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대 위기의 시대,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지방 사립대학은 고등교육 생태계에서 ‘투명하지 않은 존재’로 인식되어 온 경향도 있다. 일부 대학은 과거 등록금 횡령이나 부실 교원 채용 등의 문제로 비판을 받았고, 이는 학생과 지역사회의 신뢰 약화로 이어졌다. 현재는 많은 대학이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미 떨어진 이미지 회복은 더디다.
두 번째 원인은 재정 구조다. 국공립대는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만, 사립대는 대부분 등록금 수입에 의존한다. 등록금 동결이 10년 이상 지속되는 동안 사립대는 사실상 예산 증가 없이 인건비와 운영비를 감당해야 했다. 이로 인해 교수 충원이나 시설 보수, 교육과정 개발이 늦어지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세 번째는 사회적 신뢰 문제다. 일부 사립대의 부실 운영, 설립자 가족 중심의 학교 경영, 회계 불투명성 등으로 인해 지역 주민과 학생의 신뢰를 상실한 사례도 존재한다. 이는 사립대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학생 모집은 더 어려워지고, 고급 인력 충원도 제한되며, 지역 기업과의 산학 협력도 소극적으로 이뤄진다.
김종영 교수는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서울대 10개 정책은 필연적으로 국립대 중심의 생태계를 강화시킨다. 이는 전체 대학 수 감소와 재정재편을 동반하는데, 결국 지방 사립대는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성공적으로 작동하면, 각 지역의 우수 학생과 정부 자원은 자연스럽게 해당 거점국립대로 쏠릴 수밖에 없다. 이는 지방 사립대의 경쟁력을 더 약화시킨다. 예산·인재·사회 신뢰가 한 곳으로 집중되는 ‘국립대 중심 집중화’가 새롭게 시작될 수도 있다.
사립대 통합은 지역 내 사립대 간 통폐합을 유도하는 것이다. 예컨대 대구·경북 지역에 위치한 5개 사립대를 하나의 대학 네트워크로 묶어, 행정·재정·교육과정을 통합하는 방식이다. 이는 각 대학의 정체성 훼손 논란을 불러올 수 있지만, 생존을 위한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대학은 지역 사회와 협의해 교양과정, 졸업요건, 입시 방식 등을 통합하는 시범사업에 나서고 있다.

공영형 사립대는 사립대가 일정 수준의 공적 책임을 수용하는 대신, 정부가 안정적인 재정과 행정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미 서울의 동국대, 수원의 아주대 등이 시범 논의 대상이 되었으며, 일부 지방 사립대도 이 모델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단, 정부의 예산 확보와 평가 기준의 투명성 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공영형”이 실질적으로 정부 통제를 의미한다면, 사립대 내부의 반발도 예상된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국립대와 사립대가 협력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충북대와 청주대는 공동 강의와 공동 학점 교류제를 시범적으로 운영 중이며, 광주지역에서는 전남대와 조선대가 취업지원센터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모델은 대학 간 경쟁을 협력으로 바꾸는 유의미한 실험으로 주목된다.
또한 사립대가 지역 중소기업이나 고등직업교육 수요와 연결되면 차별화가 가능하다. 지역 내 기술인력 양성, 창업 보육, 디지털 전환 교육 등 실용 중심 프로그램을 통해 사립대만의 생존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 이는 국립대와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이중 트랙’ 고등교육 체제 구축의 단초가 된다.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첫째, 지역 사회 및 산업과의 협력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고등직업교육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개편해야 한다. 셋째, 지역 고교-대학 연계 프로그램을 확대해 ‘로컬 인재의 로컬 정착’을 유도해야 한다. 넷째, 대학운영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다섯째로는, 사립대 간 연합 대학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예컨대 동일 계열 학과를 가진 여러 사립대가 커리큘럼을 공동 설계하고 온라인 수업이나 학점 교류를 활성화하면, 하나의 대형 교육 생태계로 전환할 수 있다. 이는 현재 대학의 수를 줄이지 않고도 구조조정 효과를 내는 전략이다.
지방 사립대는 이제 단순한 ‘유지’가 아니라 ‘변화’의 전략을 가져야 한다. 서울대 10개 정책이 국립대 중심의 고등교육 생태계를 형성한다면, 사립대는 지역사회와 긴밀히 연계된 실용 중심 대학으로 진화해야 한다. 또는 정부의 지원을 통해 공적 책무를 수행하는 공영형 사립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수립해야 한다.
교육부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대학구조조정’을 병행 추진 중이지만, 이 둘은 상호 모순적일 수 있다. 전자는 확대 전략이고, 후자는 축소 전략이다. 지방 사립대가 살아남기 위해선 두 정책의 교차지점에서 어떤 전략을 선택할지 명확한 로드맵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사립대는 그 구조 속에서 소멸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새롭게 역할을 재정립할 전환의 주체로 다뤄져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재정 투입 이전에 제도 설계, 경쟁 구조 이전에 협력 생태계다. 한국 고등교육의 미래는 국립대와 사립대가 함께 만드는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구조 위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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