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의 후퇴, 교육에서 시작되다 – SFRC 보고서 분석

교육에서 시작된 외교 리더십의 위기

외교란 총칼이나 회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 오랜 시간 동안 미국 외교의 보이지 않는 첨병이었다. 냉전시대의 풀브라이트 장학금, 아시아개발은행과 연계된 기술이전 프로그램, 각국 유학생을 환대했던 캠퍼스와 자유로운 지식 교류는 미국이 ‘소프트 파워’ 국가로 자리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세계는 미국을 단순한 초강대국이 아니라, 지식과 가치, 문화의 중심지로 보았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대학과 교육이 있었다.

하지만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외교적 후퇴는 예산 삭감과 기관 해체로 표출됐고, 교육과 학문을 둘러싼 정책적 위협은 세계 각국이 미국을 더 이상 열려 있는 나라로 보지 않게 만들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재집권한 2025년 들어 그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교육과 외교를 분리해서 볼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것은, 다름 아닌 2025년 7월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측이 발표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자발적으로 중국에 넘기고 있으며, 그 출발점 중 하나가 바로 고등교육과 학문 교류라는 점을 강조한다.

과연 이 보고서가 경고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단순히 한 정당의 정치적 비판인가, 아니면 미국이 실질적으로 세계 외교 무대에서 영향력을 잃고 있는 조짐인가? 그리고 왜 하필 ‘교육’이 주요 축으로 등장하는가? 본 기사는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측이 작성한 8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미국 외교의 후퇴가 교육을 통해 어떻게 가시화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국제질서에 어떤 변화가 초래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중국에 글로벌 리더십을 넘기고 있다’는 경고

2025년 7월, 미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소속 위원들이 발표한 『A Blueprint to Restore American Global Leadership』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중국의 부상을 돕고 있다’는 강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보고서는 단순한 정권 비판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전환이 초래한 실질적 공백을 다룬다. 특히 미국의 전통적 외교수단이었던 교육, 과학, 개발원조, 공공외교가 점진적으로 해체되고 있는 현상을 데이터와 사례 중심으로 설명하며, 이를 통해 ‘미국의 힘이 사라지고 중국의 기회가 커지고 있다’는 구조적 변화를 경고한다.

보고서는 첫머리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개발기구(USAID)를 사실상 해체하고, 유엔기구 지원을 줄이며, 고등교육 및 과학기술 교류에 대한 제약을 가하고 있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와 동시에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를 중심으로 학문적 교류와 교육 중심의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이 자발적으로 비워낸 공간을 효과적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즉, 보고서는 ‘미국이 외교를 포기한 자리에 중국이 들어섰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특히 이 보고서가 주목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고등교육이다. 세계대학 순위에서 중국 대학이 급속히 부상하고 있고, 미국 대학은 정치화되고 있으며, 유학생 감소와 연구예산 삭감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단순한 교육 문제가 아니라, ‘지정학적 영향력의 재편’을 상징한다. 이 보고서는 교육을 단순한 사회정책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외교 전략의 구성요소’로 본다는 점에서 미국 내부에서조차 점차 무시되고 있는 ‘지식외교(Knowledge Diplomacy)’의 가치를 환기시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 고립, 억제, 철수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정책 기조를 ‘고립(isolationism)’, ‘억제(containment)’, ‘철수(withdrawal)’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한다. 트럼프는 대통령직에 복귀한 이후, 과거 그가 1기 때 시행했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더욱 강경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 전략은 단순한 수사적 구호가 아니라, 실제 정책으로 구체화되었으며, 그 첫 타격 대상은 교육과 외교가 만나는 접점들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국제기구 탈퇴와 지원금 축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네스코(UNESCO), 유엔개발계획(UNDP), 세계보건기구(WHO) 등 미국이 오랫동안 주요 기여국으로 활동해온 국제기구들에 대한 재정지원을 대폭 삭감했다. 뿐만 아니라, 유엔 산하의 교육·과학 관련 협력기구들과의 협약도 다수 철회하거나 재검토 중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미국이 자국의 가치와 영향력을 확산시켜온 경로들을 폐쇄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 교류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과 관련된 모든 교육·연구 협력을 사실상 금기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기조는 중국 유학생 대상 비자 발급 거부, 대학교 내 콘푸시우스 연구소 폐쇄 압박, 중국계 과학자 대상 수사 확대 등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러한 접근 방식이 단기적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교육 및 과학 기반 자체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비판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조치들이 미국 고등교육기관을 정치적 이념에 종속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학생 유치, 해외 연구자 교류, 글로벌 공동연구와 같은 전통적 미국 대학의 강점들이 안보 프레임에 의해 위축되고, 동시에 세계는 미국을 ‘폐쇄적이고 통제적인 국가’로 인식하게 되는 구조적 전환이 발생하고 있다.

예산 삭감과 기관 해체 – 외교정책의 빈틈이 된 교육지원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에서 가장 급진적인 변화 중 하나는 교육 및 문화 외교 예산의 전면적 삭감이다. SFRC 보고서는 이를 “무기보다 강력한 외교 수단을 무장해제하는 행위”로 표현하며, 특히 대학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온 지식 네트워크가 붕괴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2025년 예산안에서는 국무부 산하의 교육·문화 교류국(ECA)에 대한 예산이 65%나 삭감되었다. 이 부서는 풀브라이트 장학금, 유스엠버시 프로그램, 학술 교류 등의 핵심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기관이다.

더 나아가, 보고서는 국무부뿐만 아니라 미국국제개발처(USAID)의 구조조정도 지적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상반기에 USAID와 교육부의 국제 파트너십 기능을 통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는 현장의 반발을 샀다. 이러한 통합은 실질적으로 독립적 예산과 운영권한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며, 특히 개발도상국과의 교육 협력 프로그램 대부분이 중단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보고서는 예산 문제 외에도 법적·제도적 해체를 강조한다. 예컨대 ‘글로벌여성교육이니셔티브(GWEP)’, ‘청년혁신센터(YIC)’ 등은 행정명령에 의해 공식적으로 폐지되었고, 그 자리를 대체할 신규 프로그램은 전무한 상황이다. 이는 미국이 지난 수십 년간 구축해온 ‘교육을 통한 신뢰 외교’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자국의 외교 도구 중 가장 오랫동안 효과적으로 작동해온 ‘지식·교육 외교’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셈이며, 이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고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분석이다. 한마디로, 국방비는 유지되고 있지만, 미국을 존경받게 했던 문화와 교육이라는 무기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유학생 비자와 교류 제한 – 지식 네트워크의 단절

미국이 오랫동안 자랑해온 고등교육의 국제성은 유학생 정책을 통해 실현되어 왔다. 매년 수십만 명의 외국인 유학생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오고, 그들은 미국 대학의 재정, 연구, 문화 다양성에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SFRC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 지식 네트워크를 전략적으로 축소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핵심은 유학생 비자 제도 개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2025년 들어 F-1(학생비자), J-1(교환방문자비자), H-1B(전문직 취업비자) 발급 조건을 대폭 강화했으며, 그 이유를 “국가안보 보호”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특정 국가, 특히 중국, 이란, 러시아 출신 유학생에 대한 차별적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판단이다.

특히 보고서는 2020년에 시행된 Proclamation 10043의 연장선에서 2025년 새로 도입된 제한 조치들이 “사실상 중국 유학생을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도구로 전락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조치로 인해 수천 명의 중국 대학 출신 학생들이 입국을 거부당하거나 비자가 취소되었으며, 학문 분야에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군민융합(Military-Civil Fusion)’ 관련 인물로 간주되어 심사에서 탈락했다.

그 결과, 미국 내 중국 유학생 수는 2019년 37만 명에서 2024년 27만 명으로 급감했고, 이는 미국 대학들의 연구 활동과 학문 다양성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다. 보고서는 이러한 제한이 실제 보안 위협을 줄이는 효과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개방성과 신뢰도에 손상을 입히고 있다고 분석한다. 더 나아가, “지적 개방성이 줄어드는 만큼, 미국은 세계 지식 생태계에서의 영향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연구자 탄압과 차이나 이니셔티브 – 과학기술 패권의 이탈

SFRC 보고서는 교육 및 외교 영역에서 가장 파괴적인 조치 중 하나로 ‘차이나 이니셔티브(China Initiative)’를 꼽는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도입된 프로그램으로, 중국 출신 과학자 및 연구자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수사를 통해 기술유출을 방지한다는 목적 아래 시행되었다. 2025년 들어 이 프로그램은 이름만 달리한 채 사실상 부활했으며, 그 여파는 학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보고서는 이니셔티브의 영향으로 인해 중국계 또는 중국과의 연구 이력이 있는 과학자들이 위축되었으며, 수많은 공동 연구 프로젝트가 중단되었음을 지적한다. 특히 MIT, 스탠퍼드, UC버클리 등 주요 연구 중심 대학들이 연방 정부와의 계약을 우려해 중국계 교수의 연구를 제한하거나, 아예 공동 프로젝트 자체를 중단한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해 미국 내 과학자 커뮤니티 전체가 ‘정치적 감시’ 하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연구자들이 더 이상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교류할 수 없게 되었으며, 미국은 창의성과 개방성이라는 핵심 가치를 상실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2025년 상반기에만 500건 이상의 국제 공동연구가 보안 우려를 이유로 폐기되었으며, 이는 미국의 과학기술 혁신에 장기적 손실을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

또한 SFRC 보고서는 이니셔티브의 부작용으로 인해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미국을 떠났으며, 많은 이들이 유럽, 싱가포르, 한국 등 보다 개방적인 연구환경을 갖춘 국가로 이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이를 “조용한 탈출(quiet exodus)”이라고 표현하며, 이 추세가 지속될 경우 미국은 21세기 기술 패권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중국의 전략적 대응 – 기회로 바뀐 미국의 빈틈

SFRC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립주의 정책이 미국 외교의 빈틈을 만들고 있으며, 중국이 그 공백을 전략적으로 메우고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이 고등교육과 과학기술 교류를 제한하는 사이, 중국은 자국 내 대학 경쟁력 강화, 국제 장학금 프로그램 확대, 그리고 학문적 파트너십 다변화 전략을 통해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연계 고등교육 프로젝트다. 중국은 BRI에 참여하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루미 교육 프로그램’ ‘중-아세안 교육협력 센터’ ‘중-아프리카 유학 장학제도’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전액 국비 장학금, 대학 간 이중 학위제, 연구자 상호파견 등이 포함된다. 보고서는 이러한 전략이 단순한 유학생 유치에 그치지 않고, 해당 국가의 정책결정자 및 지식 엘리트를 중국 시스템에 우호적으로 전환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중국은 국제 학술지와 학회에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 보고서는 202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다수의 세계적 학술저널에서 중국인이 편집위원장직을 맡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글로벌 학술 생태계에서 ‘중국식 표준’이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이 제도적 리더십을 후퇴한 자리를 중국이 제도화와 자금력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이 이 같은 학문 외교를 ‘비군사적 영향력’의 핵심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중앙정책연구실은 2024년 내부 보고서에서 “지식외교는 외교 안보의 제3축이며, 미래 국제질서를 평화적으로 재구성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교육과 과학을 전략적 자산으로 보는 중국의 장기적 접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대학의 국제적 위상 하락과 글로벌 경쟁력 저하

미국은 오랫동안 ‘세계의 대학’으로 불려왔다. 하버드, 스탠퍼드, MIT, 예일, 컬럼비아 등은 그 자체로 글로벌 브랜드였고, 전 세계 인재들이 미국 유학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여겼다. 그러나 SFRC 보고서는 최근 몇 년간 그 위상이 눈에 띄게 하락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순위 문제를 넘어 국제적 신뢰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분석한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유학생 수 감소다. 202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은 전 세계 유학생의 20% 이상을 수용하는 국가였다. 그러나 2025년 기준, 영국과 캐나다, 호주, 독일 등의 유학생 수가 빠르게 증가한 반면, 미국은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STEM 분야 유학생 비중이 10% 이상 줄었으며, 이는 미국 대학의 연구 인력 구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보고서는 미국 대학의 ‘국제 공동연구’ 비중도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2015년 기준으로 미국 내 대학 논문의 36%가 국제 공동저자와 함께 작성되었지만, 2024년에는 그 비중이 28%로 줄었다. 이는 연구의 다양성과 영향력에서 미국이 점점 고립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비영어권 대학들(특히 네덜란드, 싱가포르, 홍콩)은 적극적으로 영어 중심의 학위 과정과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미국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보고서는 특히 미국 고등교육이 ‘정치화’되고 있다는 점을 위기로 지적한다. 대학 내 DEI 프로그램 폐지, 특정 학문 분야에 대한 정치적 개입, 자유로운 토론과 표현의 위축 등이 모두 국제적 신뢰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유망한 학생들과 교수진은 더 이상 미국을 가장 안전하고 자유로운 학문 공간으로 보지 않으며, 이로 인해 미국은 고등교육을 통해 축적해온 외교적 자산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외교 정책과 고등교육의 연결 – 과거와의 비교

SFRC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교육 및 과학 정책을 단지 국내 정책의 일환으로 보지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외교전략의 전환’이라는 더 넓은 틀에서 이러한 정책의 파급효과를 조망한다. 특히 보고서는 “과거의 미국은 고등교육을 외교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해왔지만, 지금은 그것을 전략적으로 포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비교는 냉전기의 미국 외교를 중심으로 상세히 전개된다.

냉전 시대의 미국은 교육과 학문을 외교 전략의 중심에 두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풀브라이트 프로그램(Fulbright Program)’이다. 이 장학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도입되어, 미국과 타국 간의 교육 교류를 촉진하고,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체제의 확산을 도모하는 데 기여했다. 수많은 정치인, 과학자, 예술가, 정책결정자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을 경험했고, 그들은 자국에 돌아가 미국과의 우호적 관계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한 미국은 냉전기 동안 개발도상국에 기술 대학을 설립하거나, 유네스코를 통해 교과서 공동 제작, 과학교육 보급 등의 활동에 참여하면서 ‘지적 영향력’을 세계에 심었다. 교육은 단순한 봉사 영역이 아닌, 자유 진영의 정체성을 알리는 외교 자산이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교육을 외교전략의 중심이 아니라, 내부 정치의 도구로 삼고 있으며, 이는 과거 미국이 쌓아온 외교 자산을 자발적으로 소각하는 행위라고 진단한다. ‘미국 우선주의’라는 슬로건 아래, 미국은 더 이상 세계와의 상호 이해를 추구하지 않으며, 외국인의 유입을 경계하고, 과학을 보호가 아닌 통제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정치적 충성도를 얻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글로벌 파워가 해체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교적으로도 심각한 위기 요인으로 작용한다.

민주당의 대안 제시 – 교육을 통한 외교 복원 전략

보고서는 단순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미국이 다시 글로벌 리더십을 회복하기 위한 교육 기반 외교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이 전략은 크게 네 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1) 국제교육 재투자, (2) 공공외교 회복, (3) 글로벌 과학기술 협력 강화, (4) 고등교육기관의 외교적 기능 재정의이다.

첫째, 국제교육 재투자 측면에서 보고서는 풀브라이트, 험프리, USAID 산하 교육 프로그램의 예산을 2015년 수준으로 복원하고, 특히 저소득 국가 출신 유학생을 위한 비자 프로그램을 개선할 것을 제안한다. 구체적으로는 장기체류 유학비자 발급, STEM 전공자 우대, 행정 절차 간소화 등을 통해 미국 유학의 매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본다.

둘째, 공공외교 회복을 위해 보고서는 국무부 산하 교육·문화국(ECA)의 기능을 확장하고, 전 세계 미국문화센터(AMC)와 미국정보원(AI)을 통한 학문·문화 교류를 재활성화할 것을 권고한다. 과거 냉전기의 미국 도서관, 문화원, 영화상영 등이 우호적 여론 형성에 기여했듯이, 지금도 그 역할을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글로벌 과학기술 협력 측면에서는 특정 국가 배제보다는 다자 협력의 확대를 강조한다. 예컨대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민감한 기술 분야를 제외하고, 기후변화, 감염병 대응, 우주탐사 등 전지구적 과제에서는 적극적 협력을 통해 미국의 과학 리더십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고등교육기관의 외교적 기능에 대한 재정의도 포함된다. 보고서는 대학이 단순한 교육 기관이 아닌 ‘외교적 접점’으로 기능해야 하며, 이에 따라 국무부와의 정책 협력, 외교 인재 양성, 국제정세 교육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대학총장과 국무장관 간의 정기 정책 협의체 신설, 국제교육 담당 특임대사 임명 등 상징적 조치도 함께 제안된다.

이처럼 SFRC 보고서는 교육을 통한 외교 복원이 가능하며, 이는 단지 이상적 구호가 아니라 실제 가능한 정책적 대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은 안보이자 외교다”

SFRC 보고서의 메시지는 단순히 정치적 비판에 그치지 않는다. 이 보고서는 학계와 외교 전문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우려를 제도화된 언어로 정리해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보고서에는 전·현직 대사, 고등교육 전문가, 안보 정책 자문관 등 다수의 인용과 제언이 담겨 있으며, 이들은 공통적으로 “교육은 곧 외교이며, 동시에 안보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전 미 국무부 공공외교 담당 차관보 마이클 팔론(Michael F. Fallon)은 보고서에서 “정보의 시대에는 외교관보다 과학자, 교수가 더 강력한 외교사절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특히 대학이 형성하는 네트워크가 정권을 넘어 지속되는 ‘관계 자산’임을 강조하며, “한 세대 동안 구축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데는 몇 년도 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글로벌 학문과 외교정책』의 저자이며 국제교육협의회(NAFSA)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수잔 헤밀턴 박사는 “미국 대학이 갖는 가장 강력한 기능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문화적·정치적 교량 역할”이라고 분석한다. 그녀는 특히 21세기 외교는 더 이상 대사관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으며, “학회, 교환학생 프로그램, 공동연구실에서 벌어지는 학문 교류가 외교의 최전선이 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보고서가 지목한 또 다른 전문가는 정보국 CIA와 국무부 양쪽에서 근무한 바 있는 전직 외교관 제러미 손더스(Jeremy Saunders)이다. 그는 “오늘날 가장 효과적인 외교관은 학계와 산업계에 숨어 있으며, 그들이 만드는 연결망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방패”라고 말한다. 손더스는 중국이 자국 내 대학을 통해 제도적 영향력을 확산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런 구조에서 미국이 빠져버린다면, 우리가 아무리 무기를 갖고 있어도 외교 전쟁에서는 지게 된다”고 경고한다.

결국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는 하나다. 교육은 단순한 국내 문제나 일자리 정책이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과 국제 질서에서의 위상을 가늠하는 외교적 지표’라는 것이다. SFRC 보고서는 이 점을 통찰력 있게 짚어낸다.

『A Blueprint to Restore American Global Leadership』는 교육과 외교를 분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사고인지 경고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외교 리더십을 군사력과 경제력만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지만, 이 보고서는 미국이 진정으로 세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열린 교육, 자유로운 학문, 문화적 관용’이었다는 점을 다시 상기시킨다.

한때 미국 대학 캠퍼스는 전 세계 젊은이들이 열망하던 장소였다. 그들은 지식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 개인의 자유, 표현의 다양성을 체험했고, 그것은 단순한 유학이 아니라 하나의 외교였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그 문을 닫고 있으며, 세계는 미국 대신 다른 선택지를 찾고 있다. 그 자리를 중국이 메우고 있고, 미국은 ‘지식의 탈냉전’을 앞당기고 있다.

교육 없는 외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외교 없는 교육은 국가 전략에서 고립을 자초한다. SFRC 보고서는 이 두 축이 다시 맞물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이 세계 무대에서 다시 신뢰받고 존중받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대학과 연구소의 문을 다시 열고, 그 안에서 세계와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학문은 외교의 언어이고, 교육은 전략의 지형이다.

‘무기’로 강해지는 국가가 아니라, ‘지식’으로 신뢰받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 그것이 이 보고서가 던지는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절실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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