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등장한 ‘디지털 교육 낙관론’의 그늘… 온라인 교육은 진짜 민주화였을까, 아니면 새로운 지배 구조의 출현이었을까?
“접속”은 있었지만, “접근”은 없었다
COVID-19 팬데믹은 고등교육에 있어 가장 급진적인 전환의 순간이었다. 전 세계 대학들은 대면 수업의 중단에 대응하기 위해 오픈 액세스 플랫폼, 긴급형 온라인 강의 시스템, 학습관리시스템(LMS) 도입 등을 동원하며 새로운 ‘디지털 교육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당시 많은 이들은 이것이 교육의 ‘민주화’가 실현되는 순간이라 믿었다. 국경, 비용, 장소의 장벽을 넘어 누구나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는 환상이 퍼져 나갔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그 비전은 조용히 퇴색되었다. MOOCs(대규모 온라인 공개강좌)의 등록률은 정체되었고, 이수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교육기관들은 대면 수업으로 대부분 복귀했고, “디지털로 인한 교육 평등”이라는 담론은 현실을 따라오지 못했다.
무엇이 실패했는가? 기술인가, 교육인가? 아니면 ‘교육을 보는 방식’ 그 자체인가?
기술이 아닌 철학이 결여된 교육 혁신
팬데믹 시기 도입된 대부분의 온라인 교육 시스템은 기술적으로는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동했지만,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되묻는 철학적 성찰은 부족했다. 강의 영상을 모듈화하고, 알고리즘 기반 피드백을 제공하며, 개별 진도에 따라 콘텐츠를 맞춤 제공하는 시스템은 ‘접속’의 편리함을 제공했지만, 교육이 본래 지닌 관계성과 상호작용성, 구체적 경험성은 사라졌다.
교육은 지식을 단순히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대화와 공동체, 감정과 윤리의 공간에서 상호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플랫폼 기반 학습은 이를 효율성, 편의성, 확장성의 이름 아래 추상화해버렸다. 학생은 더 이상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콘텐츠를 소비하는 유저”가 되었고, 학습은 자율적 성장의 과정이 아니라 클릭과 퀴즈 점수로 측정되는 일종의 게임이 되었다.
디지털 전환의 오류는 기술의 도입이 아니라, “배움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생략한 데 있었다. 교육은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의미와 인간 경험의 문제이며, 이는 어느 플랫폼도 대신해줄 수 없다.

데이터 중심 교육 모델의 한계
MOOC와 같은 플랫폼 기반 교육 모델은 ‘학습 분석(learning analytics)’을 통해 학습의 질을 측정한다고 주장한다. 학습자의 클릭 수, 시청 시간, 퀴즈 정답률, 참여 빈도 등의 데이터를 활용해 수업 효과성을 계량화하고, 그 결과를 기반으로 학습 설계를 최적화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 데이터들이 교육의 본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질문, 갈등, 틀림에 대한 탐색, 그리고 불확실성에 머무를 수 있는 용기 같은 ‘진짜 학습의 징후들’은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교육이 추구해야 할 것은 ‘내용의 전달’이 아니라 ‘의미의 창조’이며, 이는 클릭 수로 측정되지 않는다.
교육이 수치화 가능한 행동지표 중심으로 설계될수록, 학습은 피상적인 효율에 머물게 된다. 결국 학생은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반응하지만, 덜 비판적이고 덜 창의적인 존재가 된다. 학습이 ‘생산성’이라는 산업적 지표로 측정될 때, 그 결과는 단지 ‘순응하는 인재’의 대량 생산일 뿐, 자기 주도적 사고와 윤리적 성찰을 갖춘 시민의 양성이 아니다.
글로벌 교육 불평등의 심화와 ‘디지털 식민주의’
오픈 액세스 교육은 처음에는 ‘지구적 교육 기회의 평등화’를 약속했다. 북반구와 남반구의 교육 격차를 줄이고, 누구든 인터넷만 있으면 세계 최고 수준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글로벌 교육 불평등을 ‘기술적으로 은폐’하는 새로운 구조가 만들어졌다.
북미와 유럽의 명문대학들이 만든 콘텐츠는 주로 영어로 제작되었고, 서구 중심의 사고방식과 교육 철학이 그대로 이식되었다. 플랫폼 설계와 콘텐츠 구성도 실리콘밸리식 사용자 경험과 효율성, 시장 논리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그 결과, 남반구의 많은 학습자들은 ‘보편성’이라는 이름 아래 현지 문화와 맥락, 언어, 지식체계를 배제당한 채 학습자 아닌 소비자로 존재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기술 격차를 넘어, 지식의 비식민화 문제로 이어진다. 교육 플랫폼이 제시하는 콘텐츠는 중립적이지 않다. 어떤 지식을 ‘진짜’로 간주할 것인가, 어떤 목소리를 교육의 중심에 둘 것인가는 교육이 지닌 가장 깊은 정치적 선택이다. 그럼에도 많은 오픈 액세스 플랫폼은 이를 ‘기술적으로 평등하다’는 환상으로 포장해버린다.
결과적으로 플랫폼 교육은 현지 교사와 교육 체계를 주변화하고, 학습자들을 ‘글로벌 기준’이라는 단일 틀에 적응시키도록 만든다. 이러한 구조는 ‘교육의 세계화’가 아니라 ‘디지털 식민화’에 가깝다.
MOOC 모델의 구조적 모순: 확장성은 의미의 축소였다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교육의 대중화’를 내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모델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났다. MOOC는 대규모 수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강의 내용을 모듈화하고, 자동화된 피드백 시스템을 채택했다. 이 과정에서 교육은 점점 더 표준화되고 비인격적인 학습 체험으로 바뀌었다.
학생들은 콘텐츠를 소비하고 퀴즈를 풀고, 알고리즘에 의해 ‘진도’가 관리되지만, 진정한 사고의 깊이나 토론, 의미 생성의 여지는 줄어들었다. 이는 교육의 본질이었던 ‘생각하게 만드는 경험’을 지우고, 대신 행동주의적 순응 학습(behavioral compliance)을 강화했다.
MOOC 1.0은 교육을 ‘지식의 방송’으로 간주했다. 서구 대학의 콘텐츠를 전 세계로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고, 그 결과 지역성·상호성·비판적 대화의 부재라는 고질적 한계에 빠졌다. 학습자들은 플랫폼 안에서 정해진 경로를 따라야 했고, 이는 교육의 획일화와 수동화로 이어졌다.
증강 고등교육(Augmented Higher Education)의 비전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온라인 교육이 아니다. ‘증강 고등교육(augmented higher education)’은 기술을 보완재가 아니라 비판적 성찰의 도구로 삼는 교육 모델이다. 여기서 ‘증강’은 더 빠르고 많이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윤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 모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관계성의 회복: 교수자와 학습자, 학습자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공동 창조적 학습 환경, 지식의 다원성: 원주민, 예술, 신앙, 지역지식 등 다양한 인식론과 학문 전통의 공존,디지털 감식력(Digital Discernment): 언제 기술을 사용하고 언제 멈출 것인지, 기술이 묻어둔 질문을 꺼내는 능력 이다. 증강 고등교육은 인간과 기계가 경쟁하지 않고 공진화(co-evolution)하는 학습 생태계를 지향한다. 이는 단순히 ‘AI를 도입하는 교육’이 아니라, ‘AI 시대에 인간다운 사고를 유지하는 교육’이다.
플랫폼이 사용자를 최적화하려 할 때, 교육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시스템이 누구의 지식만 유효하다고 말하고 있는가? 누구의 언어가 중심이 되었는가?. 증강 교육은 기술에 휘둘리지 않고, 기술을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다시 인간 중심의 교육을 상상할 시간
오픈 액세스는 우리에게 빠르고 편리한 교육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교육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유의 공간이며, 의미를 창조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며,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인간을 학습 알고리즘으로 환원할 수 없듯, 교육도 단지 콘텐츠 전달 시스템으로 축소될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교육을 다시 상상할 시간이다. 교육은 정보가 아니라 관점에 접근하는 과정이며, AI 시대에도 여전히 비판적 사고, 공동체적 책임, 윤리적 성찰을 요구한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대시보드가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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