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과연 지역을 살릴 수 있는가
이는 단지 교육기관의 질적 상향이 아니라, 도시와 산업의 구조적 재편을 시도하는 것이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이라는 현실 앞에서, 대학이 지역 공동체의 중심으로 다시 자리 잡게 하려는 구상이다. 과연 이것이 실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전략이 될 수 있을까?
이 모델은 독일의 대학-도시-산업 삼각 연계모델에서 영감을 받았다. 독일 튀빙겐, 프라이부르크, 드레스덴 등은 대학을 기반으로 첨단 기술과 R&D 허브로 성장했으며, 그 결과 지역 고용 창출과 인구 유입이 일어났다. 한국 정부도 각 국립대를 ‘서울대급 종합대학+산업 허브’로 격상시키고자 한다.
경남 사천·진주 지역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등 대형 방산 기업이 몰려 있는 곳이다. 여기에 경상국립대가 전문 인력을 배출하고, 기술 개발을 이끌면서 지역 경제에 실질적 파급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2024년에는 지역 내 우주항공 관련 창업기업이 30개 이상 생겨났고, 관련 일자리도 약 500개 이상 늘었다.
GADIST는 단순한 부속 연구소를 넘어서, 학부-대학원-박사과정까지 연계된 트랙을 설계하고 있으며, 국방부와 공동 프로젝트도 다수 수행 중이다. 이는 지방 국립대가 첨단 전략산업과 결합해 경제적 시너지를 만드는 대표적 사례다.

부산대의 해양조선산업 특성화는 조선 불황기와 맞물려 일시적으로 주춤했지만, 최근 해양에너지와 친환경선박 기술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충북대는 반도체 소재와 바이오 융합을 시도하며, 관련 학과 개편과 산학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 중이다. 이는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대학의 정체성과 지역의 미래 먹거리를 함께 설계하는 고난도의 전략이다.
하지만 지역 내에 매력적인 고등교육과 연구환경, 산업 일자리, 문화 인프라가 결합되면 청년층의 이동 경로는 달라진다. 전북대 졸업생 중 지역에 남는 비율은 25% 수준이었으나, 최근 혁신도시 이전과 연계해 34%까지 상승했다. 지역 거점국립대의 수준이 서울 주요 대학에 근접할수록, 청년층은 ‘남을 이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청년에게 삶의 토대를 제공하는 ‘인프라’가 된다. 이 인프라에는 배움, 취업, 주거, 여가, 사회관계망 등 생애 전반이 얽혀 있다. 서울대 10개 정책은 바로 이러한 삶의 기반을 서울 밖에서 재구축하겠다는 시도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2004년 국립대 법인화를 통해 대학의 자율성과 책임을 확대했고, 동시에 ‘지역혁신형 R&D 프로그램’을 통해 각 대학이 지역 산업의 중심이 되도록 유도했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의 예산과 중앙정부의 전략기금이 함께 투입되며, 대학이 단순 교육기관이 아닌 지역발전 플랫폼으로 전환되었다.
한국이 서울대 10개 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단순한 예산 투입만이 아니라 이러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정책 설계자들은 서울대라는 단일 간판을 전국에 복제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하며, 실질적 평준화는 예산과 제도, 협력 체계를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서울대와 9개 지역 국립대가 연합체계를 구축하고, 공동 연구·학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국가 프로젝트를 공동 수행하는 형태로 서울대의 자원을 분산시키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교육부와 각 대학, 지자체, 산업계, 지역 주민 모두의 유기적 협력이 필요하다. 대학은 더 이상 폐쇄된 캠퍼스 안의 학문 기관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변화시키는 경제·사회 시스템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이제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대학이 지역을 살릴 수 있느냐”가 아니라, “국가는 지역을 살릴 수 있는 대학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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