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는 전제가 아니라 결과다
우리는 오랫동안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했다. 판결의 유불리에 따라 아쉬움이나 반발은 있어도, ‘판사가 모든 기록을 충분히 읽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믿음은 거의 무조건적이었다. 기록을 다 읽었느냐고 묻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질문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전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사람들은 법원에 묻는다. “정말로 다 읽었습니까?” 그 질문은 단지 ‘페이지 수’나 ‘열람 기록’에 대한 기술적 요구가 아니다. 그것은 곧 “당신들은 정말로 정의를 추구하려 했습니까?”라는 물음의 다른 표현이다.
법정은 진리의 자리가 아니라, 정의라는 사회적 약속을 지켜내기 위한 장치다. 우리는 판결이 절대적으로 옳은지를 판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의는 많은 경우, 객관적으로 확증할 수 없다. 그렇기에 사회는 사법을 믿기 위해 절차적 정당성, 숙고의 시간, 상식과 관행, 최소한의 형식미를 요구해 왔다.
정의로웠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정의로워 보이는 절차와 태도는 우리의 믿음을 지탱하는 유일한 근거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외형조차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2025년 4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상고심 사건(2025도4697)은 대법원 소부에 배당된 지 불과 몇시간만에 전원합의체로 회부되었고, 그로부터 며칠 뒤 곧바로 판결이 선고되었다. 통상 수개월에서 1년 넘게 심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기록이 약 6만 페이지에 달하는 사건을 단기간에 판단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대법원은 “기록을 신속히 검토했고 치열한 토론을 거쳤다”고 밝혔지만, 그 말은 설명이 아니라 주장일 뿐이다. 국민은 묻는다. “과연 그 시간 안에, 그 많은 기록을, 충분히 읽고 숙고할 수 있었습니까?”

다 읽지 않아도 될 수는 있다, 하지만
판사가 모든 기록을 일일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다. 요약본이나 핵심 쟁점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이 사법 시스템의 효율성이다. 문제는 과연 그 과정이 존재했는가, 그리고 그 과정이 실질적인 숙고의 결과였는가다. 결론에 필요한 일부 정보만을 선별하고, 나머지는 처음부터 배제한 상태에서 내린 판결이라면 —그것은 이미 정의의 이름을 빌린 ‘확증편향의 작동’일 뿐이다. 지금 국민이 묻는 것은 다 읽었느냐가 아니라, “애초에 마음속에 정해둔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판결이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정의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우리는 정의가 종종 늦게 도착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오히려, 늦은 정의가 진짜 정의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번 판결처럼 지나치게 빠르고, 그 속도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재판은 정의가 아닌 ‘기획된 결론’처럼 보이게 한다. 정의로워야 한다는 요청은 정의로워 보이기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절차를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지 이번 사건은 그 외형이 무너졌고, 사람들은 그 안의 진정성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대법관들이 언제 무엇을 열람했는지를 보여주는 ‘전자기록 로그’는 기술적으로 제공 가능한 정보임에도, 법원은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민은 이제 디지털 로그가 아니라 사법 시스템 전체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읽었는지를 넘어서, 사법부가 스스로 가진 신념에 취해 듣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우리는 더 이상 묻지 않을 수도 있다
사법 시스템의 진짜 위기는, 국민이 질문을 멈출 때 시작된다. 그건 더 이상 법에 기대하지 않는 상태 —신뢰가 붕괴된 사회의 비극적 침묵이다. 사법부는 정당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정당한 판결처럼 ‘보이게’ 해야 한다. 우리는 정의가 늘 확증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외형을 지키기 위한 절차와 숙고, 시간과 설명을 요구한다. 지금 그것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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