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025 세계 폭염 분석 보고서 공개… 인간 활동이 초래한 ‘살인적 더위’의 과학적 증거와 대응 전략
세계는 지금 ‘뜨겁게’ 무너지고 있다
2025년 6월 2일, 세계기후행동의 날(Heat Action Day)을 앞두고 기후과학 기관 3곳인 World Weather Attribution, 기후센터 Climate Central, 그리고 적십자적반월기후센터가 공동 발표한 새로운 보고서가 전 세계에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보고서는 2024년 5월부터 2025년 5월까지 1년간의 전 지구적 극한 폭염 양상을 분석하고, 그 배후에 있는 인간 유발 기후변화의 결정적 영향을 밝힌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40억 명이 인간 유발 기후변화로 인해 추가된 30일 이상의 ‘극한 폭염일’을 경험했으며, 분석된 67건의 주요 폭염 사례 모두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이 명백히 확인됐다.
보고서는 2024년이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되었으며, 1월부터 6월까지 모든 달이 사상 최고 기온을 경신했다고 밝혔다. 특히 2025년 1월은 역사상 가장 더운 1월이었고, 북극 해빙 면적은 겨울철 기준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이상 고온은 우연도, 돌발 현상도 아니었다. 인간이 화석연료를 태우며 대기에 쌓은 온실가스가 지구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보다 1.3℃ 상승시켰으며, 2024년 한 해 동안은 무려 1.5℃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과학자들은 이제 발생하는 모든 폭염이 인간 활동으로 인해 더 강력하고, 더 자주, 더 오래 지속되는 특성을 보인다고 단언하고 있다.

전 세계 195개국에서 폭염일 ‘2배 이상 증가’
이번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많은 폭염일을 초래했는지를 계량적으로 추정하였다. 그 결과, 전 세계 247개국 중 195개국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극한 폭염일 수가 최소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심각한 국가는 아루바로, 원래 연간 45일 정도였던 극한 폭염일이 187일로 늘어났으며 이는 142일이 추가된 셈이다. 도미니카,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그레나다, 바베이도스 등 다수의 섬나라들도 130일 이상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일 증가를 겪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직결되는 기후 위기임을 의미한다.
보고서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67건의 의미 있는 폭염 사례를 선별하여 분석하였다. 이들은 모두 기록적인 고온을 보였거나 인명과 재산 피해를 유발한 사건들이며, 분석 결과 모든 사례에서 기후변화가 발생 가능성을 현저히 또는 압도적으로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태평양 도서국에서 2024년 5월에 발생한 폭염은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 가능성이 69배 증가하였으며, 중앙아메리카와 남미 북부에서 같은 해 8월 말 발생한 폭염도 최소 24배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프리카 대륙 중앙에서 2024년 12월에 발생한 폭염은 15배, 중동 지역인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바레인에서 발생한 7월 폭염은 14배, 유럽과 북아프리카, 중동 지역까지 영향을 미친 6월의 폭염은 최소 11배 더 자주 발생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보고서는 이제 폭염이 드문 재해가 아니라 일상적인 위협으로 전환되었으며, 모든 대륙과 사회 계층이 영향을 받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노출된 삶, 보고되지 못한 고통
폭염은 종종 다른 자연재해보다 주목받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치명적인 기후재난 중 하나이다. 보고서는 많은 폭염 사망이 심혈관계나 신장 질환 등 다른 원인으로 오인되어 통계에 반영되지 않으며, 저소득 국가일수록 그 규모는 더욱 과소 보고된다고 밝혔다. 예컨대 2022년 여름, 유럽에서는 약 6만 명이 폭염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마저도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이처럼 기후적응 정책 수립에 필요한 기초 데이터조차 부정확하다는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폭염은 누구에게나 위협이 되지만, 그 피해는 평등하지 않다. 보고서는 특히 노인과 지병 환자가 심혈관계와 호흡기계 질환의 악화로 인해 조기 사망률이 높아지며, 저소득층과 소외 계층은 냉방 설비나 안전한 주거, 의료 접근이 어려워 폭염에 더욱 취약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탈수, 열사병, 작업 중단 등 직업적 피해를 심각하게 겪고 있으며, 임산부는 기후변화로 인해 신체적 스트레스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 90% 이상의 국가와 63%의 도시에서는 임산부에게 위험한 날 수가 기후변화로 인해 최소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건강 피해는 농업 생산성 감소, 물 부족, 전력 및 교통망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으며, 도시 지역에서는 사회적 갈등과 폭력 증가까지 동반하고 있다.
구조적 한계와 정책의 부재
폭염에 대한 대응은 여러 구조적인 한계에 가로막혀 있는 실정이다. 각국이 폭염의 정의에 대해 합의하지 못하고 있어 국제적인 통계 수집이 어렵고, 조기경보 시스템도 대부분 응급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실제 피해를 반영하지 못한다. 기상청과 보건부, 재난안전본부 간의 협업도 원활하지 않으며, 대중의 인식 역시 부족하여 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특히 자원이 부족한 국가일수록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염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은 존재하며, 여러 도시와 지역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개인 차원에서는 활동 시간을 조절하고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며, 그늘을 찾고 이웃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가정 차원에서는 통풍을 개선하고, 차광 설비나 반사 지붕 설치 등을 통해 실내 온도를 낮추는 방법이 유용하다. 도시 차원에서는 Heat Action Plan 수립을 통해 보건체계와 응급 대응을 강화하고, 사회 보호 체계 안에 냉방 지원을 포함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정책 차원에서는 건축 기준을 개정하고, 노동 안전 기준을 강화하며, 도시계획에 열 저감 요소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제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조치들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질 때, 폭염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후위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다
2025년 현재, 지구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불안정하며, 위험한 기후 현실 속에 놓여 있다. 극한 폭염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위협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재난으로, 수십억 명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보고서에 담긴 데이터는 단순한 수치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죽음, 그리고 무너지는 시스템의 징후를 정밀하게 보여준다. 폭염은 단일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위기이며, 특히 이미 불리한 조건에 놓인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심각하게 타격을 가한다.
이번 보고서는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극한 폭염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위기의 결과이며, 이러한 상황은 현재도 계속 악화되고 있다. 이는 돌이킬 수 없는 미래가 정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선택하는 방식에 따라 미래의 폭염 강도와 피해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경고다. 우리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는다면, 더위는 점점 더 자주, 더 넓은 지역에서, 더 치명적인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특히 폭염은 다른 기후재난과 달리 예측 가능성이 높고, 그에 따른 대응 방안도 비교적 명확하다는 점에서, 국제사회가 지금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결정적 기회의 창을 의미한다.
적응과 완화는 반드시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더위를 견딜 수 있는 도시를 설계하고, 의료 시스템을 강화하며, 소외된 계층에게 냉방과 물 같은 기본적인 자원을 보장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적응조치만으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는 화석연료에서 벗어나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당장 결단하지 않으면, 극한 폭염은 단지 시작일 뿐이며, 더 무서운 기후재난이 연쇄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기후위기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서 있다. 과학은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기술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정치적 의지와 사회적 합의, 그리고 모두의 행동이다. 이번 보고서가 전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폭염은 멈출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지금, 여기서 멈출 때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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