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교육부가 실시한 ‘대학 성희롱·성폭력 전담조직 실태조사’ 결과는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대응 체계의 심각한 구조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조사에 참여한 428개 대학 중 상당수가 전담기구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인력의 전문성과 사건 대응 체계, 피해자 지원 시스템 등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여전히 많은 공백이 존재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전국 428개교 참여…설치 형태는 대부분 인권센터 내부 조직
이번 조사는 대학의 전담조직 설치 여부, 인력 구성, 사건 처리 현황, 피해자 및 가해자 지원 실태 등을 포괄적으로 점검하였다. 총 428개교가 참여했으며, 이 중 대학은 226개교(52.8%), 전문대학은 164개교(38.3%), 대학원대학은 38개교(8.9%)였다. 설립 형태로는 국공립 13.8%, 사립 86.2%로 사립 대학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전담기구 설치 형태를 살펴보면, 인권센터 내에 설치된 경우가 75.5%로 가장 많았고, 행정기구 내 설치 12.1%, 학생상담센터 내 설치 7.5%, 별도 독립기구는 2.6%에 그쳤다. 이는 다수의 대학들이 인권센터를 중심으로 대응 체계를 꾸리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독립성과 전문성 측면에서 한계가 존재함을 시사한다.
3가지 업무를 한 사람이 도맡는 구조…평균 1.75명에 과중한 업무 부담
전담기구의 인력 운영 현황은 구조적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된다. 조사에 따르면 전담 인력 중 ‘성사안 처리’, ‘인권침해 대응’, ‘기타 행정업무’ 등 세 가지 업무를 모두 수행하는 인원이 평균 1.75명으로 나타났다. 업무 분담의 명확성이 결여된 채, 한 명의 담당자가 복수의 업무를 도맡고 있는 현실은 과중한 업무로 이어지며 전문성 확보를 어렵게 한다.
특히 전담기구의 장 또는 센터장이 겸직 형태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 사안의 독립성과 집중도 측면에서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 겸직 비율이 높을수록 전담조직 본연의 기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피해자 지원은 50%대, 가해자 지원은 40%대…법률자문은 평균 0.58건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체 대학의 54.9%가 피해자에 대한 직접 심리상담을 제공하고 있었고, 외부자원 연계 비율도 51.9%에 달했다. 하지만 ‘법률자문 등 법률적 지원’은 41.8%에 그쳤고, 연간 평균 실시 건수는 0.58건에 불과했다.
반면, 가해자에 대한 지원 활동은 전반적으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가해자 직접 심리상담은 40.9%, 외부자원 연계는 46.5%만이 운영되고 있었으며, 이 또한 평균 연간 0.30건 수준으로 미미했다. 특히 상담 인력의 부족과 예산 문제는 지속적인 한계 요인으로 지적되었다.
사건처리, 10건 중 3건은 중징계…하지만 절반은 ‘상담 종료’ 또는 ‘미해결’
2023년 한 해 동안 접수 및 처리된 사건 가운데, 심의위원회 개최 후 중징계를 요구한 경우는 평균 0.32건, 경징계 요구는 0.26건으로 집계됐다. 전담기구의 조정·중재를 통해 합의에 도달한 경우는 평균 0.17건이었으며, 가장 높은 수치는 피해자의 상담 종결 의사에 따라 종료된 사례로 0.65건이었다. 심의 없이 분리조치하거나,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경우도 평균 0.14~0.15건에 달했다.
이러한 수치는 피해자 보호보다는 사후 조율 중심의 대응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비판을 낳는다. 심의 절차가 지연되거나 징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대학 내 성폭력 사안에 대한 실질적 대응력 부족을 보여준다.
피해자 중심의 제도 설계, 현실은 “이중관계와 예산 부족”
보고서에는 피해자 보호 체계의 실질적 운영에 대한 한계도 생생히 담겼다. 일부 대학에서는 상담센터 담당자가 인권센터를 겸직함으로 인해 상담자-조사자 간의 ‘이중관계’ 문제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내부 상담이 불가능한 구조가 형성되었다. 또한 내선전화 녹음 기능이 없거나 온라인 상담 신청 시스템이 없어, 피해자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예산 부족 역시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전담기구 중 45.1%가 인건비 부족으로 전담직원 채용 자체가 어렵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문제는 상담 인력 확보뿐 아니라 법률 자문, 피해자 치료비 지원 등 전체 지원 체계를 위축시키고 있다. 일부 대학은 외부 자문을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대응하지만, 제도적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
전문성 부족과 과중한 업무, 낮은 처우가 악순환
업무 담당자의 어려움으로는 ‘전문 역량 부족’(25.8%), ‘과중한 업무’(21.7%), ‘모호한 업무 분장’(16.9%) 순으로 나타났으며, ‘낮은 급여 수준’(14.4%)도 주요 문제로 지목되었다. 전담기구가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젠더 및 인권 전문가, 법률 지원 인력, 상담 전문직 등 다양한 분야의 협업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예산과 구조의 제약 속에서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보고서는 이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해 명확한 업무 분장을 통해 성사안 담당 인력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전담기구의 인력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중장기적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담기구를 넘어서”…독립성, 전문성, 예산 확보가 핵심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세 가지 핵심 제언을 내놓는다. 첫째, 전담기구 인력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둘째, 심의위원회 구성 시 외부 위원 비율을 조정해 객관성을 높이며, 셋째, 대학 유형별로 상이한 구조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맞춤형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결국 ‘전담조직’이라는 명칭을 넘어, 그 조직이 진정으로 독립성과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단순한 설치율이나 인력 수가 아닌, 사건을 다룰 수 있는 제도적 역량과 전문성이 핵심이 된다. 대학은 교육기관일 뿐만 아니라, 학생과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하는 책임 기관이다. 지금의 제도적 구멍이 더는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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