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는 끝났는가? 아니, 지금은 후퇴가 아니라 재설계의 시간이다
국제교육, 정치의 전장 한가운데에 서다
2025년 미국의 고등교육 현장은 ‘정치화(politicisation)’라는 파도에 깊이 잠겨 있다. 대학은 캠퍼스 내 시위, 연방 정부의 예산 삭감, 정치적 공격, 반유대주의 논란 등 다양한 갈등으로 분열되어 있으며, 특히 국제고등교육은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수천 명의 국제 학생과 교환 방문 학자들이 비자 취소, SEVIS 기록 삭제, 심지어는 체포 및 구금 등의 위기를 겪었고, 수백 건의 연구협력이 중단되었으며, 미국 내 수십 개 대학이 중국 등 ‘적대국’으로 분류된 국가와의 협약을 종료했다. 이는 단지 프로그램의 일시 중단이 아니라, 국제교육의 기반 그 자체를 위협하는 구조적 흔들림이다. 어쩌면 지금 국제고등교육은 정치의 중심에서 포위되고 있으며, 교육자들은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무력감에 빠져 있는 듯 하다.
국제화의 가치가 오해받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국제교육에 대한 왜곡된 내러티브가 확산되고 있다. “국제학생은 경제적 자원을 빼앗는 존재”, “다문화 교육은 국가 정체성을 훼손한다”, “교환 학자는 첩보 활동의 위험이 있다”는 식의 언설이 공공 담론으로 진입하면서, 교육자들은 ‘가르치기 전에 해명부터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국제고등교육의 가치는 분명하다. 지식의 경계 확장: 전 세계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한 복합적 시각, 문화적 유연성과 글로벌 시민성 형성: 글로벌 이슈에 대한 감수성 함양, 지역사회와 국가의 경제적 이익: 국제 학생 유치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 효과 유발이다. 교육자들은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국제화는 사회의 전략적 자산이며, 고립주의와 단기 이익의 방파제”임을 보다 공세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정치적 후퇴는 곧 학생들의 기회 박탈로 이어진다. 최근 국제화 예산 축소로 인해 수천 명의 학생들이 교환학기, 해외현장실습, 해외 공동연구 프로그램에서 제외되었고,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의 대학생들에게는 더 큰 장벽이 생겨났다. 이는 단지 경험의 손실이 아니라, 학문적 성취와 미래 진로에까지 영향을 주는 구조적 차별이다. 또한 “글로벌 책임성과 SDG 달성”을 강조하는 UN과의 연계 교육 역시 축소되고 있다. 이는 지식사회 전반에 걸쳐 ‘북반구 중심주의의 회귀’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국제교육은 사치가 아니다. 공공성을 위한 필수 투자다
경제 불황과 정치적 회의주의가 퍼지는 시대일수록, 많은 기관들은 국제화 프로그램을 “축소 가능한 부가 옵션”으로 간주하려는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다. 국제화는 대학의 사회적 연관성, 생존력, 장기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핵심 전략이다. 국제교육은 고립주의, 문화 편향, 단기 이익 중심주의와 같은 위협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백신이다. 예산이 줄어든다고 해서 국제적 연대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국제화를 공공선의 영역으로 다시 배치해야 할 시기다. 교육자들은 소외된 지역과 협력하고, 교과과정 속에서 세계 시민적 시각을 반영하며, 전공과목에서도 지구적 문맥을 인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국제화는 캠퍼스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교실 안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정치적 불확실성은 고등교육 리더들에게도 깊은 부담을 주고 있다. 대학 총장과 부총장들은 예산 삭감, 정치적 공격, 국회 청문회, 언론의 압박, 이사회와의 마찰이라는 사방위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동시에 교수진은 학문 자유 위기와 연구비 축소, 신입생 감소, 학생들의 학습 동기 저하 등 전례 없는 도전과 싸우고 있다.
국제교육자들은 이런 리더들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단지 더 크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국제화가 대학의 가장 긴급한 목표(재정, 학생 모집, 명성, 사회기여)에 기여할 수 있는지 명확히 보여주어야 한다. 국제협력은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며, 해외 캠퍼스는 수익 창출과 동시에 글로벌 브랜드를 강화하며,다양성 기반 국제 네트워크는 대학의 연구 파급력을 세계로 확장한다.
지금은 물러날 때가 아니라 재설계할 시간이다
현재의 국제화 위기를 회피의 명분으로 삼아선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모델을 재구성하고, 시스템을 재정비하며, 원칙에 다시 헌신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제교육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대학 전략계획 속에 국제화를 다시 중심축으로 편입시키고, 교수진이 자신의 수업과 연구에서 세계적 시각을 반영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원과 훈련을 제공해야 하며, 예산 모델을 개편해, 국제화가 ‘외부 지원 의존’이 아니라 ‘내부 우선순위’가 되도록 구조 설계하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국제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도록 포용성과 형평성 확대해야 한다.
10년 후, 우리는 이 시기를 되돌아볼 것이다. 그때 우리가 기억할 장면이 “국제화가 위협받던 시절”이 아니라, “우리가 협력과 연대의 가치를 새롭게 다듬어낸 시점”이었기를 바란다. 국제고등교육은 오늘, 다시 묻고 있다. 우리는 단기 정치에 휘둘리는 존재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 가치와 책임에 기반해, 전 세계의 지식과 사람들을 잇는 연결의 축이 될 것인가? 답은 우리가 선택하는 현재의 방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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