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 교수팀, 세계 최초 ‘다기질 비대칭 반응 동시 분석법’ 개발…자율합성 시대 핵심 기술로 주목
탈리도마이드의 교훈에서 시작된 과학적 도전
탈리도마이드는 한때 임산부 입덧 치료제로 처방되었지만, 그 화합물의 ‘광학 이성질체’ 중 한 형태가 기형을 유발하며 전 세계적 참사를 남겼다. 동일한 화학식을 지닌 두 이성질체가 생체 내에서 전혀 다른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은 이후 ‘비대칭 합성 기술’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신약 개발에서 특정 광학 이성질체를 선택적으로 합성하는 기술은 생명 안전성과 직결되지만, 지금까지는 여러 반응물을 동시에 정밀 분석하는 데 기술적 한계가 존재했다. KAIST 화학과 김현우 교수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 최초로 21종의 화학반응을 한 번에 정밀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자율합성 시대의 분석 병목, ‘불소 NMR’로 돌파하다
AI와 로봇이 신약 후보 물질을 설계하고 합성하는 ‘AI 기반 자율합성법’이 급부상하고 있으나, 생성물의 정확한 분석은 여전히 사람 손을 거쳐야만 했다. 이는 고속 반복 실험이 필요한 자율합성 플랫폼에 큰 병목으로 작용해왔다.
김 교수팀은 이러한 병목을 해결하기 위해, 고해상도 불소 핵자기공명 분광기(19F NMR)와 자체 개발한 카이랄 코발트 시약을 결합해 광학 이성질체를 정량적으로 구별·분석할 수 있는 기술을 구축했다. 이 기술은 다기질을 한 반응기에 넣어 동시에 반응시킨 후, 생성물 전체의 수율과 광학활성을 단 한 번에 분석할 수 있게 한다.
실제로 연구팀은 총 21종의 기질에 대해 비대칭 환원아민화 반응을 동시에 수행하고, 불소 NMR 기반 플랫폼으로 각 반응의 결과를 고해상도로 구분·정량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기존 방식에 비해 분석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데이터 정확도는 훨씬 향상된다는 점에서 기술적 돌파구로 평가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다기질 스크리닝 기술 구현
이번 연구의 핵심은 단지 ‘동시 반응 수행’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에 있다. 김현우 교수는 “누구나 여러 반응물을 한 번에 넣고 반응시킬 수는 있지만, 각각의 생성물을 완벽히 구분·분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고 설명한다.
연구팀은 불소 작용기를 반응물에 도입하고, 각 광학 이성질체를 구별할 수 있는 카이랄 코발트 착물을 활용해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복수 기질의 광학적 특성까지 단번에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실험결과는 미국화학회지(JACS) 온라인판에 게재되어 국제 학계에서도 그 선도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제1저자 김동훈, 제2저자 최경선 석박통합과정생을 포함한 연구진은 이 기술이 AI 기반의 자율합성 시스템에서 분석 단계의 병목을 제거할 핵심 도구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비대칭 촉매 반응은 신약 개발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반복적인 단계다. 하지만 기질마다 반응성이 달라, 기존에는 수십 개 실험을 반복하며 조건을 조정해야 했다. KAIST의 이번 기술은 단일 실험으로 수십 종의 반응성과 광학활성을 동시에 평가할 수 있어, 촉매 최적화와 신약 후보 발굴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또한, 이 기술은 반응 데이터의 대규모 축적이 가능해지면서, AI 모델 학습을 위한 고품질 데이터셋 생성에도 결정적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향후 AI가 자체적으로 실험 설계를 최적화하는 자율화 연구의 핵심 인프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뜻한다.
KAIST는 이미 화학·바이오·AI의 융합에 기반한 미래형 연구 환경을 구축하고 있으며, 이번 성과는 ‘AI 기반 자율합성’ 분야에서 한국이 세계적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김현우 교수는 “이번 연구는 실험 자동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며, “데이터와 해석, 설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AI 연구 생태계 속에서 KAIST가 중심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 지원사업, 비대칭 촉매반응 디자인센터, KAIST KC30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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