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피어난 새 시대의 서막
2025년 5월 8일,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피어난 흰 연기는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알렸다. 미국 시카고 출신의 로버트 프란시스 프레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 추기경이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그는 “레오 14세(Pope Leo XIV)”라는 이름을 택했다. 미국인으로서 최초로 교황직에 오른 그의 선출은 정치적, 종교적 상징성이 동시에 담긴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로버트 프레보스트는 선출 직후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 등장해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로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La pace sia con tutti voi)”이라는 인사말로 첫 공식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교회는 이제 더욱 경청하고 동행해야 한다”며 시노달리타스(synodality), 즉 공동체적 경청 교회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
교황 선출 과정과 상징성
2025년 5월 초, 프란치스코 교황의 은퇴에 따른 콘클라베(교황 선출 회의)가 바티칸에서 열렸다. 133명의 추기경들이 모인 이 역사적 회의에서 로버트 프레보스트는 3일간의 표결 끝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으며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가 택한 교황명 ‘레오 14세’는 전통과 개혁의 상징이 맞물리는 독특한 선택이었다.
이전까지 교황직을 맡은 이는 모두 유럽 출신이었고, 프란치스코는 아르헨티나 태생이지만 이탈리아계라는 점에서 ‘첫 남미 교황’이라는 상징성을 지녔다. 그러나 로버트 프레보스트는 국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진정한 ‘미국인’이자 동시에 ‘라틴 아메리카인’이라는 이중 정체성을 지닌 인물로, 그의 선출은 교회 내에서 지리적, 인종적 다양성을 더욱 강화할 계기로 해석되고 있다.

레오 14세의 성장 배경과 시카고 시절
로버트 프레보스트는 1955년 시카고 남서부 돌턴(Dolton)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공립학교 교장이자 가톨릭 봉사자였고, 어머니 역시 지역 사회에 헌신한 교육자였다. 그는 세인트 메리 어섬프션 초등학교를 다녔고, 그곳에서 이미 ‘Father Robert’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신앙심이 깊고 차분한 소년이었다.
그는 시카고 하이드파크에 위치한 가톨릭 신학대학(Catholic Theological Union)에서 신학 석사를 취득하고 1982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의 평범한 미국 중산층 가정 출신이라는 점, 블루칼라 노동자 계층과 함께 성장했다는 배경은 훗날 그의 사목과 교회 정책에서 ‘사회적 약자를 향한 따뜻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시카고 지역에서는 그의 선출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벤니슨 베이커리는 그의 얼굴을 담은 쿠키를 출시했고, Wrigley Field 야구장은 “Hey Chicago, He’s a Cubs Fan!”이라는 문구를 전광판에 띄우며 그를 환영했다. 주지사와 시장, 일반 시민들까지 축하 메시지를 보내며 시카고는 마치 2009년 오바마 대통령 당선 때처럼 들뜬 분위기에 휩싸였다.
페루 선교사의 길과 ‘이중 시민권 교황’의 정체성
프레보스트는 서품 후 곧바로 미국을 떠나 페루 북부 트루히요 지역으로 파견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20년 가까이 선교사로 봉사하며 2001년 주교로 임명되었고, 페루 국적까지 취득해 ‘이중 시민권자’가 되었다. 그는 스페인어에 능통했으며, 가난한 지역 공동체에서 보낸 선교 경험은 그를 ‘프란치스코 교황 이후 가장 남미적인 교황’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주교이자 수도회 총장으로서 청빈과 연대, 지역 사회 중심 교회의 모델을 제시했으며, 교회의 권위주의에 거리감을 두고 ‘경청하는 리더십’을 실천했다. 그는 종종 본인의 사목을 “소외된 자들과의 동행”이라 표현했으며, 이민자, 원주민, 빈민가 주민들에게 교회를 ‘열린 공간’으로 만드는 데 헌신했다. 그의 선교 동료들은 “그는 결코 자기중심적이지 않았으며, 늘 이웃에게 기울이는 마음이 컸다. 그런 점에서 교황 프란치스코의 사목 철학과 거의 동일하다”고 회고했다.
교황청 내 경력과 개혁 추진력
로버트 프레보스트는 선교사와 주교로서의 현장 경험 외에도, 교황청의 핵심 요직인 ‘주교성성(Dicastery for Bishops)’ 장관으로 발탁되며 전 세계 주교 인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를 추기경으로 서임했고, 곧바로 주교성성 수장으로 임명했다. 이는 그가 바티칸 내에서 얼마나 신임을 받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주교 임명 절차에서 단순히 서류 검토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필요, 사목적 자질, 그리고 개혁 성향을 균형 있게 고려했다. 특히 여성 신학자나 평신도 지도자들과의 협력 경험이 많아, 그가 교황이 된 이후 여성과 평신도의 역할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재정의될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의 인사 철학은 ‘신뢰’와 ‘투명성’이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했던 “권위주의를 넘어서려는 교회 개혁”과 같은 선상에 있으며, 앞으로 교황청 관료주의를 어떻게 쇄신해 나갈지가 주목되는 이유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입장: 진보와 전통 사이
레오 14세는 기본적으로 교회 중심의 복음적 신중함을 유지하면서도, 소외된 이들에 대한 포용성에서는 매우 진보적인 입장을 보인다. 그는 LGBTQ 신자들의 교회 내 수용에 있어 프란치스코 교황과 유사한 입장을 취해왔다. 실제로 그는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누구도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여성의 부제 서품 문제나 사제 독신제 폐지와 같은 전통 교리 관련 이슈에 있어서는 신중한 입장을 고수한다. 예를 들어 여성 부제 서품에 대해서는 “교회 전통과 신학적 논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는 교회 내 진보 진영에게는 아쉬운 지점일 수 있지만, 오히려 그가 교회 통합의 중심 인물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민자와 난민 문제, 환경 위기, 빈곤 퇴치 등에 대한 그의 발언은 명확하다. 그는 페루 시절부터 이민자 보호소와 교육 기관을 설립해왔고, 생태적 회개(ecological conversion)를 주제로 강연도 다수 진행했다. 그의 첫 공식 연설에서도 “지구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는 교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

‘레오 14세’라는 이름의 의미
로버트 프레보스트가 교황명으로 선택한 ‘레오 14세(Leo XIV)’는 교회사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상징성을 지닌다. 교황 레오 13세(재위: 1878~1903)는 노동권을 인정한 회칙 『Rerum Novarum』(새로운 사태)을 발표한 인물로, 사회정의와 현대화에 앞장선 개혁 교황이었다. 프레보스트는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겠다는 의미에서 ‘레오’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
그는 첫 기자회견에서 “레오 13세가 현대 노동자의 존엄을 주창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생태적 정의, 인종 정의, 디지털 시대의 인간 존엄을 주창해야 할 때다”라고 강조했다. 즉, 그는 과거의 개혁정신을 현재의 구조적 도전에 접목시키겠다는 의지를 이 이름을 통해 천명한 셈이다.
한편, 교황청 역사학자 마르코 폴리티는 “교황명이 단지 전통의 계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교회에 새로운 우선순위를 암시하는 상징적 장치”라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레오 14세의 재임 기간 동안 교회는 기후위기, 디지털 기술, 인구 이동 등 21세기 핵심 이슈에 훨씬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 가톨릭의 향후 방향성과 도전 과제
레오 14세의 시대는 단순히 ‘미국인 교황’의 시대가 아니다. 그것은 지역성과 초국가성, 전통과 개혁, 권위와 공동체가 복잡하게 얽힌 시대다. 그의 리더십은 이런 다중적인 맥락 속에서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함께 걸을 것인가’에 대한 실험이 될 것이다.
그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세 가지다.
첫째, 성직자 성범죄 및 투명성 문제에 대한 단호한 대응이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은폐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밝히며 구조적 개선을 예고했다.
둘째, 여성과 평신도의 권한 확대다. 여성의 부제 서품 문제에 대한 진전 여부가 핵심이다.
셋째, 지구적 남반구 교회와의 관계 강화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교회들은 인구 측면에서는 이미 중심축이며, 레오 14세는 이들과의 수평적 관계를 강화해 세계 교회의 다양성을 끌어안는 리더십을 실현해야 한다.
기술 변화도 교회에는 도전이다. AI, 빅데이터, 생명공학 등 새로운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레오 14세는 “윤리가 빠진 기술은 무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따라서 그는 기술사회 속 ‘도덕적 나침반’으로서 교회의 위치를 재정립하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한 교황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로
레오 14세의 선출은 단순한 개인의 영광이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교회가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내디딘 역사적 발걸음이며, 그 길은 전통과 충돌하면서도 동시에 변화를 감수하려는 용기 위에 놓여 있다.
시카고 빈민가에서 자란 아들이 바티칸 발코니에 섰을 때, 그는 이렇게 외쳤다.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La pace sia con tutti voi).”
그리고 이어진 첫 공식 연설에서 그는 전 세계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교회는 이제 세상을 향해 더 많이 들어야 하고, 더 많이 동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걷는 교회, 경청하는 교회, 그리고 사람들의 상처를 함께 짊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짧지만 인상 깊은 연설은 레오 14세가 지향하는 교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권위주의적 강단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내려가 사람들 곁에 머무는 교회이며,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귀를 기울이는 공동체다.
앞으로 레오 14세가 그리는 가톨릭교회의 미래는 아직 백지이지만, 그는 이미 붓을 들었고, 세상은 그 그림이 어떤 모습일지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그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고, 이는 단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로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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