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소비 둔화, 향후 1%p 이상 더 악화될 전망
민간소비 부진의 진짜 원인, 경기 아닌 ‘인구구조 변화’
최근 몇 년간 한국 경제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소비 회복의 지연’이다. 기준금리 인하, 물가 안정, 정부의 재정정책 등 다양한 부양책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민간소비는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단순한 경기적 침체로 설명하기에는 설명력이 부족한 이 상황에 대해 한국은행은 구조적 요인, 특히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가 소비 둔화의 핵심 원인임을 제시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4년까지 민간소비의 연평균 추세 증가율은 과거 2001~2012년에 비해 약 1.6%포인트 하락했다. 이 중 절반에 해당하는 0.8%포인트는 인구수와 인구구성의 변화, 즉 ‘인구구조 변화’로 설명될 수 있다. 이 수치는 단순히 수요 감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시스템 전반에 작용하는 거대한 구조적 이동이 진행 중임을 보여준다.

인구 규모의 감소, 소비시장 자체를 줄인다
인구구조 변화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첫 번째로 ‘인구수 감소’라는 직접적 요인에서 비롯된다. 2019년 생산연령인구가 3,760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감소세에 들어섰으며, 총인구 역시 2020년 5,180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 추세에 접어들었다. 통계청은 2035년이 되면 각각 3,190만 명, 5,080만 명으로 줄어들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숫자의 감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산연령인구 감소는 노동공급 축소를 초래하며, 이는 곧 잠재성장률 저하로 이어진다. 실제로 노동 투입의 양과 질이 악화되면서 경제 전체의 소득창출력이 약화되고, 이는 소비 여력의 축소로 직결된다.
총인구 감소 역시 소비시장 전반의 수요 기반을 위축시키는 구조적 요인이다. 식료품, 운송, 교육, 의류, 외식 및 숙박 등 인구 기반의 소비재 시장은 인구 규모에 따라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한국은행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총인구가 감소하지 않았다고 가정했을 경우 2023~2024년 소비 증가율은 연평균 0.3%포인트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인구감소가 현실에서 얼마나 강력한 소비 억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수치다.
고령화 사회가 만든 소비성향의 하락
인구 피라미드가 기존의 ‘정상형’에서 ‘항아리형’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고령화는 평균소비성향의 전반적 하락을 불러오는 핵심 요인이다. 기대수명 증가로 인해 전 연령층의 예비적 저축 성향이 강화되고, 소비보다는 미래를 대비한 저축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특히 55~69세 연령층의 비중이 2010년 14%에서 2024년 23%로 확대되면서, 소비성향 하락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분석 결과, 2010~2012년 평균소비성향은 76.5%였으나 2022~2024년에는 70.0%로 약 6.5%포인트 하락했다. 이 중 1.7%포인트는 고령층의 소비성향 하락이 직접적으로 기여했으며, 연령구성 변화 자체도 1.6%포인트 영향을 미쳤다.
은퇴 이후의 소득 감소도 주요 요인이다. 60대 이상 가구의 소비 수준은 50대에 비해 평균 9%가량 낮으며, 자산이 실물 형태로 고정된 비중이 높아 유동성이 부족하다. 소득 대비 부채비율(DTI)이 1%포인트 증가하면 소비가 0.4%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자가보유 여부 역시 소비를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고령층에서는 자가보유가 소비감소로 이어지는 특이한 경향도 확인되었다.
소비 항목도 변화한다: 고령화와 저출산이 바꾼 구매 패턴
소비총량의 감소뿐 아니라, 소비 항목의 구성도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고령층이 늘어남에 따라 내구재, 준내구재, 외식·문화 항목에서 소비가 눈에 띄게 줄고 있으며, 의료 관련 소비만 유일하게 증가하는 추세다.
또한, 저출산이 심화되면서 비양육 가구가 늘어나고, 교육 및 양육 관련 소비 역시 줄어들고 있다. 반면 자녀가 없는 가구에서는 외식과 문화생활 관련 소비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가구구성의 변화는 소비의 질적 패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보장지출 확대가 소비를 대체하는 구조
정부는 고령화와 저출산에 대응하여 사회보장지출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민간소비를 일정 부분 대체하는 효과를 유발한다. 보건 분야에서는 가계 지출보다 건강보험 등 정부 지출의 증가 속도가 빠르며, 교육 부문 역시 공교육 지원 확대로 인해 민간의 교육 소비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정부소비는 GDP 내 비중이 증가하고 있지만, 민간소비는 줄어들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재정 역할 확대라기보다는 소비의 구조적 전환을 의미하며, 미래 세대의 소비 여력까지 제약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1인 가구의 확산, 소비를 늘리기보다 줄이는 방향으로
저혼인율과 고령화가 맞물리며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전체 가구수를 증가시켜 소비를 양적으로 확대시킬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1인 가구의 절반 이상이 고령층과 저소득층이며, 고용 안정성이 낮고 임시·일용직 비중이 높아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
2020~2024년 사이 1인 가구의 소비성향은 다인 가구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했으며, 전체 소비 증가율 중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긍정적 기여는 +0.2%포인트에 불과했다. 반면 소비성향 하락으로 인한 부정적 기여는 –0.3%포인트였다. 즉, 1인 가구의 확산은 총소비를 증가시키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소비 둔화, 앞으로 더 심화될 것
2013~2024년 사이 인구구조 변화는 연평균 소비증가율을 0.8%포인트 낮췄으며, 이 중 0.6%포인트는 중장기 소득여건 약화(노동공급 축소), 0.2%포인트는 평균소비성향 하락에서 비롯되었다.
앞으로의 전망은 더욱 어둡다. 2025~2030년 사이 인구수 감소와 고령화는 소비 둔화 폭을 연간 1.0%포인트 이상으로 확대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더욱이 본 분석에는 사회보장기여 부담 증가, 외국인 노동자의 소비성향 차이 등 간접적 요인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제 소비 둔화 폭은 더 클 수 있다.
구조개혁 없이는 소비 회복도 어렵다
이처럼 인구구조 변화는 단기간의 부양책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소비 회복을 위해서는 구조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한국은행은 특히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4~1974년생)의 경제활동 유지가 핵심이라고 제시한다.
이 세대는 교육 수준과 건강상태가 양호하고, 근로 의욕도 높다. 이들을 자영업으로의 과잉 진입이 아닌, 안정적인 상용직 일자리로 유도한다면 노동공급 감소에 따른 잠재성장률 저하를 완충할 수 있으며, 이들의 소비성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미래 소득에 대한 불확실성 감소는 노후 소비 위축을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
청년층 고용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퇴직 후 재고용 제도 및 임금체계 개편이 동반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고령층의 ‘계속근로’ 문화가 사회 전반에 정착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과 동시에 생산연령인구 감소, 1인 가구 증가, 저출산 등의 구조적 변화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시장 전체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소비는 경제 성장의 핵심 축이다. 그 축이 흔들리고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구조 개혁을 통해 새로운 균형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단기적 부양책보다,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인구전략과 노동정책, 그리고 소비정책이 필요하다. 인구구조 변화에 맞서 소비를 회복시키는 길은 어렵지만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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