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렌스 퓨의 열연과 정신적 상처를 껴안은 슈퍼히어로들, 그리고 센트리의 등장. <썬더볼츠>는 팬들이 마블에게 기대했던 바로 그 감정을 되살린다.
‘히어로의 시대’가 끝난 이후, 무엇을 남겼는가
2019년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방향을 잃은 듯 보였다. 매끈한 영웅 서사를 고수하면서도, 개별 영화들은 점점 더 무게를 잃었고, 다중 우주라는 서사 장치는 관객을 몰입시키기보단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2025년 5월, <썬더볼츠>는 이러한 흐름을 거스르며, 마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썬더볼츠>는 강력한 메시지와 입체적인 캐릭터, 예측불가한 스토리 전개를 통해 마블이 여전히 감동과 흥분을 줄 수 있는 프랜차이즈임을 입증했다. 그 중심에는 ‘상처받은 자들의 팀’이라는 참신한 설정과, MCU가 그간 외면해왔던 “내면의 고통”이라는 서사가 자리한다.
히어로가 아닌 ‘문제아들’의 집합
<썬더볼츠>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대부분 과거 어두운 임무와 선택의 결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인물들이다. 이들은 훈련이나 약물, 혹은 유전자 조작 등을 통해 일종의 슈퍼히어로적 능력을 갖추었지만, 그 힘은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어둠의 영역에서 활용된 적이 많았다. 영화는 이들이 그 과거를 후회하며 속죄를 모색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단순히 ‘속죄’에 머물지 않고, 어벤져스처럼 대중의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악인을 처단하고,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하며, 스포트라이트를 갈망하는 모습은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욕망과도 맞닿아 있다. 인정받고 싶고, 과거의 실수를 씻고 싶으며, 더 나아가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갈망. 이 영화는 그러한 욕망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캐릭터들을 통해, 슈퍼히어로의 서사를 한층 더 현실적이고 감정적으로 만든다. ‘어둠’ 속에 있던 이들이 ‘빛’ 속으로 나아가려는 여정은, 단순한 액션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은유로 확장된다.
<썬더볼츠>의 주인공들은 A급 히어로가 아니다. 오히려 실패한 실험체, 불명예스러운 군인, 과거를 버리지 못한 전사들이다. 이들 모두는 ‘선’보다는 ‘회복’과 ‘속죄’의 서사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플로렌스 퓨가 연기한 옐레나 벨로바는 블랙 위도우의 동생으로, 끊임없이 정체성과 공허함에 괴로워한다. 영화 초반, 그녀가 세계 2위 높이의 마천루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은 자살 충동과 싸우는 인물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외에도 데이비드 하버의 레드 가디언, 와이엇 러셀의 존 워커, 세바스찬 스탠의 윈터 솔저, 해나 존-카멘의 고스트 등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려 애쓰는 캐릭터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면서도, 필연적으로 팀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센트리와 보이드, 영웅과 악의 경계가 흐려지는 곳
<썬더볼츠>의 결정적 반전은 루이스 풀먼이 연기한 ‘밥’, 곧 센트리(Sentry)의 등장이다. 그는 마블 코믹스에서 슈퍼맨급 능력을 가진 존재지만, 동시에 ‘보이드(Void)’라는 파괴적 자아를 내면에 품고 있다. 폴 젠킨스가 창조한 이 인물은 정신질환과 자아 분열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그의 내면 갈등은 영화의 정점에서 분출된다.
센트리는 단순히 강한 수준이 아니라, 거의 모든 마블 히어로를 초월하는 압도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만약 그가 자기 절제를 상실했다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재앙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처럼 <선더볼츠*>는 절대적인 힘을 지닌 존재가 자신의 감정과 충동을 통제하지 못할 때 어떤 결과가 따르는지를 성찰적으로 묘사한다. 마블은 이 강한 존재를 “이길 수 없는 적”이 아니라, “스스로와의 싸움을 멈추지 못하는 인간”으로 다루며 새로운 차원의 위협과 비극을 만들어냈다.
센트리의 “문제는 그의 힘 그 자체”이며, 이는 마블의 전형적인 히어로와 달리, 능력이 아닌 내면의 괴로움이 갈등의 핵심이 되는 드문 사례다. 그의 존재는 <썬더볼츠>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요소이며, ‘강함’과 ‘불안정함’이 공존하는 영웅상을 선사한다.
플로렌스 퓨: 마블의 새로운 심장
수많은 리뷰가 공통으로 지목한 것은, <썬더볼츠>가 ‘플로렌스 퓨의 영화’라는 점이다. 그녀는 옐레나를 통해 블랙 위도우의 그림자를 넘어서, 진정한 주체성을 획득한 여성 캐릭터로 거듭난다. 그녀의 냉소적 유머, 고통을 억누른 눈빛, 폭발하는 감정 연기는 영화 전체를 이끈다.
특히 그녀가 센트리와 맺는 복잡한 관계는, 사랑과 연민, 두려움과 믿음이 교차하는 감정의 파노라마를 펼친다. 플로렌스 퓨는 그 미묘한 감정을 놀라운 정밀도로 표현해내며, 헐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 속 ‘감정의 깊이’를 새롭게 정의했다.
불균형한 리듬, 그러나 용기 있는 시도
<썬더볼츠>는 완벽하지 않다. 중반부 이후 센트리/보이드와의 대결은 서둘러 마무리되며, 진정한 클라이맥스를 펼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액션 시퀀스 또한 후반으로 갈수록 힘을 잃는다. 그러나 이 단점들은 영화가 시도한 실험정신과 캐릭터 중심 서사, 그리고 톤의 변주 앞에서 용인 가능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MCU의 “형식화된 성공공식”을 벗어난 시도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실패보다는 진보에 가깝다. 그리고 기존의 마블 특유의 유쾌함도 여전히 살아있어, 전반적인 분위기와 리듬을 가볍게 유지한다. 이 점은 마블이 여전히 관객을 웃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흥행 성적과 앞으로의 가능성
흥행 측면에서 <선더볼츠*>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북미 박스오피스 기준으로 개봉 18일 만에 약 1억 57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전작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를 능가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 흥행은 3억 2800만 달러를 넘어서며, 손익분기점으로 추정되는 4억 5000만 달러에도 근접하고 있다.
마블은 이 작품을 ‘뉴 어벤져스’로 리브랜딩하며, 향후 ‘어벤져스: 둠스데이(2027)’로 이어지는 MCU 페이즈6의 핵심축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마블이 여전히 장기적인 스토리텔링과 확장된 세계관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상처입은 이들의 연대, 새로운 히어로의 탄생
<썬더볼츠>는 마블의 진화이자 자기반성이다. 완벽하지 않지만 진심을 담은 시도, 그리고 그 중심에 상처입은 이들을 주인공으로 세웠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슈퍼히어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진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힘’보다는 ‘회복력’, ‘기능’보다는 ‘감정’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 배우, 플로렌스 퓨가 있다. 마블은 다시, 인간적인 무언가로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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