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조직이 주도하는 새로운 인권 질서의 도래
오늘날 인권(human rights)의 개념은 과거의 권력 투쟁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정립되고 있다. 이는 공적이익 시민사회조직(PICSO: Public Interest Civil Society Organizations)의 활약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흐름 속에서 가능해지고 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1215년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의 제정 당시의 귀족, 18세기 부르주아 계층, 1948년 세계인권선언 채택과 1989년 냉전 종식의 시기에도, 인권이라는 개념은 권력을 쟁취하려는 정치적 엘리트들에 의해 일시적으로 수용된 바 있다. 그러나 일단 권력이 확보되면, 인권은 버려지거나 후순위로 밀려났다. 오늘날의 인권 위기는, 그러한 권력 주체가 더 이상 인권을 자기 이익의 도구로 삼지 않게 되면서 더욱 뚜렷해졌다. 대신 그 자리를 시민사회가 채우고 있다.
인권의 실현 주체로서 PICSO의 부상
현대 사회에서 인권을 실질적으로 요구하고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은 법원과 언론을 이용할 수 있는 권력층에게만 존재한다. 반면, 법적 접근 권한이 제한된 다수 대중은 오직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을 통해서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Schuftan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의 가격 인하를 요구한 치료 행동 캠페인(TAC: Treatment Action Campaign)의 사례를 들어, 시민사회가 인권 보장을 어떻게 현실화시켰는지를 설명한다.
헌법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정당 시스템이 국민과 정부 사이를 연결하듯, 시민사회 조직 또한 개인과 공동체의 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매개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PICSO는 이론적으로도 정당과 동등한 위상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인권 운동의 소외와 회복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인권 운동은 많은 이들을 포섭하지 못하고 소외시켜 왔다. 이는 언어의 법률화, 대상의 편중, 대중과의 거리감 등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인권 운동은 보다 실천적이고 포괄적인 언어와 태도로 대중과 소통해야 하며, 특히 경제성장에서 소외된 이들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Schuftan은 “인권은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기에는 아직 충분히 기능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인권이 자선이나 박애의 문제가 아니라, 강력한 권리 주장과 제도적 책임성을 요구하는 영역임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동정심이나 베풂이 아니라,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의 문제다.
‘책임성(accountability)’의 재개념화
책임성은 단지 모니터링이나 보고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모니터링-검토-시정조치(remedial action)’의 삼각 구도로 구성된 절차적 구조이며, Schuftan은 이를 통해 인권이 실질적으로 이행될 수 있다고 본다. 인권은 단지 선언이나 기준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집행되고 보장되어야 할 ‘법적 청구권(enforceable claims)’이다.
국제연합 경제사회문화권위원회(CESR)의 Kate Donald는 이를 “책임성의 웹(web of accountability)”이라고 표현하며, 독립적인 검토, 국제 인권 조약기구의 권고사항 이행, UN 특별보고관의 보고서 등이 포함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기업의 인권책임, 법제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
UN에서는 현재 초국적 기업과 인권에 관한 법적 구속력을 가진 국제협약 체결을 추진 중이다. 이는 그동안 대부분의 국제협약이 기업의 책임을 일부만 다루거나 아예 제외했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다. Schuftan은 이 조치가 기업의 법적 책임성과 인권 이행의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우리는 ‘이름을 밝히고 망신주기(naming and shaming)’에서 ‘이해하고 보여주기(knowing and showing)’로 나아가야 하는가?” 이는 소프트 룰(soft rules)을 통한 기업 내부의 변화 유도 전략이 과연 효과적인지를 되묻는 비판적 성찰이다.
미국, 인권조약 비준 거부와 ‘사회적 부채’의 부정
미국은 교육, 보건 등 경제사회적 권리를 다룬 주요 국제 인권조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 대법원은 헌법상 ‘교육을 받을 권리’나 ‘보건의료를 받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Schuftan은 이를 “인권의 절반만 수용하는 냉전 시대의 유산”으로 비판하며, 부정한다고 해서 책임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를 ‘사회적 부채(social debt)’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제도와 구조가 실패하여 발생한 집단적 피해와 박탈을 의미하며, 인권의 틀은 이를 가장 적절하게 다룰 수 있는 방식임을 강조한다. 시민사회는 이 부채를 드러내고, 권리의 회복을 주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Schuftan은 말한다. “우리는 이제 더 많은 분노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현실의 억압에 더는 침묵하지 않고, 인권이 법적 선언을 넘어 실천적 운동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갈 주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권은 단지 이상이나 철학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하며,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다. 책임성과 제도적 보장이 없는 인권은 선언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선언을 현실로 바꾸는 힘은, 더 이상 국가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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