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와 배제의 시대 속에서도 고등교육이 지켜야 할 포용의 윤리와 실천
교육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어야 한다
2019년, 멕시코 출신 고등교육학자 산티아고 카스티엘로-구티에레즈(Santiago Castiello-Gutiérrez)는 고등교육 국제화의 미래는 ‘상호성(mutuality)’과 ‘학문적 포용(academic hospitality)’의 가치를 중심에 둘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의 주장은 이상적이며 비전 중심의 제안으로 받아들여졌으나, 2025년 현재의 교육 환경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주장이 마지막 보루처럼 느껴질 정도로 현실은 급격히 후퇴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최근 하버드대학교의 국제학생 및 학자 등록 권한을 철회하고, 전 세계 모든 영사관과 대사관에서 신규 학생비자 발급을 일시 중단했다. 그 배경에는 SNS 사용 이력, 정치적 성향 등을 기준으로 한 입국자 심사 시스템 구축이 있으며, 이는 단순한 행정 조치가 아닌, 본격적인 ‘이동성의 범죄화’이자 국제 고등교육 생태계에 대한 정면 공격이다.
이제 국제학생은 ‘환영받는 손님’이 아닌 ‘감시와 심사 대상’으로 전환되었고, 이 사태는 단지 하버드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모든 대학과 학생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고등교육 국제화의 종말? 저항의 언어로서의 국제화
국제화는 오랫동안 대학의 글로벌 위상과 성장을 가늠하는 기준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국제화는 더 이상 권장사항이 아니다. 오히려 외교적 충돌과 국가 안보 논리에 따라 제약받고 있으며, 일부 정치세력은 국제화 자체를 위협 요소로 간주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학문적 포용’은 단순한 친절이나 예의의 차원을 넘어, 학문의 자유, 비판적 사유, 제도적 자율성을 지켜내는 윤리적 실천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존 베넷(John B. Bennett)의 개념에 기반한 학문적 포용은 ‘타인을 인정하는 도덕적 자세’이며, ‘두려움이 아니라 존엄을 중심에 두는 공동체를 만드는 행위’이다. 이것은 감정적 호의가 아니라 교육기관의 존재 이유이자 책무이다.
포용은 사회적 미디어 게시물이나 정치적 견해로 학생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거부하는 것, 의견 표현이 국가안보 위협으로 간주되는 구조에 반대하는 것, 그리고 외국인 학생의 존재보다 더 큰 위협은 바로 학문적 자율성과 비판적 사고의 붕괴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포용의 실천: 대학이 해야 할 일들
물리적 국경에 의해 교육 참여가 제한되는 학자와 학생들을 위해, 원격 방문 펠로우십과 같은 비자 비의존적 학문 교류 구조가 필요하다. 이는 단절된 지식 네트워크를 재연결하고, 포용적 학문 공간을 확장하는 방식이다.
팬데믹 이후 증명된 기술 활용 가능성을 바탕으로, 비자 문제나 입국 제한 상황에 처한 학생들이 원격으로도 학위를 이수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고등교육의 접근성과 지속성을 동시에 보장하는 실천이다.
국제 공동 캠퍼스, 복수학위 과정, 마이크로캠퍼스 등 기존의 ‘트랜스내셔널 교육(TNE)’ 모델을 단지 수익 창출이 아니라, 물리적 이동이 불가능한 학생들을 위한 ‘지식적 피난처’로 재정의해야 한다. 애리조나대학의 글로벌 마이크로캠퍼스, 카타르의 에듀케이션 시티 등은 이러한 가능성을 현실화한 대표 사례이다.
저항과 성찰: 정지함으로써 시작하는 포용
그러나 우리가 포용을 실천하려 한다면, 조급함을 경계해야 한다. 인도의 국제교육학자 칼야니 운쿨레(Kalyani Unkule)는 “공황 상태에서의 대응은 아무것도 구하지 못한다”고 말하며, ‘정지, 침묵, 의도 있는 선택’을 통해 보다 명확한 저항의 길을 모색하라고 제안한다.
불의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방식은 단순한 항변이 아니라, 불편함을 함께 견디며 지켜보는 태도다. 빠른 해결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윤리를 세우는 것이 진정한 포용의 시작이다.
글로벌 고등교육의 위기 속에서 포용은 다시금 중심이 되어야 한다. 대학은 요새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과 생각이 만나는 교차로여야 한다. 모든 학생과 연구자, 아이디어는 학문 공간에서 설 자리를 가져야 하며, 이는 ‘개방된 문’ 그 자체보다 그 문을 다시 열려는 ‘의지’에 달려 있다.
2025년의 대학은 더 이상 중립적인 지식의 전당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윤리적 결정을 요구받는 공간이며, 그 속에서 포용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언어다. 포용을 말하는 것은 순진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교육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을 지키기 위한 가장 강력한 저항이며, 우리가 여전히 교육의 의미를 믿는다는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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