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펠 그랜트·TRIO·GEAR UP’ 축소가 불러올 국제적 파장
미국 고등교육의 두 얼굴: 형평성 확대와 해체 사이
미국 고등교육 시스템은 오랜 시간 사회적 형평성 확대를 위한 제도적 실험장이자, 동시에 가장 구조적 불평등이 고착된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저소득층, 유색인종, 1세대 대학생들에게 고등교육은 계층 이동의 유일한 사다리로 여겨져 왔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펠 그랜트(Pell Grant)’, ‘TRIO 프로그램’, ‘GEAR UP’ 등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교육 정책은 이들 제도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며, 미국 내 형평성은 물론 전 세계 고등교육 접근성 정책에도 깊은 균열을 불러올 것으로 우려된다.
교육부 해체 시도와 인력 50% 축소
트럼프는 재임 중 교육부 자체를 해체하려는 시도를 거듭해왔다. 이는 1980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교육부 폐지를 공약했던 전례를 답습한 것이다. 다만 미 의회 승인 없이는 폐지가 불가능하며,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격차는 크지 않다.
그러나 교육부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방식은 훨씬 빠르게 진행되었다. 2025년 기준, 교육부 직원의 절반가량이 해고되었으며, 부서의 주요 기능을 타 부처로 이관하는 방식도 논의 중이다. 특히 펠 그랜트 등 주요 연방 지원사업의 행정 기능이 재무부(Treasury Department)로 옮겨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펠 그랜트(Pell Grant)의 축소 위기
2021-2022학년도 기준으로 600만 명 이상의 저소득층 학생들이 펠 그랜트 수혜 대상이었다. 펠 그랜트는 모든 주(State)에서 지원 가능하며, 자격 요건도 비교적 명확하다. 이는 부모의 정보나 대학 진학 경험이 부족한 1세대 대학생에게도 접근 가능한 구조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트럼프 행정부는 “펠 그랜트와 연방 학자금 대출 제도는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교육부의 인력과 행정 능력 축소는 곧 이 제도의 실질적인 축소를 의미한다. 게다가 학자금 대출 탕감 프로그램의 축소도 병행되고 있어, 고등교육 진학 자체가 저소득층에게는 점점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TRIO와 GEAR UP: 글로벌 형평성 모델의 위기
TRIO 프로그램은 1960년대부터 시작되어 고등학교부터 박사 과정에 이르기까지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멘토링, 학업 보조, 진학 지원을 제공한다. 2025년 기준으로 TRIO는 미 전역의 고등교육기관을 통해 운영되며, 12억 달러(USD)의 예산을 확보했다.
그러나 2025년 1월 말, 트럼프 행정부는 모든 연방 보조금, 특히 TRIO 프로그램에 대한 예산 동결을 선언했다가 곧 철회했다. 하지만 이 움직임은 TRIO의 존속 여부 자체를 둘러싼 최대 위기를 촉발시켰다.
GEAR UP(Gaining Early Awareness and Readiness for Undergraduate Programmes)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저소득층 학생에게 대학 준비 교육을 제공하며, 2024년 예산은 약 4억 달러였다. 이 프로그램 역시 생존 위기에 직면해 있다.
단절 위기에 처한 지원 시스템: 학생들의 좌절
TRIO와 GEAR UP이 단지 미국 내 프로그램에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 고등교육 접근성 모델로 채택되어왔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은 더욱 크다. 영국의 대표적인 형평성 확대 기구인 ‘NEON(National Education Opportunities Network)’은 미국의 ‘COE(Council for Opportunity in Education)’를 본보기로 삼았다. COE는 TRIO 등 저소득층 교육 지원 사업을 운영하는 1,000여 개 기관의 옹호 기구이기도 하다.
이처럼 미국은 고등교육의 기회 확대를 위한 세계적 선도국이었으나, 트럼프의 정책은 이러한 흐름을 거슬러 흐르게 하고 있다.
세계로 번지는 ‘트럼피즘’과 고등교육 불평등
트럼프식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은 미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럽과 아시아, 남미를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이와 유사한 정치세력이 부상하고 있으며, 이들은 이민·안보 등 단일 이슈에서 출발해 점차 교육 정책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고등교육 해체 전략은 하나의 참고 모델이 되고 있다.
고등교육의 형평성은 흔히 ‘미국의 재채기가 전 세계에 감기’를 유발하는 분야로 여겨진다. 미국의 제도 변화가 곧 다른 나라에도 전염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러스킨 칼리지(Ruskin College)의 부총장이자 세계 고등교육 접근성 네트워크(World Access to Higher Education Network, WAHEN) 소장인 그레임 아서턴 교수는 “미국이 재채기를 할 때 세계는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경고한다.
현재 미국 내에서도 Lumina Foundation과 같은 비영리 기관이 2040년까지 미국인의 75%가 대학 학위를 취득하도록 한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형평성 확대를 위한 독자적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의지 없이는 시스템 전체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는다.
이에 따라 국제 사회의 공동 대응이 요구된다. WAHEN과 같은 글로벌 네트워크는 국가 간 정보 교류, 공동 정책 제안, 형평성 지표 개발 등을 통해 고등교육의 보편적 접근권을 지켜내려 하고 있다. 이제는 미국의 상황을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협력과 압박을 통해 각국이 형평성 정책을 수호해야 할 시점이다.
교육 형평성, 민주주의의 최전선
고등교육은 단지 개인의 성장 수단이 아닌, 민주주의와 사회통합의 핵심 인프라이다. 그것이 소외된 집단에게 어떤 기회를 제공하는가에 따라 사회 전체의 방향이 달라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교육 정책은 미국의 진보를 퇴보로 되돌릴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어렵게 쌓아온 형평성 기반의 고등교육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교육을 민주주의의 최전선으로 삼고, 고등교육의 접근성과 형평성을 국제적으로 수호할 때이다. 미국의 사례는 경고다. 하지만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행동의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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