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이 고급 인재 양성, 지역 경제 활성화, 혁신 창출, 글로벌 투자 유치에 미치는 결정적 영향
산업 전략의 핵심 축으로서의 대학
영국 정부는 미래 10년을 위한 국가 성장 전략으로 ‘산업 전략(Industrial Strategy)’을 수립하며, 그 핵심 주체로 대학을 지목했다. 이는 단순히 고등교육 기관이 졸업장을 수여하는 곳이라는 전통적 관념을 넘어, 대학이 고급 인재 공급, 기술 혁신, 지역균형발전, 그리고 글로벌 투자 유치까지 이끄는 ‘전략적 파트너’라는 인식의 전환을 반영한다.
2025년 5월, Universities UK(UUK)가 발표한 보고서 『Why universities are critical to an industrial strategy』는 이러한 방향성을 구체적 데이터와 사례를 바탕으로 뒷받침한다. 보고서는 대학이 산업 전략의 8대 핵심 분야—생명과학, 디지털 및 기술, 고급 제조, 청정에너지, 금융서비스, 전문 및 비즈니스 서비스, 국방, 창의산업—와 밀접히 연계돼 있음을 강조한다. 각 분야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고급 인재와 연구 역량이며, 이는 결국 대학이라는 플랫폼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영국 고등교육 부문은 이미 연간 2650억 파운드에 달하는 경제 효과를 창출하고 있으며, 국가 전체 생산성과 지역 내 고용을 동시에 견인하는 ‘앵커 기관(anchor institution)’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기반 위에 산업 전략이 실행될 때, 비로소 미래 성장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고급 인재의 보고: 고등교육이 만드는 성장 인프라
산업 전략이 주목하는 가장 중요한 자원은 기술도, 자본도 아닌 ‘사람’이다. 특히 고급 기술과 창의성이 융합되는 오늘날의 산업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은 고숙련 인재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보고서는 2023년 기준, 산업 전략의 8개 성장 산업 중 7개 산업에서 고등교육 졸업자 비율이 전체 노동시장 평균을 상회한다고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고급 제조업 분야는 노동자 중 70%가, 디지털 및 기술 산업은 73%, 창의산업은 무려 75%가 대학 졸업자다. 반면, 전체 영국 노동시장에서 대학 졸업자의 비율은 52%에 불과하다. 이 같은 데이터는 산업 성장의 동력원이 바로 대학이라는 점을 수치로 증명한다.
2035년이 되면 영국 전체 노동자 중 61%가 고등교육 이수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약 1,100만 명의 추가 졸업자가 필요하며, 이들 대부분은 첨단 산업 분야에 진출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대학은 양적·질적으로 고숙련 인재를 배출해 산업 전략의 인적 기반을 다진다.
특히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와 창의산업 분야는 교육비용이 높은 고비용 전공으로 분류된다. 정부는 ‘전략 우선순위 보조금(Strategic Priorities Grant, SPG)’을 통해 이들 전공에 대한 지원을 유지하고 있지만, 보고서는 이러한 지원이 산업 전략과의 연계를 고려해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고숙련 인재의 지역적 파급 효과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고서는 고숙련 직업군 한 자리가 지역 내 비교역부문(예: 요식업, 소매업)에서 평균 2.5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타 교역 부문에서도 0.4개의 일자리를 유발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대학이 배출한 인재는 산업 성장뿐만 아니라 지역 내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지역 산업과 연결되는 스킬 생태계
대학은 지역의 산업 생태계와 맞물려 역동적인 ‘스킬 공급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지역 정부, 산업계, 고등교육(HE) 및 기술전문교육(FE) 기관 간 협력이 활발할수록, 지역 산업 수요에 맞춘 맞춤형 인재 배출이 가능하다.
영국의 Skills England는 이러한 협업 구조를 강화하는 중심기관으로, 산업 전략과 연계된 지역별 인력 수급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데이터 기반의 스킬 갭 분석, 산업체 수요 반영, 지역 자치단체의 정책 연계가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효율적인 인력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대학은 지역 고용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다.
예컨대, 2022–23년 기간 동안 영국의 대학들은 370만 건 이상의 평생학습 및 직업 교육을 제공했다. 이 중 상당수는 소규모 기업(SME)과 직장 내 교육 수요를 충족하는 형태였으며, 특히 50,000명 이상의 학생이 학사·석사 수준의 ‘학위 연계형 견습제(Degree Apprenticeship)’에 참여했다. 이는 산업의 고급 기술 수요와 학생들의 교육 수요가 만나는 접점이라 할 수 있다.
대학은 지역성장의 촉진자다: 앵커 기관의 역할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닌 ‘지역 사회의 경제적 구심점’이다. 실제로 대학은 지역 고용의 주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앵커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영국 전역에서 대학은 385,000개의 정규직 일자리를 직간접적으로 창출하며, 고용 외에도 지역 자원봉사, 스타트업 육성, 산학협력 등을 통해 다방면으로 기여하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Mayoral Strategic Authority, MSA)와의 협업을 통해 지역 산업 전략에 맞는 교육·연구·혁신 프로젝트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켄트대학교는 Kent and Medway Employment Task Force에 참여하여 고부가가치 일자리 창출을 선도하고 있으며, 사이버보안, 인공지능, 보건의료 등 지역 특화 분야를 중심으로 기업과의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MSA 구조 바깥에 있는 대학들은 정책적 협업에서 배제될 위험이 크며, 이에 대한 제도적 대안이 필요하다. 이는 산업 전략의 포용성을 높이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산학협력과 혁신 클러스터: 대기업과 SME를 잇다
대학은 대기업과 중소기업(SME) 간 협력의 가교로 기능하며, 산업 혁신의 촉매제로 작용한다. 특히 10개 중 9개 기업이 중소기업인 영국의 산업 구조상, 대학과의 파트너십은 혁신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필수 요소다.
2022–23년 기준, 영국 대학은 총 73,200건의 기업 컨설팅을 수행했으며, 이 중 35,215건이 중소기업과의 협업이었다. 이러한 관계는 단순한 자문을 넘어, 공동 연구, 시설 공유, 창업보육(incubation) 및 액셀러레이팅(acceleration) 프로그램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데이터 표준화, 디지털 격차 해소, 기술 확산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대학의 지원은 기업 입장에서 중요한 자산이다.
런던을 비롯한 대도시 외에도 이러한 협력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랭커스터대학교는 ERDF(유럽지역개발기금) 지원을 바탕으로, 북서부 지역의 3,000개 SME를 지원하고 500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했다. 평가에 따르면, 매 1파운드의 투자로 28.55파운드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했다. 이는 산학협력의 경제적 파급력을 수치로 입증한 사례다.
혁신 클러스터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셰필드대학교도 주목할 만하다. 남요크셔 지역의 청정에너지 산업 중 6.9%, 고급 제조 산업의 3.1%가 이 지역에 밀집되어 있으며, 대학과의 연계가 기업 유치 및 기술 확산의 기반이 되고 있다. 이러한 클러스터는 지식의 집적, 산업 간 융합, 신규 창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대학은 지식 창출의 허브일 뿐 아니라, 그것을 시장으로 연결하는 기회의 창이기도 하다. 이를 상징하는 개념이 바로 ‘스핀아웃(spin-out)’이다. 스핀아웃은 대학의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창업된 기업으로, 고부가가치 산업의 핵심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2022–23년 현재, 영국 전역에서 활동 중인 대학발 스핀아웃은 2,043개에 이르며, 이 중 1,571개가 3년 이상 생존한 기업이다. 전체 고용은 54,348명이며, 연간 총 매출은 124억 파운드를 상회한다. 특히 제약, 데이터 분석, 전자 하드웨어, 연구 도구 및 임상연구 분야에 집중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인공지능 분야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창업 교육과 인재 양성: 교실 안에서 시작되는 혁신
산업 전략은 단지 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 개개인이 ‘혁신의 주체’로 성장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도 목적이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학은 교육과정 내외에서 창업 및 기업가정신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2023년 NCEE(국가창업교육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 내 50개 대학이 모두 일부 전공에서 기업가정신을 통합하고 있으며, 여름 창업 캠프와 외부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실전 역량을 키우고 있다. 2023년 기준, 영국 전역에 대학과 연계된 창업보육기관(incubator)과 액셀러레이터는 총 269개에 달하며, 이 수치는 2017년 대비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교육의 효과는 수치로도 입증된다. 2014–15년부터 2022–23년 사이 대학이 지원한 스타트업 수는 70% 증가했고, 이들이 고용한 인력은 64,000명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동안 해당 기업들의 매출은 702% 증가했으며, 대학이 운영하는 창업 지원 프로그램의 지속성과 접근성이 이 성과의 배경이 됐다.
대표 사례로, 글래스고 칼레도니아 대학 학생이 창업한 SENGUARD는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보안 애플리케이션이다. 해당 기업은 스코틀랜드 EDGE 펀딩을 수주하고, 금융 및 비영리 부문에서 주목받으며 전국 단위의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이처럼 창업 교육은 학생들의 취업 대안을 넘어, 지역 산업 생태계의 일원이 되는 경로를 제공한다.
글로벌 투자와 인재 유치: 대학이 여는 세계의 문
대학은 고등교육을 통해 국내 인재를 육성하는 동시에, 국제 인재와 글로벌 자본을 끌어들이는 ‘지식 수출 산업’이기도 하다. 고등교육 수출은 연간 수십억 파운드 규모의 외화를 창출하며, 해외 인재 유입은 지역 산업과 연구 역량을 풍부하게 만든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추진한 유학생 등록비 인상, 이민 수수료 및 건강보험 부과 정책은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로열 소사이어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의 이민 관련 초기 비용은 2019년 대비 최대 126% 상승했으며, 이는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주요 경쟁국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 ‘Global Strategy for Universities’라는 국가 전략을 제안한다. 이는 대학의 연구, 교육, 국제 개발 역량을 통합하여, 영국 전역의 산업 전략 핵심 분야에 글로벌 자본과 인재를 유치하는 정책적 프레임워크다. 특히 8대 성장 산업 분야에 대해 비자 요건 완화, 건강보험 면제 등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인재 유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미래를 여는 기초연구: 대학 연구가 산업이 되는 과정
산업 전략이 10년 안에 실현 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한다면, 대학의 기초연구는 그 이후 수십 년의 산업 지형을 설계하는 장기적 자산이다. 블루스카이 리서치로 불리는 순수 기초연구는 첨단기술의 기반이며, 인공지능, 바이오의약, 핀테크 등의 혁신도 모두 여기서 비롯되었다.
영국의 대학 연구 중 80% 이상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며, 이는 글로벌 기준보다 2배 높은 산업 연계율을 보이고 있다. 특히 생명과학 분야는 전 세계 평균보다 72% 높은 인용률을 기록하며, 산업과의 협업 속도도 그만큼 빠르다. 이는 연구성과가 특허, 창업, 기업성장으로 연결되는 ‘지식의 시장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컨대, 옥스퍼드대의 AI 보안 연구소는 수십 년에 걸친 수학·물리학·컴퓨터공학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산업화된 사례이며, 엑서터대의 국방 데이터연구센터는 QR(품질연계) 연구자금 덕분에 설립 초기 연구를 가능케 했다. 이러한 유연한 연구자금이야말로 산업 전략의 토양이 된다.
보고서는 R&D 투자 비중을 국내총생산(GDP)의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QR 펀딩의 실질 가치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산업 전략의 지속 가능성과 미래 성장의 선제적 기반을 함께 마련하는 정책적 결정이 될 것이다.
『Why universities are critical to an industrial strategy』 보고서는 단순한 연구보고서가 아니다. 이는 영국의 국가 전략이 교육, 지역, 산업, 글로벌 경쟁력이라는 4가지 축 위에서 통합되어야 함을 밝히는 지침서에 가깝다. 그리고 이 모든 축의 중심에는 ‘대학’이 존재한다.
대학은 고급 인재의 공급자이자, 혁신의 창출자이며, 지역사회의 활력소이고, 글로벌 자본과 인재를 유치하는 관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대학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이 확보되어야 하며, 정책 결정 과정에서 대학의 역할이 정당하게 반영돼야 한다.
정부는 산업 전략의 실행 과정에서 대학을 단순한 참여 주체가 아닌, ‘공동 설계자’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비용 전공에 대한 구조적 지원, △지역 간 균형 투자를 위한 펀드 확대, △글로벌 인재 유치를 위한 제도적 완화, △기초연구에 대한 안정적 투자 확보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산업 전략은 대학 없이 완성될 수 없다. 오히려 대학이야말로 산업 전략의 동력이며, 성장의 토대다. 미래를 설계하는 정부라면,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과 함께 설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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