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긴 배우와 멋진 칼놀음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안일한 기획의 산물이었다. 서사는 없고 감정은 억지였으며, 의미는 추락했다.
기대 속 출범, 그러나 첫 단추부터 불편했던 구성
장다혜 작가의 원작 소설 『탄금: 금을 삼키다』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드라마는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실종된 거대 상단의 아들 ‘홍랑’의 귀환과 복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배우 이재욱과 조보아, 김재욱, 엄지원 등 화려한 캐스팅과 김홍선 감독의 연출은 초반부터 기대를 모았으나, 그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드라마는 “미스터리+액션 사극”이라는 컨셉에 집착하면서 정작 캐릭터 서사와 서정적 연결 고리를 놓쳤다.
특히, 극 초반부는 시청자에게 강렬한 몰입을 유도하기보다는, 혼란스럽고 불친절한 세계관으로 다가온다. ‘홍랑’의 실종과 등장, 이복누이 ‘재이’의 반응, 상단 내 권력다툼의 맥락이 빠르게 제시되지만, 그 과정에서 캐릭터 간의 정서적 축적이나 서사의 흐름은 다소 생략되어 있어 감정 이입에 장애를 준다. 결과적으로, 시청자는 등장인물의 관계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기보다 ‘정보의 나열’ 속에서 방향성을 잃게 된다.

논리와 흐름을 상실한 스토리텔링: 개연성의 붕괴
이 작품은 이야기 전개 내내 거대한 흑막이 도사리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결국 드러난 진실은 시청자에게는 놀라움보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실종된 아이들’, ‘기억을 잃은 귀환자’, ‘가짜의 정체’라는 설정은 충분히 흥미로운 미스터리로 발전할 수 있었지만, 그 중심에 놓인 음모는 설득력이 없었다.
조선의 왕족이라는 인물이 “신이 되겠다”는 황당한 망상에 사로잡혀 ‘살아 있는 부적’을 만들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납치하고, 피부를 탈색시켜 몸에 문양을 새기는 의식을 치른다는 설정은, 판타지 장르임을 고려하더라도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이었다. 이 설정은 드라마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결정적 장치이자 모든 서사의 핵심이 되어야 했으나, 정작 현실감이나 상징성, 비유의 깊이가 결여된 채 그저 충격과 자극만을 남긴다.
이러한 ‘설정 우선주의’는 서사의 내적 논리를 희생시키고, 사건의 전개를 그저 비약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인물 간의 행동 동기나 갈등의 축적 없이 충격적인 장면을 통해 전개를 몰아붙이는 이 방식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점차 피로감을 느끼게 하며 결국 서사에서 이탈하게 만든다.

캐릭터의 성장 없는 서사: 정체된 인물들
보통 회차가 거듭될수록 캐릭터가 변화하거나 성숙하는 과정을 기대하게 되지만, 《탄금》에서는 이러한 내면적 성장 서사가 부재하다. 조보아가 연기한 ‘재이’는 초반의 정서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못하며, 무진(정가람)의 희생조차 단순한 도구적 장치로 처리되며, 캐릭터 간의 유기적인 서사 연결이 없다. 인물의 감정선은 단절되어 있고, 관계는 단순히 줄거리의 진전을 위한 기능적 존재에 그친다. 결국 시청자는 이 인물들이 왜 고통스러운 선택을 하고, 무엇을 통해 변화하려 했는지를 알 수 없으며, 이는 서사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큰 결핍으로 작용한다.
이재욱은 98% 이상의 액션을 대역 없이 소화하며 “스타일리시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맥락 없는 액션은 때때로 진부하거나 반복적으로 느껴졌다. “선혈 낭자하게 칼질 하고 싶었다”는 연출 방향은 시청자에게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주기보다는 피로감만 안겼다.
화려한 무술 동작과 영상미는 분명 뛰어났지만, 액션이 서사와 정서의 연장선에 있지 못하고 독립된 ‘쇼케이스’로 작동하면서 몰입감을 저해한다. 특정 회차에서는 액션 장면이 반복적으로 배치되며, 스토리와의 유기성이 결여된 장면은 결국 ‘피와 칼’의 잔재만을 남긴다.
원작과의 괴리: 시나리오적 사고와 시청자 거부감
원작에서는 절제된 복수와 정교한 계획이 중심을 이뤘다면, 드라마는 감정 폭발형 복수와 폭력적 장면들에 집중하면서 ‘설득력’을 잃었다. 장다혜 작가의 “처음은 시나리오였다”는 말처럼 영상화에는 최적이었을지 모르나, 각색 과정에서 핵심 구조가 무너진 점은 분명하다.
이 드라마는 복수극이라는 장르 안에서 캐릭터 간의 논리적 전개와 복합적 감정을 조율하기보다는, 과장된 설정과 자극적 장면을 나열하며 ‘감정의 외침’만을 강조한다. 이로 인해 시청자는 인물의 동기와 정서를 이해하거나 몰입하기보다는, 이 모든 설정을 ‘수용’할 것을 강요받는다.
시청자에게 감정을 환기하거나 질문을 던지기 위한 클라이맥스가 없다. 최종회에서는 주인공이 죽고, 반짝이는 ‘애틋한 장면’ 몇 컷이 등장하지만, 그조차 진정성 없이 공허하게 다가온다. “이야기를 끝낸 것이 아니라, 그저 방치한 것 같은” 느낌이라는 평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총평이 된다.
죽음, 환상, 기억의 재현 등 감정적으로 강렬할 수 있는 소재들이 총출동하지만, 그것이 유기적으로 쌓이지 않고 맥락 없이 도약하면서 시청자와의 정서적 교감은 좌절된다. 시청자는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철학이나 메시지를 포착하지 못한 채, ‘예쁜 장면’과 ‘비극적 클리셰’ 속에 남겨진다.

무엇을 위한 드라마였나
《탄금》은 한복의 아름다움, 배우의 얼굴, 칼질의 미학이라는 외형적 요소에는 집착했지만, 이 드라마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는 끝내 명확하지 않다. 인간의 탐욕을 말하고자 했다면, 서사를 통해 구조화된 주제 의식이 있었어야 했다. 결국 이 드라마는 감동도 메시지도 남기지 못한 채 넷플릭스 라이브러리 속 하나의 “소비되고 잊히는” 작품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흥행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 콘텐츠가 시청자와 소통하는 방식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한다. 작품이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는 지금, 콘텐츠는 단지 ‘보는 것’을 넘어 ‘경험되는 것’이 되어야 하며, 《탄금》은 그러한 경험을 주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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