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국이라지만 불행한 아이들: 삶의 만족도·정신건강·사교육까지, 우리가 놓친 것들
UNICEF Report Card 19을 통해 되돌아보는 대한민국 아동 웰빙의 민낯
‘성공한 나라, 불행한 아이들’이라는 역설
한국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경제 강국이다. 1인당 GDP는 3만 달러를 넘었고, 기술·문화·교육 부문에서도 세계적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이 화려한 국가 성장의 이면에서, 아이들의 삶은 반드시 ‘함께’ 나아지고 있지 않다. 아동 웰빙이라는 렌즈를 들이대면, 대한민국은 전형적인 ‘고소득국가 내부의 불균형’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2025년 UNICEF Innocenti 보고서는 고소득 국가 내 아동의 삶을 다섯 가지 영역으로 평가하며, 풍요 속에서도 위기를 겪고 있는 아동의 현실을 드러냈다. 보고서에는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종합 순위는 제공되지 않았지만, 해당 지표와 구조적 조건들을 한국 사회에 대입해보면 그 실태는 오히려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본 기사에서는 ‘한국 아동의 현재 위치’를 웰빙의 다섯 영역을 중심으로 진단하고, 구조적 요인과 함께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삶의 만족도: OECD 최하위권을 기록하는 나라
삶의 만족도는 아동의 주관적 행복 수준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한국은 이 지표에서 오랜 기간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해왔다. 2022년 OECD가 발표한 「Better Life Index」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의 주관적 삶의 만족도는 평균 6.1점(10점 만점 기준)으로, OECD 평균보다 1점 가까이 낮다. 특히 고등학생의 경우 삶에 대한 불안과 피로, 학업에 대한 압박으로 ‘미래가 기대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30%에 달했다.
한국 사회는 아동에게 높은 성취 기준을 요구하면서도, 감정 표현이나 실패 경험을 수용하는 문화가 부족하다. 아동은 ‘과도한 성취지향’과 ‘정서적 고립’이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삶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

정신건강: 조용한 절망과 우울, 그리고 극단적 선택
정신건강 지표 역시 우려스럽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의 우울·불안 증상은 팬데믹 이전보다 오히려 더 증가한 상태로 고착화되고 있다. 특히 자살은 10대 사망 원인 중 1위로, 2023년 기준 10~19세 청소년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7.5명에 달해, 고소득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수치는 ‘도움 요청을 못하는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한국 청소년 상당수는 감정적 어려움을 교사나 부모에게 털어놓지 않으며, 상담센터나 정신건강 클리닉에 접근하는 데에도 여전히 심리적 저항감을 갖고 있다. 더욱이 공교육 체계 내에서의 정서 지원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정규 교원 대비 전문 상담교사의 비율은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며, 그마저도 행정 업무에 치여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신체건강: 외형은 건강해 보이나 내면은 지쳐 있는 아이들
한국 아동은 외형상 건강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움직이지 않는 삶’ 속에서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체육 수업의 빈도는 OECD 평균보다 낮으며, 운동이나 야외활동보다 실내에서 공부하거나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 2021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주중 1일 평균 신체활동 시간은 15분에 불과했다.
게다가 체중과 체형에 대한 사회적 압박, 외모지상주의는 특히 여아에게 신체적 불만족과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다이어트 강박, 운동 기피, 체중 관련 왕따 등은 또 다른 정신건강 위기로 이어진다. 신체활동은 단순한 체력 향상이 아니라, 아동의 정서와 사회성 발달에도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점에서, 한국 아동이 신체적으로 ‘비활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기술·사회·감정 역량: 디지털 선진국, 아날로그 공백
한국은 디지털 인프라 세계 최상위권 국가다. 초등학생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교육 콘텐츠 역시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비례해 아동의 사회적·정서적 역량은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
10대 아동은 하루 평균 4~6시간 이상을 스마트폰에 사용하고 있으며, 과도한 SNS 활동은 비교 문화와 불안감, 정체성 혼란을 야기한다. 특히 여아는 외모 비교, 사이버 괴롭힘, 자기 효능감 저하 문제에 더 많이 노출된다. 또래 간의 깊은 관계나 협업을 통한 문제 해결보다는, 고립된 채 개인화된 콘텐츠 소비에 집중하면서 사회적 관계 형성 능력이 약화되고 있다.
디지털 기기의 과잉 노출로 인한 정서적 피로와 자기조절력 부족은 학습 효율과 수면의 질까지 악영향을 끼친다. 이는 장기적으로 아동의 자율성과 자기주도 학습 능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학습 능력: 최고의 성적, 최악의 행복
한국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매년 상위권을 기록하며 ‘교육 강국’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극심한 사교육 의존, 입시 스트레스, 그리고 계층 간 학습 격차가 존재한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중·고등학생 중 70% 이상이 주 5일 이상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중상위권 이상 학생들은 월 100만 원 이상을 교육에 지출한다. 이는 ‘부모의 소득이 곧 아동의 성취’로 이어지는 구조를 강화하며, 상대적 박탈감과 자존감 저하 문제를 초래한다.
또한 학업은 삶의 전 영역을 잠식하고 있다. 아동은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뒤로 한 채, 부모와 교사의 기대를 내면화한 상태로 살고 있으며, 이는 자율성 손실과 심리적 위축을 가져온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학습 ‘결과’는 강조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느끼고 성장하는지는 여전히 뒷전이다.

구조적 문제: 복지가 파편화된 사회
이 모든 문제를 관통하는 핵심은 한국 사회의 복지 시스템이 아동 중심으로 통합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 아동 관련 정책이 부처별로 분산되어 있고, 연계나 통합의 수준은 매우 낮다. 복지의 범위 역시 선별적이며, 보편적 권리로서 아동 복지가 인식되고 있지 않다.
또한 아동의 목소리가 사회정책 결정에 반영되는 구조도 거의 없다. 교육정책, 디지털 규제, 보건제도 등 모든 결정은 여전히 ‘어른의 관점’에서 내려진다. 아동은 ‘정책의 수혜자’일 뿐, ‘의사결정의 주체’로 간주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 아동이 회복하기 위한 조건들
보고서가 제시하는 아동 회복력의 조건—사회적 연결성, 기회 접근성, 참여 권리, 안전한 환경—을 한국에 대입해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고 실수하고 실패해도 괜찮은 사회, 감정 표현이 존중받고, 개인의 속도가 허용되는 교육 시스템, 그리고 나의 의견이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사회. 그것이 한국 아동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국가가 바뀌어야 할 때
UNICEF Innocenti 보고서는 단순히 아동 개개인의 행복 상태를 측정하는 자료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건강성을 가늠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가 ‘아이 키우기 어려운 나라’라는 낙인을 벗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가 아이들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부모의 책임’이라는 말로 아동 복지를 외주화해서는 안 된다. 아동을 위한 예산 확대, 복지 시스템 통합, 정신건강 인프라 강화, 교육의 목적 재설정 등 다방면의 변화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사회, 그 자체가 성숙한 민주주의이며, 지속가능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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