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는 있지만, 실무는 어렵다 – 대졸 신입을 꺼리는 기업들
오늘날 많은 대학 졸업생들이 학위를 손에 쥐고 사회로 나서지만, 채용 현장에서 반기는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인사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98%가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거의 90%는 대학을 갓 졸업한 인재를 채용하기보다는 경력자를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고등교육과 노동시장 사이의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졸업생들이 무능하거나 게으르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그들이 배운 지식을 실제 업무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증명할 기회가 부족했다는 데 있다. 이론은 충분히 학습했지만, 실무에서 요구되는 기술과 경험을 갖춘 이들은 드물다. 이로 인해 대학은 졸업장을 제공할 수는 있어도, 노동시장이 원하는 ‘즉시 투입 가능한 인재’를 길러내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늘날 기업들이 신입사원에게 요구하는 조건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하고 실용적이다. 단순히 전공 지식이나 성적이 아닌, 문제 해결 능력, 협업 역량, 실제 현장에서의 직무 이해도와 적응력이 중요한 채용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기술, 프로젝트 관리, 고객 응대 등 직무와 직접 연결되는 기술적 능력은 교육을 마쳤다고 해서 자동으로 갖춰지지 않는다. 기업은 더 이상 이론적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환경에서 적용해본 경험,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업무 감각이 없다면, 실무에 적응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자원이 든다고 느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학위만으로는 ‘준비된 인재’라는 인식을 얻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미국 주정부, 교육과 노동을 잇는 실험에 나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미국의 일부 주정부들은 고등교육과 노동시장 간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정책 실험에 착수하고 있다. 이들은 대학 교육 안에 실질적인 업무 경험을 통합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일 경험 기반 학습(Work-Based Learning)’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학습 방식은 단순한 인턴십 프로그램을 넘어, 수업 과정 안에 실무 과제나 프로젝트, 기업 협업 활동을 직접 포함시키는 구조를 지향한다. 학생들이 단지 이론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실제 과업을 통해 구현하고 평가받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졸업 전에 이미 일정 수준의 직무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버지니아주는 Talent + Opportunity Partnership(V-TOP)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유급 인턴십을 학점으로 인정하고 있다. 지역 허브를 중심으로 대학과 기업이 공동 설계한 경험 학습 기회를 제공하며, 학생들은 이 과정을 통해 지역 기업과의 연결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텍사스주는 고등교육청, 노동부, 교육부가 함께 운영하는 Tri-Agency Workforce Initiative를 출범시켰다. 이 프로그램은 주력 산업군과 연계된 실무 중심 교육을 확대하고 있으며, 관련 법과 예산을 통해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인디애나주의 경우, EARN 프로그램을 통해 실습 기업이 인턴의 급여 절반을 주정부로부터 환급받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도 비용 부담 없이 학생에게 현장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실무 경험이 취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콜로라도주는 산업 경력을 정식 학점으로 인정하는 Industry Credentials Initiative를 운영하며, 고등교육기관과 노동시장 간 협력 체계를 제도화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일부 주정부는 단기 시범사업에 그치지 않고, 법적 근거와 예산을 기반으로 한 장기적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일 경험 중심 학습을 대학 교육의 필수 요소로 통합하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으며, 이는 대학교육의 운영 방식과 내용 구성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왜 대학 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대학 교육은 오랫동안 지식의 축적과 이론적 탐구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분야별 핵심 개념과 원리를 배우며, 논문 작성과 시험을 통해 사고력과 분석력을 키워왔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교육 방식만으로는 오늘날의 노동시장이 요구하는 실무 역량을 충분히 배양하기 어렵다는 점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첫 번째 한계는, 교과과정이 지나치게 이론 중심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론은 사고의 뼈대를 세우는 데 필수적이지만, 그것이 실제 문제 해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적용과 실행의 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공 수업은 추상적인 개념 설명이나 시험 위주의 평가로 마무리된다. 학생들은 실제로 무엇을 만들고, 누구와 협업하며, 어떤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지를 학교에서 경험하기 어렵다.
두 번째 한계는, 교육과정과 산업 현장 사이의 단절이다. 교수들은 연구와 교육에 집중하느라 급변하는 산업 트렌드를 따라가기 쉽지 않고, 기업 또한 대학에 현장 정보를 공유하거나 커리큘럼 구성에 관여하는 일이 드물다. 결국 졸업생들이 배우는 내용과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 사이에는 시차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실무 적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대학은 아직도 취업 준비를 ‘외부화’하는 경향이 있다. 진로 상담 센터나 인턴십 프로그램이 별도의 서비스로 존재할 뿐, 학문 과정 내부에 실무 교육이 통합되어 있지는 않다. 이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학점 이수와 취업 준비를 병행하면서도 양쪽에서 모두 충분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한국 대학은 어떤가 – ‘현장실습’의 한계와 과제
한국 대학들도 취업 역량 강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캡스톤 디자인, 현장실습, 산학협력 프로젝트 등이다. 특히 공학계열에서는 산업체 연계 프로젝트를 통해 실무 중심 교육을 강화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실효성 면에서는 여전히 과제가 많다.
먼저, 많은 현장실습이 ‘형식적 참여’에 그치고 있다. 학생들은 몇 주 동안 기업에 배치되지만,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업무를 맡거나 성장을 이끌어낼 만한 피드백을 받기 어렵다. 단순한 보조 업무나 사무 정리 등의 반복적 활동에 머무르면서, 실습은 경험이 아닌 행정 절차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기업 입장에서는 실습생을 지도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한다. 정규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아직 훈련되지 않은 학생을 맡기는 일은 조직 운영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실무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도 참여를 꺼리는 기업들이 많고, 일부는 교육 기관의 요청에 마지못해 응하는 수준에 그친다.
캡스톤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다. 프로젝트 기반 학습이라는 점에서 실무 감각을 키울 수 있는 좋은 방식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주제 선정과 결과물 완성에 집중하는 나머지, 과정 중심의 학습 설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외부 전문가나 기업의 참여 없이 교수와 학생만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결과물로 이어지기 쉽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한계는 ‘제도적 연계 부족’이다. 현장실습이 학점으로 인정되거나 진로 설계와 연결되는 구조가 아직 미비하고, 국가 차원의 예산 지원이나 기업 인센티브도 부족하다. 그 결과, 실습은 일부 학생만의 선택적 경험에 머물고, 대다수 학생들은 여전히 이론 중심 교육에 갇혀 있다.
미국 사례가 한국 고등교육에 주는 시사점
미국 주정부들의 시도는 단지 교육 프로그램 하나를 새로 만들었다는 차원을 넘어서, 대학 교육과 노동시장 간의 구조적 연계를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정책적 시사점을 한국 고등교육이 참고할 수 있다.
첫째, 일 경험을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정으로 통합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사례에서는 인턴십이나 실무 과제가 수업의 일부로 포함되고, 그 결과가 학점으로 이어진다. 이는 단순히 ‘스펙’ 쌓기가 아닌, 학습과 실무의 경계를 허무는 구조적 변화다.
둘째, 국가와 지방정부가 재정적 책임을 함께 진다는 구조다. 인디애나주의 EARN 프로그램처럼,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은 실무 경험의 확대를 현실화하는 핵심 동력이다. 한국에서도 실습 제공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이나 행정 부담 경감 방안이 뒷받침되어야 실질적 확대가 가능하다.
셋째, 다부처 협력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텍사스주의 Tri-Agency 모델은 고등교육부, 노동부, 교육부가 함께 정책을 기획하고 예산을 집행한다. 한국 역시 교육부뿐 아니라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등과의 공동 기획이 요구된다. 대학이 교육만 하는 곳이 아니라, 산업과 지역 사회를 위한 인재 인큐베이터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협업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제도화와 데이터 기반 관리가 필요하다. 미국 일부 주는 단기 파일럿이 아닌, 장기 예산과 법령 기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는 일 경험 중심 교육이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든다.
대학 교육의 다음 좌표 – “일 경험 중심 대학”이라는 새로운 모델
오늘날의 고등교육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환점에 서 있다. 지식 전달을 넘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전통적인 강의실 중심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일 경험 중심 학습’은 단지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기술적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교육의 목적, 대학의 존재 이유, 학습자의 정체성을 근본부터 다시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미국 일부 주정부들의 시도는 교육과 노동을 나란히 놓고 보려는 정책적 상상력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학생이 대학을 졸업한 뒤에야 세상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안에서부터 사회의 문제와 산업의 과제를 다루도록 설계했다. 학위와 경력을 단절된 것으로 보지 않고, 학습과 실무를 하나의 연속선으로 잇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미국의 실험에 그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졸업 이후’가 아닌 ‘학습 중간’에 실무 경험을 통합하려는 시도가 확대되고 있다. 한국 역시 고등교육의 질을 논의할 때, 더 이상 연구 성과나 논문 수에만 초점을 둘 수 없다. 학생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현장과 연결되었으며, 어떻게 자신의 진로를 설계할 수 있었는지를 점검하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교육과 일 사이의 간극은 ‘연결’로 메워야 한다
교육과 노동시장 사이의 간극은 오랜 시간 논의되어 온 문제다. 그러나 지금은 그 논의를 실행으로 옮겨야 할 시점이다. 더 이상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이 보장된다”는 말은 현실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동시에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는 말도 단지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대학, 정부, 기업, 그리고 학생이 함께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한 공동의 설계를 시작해야 한다. 교육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도록 돕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무를 경험할 기회가 모든 학생에게 열려 있어야 하며, 그러한 경험이 학문적 성취와 동일한 수준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일 경험 중심 대학’이라는 새로운 모델은, 바로 그 연결을 제도화하는 시도다. 미국의 일부 주들은 이미 그것을 실행하고 있다. 이제 한국도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우리 대학은, 과연 학생을 ‘취업 가능한 존재’로 길러내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졸업자’만을 배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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