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H·USAID·NSF 지원 중단…연구 중단, 윤리적 위반, 자기검열, 그리고 과학의 정치화
과학의 전선에 불어닥친 검열의 바람
“무엇보다도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소외계층이나 소수자 집단과 관련된 과학일 것이다. 이건 단순히 ‘이 주제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는 문제가 아니다. 지난 10~20년간 사회를 진보시킨 이슈들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다. 성소수자 권리, 젠더 정체성이 그 대표적 예다.”
— 뱅상 푸아투(Vincent Poitout), 몬트리올 대학교 부총장(연구·발견·창조·혁신 담당 예정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들어 본격적으로 추진한 국립보건원(NIH), 국제개발처(USAID), 국립과학재단(NSF)의 대대적인 연구기금 삭감 정책은 전 세계 대학과 과학계에 심각한 여파를 끼치고 있다. 그 영향은 단순히 예산 삭감에 그치지 않는다. 연구 중단, 교육과 훈련 붕괴, 국제협력 해체, 연구자들의 자기검열까지, 과학계는 이제 ‘자유의 후퇴’라는 역사적 경계선 앞에 서 있다.
NIH 삭감의 현실: “우리는 그냥 멈춰야 했다”
NIH는 2024년 한 해에만 480억 달러의 예산을 운용하며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연구기금을 제공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 거대한 자금을 축소하고, 이념적으로 불편한 연구에 대한 직접적 간섭을 시작했다.
몬트리올 대학교 부속병원(CHUM)의 브뤼노 박사(가명)는 NIH의 지시로 갑작스럽게 연구 중단 통보를 받았다. 그는 약물 주입자 중 의료 시스템에서 소외된 환자를 대상으로 두 지역에서의 건강 개입 모델을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미 실험이 완료되어 데이터를 정리하는 단계였지만, ‘즉시 중단’ 명령은 대학원생 12명의 학위 논문까지 위협했다.
“연구자들에게는 항상 B, C, D 계획이 있다. 우리 학생들이 졸업할 수 있게 방법을 찾겠지만, 이건 과학 자체에 대한 위협이다.” 브뤼노는 말했다.

침묵을 강요당하는 과학자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아래 과학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캐나다 방송사(CBC), 호주 ABC 방송 모두 NIH 기금 중단 사례를 보도했지만, 인터뷰에 응한 과학자들은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ABC는 “호주 내 전 세계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는 프로젝트가 1,500만 달러의 NIH 지원을 받았지만, 현재 연구자는 자신의 이름이 공개될 경우 미래 연구 기회 자체가 박탈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CHUM의 마들렌 듀랑(Madeleine Durand) 교수는 “국제 학회에 참석해보면, 과학자들이 NIH로부터 지원받고 있는 상태에서 점점 자기검열을 하기 시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녀는 “특히 HIV 연구처럼 젠더 정체성과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를 피할 수 없는 분야에서는 더하다”고 덧붙였다.
연구현장에 배포된 ‘검열 설문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NIH가 국제 연구자들에게 36개의 질문이 포함된 설문지를 보내며 미국 정부의 정책 노선에 동조할 것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 “귀하의 프로젝트는 UN, WHO 등 글로벌 거버넌스 구조와의 연계를 제한하고 미국 주권을 강화합니까?”
- “이 프로젝트에 DEI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 “이 프로젝트는 기후변화, 환경정의 관련 주제가 포함되지 않았음을 보장합니까?”
- “이 프로젝트는 생물학적 성별만 인정하는 미국 행정명령에 부합합니까?”
이는 국제 연구윤리 기준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각국 과학자들에게 ‘검열된 과학’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밖에서 벌어진 피해들: 남아공·파키스탄·콜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대학교(UCT)는 NIH로부터 140개 이상 프로젝트에서 총 1억 5천만 달러(한화 약 2,000억 원) 이상을 지원받고 있었으나, 이 중 상당수가 삭감되거나 중단되었다. UCT 부총장 모사 모샤벨라는 “그 피해는 아직 총량조차 파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파키스탄의 경우, 미국이 8억 4,500만 달러 규모의 USAID 지원을 철회하면서, 21년간 유지돼 온 ‘성적 및 필요 기반 장학금 제도’가 사실상 종료됐다. 이 장학금은 지금까지 약 5,000명의 파키스탄 대학생을 지원했으며, 이 중 절반은 여성 학생에게 배정돼 있었다.
콜롬비아
콜롬비아에서는 2011년 평화협정 이후 지역사회 재건과 농촌개발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UNAL-Fulbright Seedbed 프로그램의 종료, WEF Nexus Alliance 중단 위기 등은 국내 대학교의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를 마비시켰다. 이 프로젝트들은 기후변화, 식량안보, 생물다양성 보존, AI 응용, 공중보건 등 전방위에 걸쳐 있었다.

과학적 윤리의 붕괴
“NIH가 임상시험 자금을 중단하면, 연구자는 본인의 윤리적 책임을 저버리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연구 예산은 단지 숫자가 아니라, 윤리위원회가 연구 타당성을 판단하는 핵심 조건이다.”
— 마들렌 듀랑 박사
그녀는 “중단된 연구는 과학 지식 축적에 실패하며, 참여자들이 감수한 위험이 헛되게 된다. 이는 동의서 정신에 대한 정면 위반”이라 밝혔다.
콜롬비아대학에서 사회인지 연구를 수행 중인 신경과학자 고든 페티(Gordon Petty)는 NIH의 훈련 프로그램으로 박사 후 과정을 수행 중이지만, 현재 연구실의 MRI 작동 비용, 참가자 수당, 여행경비 등이 줄줄이 삭감되고 있다.
“우리 세대는 ‘교수직은 가능할까’, ‘연구는 10년 안에 완전히 마비되는 것 아닐까’라는 불안을 느낀다”고 그는 말했다.
미국, 스스로 영향력을 무너뜨리다
“대규모 쿠데타나 혁명을 겪지 않고 자발적으로 자국의 소프트 파워를 해체한 강대국을 본 적이 없다.”
— 로버트 퀸(Robert Quinn), Scholars at Risk Network 총책임자
미국은 세계 과학계의 최대 기부자이자 영향력 있는 파트너였지만, 지금은 과학 외교의 문을 스스로 닫고 있다. 그 결과는 단순한 지원 중단이 아니라, 신뢰 붕괴와 대체 불가능한 연구 생태계의 붕괴다.
과학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거울이다
과학은 진실을 추구한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과학정책은 진실보다 정치적 충성심을 요구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침묵하고, 학생들은 불안을 안고 있으며, 전 세계는 과학을 잃어가고 있다. NIH, USAID, NSF의 역할은 단지 돈을 제공하는 후원자가 아니라, 전 세계 과학 공동체의 동력이었다. 이제 그 부재는 단지 실험실의 정적이 아니라, 인류의 진보가 멈춘 소리를 의미한다. 과학은 살아남아야 한다. 진실은 침묵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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