기반을 통해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가치다. 대학은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생각할 자유’를 지키는 교육을 위하여
지금, 대학은 질문받고 있다. “당신은 불편한 말도 들을 수 있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그 불편함을 통해 무엇을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영국 대학의 새 지침은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대학이 자유를 어떻게 정의하고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선언이다. 그것은 곧 교육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과 직결된다.
한국의 대학 역시 이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표현의 자유를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이 누구의 자유인지, 어떤 기준으로 제한되는지를 함께 따져보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가 ‘말하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자’를 위한 가치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생각할 자유는 듣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듣는 훈련은 불편함과 마주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침묵이 아니라, 더 열린 토론이다. 더 완벽한 정답이 아니라, 더 정직한 질문이다. 그 질문을 허용하고, 다르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를 가르치는 교육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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