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의 회복에서 사회 통합까지: 난민을 위한 고등교육은 비용이 아닌 미래에 대한 투자다
2025년, 우리는 난민이 단지 ‘돕는 대상’이 아니라 사회를 함께 만들어갈 주체라는 인식을 확장하고 있다. 고등교육은 난민에게 있어 생존 그 자체를 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하고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통로다. 반대로, 고등교육 기회를 보장하지 않는 사회는 난민을 주변화시키고, 잠재적 분열과 소외의 비용을 떠안게 된다. 이 글은 난민 고등교육이 왜 개인과 사회 모두에 있어 핵심적인 사안인지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교육을 통한 공동 번영의 가능성을 조명한다.
교육은 생존의 다음 단계다
“책을 읽고, 이론을 토론하고, 서로의 생각에 반박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는 캐나다 요크대학교가 케냐 다답(Dadaab) 난민캠프에서 운영한 ‘경계 없는 난민 고등교육(BHER)’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말리아 난민 학생의 말이다. BHER 설립자 돈 디포(Don Dippo) 교수는 이를 ‘존엄’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줄을 서고 배급을 기다리는 하루하루에서, 학문적 사고는 난민들에게 스스로를 ‘존재하는 인간’으로 확인시키는 통로였던 것이다.
BHER 프로그램은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운영되며 450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들은 단순히 자격을 얻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고, 지역 사회 내에서 지식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교육은 난민을 위한 ‘지원’이 아니라, 상호 존중과 동등한 참여를 위한 ‘조건’이다.

공공의 사명, 대학의 책임
브라이스 루(Bryce Loo, 고등교육 연구자)는 “난민 고등교육은 대학이 공공의 사명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수단”이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한 명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포용적인 제도와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의 사례는 교육의 기회가 어떻게 정치적 조건에 따라 요동치는지를 보여준다. 예컨대,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여성 난민 대상 장학기금(WSE)을 삭감했고, 이는 중동 대학에서 공부하던 수많은 아프간 여성 학생들의 학업 중단과 추방 위기로 이어졌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소액 기금을 모아 난민 학생을 후원하는 모델이 등장했으며, 이는 학내 민주주의와 참여의식 증진에도 기여하고 있다.
제도적 장벽과 보이지 않는 장벽
수많은 난민이 고등교육 진입을 가로막는 제도적 장벽에 부딪힌다. 입학 요건은 국가마다 다르며, 이력서, 성적증명서, 언어시험 등 일반 학생들에게는 당연한 과정이 난민에게는 불가능에 가깝다. 전쟁이나 정치적 억압으로 인해 출신 국가가 성적표 발급을 거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때 대학은 ‘기록된 증거’가 아닌 ‘구술 인터뷰’, ‘실제 역량 평가’, ‘샘플 과제’ 등을 통해 학업 이력을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일부 대학은 실제로 이러한 대안을 통해 시리아 난민의 70% 이상을 입학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는 물리적 접근성만이 아니다. 문화적 충격, 언어 장벽, 소속감 결여는 난민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도 지속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히 장학금이나 온라인 수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전방위적 지원(wraparound services)’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숙소, 의료, 언어 교육, 문화 중개 등 실질적 삶의 기반이 함께 제공되어야 진정한 교육 접근이 가능하다.
교육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다
미국 바드대학에서는 난민 학생과 현지 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시민참여 수업이 운영된다. ‘당신은 어떻게 지역 사회에 기여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 앞에서,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은 서로의 경험을 경청하며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이 과정에서 난민 학생들은 ‘증언자’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대화자이자 공동 학습자가 된다.
UNHCR 교육 책임자 마날 스툴가이티스는 “난민은 교실에서 증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국제정치나 인권 문제를 논의할 때, ‘직접 경험자’의 발언은 학문적 지평을 확장시킨다. 한 시리아 난민 학생이 “나는 사실상 무국적자다. 내 국가는 나를 버렸다”고 말했을 때, 옥스퍼드대 수업 전체가 일순간 멈췄다. 이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지식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힘이다.

난민 시각은 교육을 풍성하게 만든다
난민 학생은 대학에 ‘다양성’을 더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지식의 생산과 사회 변화를 함께 이끄는 ‘행위자’이다. 이를 인정하고 제도적으로 반영할 때, 대학은 더 이상 엘리트 재생산의 공간이 아니라, 포용과 혁신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예컨대, 난민이 많은 온라인 수업에서 러시아어 학습그룹이 자발적으로 형성되었고, 이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조차 “그들의 대화 분위기를 체험해보고 싶다”며 참여 요청을 했다. 또 어떤 토론에서는 토론방에서만 난민 학생의 글을 읽던 현지 학생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다”며 자발적으로 새벽 시간 세미나에 참여하기도 했다.
난민 교육은 모두의 교육이다
난민 고등교육은 단지 인도주의적 의무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하는 교육의 본질적 사명이다. 그들은 고통의 기억을 지닌 자이자,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자이다. 교육은 그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우리 모두에게 더 넓은 시야와 연대를 가르친다.
우리가 난민을 ‘환영할 수 있는 사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가장 구체적 척도는, 그들이 대학 문을 넘을 수 있는가이다. 교육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이며, 그 수익은 단지 개별 학생에게만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사회 전체에 되돌아온다. 지금 난민을 위한 교육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는 일이다.
#난민고등교육 #포용적대학 #공동번영 #교육접근권 #사회통합 #난민과존엄 #난민증언 #학습자중심교육 #UNHCR #BHER #캐나다모델 #시민참여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