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이후, 조용히 무너진 세대의 심리
2024년 봄,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가 펴낸 『The Anxious Generation(불안한 세대)』은 발간 즉시 교육계, 심리학계, 부모 집단 사이에서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그가 이 책에서 던진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왜 지금의 아이들은 전례 없이 불안정한가?”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놀랍도록 단호하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아이들의 세계를 근본적으로 ‘재배선(Great Rewiring)’했기 때문이다.
하이트는 이 ‘대전환’이 시작된 시점을 2010년으로 본다. 이때부터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10대의 불안, 우울, 자살 충동 지표가 급격히 상승했다. 특히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사용이 본격화된 세대에서 이러한 정신건강 악화가 집중되었으며, 그는 이 세대를 통칭해 ‘Anxious Generation(불안 세대)’라 명명했다. 이 용어는 단지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하이트는 뇌 발달, 진화심리학, 사회문화사, 교육정책 등을 종합해 불안 세대의 형성과 그 여파를 구조적으로 설명한다.
‘놀이 기반’에서 ‘폰 기반’으로: 어린 시절의 해체
하이트는 인간 발달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자유로운 놀이(free play)’를 꼽는다. 이는 물리적 세계에서 또래와 부딪히며 성장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이 시간을 대체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은 놀이터를 앗아갔고, 아이들은 스스로를 연출하는 ‘개인 브랜드’의 일원이 되어버렸다.
하이트는 이 흐름을 “놀이 기반의 어린 시절(play-based childhood)에서 폰 기반의 어린 시절(phone-based childhood)으로의 이행”이라 규정한다. 그 결과 아이들은 자율성과 위험감수 능력을 잃고, 화면 속 타인의 삶과 자신을 비교하며 불안과 우울에 잠식된다. 이는 특히 여학생에게 심각하게 나타나는데, 하이트는 소셜미디어가 여성의 완벽주의, 관계 공격성, 외모 비교 심리를 증폭시키는 ‘정신 건강 유해 플랫폼’이라 비판한다.

남학생은 어디로 갔는가: 디지털 함정 속 ‘히키코모리’
여학생들이 인스타그램의 완벽한 셀카에 짓눌린다면, 남학생들은 어디에 있는가? 하이트는 “소년들은 유튜브, 게임, 포르노의 세계로 숨어들었다”고 진단한다. 그는 이들을 ‘디지털 구덩이(digital pits)’에 빠진 존재로 묘사하며, 현실에서 도전하지 않고 온라인에서 욕망을 충족시키는 구조가 정신적, 사회적 미성숙을 고착화한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히키코모리’와 유사한 현상이 서구 청소년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미국 십대 남성의 자존감, 학업, 사회성 지표는 2010년대 이후 급격히 하락했다. 이 역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직접적 영향이라는 것이 하이트의 주장이다.
‘영혼의 높임’이 사라진 시대: 공동체 없는 세대
하이트는 정신 건강의 한 축으로 ‘영성(spirituality)’을 제시한다. 여기서의 영성은 종교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함께 호흡하고, 의미를 공유하며,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경험을 포함한다. 그러나 폰 기반의 삶은 이러한 경험을 차단한다. 바디 없이 소통하고, 멈추지 못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노출하는 구조는 청소년을 고립시키고 영혼을 피로하게 만든다.
그는 특히 ‘신성함과 속됨(sacred and profane)’이라는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개념을 인용하며, 온라인은 철저히 속된 영역이며, 공동체성과 의미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오프라인의 의식과 만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책, 교육, 가정 모두 바꿔야 한다: 해결책은 집단적 전환
이 책이 단순한 경고문에서 그치지 않는 이유는, 하이트가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네 가지 축으로 정리한다:
만 14세 이전 스마트폰 금지 / 만 16세 이전 소셜미디어 금지 / 학교의 폰 프리존화(Phone-Free Schools) / 자율 놀이와 실외 활동의 대폭 확대
그는 이 조치들이 개별 부모만으로는 어렵다고 인정하며, 지역 사회의 집단적 연대, 정책 변화, 기술적 조치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Wait Until 8th” 운동처럼 학부모가 연대해 중학교 2학년까지 스마트폰을 유예하거나, 학교에서 핸드폰 잠금 파우치를 도입하는 등의 실제 사례가 소개된다.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 디지털 리터러시를 넘어서
하이트의 주장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 청소년에게 적용될 수 있다. 한국 역시 2010년 이후 청소년 정신 건강 문제의 증가가 보고되고 있으며, 스마트폰 보급률과 학업 스트레스, SNS 사용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문제를 ‘개인 책임’으로 귀속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정신 건강은 치료와 상담의 문제로만 치부되거나, 단순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으로 해결하려는 시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The Anxious Generation』은 보다 구조적 개입을 요구한다. 스마트폰 사용 연령의 재조정, 교육과정 내 자유놀이시간 확보, 폰 없는 공간의 제도화 등은 한국 교육계와 정책 입안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마트폰이 앗아간 것들,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조너선 하이트의 『The Anxious Generation』은 단순히 청소년의 정신 건강을 걱정하는 책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허락했는지, 그리고 어떤 세상을 허락하지 않았는지를 되묻는 사회적 선언문이다. 우리는 편리함과 연결을 좇아 아이들의 탐험, 실수, 기다림, 의미, 그리고 영혼의 고요를 앗아갔다. 이 책은 그것을 돌려놓기 위한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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