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고등교육 공격, 중국 대학에는 ‘기회’가 되고 있다
세계 대학지형이 흔들린다 – 지정학과 교육의 만남
2025년 7월 발표된 『US News & World Report』의 세계대학순위(2025-2026)는 단순한 순위표를 넘어, 세계 고등교육의 지정학적 판도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받아들여졌다. 오랫동안 미국이 점유해온 ‘지식 패권(knowledge hegemony)’이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 틈을 파고든 국가는 단연 중국이었다. 특히 칭화대는 11위에 오르며 아이비리그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북경대(25위), 저장대(45위)도 급격한 순위 상승을 기록했다. 2018년까지만 해도 100위 내 중국 대학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2025년에는 중국 본토와 홍콩 지역 대학을 합쳐 15곳이 100위권에 포함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학문적 수준 향상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미국 내부에서 벌어진 정치적 변화,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고등교육에 대한 공격적 조치들이 중국 대학들에게는 의외의 기회가 되었다. 미국이 글로벌 리더십에서 물러나는 사이, 중국은 전략적으로 그 공백을 채우며 고등교육의 지형을 재편하고 있다.
“글로벌 리더십을 중국에 넘긴다” – 미 상원 민주당의 경고
트럼프의 고등교육 관련 정책은 미국 내부에서도 심각한 우려를 불러왔다. 2025년 7월,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측은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가 결과적으로 미국의 지적 리더십을 약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중국의 부상으로 직결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국제협력 예산 삭감, 과학 연구 지원 축소, 국제학생 비자 제한 등의 조치가 미국의 장기적 경쟁력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담겨 있다. 위원회 부의장 진 샤힌 상원의원은 “미국이 세계 질서에서 물러나려 할 때, 중국은 이를 기회로 삼고 있다”며 “그 대가는 미국 국민이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보고서는 ‘두뇌 유출(brain drain)’ 현상을 주요 문제로 지적한다. 국제적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환경이 필수적이지만, 미국은 점점 그 매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동시에 해외 유출 현상까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칭화대와 북경대, 세계 톱 30에 진입하다
중국 대학의 부상은 더 이상 예외적 성과가 아니다. 칭화대학교는 2025-2026 세계대학순위에서 11위에 올라, 영국의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과 공동 순위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보다 두 계단 상승한 결과이며, 10위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북경대는 31위에서 25위로, 저장대는 51위에서 45위로 올라섰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100위권 진입조차 쉽지 않았던 중국 대학들이 이제는 세계 톱 30, 톱 50을 넘나드는 위치에 도달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막대한 투자와 함께 대학 자체의 개혁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단지 순위에 집착하기보다는 연구 생산성, 국제 공동연구, 산업 협력 등 실질적 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특히 공학, 재료과학,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이미 미국 대학과 대등한 수준에 도달한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의 고등교육 압박 – 자유의 상징에서 통제의 상징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은 학문의 자유를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예산 삭감은 단순한 재정 문제를 넘어, 대학이 연구 주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을 위협한다. 특히 하버드대학교는 DEI 프로그램을 이유로 공격받았으며, 연방 지원 예산 삭감과 계약 취소라는 압박에 시달렸다. 국제학생들에게는 소셜미디어 계정 공개, 과도한 인터뷰 요구 등 비자 심사 기준 강화가 이뤄졌고, 많은 유학생이 입국 거부 또는 강제 추방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이와 같은 조치는 대학을 통제 가능한 기관으로 만들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트럼프는 정치적 입장과 다른 학문적 주제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대학을 ‘전장’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는 미국 고등교육의 전통적 가치인 학문의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차이나 이니셔티브’와 과학자들의 이탈
2018년부터 시행된 ‘차이나 이니셔티브’는 미국 내 중국계 과학자들을 잠재적 스파이로 간주하고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프로그램이다. 결과적으로 20명 이상이 기소되었지만, 대부분은 간첩 행위와는 무관한 사례였다. MIT 연구진은 해당 사건들의 대다수가 기술 유출과 무관하며, 학계 내 인종차별적 감시 효과만 낳았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미국 내 중국계 과학자들은 대거 미국을 떠났고, 2010~2021년 사이 약 2만 명의 중국계 연구자들이 중국 혹은 제3국으로 이주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인재 유출은 단순한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연구 생태계 전체에 위협이 되고 있으며, 세계 과학 리더십의 중심축 이동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중국 대학은 어떻게 자국 내 인재를 끌어모으는가
중국 대학은 미국이나 영국처럼 전 세계 최고 인재를 끌어모으는 대신, 자국 내 최상위권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교육 인프라가 이미 양적·질적으로 충분하다는 자신감을 반영한다. 예컨대 칭화대와 북경대 입학 경쟁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각종 올림피아드 수상자, 과학 영재들이 집중적으로 몰린다. 정부는 이들 학생에게 전액 장학금과 연구 지원, 해외 연수 등 다양한 특혜를 제공함으로써 해외 유출을 막고 있다.
또한 이들 대학은 교수진 구성에서도 글로벌화보다는 중국 내 학문권 위상을 높이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서구형 자유학문 모델을 그대로 복제하지 않고, 중국 사회의 특수성과 정책 연계성을 반영한 커리큘럼을 운영함으로써 독자적인 학문 전통을 구축하고 있다.
연구력 격차도 좁혀지고 있다 – 과학논문 생산량, 중국이 미국 추월
2018~2020년 사이 중국은 세계 과학논문의 24.8%를 발표하며 미국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특히 화학, 물리, 공학 분야에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논문의 질적 영향력(Q1 저널 게재율)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정부 차원의 R&D 투자 확대와 직결된다. 중국은 중앙정부 뿐만 아니라 지방정부, 주요 도시 단위로도 연구자금과 인프라 투자를 병행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NIH, NSF 등 주요 연구지원 기관의 예산이 대폭 삭감될 위기에 놓여 있다. 트럼프의 2025년 예산안은 NIH 예산을 최대 40% 삭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는 암, 에이즈, 희귀질환 연구 등 주요 공공보건 연구를 직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은 글로벌 인재시장에서 안일했다” – 전문가의 경고
고등교육은 단순한 국내 교육정책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타임즈 고등교육(THE) 글로벌 총괄 필 배티는 “서구 중심에서 동아시아 중심으로의 구조적 이동이 현실화되고 있다”며, “특히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 세계 수준의 연구·교육 기관들이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세계 고등교육 지형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내 비영리 투자사 One Way Ventures의 렉스 자오 대표는 “미국은 인재를 끌어들이는 국가였지만, 지금은 인재를 밀어내고 있다”며,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미국은 기술혁신과 연구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2025년 『네이처』 조사에서는 미국 과학자 4명 중 3명이 미국을 떠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고등교육은 외교다 – 소프트파워 경쟁의 최전선
중국은 고등교육을 외교 전략의 핵심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과 공동 캠퍼스를 설립하거나, 유학생 장학제도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이는 중국판 ‘소프트파워 확장 전략’의 일환으로, 미국의 공백을 메우는 데 성공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고등교육을 정치적 논쟁의 장으로 전락시켰다. 캠퍼스 내 DEI 교육, 팔레스타인 지지 활동, 젠더 이슈 등에 대한 개입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며, 미국 대학의 국제적 위상을 훼손하고 있다. 옥스퍼드대 마진슨 교수는 “트럼프 정부는 더 이상 과학과 교육을 세계 전략의 일부로 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약화를 상징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위권 대학을 보유하고 있으며, 연구 인프라도 견고하다. 그러나 고등교육을 둘러싼 정치적 불확실성과 국제학생에 대한 적대적 기조가 지속된다면, 그 기반은 점차 무너질 수 있다. 반면 중국은 전략적 투자를 통해 고등교육을 성장 산업이자 외교 자산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중장기적 안목에서 세계 인재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결국 고등교육은 단순히 지식의 장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경쟁력이다. 미국이 이를 정치 도구로 전락시키는 동안, 중국은 그것을 전략 자산으로 만들고 있다. 이 흐름이 지속된다면, 세계 고등교육의 중심은 서서히 ‘동쪽’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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