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시대, 교육은 어떻게 전 지구적 책임감을 회복할 것인가?
국제화 시대의 종말? 새로운 교육의 중심축으로 떠오른 ‘글로벌 러닝’
10년 전만 해도 ‘세계화’, ‘다양성’, ‘상호의존’, ‘포용성’은 고등교육에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가치였다. 대학은 국제화를 전략으로 채택하고, 해외 연계 프로그램과 교환학생 제도를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더 넓은 시야를 제공하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른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단어조차 공공연히 사용하는 것이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국제화 교육 프로그램 자체가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서 등장한 새로운 교육적 접근이 바로 ‘글로벌 러닝(Global Learning)’이다. 이는 국제화 전략을 넘어서는 포괄적이고 철학적인 교육 개념으로, 점점 더 많은 대학과 교육기관이 이 방향으로 교육의 방향타를 돌리고 있다.
글로벌 러닝이란 무엇인가?
글로벌 러닝은 단순한 지리적 확장이 아니다. 이는 전 세계를 포괄하는 복잡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학습 과정이자, 문화적, 사회적, 생태적 상호의존성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교육적 태도이다. 미국 플로리다 국제대학교의 힐러리 랜도프 교수와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의 조안나 레굴스카 부총장은 이를 “국경을 초월하는 복합적 문제를 다양한 타자와 함께 분석하고 대응하며, 개인 및 공동체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행동을 가능케 하는 학습”이라 정의한다.
즉, 글로벌 러닝은 문제 해결 중심이며, 협업, 다양성, 공동선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기존의 국제화는 국가 간 교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외국 대학과의 협약, 해외 연수, 국제 공동 연구 등은 모두 국가 단위의 상호작용이라는 틀 안에서 전개되었다. 하지만 글로벌 러닝은 이와 다르다. ‘국가 간’이라는 협소한 틀을 넘어, 세계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윤리적, 사회적 책임의식을 내면화하고 실천으로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철학자 존 듀이가 말한 ‘경험과 참여를 통한 학습’의 확장형이라 할 수 있다. 글로벌 러닝은 단지 지식을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일련의 과정 그 자체다.
글로벌 러닝의 핵심 요소 ① 문제 해결 중심의 학습
글로벌 러닝의 출발점은 현실 세계의 복잡한 문제들이다. 기후위기, 식량 불안정, 강제 이주, 기술 윤리, 팬데믹 대응 등 국경을 넘나드는 문제들은 단일 학문, 단일 국가의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글로벌 러닝은 학생이 졸업 후 실제로 맞닥뜨릴 문제들을 중심에 두고, 이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실천 전략을 구상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는다.
글로벌 러닝의 핵심 요소 ② 협업의 역량
복잡한 문제는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글로벌 러닝은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지닌 사람들과 협력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둔다. 여기서 말하는 협업은 단순한 역할 분담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적 감수성과 지식체계를 융합하여 새로운 통찰을 도출하는 창조적 과정이다.
글로벌 러닝의 핵심 요소 ③ 다양성과 포용성
글로벌 러닝은 학생들이 협업 과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차이를 자산으로 여긴다. 국적, 언어, 성별, 인종, 사회경제적 배경 등의 차이가 충돌이 아닌 상호보완의 기제가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는 포용적 사고와 태도를 기르며, 학생들이 더 넓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궁극적으로 글로벌 러닝은 단지 지식의 확대나 취업 경쟁력을 높이는 도구가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실천적 교육 철학이다. 오늘날의 대학 교육은 단지 좋은 직업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지구적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야 한다는 요청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러닝은 바로 그 요청에 대한 응답이다.
전 세계 많은 대학들이 국제화라는 프레임을 넘어서 글로벌 러닝을 전략적 기조로 채택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학문 교류 확대가 아니라, 커리큘럼 개편, 운영 전략, 교원 역량 강화 등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변화다.
글로벌 러닝을 제도적으로 채택한 대표 사례로는 미국의 여러 주립대와 캐나다의 다문화 교육기관들이 있으며, 유럽연합도 글로벌 시민 역량을 강조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다.
글로벌 러닝의 기반 가치: 상호의존성
글로벌 러닝의 모든 구성 요소는 상호의존성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다른 이들과, 다른 집단들과, 다른 생태계와의 연결 없이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이 상호의존성을 인식하고 존중하는 것이 글로벌 러닝의 철학적 기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다수의 국가에서 고립주의, 자국 우선주의, 초국가적 협력의 거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글로벌 러닝은 이러한 퇴행적 흐름에 대한 강력한 대안이자 저항이다. 이것이 단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지구 위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러닝은 오늘날의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실천적 교육 모델이다.
글로벌 러닝은 단순한 교육 방법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가 살아갈 세계를 준비시키는 방식이다. 그들은 국제 경계를 넘어 생각하고, 협력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세계를 사랑한다는 것’의 증명이며, 교육의 존재 이유다.
이제는 교육이 다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충분히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그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글로벌 러닝은 이 질문에 교육자로서 답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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