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대학협회 AI 컨퍼런스서 기술 낙관론 속 윤리·효과·격차 우려 공존…”혁신 아닌 진화가 답”
AI의 부상, 대학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2025년 5월 22일과 23일, 브뤼셀에서 온라인으로 열린 유럽대학협회(EUA) 주최 AI 컨퍼런스는 인공지능 기술이 고등교육에 미칠 긍정적 가능성과 동시에 따르는 위험성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의 장이었다. ‘대학은 어떻게 AI 시대를 형성하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회의에서 전문가들은 기술의 활용을 촉구하면서도, 그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작문 교육자 안나 보리스트룀은 “AI의 이점을 열린 자세로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교수자·연구자·학생을 아우르는 협업과 소통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녀가 동료 도서관 사서와 함께 운영한 ‘Bites of Learning’이라는 오픈 웨비나 시리즈는 AI 교육의 모범 사례로 소개됐다.
하지만 보리스트룀은 대학 간 격차를 우려했다. 상위권 대학은 공개 워크숍과 가이드라인 등을 적극 운영하지만, 일부 대학은 AI에 대한 체계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AI를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으나, 이는 실제 사회 적용에서는 허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혁신 아닌 진화가 필요하다”
네덜란드의 AI 평가 플랫폼 Cirrus Assessment의 제품 책임자 예로엔 프란센은 스스로를 ‘AI에 대해 회의적이면서도 낙관적인 사람’이라 소개했다. 그는 “AI는 장기적으로 혜택을 줄 수 있으나, 현재는 환경 파괴, 창작권 침해, 정보 혼란 등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프란센은 특히 교육 분야에서는 급진적 혁신보다 점진적 진화가 더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AI가 실제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지를 기준으로 채택 여부를 판단해야 하며,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마케팅 문구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도서관장 캐서린 이글턴은 AI가 도서관 업무에 효율을 줄 수는 있지만, 여전히 ‘인간의 판단’이 더 나은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그녀는 AI가 기증받을 책을 추천하는 실험에서, 수백만 파운드의 가치가 있는 셰익스피어 초판본 대신 감자 요리책을 선택한 사례를 소개하며 “AI가 다룰 수 있는 범위는 제한적”이라 말했다.
또한, 영상 녹화 플랫폼 ‘Panopto’는 강의 촬영에 유용하긴 하나 스코틀랜드 억양이나 라틴어 처리에는 한계를 보였고, 결국 “보조자는 될 수 있으나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현실적 판단으로 이어졌다.
프란센이 제시한 ‘하이브리드 평가 모델’은 AI가 학생 답안에서 문제점을 먼저 지적하고, 이후 인간 채점자가 피드백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 교사는 더 신뢰할 수 있는 결과물을 제공받을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챗봇, 효율성과 윤리 사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공개대학(UOC) 로베르트 클라리소 교수는 챗봇의 교육적 활용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몇 가지 주의점을 언급했다. 단순 질의응답에는 유용하지만, AI의 답변을 그대로 숙제에 사용하거나 성적 이의제기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챗봇 응답 내용이 기록되고 교수가 이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일부 학생에게는 신뢰를 주는 반면, 다른 학생에게는 프라이버시 침해로 여겨질 수 있다는 윤리적 문제도 제기했다.
미국 국가경제연구소(NBER)의 2025년 연구에 따르면, 덴마크의 7,000개 직장에서 AI 챗봇을 도입했을 때, 생산성이나 임금에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 약 25,000명의 근로자가 겨우 3%의 시간 절감 효과만 얻었고, 이로 인한 임금 상승도 미미했다는 것이다. 이는 AI 도입이 단기적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비용 부담과 투자 우선순위 재설정 필요
스페인 무르시아대의 페드로 루이스 전략부총장은 AI 도입이 모든 대학에 실현 가능한 사안이 아니며, 재정 여력이 큰 기업이나 대형 대학에 집중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고, 실질적 ROI(투자 대비 수익)를 고려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프란센은 “AI는 제약처럼 안전성 검증 후 시장에 나와야 한다”며, 현재는 ‘놓치면 안 된다’는 투자자들의 불안감(FOMO)이 오히려 문제 해결이 아닌 기술 도입 자체에 몰두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AI는 이미 병원·노인 요양시설·의료진 지원 분야까지 그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스위스 ETH 취리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사례처럼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그 속도를 일부러 늦추며 신중한 조율을 택하고 있다.
“AI는 고등교육의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주는 만능 도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닌, 그것을 어떻게, 왜,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이다.” 이는 이번 컨퍼런스가 남긴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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