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을 모른다는 것, 자격이 없다는 뜻 아닌가?
2025년 7월 16일 열린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사전 의혹 제기 당시보다 오히려 더 많은 국민적 우려를 불러왔다. 논문 표절 논란에 이어 교육 현안에 대한 무지, 형식적 답변 반복, 심지어 보좌진이 붙인 것으로 보이는 ‘동문서답하라’는 포스트잇까지 드러나면서, 이번 후보자의 문제는 단순한 ‘과거의 흠결’을 넘어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인물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으로 확대되었다. 이 사람이 국가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부 장관 자리에 설 자격 이전에 인사청문 대상으로 적절한가?라는 질문이다.
청문회 전까지만 해도 이진숙 후보자에 대한 주요 쟁점은 석·박사 제자의 논문 내용을 인용 없이 학술지에 본인 명의로 발표하고, 자신을 1저자로 등재한 ‘표절·가로채기’ 의혹이었다. 이미 본지 칼럼 「논문 표절자에게 교육부 장관직을 맡길 수 있나?」에서 우리는 그 윤리적 결함의 심각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청문회 당일, 논문보다 더 심각한 장면들이 이어졌다. 초·중·고등학교의 법정 수업일수를 묻는 질문에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답한 후보자는, 디지털 전환 시대의 핵심 교육정책인 AI 디지털교과서(AIDT)와 유보통합에 대해서도 우물쭈물하거나 준비된 문서를 뒤적였다. 야당 의원의 질의에 “잘 알고 있다”고 했지만, 정작 질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엉뚱한 말로 흐리거나 무응답으로 일관한 장면은 국민들 앞에 생중계되었다.
이 후보자는 ‘논문 표절’을 해명하기 위해 청문회에 나왔지만, 정작 장관으로서 중요한 ‘미래 교육 비전’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철학도 보여주지 못한 채 청문회를 끝마쳤다. 이는 도덕성 이전에 역량의 문제이자, 리더십의 공백이다.
“잘 안다고 해라”, “동문서답하라” – 공직에 대한 태도의 위기
청문회 장면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 후보자 책상에 붙어 있었던 포스트잇의 내용이었다. “모르는 건 잘 안다고 말하라”, “답변하지 말고 넘겨라”, “동문서답하라”는 문구가 확인되면서, 이번 청문회가 ‘국민 앞에서 진실을 밝히는 자리’라기보다 ‘실책을 피하는 기술적 방어전’으로 치러졌음을 방증했다.
물론 고위 공직자의 청문회 준비에는 보좌진의 조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직자가 대답을 회피하는 법, 말의 모양만 갖추는 법을 미리 훈련받아 나오는 것은 민주적 책무를 저버리는 태도다. 교육부 장관은 단순한 행정 직책이 아니다. 학문과 교육의 기준을 제시하는 자리고, 학생과 교사의 눈높이에서 신뢰받아야 할 ‘윤리의 상징’이다. 그런 자리에 오르려는 이가 ‘거짓을 위한 기술’에 의존했다는 점은 표절보다 더 근본적인 결격 사유다.
이 후보자는 논문 표절 논란에 대해 “국가 과제를 책임지고 연구를 기획했기 때문에 내가 1저자”라며, 이공계에서는 그런 관행이 존재한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학계의 반발을 불렀다. 교수는 연구비를 따오고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교신저자’의 역할이지, 직접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 주체가 아니라면 1저자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 연구윤리의 일반 원칙이다.

문제는 이 후보자의 입장에 ‘인정’도 ‘책임’도 없다는 점이다. 학생이 작성한 논문의 내용을 그대로 사용하고도, 각주 하나 달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그는 유감의 뜻은커녕 “연구 설계는 내가 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표절 여부를 떠나, 학문적 겸손도, 지도자로서의 책임도 보이지 않는 태도는 교육수장으로서 치명적이다.
‘여성 과학기술인’, ‘비수도권 총장’이라는 명분
이번 인선은 대통령실에서 “이공계 출신 여성”, “지방 국립대 총장”이라는 인물의 상징성을 고려했다는 해석이 많다. 지방대학 육성과 과학기술 중심의 교육개혁이라는 정책 방향성에는 일정한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상징은 실력과 윤리, 비전 위에 서야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이 후보자의 청문회는 이 모든 기준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오히려 그 상징성만 남아, “이공계 여성은 교육 정책을 몰라도 괜찮다”는 왜곡된 인식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해당 인사에게도 불공정한 일이다. 여성 장관 비율 확대는 중요한 목표이지만, 이는 자격을 갖춘 인물을 공정하게 발탁하는 과정에서 달성되어야 한다. 역량과 윤리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징적 할당’은 여성 리더십의 의미를 오히려 퇴색시킨다.
지금 국민들이 문제 삼는 것은 단지 논문 표절이나 정책 무지 하나가 아니다. 그것이 동시에 나타났고, 그에 대한 후보자의 태도에서 일말의 성찰이나 반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 사람은 교육부 장관이 되기 위해 청문회에 나온 것이 아니라, 비판을 회피하고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청문회를 통과하려 했다. 그런 인물에게 대한민국의 미래 교육을 설계하고 정책을 집행할 권한을 줄 수 있는가?
학생들은 AI가 만든 문장 하나에도 출처를 밝히라는 요구를 받는다. 교사는 교육 철학이 부재하면 교단을 떠나야 한다. 그런데 교육부 장관은 학생의 논문을 인용 없이 사용하고도 책임을 지지 않으며, 교육 정책 질의에도 메모만 바라보고 ‘동문서답’으로 일관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사회는 ‘정직하게 공부해도 소용없는 사회’, ‘결국 힘 있는 자가 이름을 가져가는 사회’라는 절망적 메시지를 줄 뿐이다. 그 아래서 어떤 교육개혁도, 어떤 신뢰 회복도 이뤄질 수 없다.
기준이 흔들릴 때, 다시 윤리를 세워야 한다
지금의 논란은 정치적 유불리로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 교육이 사회의 미래라면, 그 수장은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기준을 갖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자리다. 그리고 그 기준은 정치적 충성도나 인사권자의 의지만이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윤리와 역량이어야 한다.
정책을 몰라도 괜찮고, 논문은 인용 없이 써도 되고, 모르면 ‘잘 안다고 하라’는 메모를 붙이고 장관 자리에 오를 수 있다면, 그건 단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정부의 인사철학, 교육에 대한 관점이 무너졌다는 신호다.
현재 여당 내부에서도 “사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대통령에게 부담을 그만 드리라”는 언급까지 등장했다. 정권 초반에 이런 인사 실패는 국정 전체의 신뢰에 상처를 남길 수 있다. 대통령실은 기준을 선택해야 한다. 더 이상 사태를 끌고 가기보다, 교육 수장이라는 자리에 걸맞은 새로운 인사를 찾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다. 이번 인선 실패는 한 명의 낙마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교육의 신뢰를 어디서부터 다시 세워야 할지를 묻는, 구조적 반성과 재설계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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