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6일, 한국형 범죄 누아르 시리즈 <광장: Mercy for None>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동시 공개되었다. 7부작으로 구성된 이 드라마는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 권력의 이면과 인간의 존엄, 그리고 한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해부하는 작품이다. 13년 만에 누아르 장르로 복귀한 소지섭은 이 시리즈의 중심에 서서 한 남자의 침묵, 고통, 그리고 분노를 강렬히 체현해낸다. 도시의 침묵 속에서 되살아난 이 인물의 고독한 발걸음은 곧 현대사회의 도덕적 붕괴와의 정면 대결로 치닫는다.
무너진 가족, 돌아온 남자
남기준(소지섭)은 과거 조직 내 핵심 인물이었지만, 자발적으로 아킬레스건을 절단하고 조직 세계를 떠난 인물이다. 그는 조직의 질서와 폭력의 반복에서 벗어나 평범한 삶을 추구했지만, 동생 남기석의 의문의 죽음 소식에 다시 광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킬레스건을 끊는다는 극단적 선택은 단순한 은퇴 선언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자신을 단절하려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남기석은 기준의 동생이자 조직 ‘주운’의 2인자였다. 그러나 그는 조직 내 권력 재편의 와중에서 살해당한다. 경찰은 사고사로 마무리하려 하지만, 기준은 의문을 품고 직접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는 봉산 조직과의 갈등, 주운 내 권력 투쟁, 검사로 활동하는 조직 대표의 아들 이금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는 피의 진실과 마주하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의 복수는 단순한 분노의 발산이 아니라, 동생의 이름을 되찾고자 하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다시 피와 배신이 난무하는 광장의 중심에 선다.

복수와 권력, 인간의 다면성
남기준 – 침묵의 복수자 / 기준은 과묵하고 절제된 인물이다. 그는 폭력보다 의도를, 대사보다 눈빛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가 다시 광장으로 돌아오는 시간, 내면의 갈등은 관객으로 하여금 묵직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말없이 걷고 말없이 싸우는 그의 모습은, 복수라는 감정보다 더 깊은 상실과 공허를 표현한다. 과거와 현재, 가족과 조직 사이에서 그는 스스로도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를 되묻게 되는 복잡한 존재다.
이주운 – 시대가 낳은 권력의 얼굴 / 허준호가 연기한 주운 조직의 수장 이주운은, 폭력과 논리가 공존하는 ‘교섭형 보스’다. 그는 기준을 설득하면서도, 인간성보다 이익을 우선시한다. 그의 복잡한 대사와 표정은 이 캐릭터의 양면성을 훌륭히 표현한다. 특히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보여주는 냉정함은 단지 폭력배가 아니라, 하나의 ‘제도’로서 기능하는 조직보스의 얼굴을 갖추게 한다.
이금손 – 법의 탈을 쓴 괴물 / 주운 조직 대표의 아들이자 검사인 금손은 진정한 의미의 ‘이중성’을 상징한다. 그는 법과 질서의 수호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직의 이익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금손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관객은 한국 사회 권력의 민낯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아버지와 국가, 법과 조직이라는 이중의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이를 교묘히 이용한다. 그의 존재는 단순 악역을 넘어 제도적 부패의 화신이다.
구준모 – 양면적 충성의 초상 / 공명이 연기한 봉산 조직의 후계자 구준모는 초기에는 시리즈의 주적처럼 보이지만, 그는 조직 간 동맹의 허상을 드러내며, 이 세계에서 ‘믿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누구든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인물이다. 그의 연기는 허세와 인간미 사이를 오가며, 진정한 누아르적 회색 캐릭터를 완성한다.

느와르와 한국적 정서의 접점
<광장>은 전통적인 느와르 문법을 따르면서도, 한국적 정서를 깊게 반영한다. 전형적인 ‘복수자의 귀환’ 구조에 한국 사회 특유의 가족주의, 체면 문화, 검경 유착, 조직적 폭력의 일상화가 녹아들어 있다. 광장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권력 투쟁의 중심이며 피로 얼룩진 역사의 상징이다. 남기준이 다시 돌아온 그 광장은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는 거울이기도 하며, 동생의 죽음을 해소해야 할 숙명의 장소이기도 하다.
7개의 에피소드는 각각 독립적인 완결성을 가지면서도, 전체 서사를 긴장감 있게 엮는다. 매 에피소드가 하나의 인물 혹은 전환점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회차별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4화와 6화는 각각 기준의 과거 회상과 금손의 배신이 드러나는 핵심 분기점으로 기능하며, 이 시리즈가 단순히 누가 악인이고 누가 복수자인가를 넘어서, 누가 더 나쁜 체계 속에서 살아남은 자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침묵과 어둠, 거리의 언어
감독 최성은은 어둡고 냉정한 시각 언어를 통해 광장의 세계를 구축한다. 클로즈업은 인물의 감정을 극단으로 끌어올리고, 롱숏은 인물과 공간의 단절감을 강조한다. 야간 장면과 안개, 비, 네온 빛 조명은 도시의 피로함과 인물의 심리를 대변한다. 카메라는 언제나 주인공의 뒷모습을 따라가며, 그의 내면을 드러내기보다는 관객이 유추하게 만드는 거리를 유지한다.
액션 시퀀스는 스타일보다 리얼리티에 집중한다. 피 튀기는 타격, 비명 대신 숨죽인 싸움, 그리고 감정이 실린 주먹이 현실감을 부여한다. 특히 야구방망이와 주먹, 맨손 격투를 활용한 액션은 CG 없는 거친 리얼리즘의 결정체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싸움의 양상은 단순한 전투가 아닌 감정의 표출로 진화하며, 기준이 점점 더 인간적인 고통을 드러내는 방식이 된다. 연출은 고통과 공허함을 시청자가 물리적으로 체감하도록 만든다.
말보단 시선, 피보다 기억
<광장>의 대사는 절제되어 있다. 대신 인물의 시선과 행동, 침묵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특히 남기준의 대사는 필요할 때만 등장하며, 짧은 말 속에 응축된 감정이 인상 깊다. 동생의 죽음을 입 밖으로 내지 않던 그가 마지막 회에서 “네가 여기 있었다는 걸 잊지 않겠다”고 말하는 순간, 그간 쌓인 모든 감정이 폭발한다.
작품 전반에 걸쳐 상징들이 반복된다. 캠핑 장면의 회상은 형제의 유대와 상실을 상징하며, 광장이라는 공간은 권력의 중심이자 피의 성지다. 또한 잦은 물의 이미지(비, 바다, 눈물)는 정화와 폭발의 이중 상징으로 기능하며, 복수와 용서 사이에 선 인간의 내면을 은근히 그려낸다.
드라마는 궁극적으로 ‘복수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법 체계가 무너진 현실, 권력의 유착, 무기력한 경찰과 검찰을 배경으로 사적인 응징은 일종의 ‘대안적 정의’로 기능한다. 그러나 이 복수는 해방이 아닌 공허로 귀결된다. 기준이 이룬 복수는 단죄가 아니라, 또 다른 죄를 낳는 굴레로 남는다.
마지막 회에서 기준은 금손을 처단하지만, 동생이 돌아오지 않음은 물론, 자신의 미래도 함께 잃게 된다. 이 결말은 단죄보다 회한을 남기며,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작용한다. 기준은 법과 질서가 무력한 세계에서 스스로 법이 되기를 택했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비극적이다. 그의 복수는 한 사람의 감정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자화상이 된다.

무게 있는 캐스팅, 절제된 표현
소지섭은 이번 작품을 통해 복귀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말없이 걷는 장면, 유일하게 눈물을 흘리는 클라이맥스에서 그의 연기는 폭발한다. 허준호와 이범수, 안길강, 공명 등 주요 배우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완급을 조절하며 극의 균형을 유지한다. 전반적인 앙상블의 밸런스는 완성도 높은 극적 리듬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조한철이 연기한 최성철은 “정의를 포기한 남자”의 전형으로서, 기준과는 또 다른 선택을 보여주는 캐릭터로 주목할 만하다. 그는 조직을 유지하고 싶어하지만, 그 과정에서 윤리적 기준을 포기하고 살아남기를 택한다. 이 인물의 존재는 기준이 놓친 것, 혹은 기준이 잃은 길을 보여주는 ‘거울 인물’로 기능하며 극의 철학적 무게를 더한다.
<광장: Mercy for None>은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 현대 한국 사회의 부패, 권력, 가족, 그리고 개인의 윤리를 모두 엮어낸 종합적인 인간 드라마다. 시청자는 기준과 함께 광장에 들어섰고, 함께 피를 보았으며, 결국 함께 광장을 떠난다. 하지만 그 광장은 우리 모두가 여전히 발 딛고 있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드라마는 끝났지만 질문은 남는다.
떠난 후에도 잊히지 않는 것은, 이 드라마가 말한 단 하나의 메시지일 것이다. “정의가 부재한 곳에서, 자비란 존재할 수 없다.” 그 말은 단지 조직 세계의 얘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법과 권력, 그리고 인간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단지 누아르 장르의 귀환이 아니라, 한국형 장르 드라마의 새로운 이정표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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