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부유한 민간인과 미국 대통령의 관계는 어떻게 무너졌나… ‘큰 예산 법안’을 둘러싼 충돌에서 심리적 경쟁까지
한때는 미국 정치의 가장 이례적인 동맹으로 여겨졌던 일론 머스크와 도널드 트럼프의 관계가 극적으로 붕괴했다. 이 둘의 갈등은 단순한 정책적 이견이나 SNS 설전이 아니라, 권력과 자아가 충돌하는 ‘알파 수컷’ 간의 전면전 양상을 띠고 있다. 머스크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가 중 하나이며, 트럼프는 전례 없는 스타일로 정치를 장악한 대통령이다. 두 사람의 ‘정치적 브로맨스’는 어떻게 시작됐고, 무엇이 이토록 격한 결별을 초래했는지 그 전말을 분석한다.
불안한 동맹의 시작 :이념과 이해의 일치
일론 머스크는 과거 오랫동안 정치적 중립을 표방해왔다. 2016년에는 힐러리 클린턴에게, 2020년에는 조 바이든에게 투표했다고 밝혔으며, 2021년에도 “정치는 가능한 한 멀리하고 싶다”는 발언을 남겼다. 하지만 2024년 7월, 트럼프가 유세 중 암살 시도를 당한 후, 그는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공개 선언했다. “그의 빠른 회복을 바란다”는 SNS 게시글은 곧바로 미국 내 보수층의 환호를 이끌어냈고, 머스크는 단순한 지지자에서 거대한 후원자로 탈바꿈했다.
이후 머스크는 2억 8,800만 달러(약 4,440억 원)를 트럼프 재선 캠페인에 기부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공고히 했고, 백악관에 신설된 ‘정부 효율성 부서(DOGE)’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이들은 다양성과 포용 정책(DEI)에 반대하는 동일한 철학을 공유했고,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고 정부 지출을 줄이는 데 있어 강력한 동맹을 형성했다. 머스크는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에 거주하며 대통령 곁을 지켰고, 각종 정책과 예산안에 사실상 조언자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DOGE의 허상과 현실: 머스크의 과잉 확장
DOGE는 머스크가 꿈꾸던 효율적 정부의 상징이었다. 그는 이 부서를 통해 연방 정부의 불필요한 예산을 대대적으로 삭감하고, 2조 달러(약 3,020조 원)를 절감하겠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그는 USAID, 교육부, 소비자금융보호국 등의 예산을 대폭 줄였으며, 수천 명의 연방 공무원이 해고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미국 내외에서 큰 반발을 샀다. 특히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 축소, 공공교육 예산 삭감 등은 비판 여론을 키웠고, 머스크의 리더십에도 의문이 제기되었다.
한편 DOGE 내부에서도 불협화음이 커졌다. 트럼프가 임명한 내각 구성원들과 머스크 간의 이견이 표면화되었고, 2025년 3월 트럼프는 DOGE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면서 머스크의 백악관 내 실권도 사실상 사라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머스크는 5월 1일 DOGE 사임을 발표했으며, 정부 예산 절감 실적이 1,800억 달러(약 277조 원)에 불과하다는 지적 속에 퇴장했다.

분열의 도화선: ‘One Big Beautiful Bill’과 배신감
두 사람 사이의 분열을 촉발시킨 결정적 계기는 트럼프가 밀어붙인 ‘One Big Beautiful Bill(OBBB)’이었다. 이 법안은 대규모 감세를 통해 미국 중산층과 기업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내용이지만, 약 3조 달러(약 4,620조 원)의 국가 부채 증가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머스크는 X(전 트위터)를 통해 이 법안을 ‘추잡하고 역겨운(abomination)’ 법안이라 비판했고, 의회와 유권자들에게 강하게 반대 운동을 촉구했다. 그는 “이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미국을 파산으로 이끄는 일”이라며 “Kill the Bill” 캠페인을 전개했다.
머스크는 단순한 반대 이상으로 행동했다. 트럼프 탄핵을 주장하며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의혹을 거론했고, 이후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으나 파장은 컸다. 트럼프는 “일론은 얇아지고 있다. 내가 그를 떠나라고 했고, 그는 미쳐버렸다”며 직설적인 공격을 가했다. 양측 간의 SNS 설전은 가열되었고, BBC 등 주요 언론은 이를 ‘억만장자 대 대통령의 전쟁’이라 표현했다.
자아의 충돌: 심리학자가 본 머스크 vs 트럼프
심리학자 제프 비티 교수는 이 갈등을 ‘두 명의 나르시스트 거물의 충돌’이라 분석했다. 그는 이들의 관계를 ‘운전대를 놓지 못하는 두 명의 운전자’에 비유하며, 파국은 예고된 결과였다고 지적한다. 머스크는 트럼프가 자신에게 국방부의 중국 공격 계획을 보여주지 않은 것에 크게 실망했고, 이를 ‘결정적인 배신’으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
비티 교수는 머스크가 보이는 ‘역겨움(disgust)’과 ‘경멸(contempt)’의 감정은 단순한 정치적 이견이 아닌 자존감과 신념에 대한 위협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러한 감정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파괴적인 감정이며, 특히 나르시시즘이 강한 인물 간에서는 쉽게 존경이 증오로 뒤바뀔 수 있다. 머스크는 정치적 중립을 재차 강조하며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자는 여론조사도 진행했는데, 이는 자신을 트럼프의 그림자에서 분리하고 독자적 브랜드를 다시 구축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다음 국면: 누구의 승리인가, 그리고 누가 진짜 피해자인가
머스크는 DOGE 퇴장 당시 백악관에서 ‘황금 열쇠’를 받는 형식적 작별식을 가졌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배신감이 있었다. 트럼프는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부담이 되자 과감히 제거한 것으로 보인다. 머스크는 X를 통해 여론을 움직이고, 공화당 내 반(反)트럼프 진영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등 정치적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테슬라의 주가는 급락했고, 유럽 등지의 쇼룸은 공격을 받았다. 머스크 개인과 기업의 이미지도 타격을 입었다. 반면 트럼프는 정치적으로 단기적 승리를 거둔 셈이다. 그는 머스크를 ‘희생양’ 삼아 지지층을 결집시켰고, 법안 통과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두 사람의 갈등은 정치와 자본이 뒤엉킨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유권자는 그저 관전자로 전락하고 있으며, 공적 담론은 극단적 갈등과 감정적 언어에 잠식되고 있다.
일론 머스크와 도널드 트럼프의 결별은 단지 개인 간의 갈등이 아닌, 현대 미국 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다. 자본 권력과 정치 권력이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충돌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그리고 그 충돌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을 우리는 냉정히 바라봐야 한다. 두 인물이 각자 다음 수를 준비하는 이 순간, 진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갈등은 미국 사회에 어떤 상처를 남기고, 또 어떤 변화를 촉발할 것인가?
#일론머스크 #도널드트럼프 #미국정치 #OBBB #정치갈등 #정부효율성 #정책충돌 #감세법안 #머스크트럼프 #DOGE #백악관권력투쟁 #민주주의위기 #정치심리학 #자본과정치 #정치브로맨스 #엘리트정치 #트럼프머스크갈등 #미국예산 #정치후원 #SNS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