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병목을 풀고 지역을 살리는 ‘백년대계’, 과연 실현 가능한가
서울대는 ‘하나여야만’ 하는가 “서울대를 없애자는 것도, 복제하자는 것도 아니다. 서울대 수준의 교육과 연구 인프라를 가진 대학이 전국에 10개쯤은 있어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지난해부터 본격 제기된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단순한 대학 확충안이 아니다. 이는 수도권 집중, 지역 소멸, 교육 서열화, 사교육 과열이라는 대한민국 고질 구조를 건드리는 포괄적 개혁 시도다. 이 정책은 서울대의 ‘지위 권력’을 해체하거나 확산시켜, 기회 구조의 공간적 재편을 꾀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UC 체제처럼, 각 지역의 대학이 전국적 경쟁력을 가지도록 키우자는 발상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학벌 질서의 붕괴, 입시판의 판도 변화, 대학 구조조정과 재정재편을 의미하기도 한다.
문제는,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고등교육 정책의 수준을 넘어서 국가 발전의 설계 전략이라는 점이다. 누군가는 “이 정책을 실행하면 지역이 살아나고, 대한민국의 생존 기반이 달라진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이름만 서울대지, 인프라와 브랜드는 흉내내기 어려운 허상”이라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이 구상은 과연 현실 가능한가? 성공할 수 있는가?
병목사회를 향한 일격: ‘서울대 10개’는 왜 나왔는가
“한국은 병목사회입니다. 교육, 취업, 주거 모든 기회의 통로가 서울, 그것도 SKY로 집중돼 있습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의 대표 주창자인 김종영 교수(경희대 사회학과)는 “기회의 지리학(geography of opportunity)을 서울에서 전국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엘리트 대학은 모두 서울에 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필두로 하는 ‘SKY’는 전체 입시생의 2% 미만을 흡수하지만, 그 상징성과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서울대 병목’은 학벌만이 아니라 부동산, 의료, 기업, 연구개발(R&D), 청년 일자리 등 사회 자원의 전반적인 집중 구조를 강화한다. 서울에 위치한 빅5 병원은 지방 환자의 59%를 상경시키며, 대기업 본사의 90% 이상이 서울 및 수도권에 위치하고, 2023년 기준 전체 중소기업의 52%, 스타트업의 82%가 수도권에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인구 4천만 명 규모의 지역에 세계적 연구대학을 10개나 보유하고 있다. 이 체제는 1960년 ‘UC 마스터플랜’에 따라 설계되었고, 교육의 공공성, 민주성, 탁월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김종영 교수는 “캘리포니아처럼 서울대 10개를 만들면 SKY 병목이 풀리고, 입시지옥·지방소멸·부동산 거품이 동시에 완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울대 10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복제인가, 분산인가
이 정책은 서울대를 해체하거나 분산하는 정책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대 수준의 대학 10개’를 전국 1도 1국립대 체제로 조성하고, 이들 간에 네트워크 협력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각 국립대는 특성화 전략을 바탕으로 연구 중심 대학으로 전환된다.
서울대의 상징은 유지되며, 본질만 분산된다. 이름은 서울대가 아니라 서울대 수준의 재정, 교수진, 연구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교육 싱크탱크 ‘미래교육자치위원회’는 이를 ‘서울대의 내실화된 분산’으로 정의한다. 서울대는 그대로 존재하며, 전국의 9개 거점국립대에 연구예산, 학사자율성, 교수채용 자율권을 크게 확대해 ‘지역형 서울대’로 육성한다.
서울대 브랜드와 입시 권력의 분해도 논의된다. 서울대 명칭이 아니라, 서울대 내용의 분산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간판 카피가 아니라 실질적 기능 분산을 의미한다. 기존 서울대 중심의 학벌 권력 구조는 깨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지만, 학점 교류, 공동학위제, 입시 개편이 병행되면 서울대 고유 권력도 희석될 수 있다.
지역은 살아날 수 있을까: 지식경제의 관점에서 본 전략
‘서울대 10개’는 단순히 대학 문제가 아니다. 이는 지역 인재를 지역에서 양성하고, 지역에 정주하게 하는 국가적 전략이다. 현재 지역 출신 학생들은 서울대·연고대 진학 후 대부분 수도권에 잔류한다. 이는 지역 소멸의 주요 원인이다. 반면 지역에 서울대 수준의 대학이 있으면, 지역 내 인재 양성, 지역 기업 유치, 정주 구조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경상국립대는 ‘우주항공방산과학기술원(GADIST)’을 설립해 대학-산업-연구소를 결합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5년간 200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받는 ‘램프 사업’, 글로컬대학 30 선정 등으로 이미 국가적 지원 기반이 조성되고 있다.
대학 구조조정과 재정의 문제: 사립대는 소외되는가
서울대 10개 정책은 대부분 국립대 중심이다. 지방 사립대는 이미 정원 미달, 재정 악화, 폐교 위기에 몰려 있다. 이 정책이 성공하면 오히려 지방 사립대의 도태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김종영 교수는 “서울대 10개가 지역 국립대의 상향 평준화를 가져오면 전체 대학 구조도 재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영형 사립대, 사립대통합체제 등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사립대 문제는 입시 수요 급감과 함께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상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실행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정책 연계, 재정 확보, 제도 개편이 필수다. 실현을 위한 세 가지 전제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 거점대의 수요와 역량이 충분해야 한다. 둘째, 입시제도 개편 없이는 명문대 서열만 하나 더 만드는 결과로 끝날 수 있다. 셋째, 서울대 수준의 연구·교육 인프라를 위한 연간 수천억 원의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
서울대 명칭을 주지 않는 이상 실질적 상향 평준화는 어렵다는 회의론도 존재한다. 기존 명문대 출신 기득권층의 암묵적 저항과, 지방대와 서울대 간 학술·연구 격차는 제도적 개입만으로 해소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교육을 넘어 국가 체제 재설계에 가까운 발상이다. 지금처럼 고등교육이 ‘서울 입성’을 위한 경쟁통로로만 존재한다면, 교육은 경쟁과 고통을 유발하고 사회 전체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교육 기회의 지리적 재편, 창조권력의 지역 분산, 지방대와 사립대의 공존 설계다. 서울대 10개 정책은 그 출발점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서울대의 복사판’이 아닌, 내용과 구조를 바꾸는 진짜 설계가 필요하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서울대 10개 만들기란, 서울이 아닌 전국이 기회의 땅이 되는 사회를 설계하는 일이다.
#서울대10개 #지역균형발전 #수도권병목 #고등교육개혁 #국립대네트워크 #사립대위기 #병목사회 #캘리포니아모델 #입시개혁 #지역소멸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