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강의실에서 시작되지만, 사회에서 증명된다”
취업률 1등, 취업률OO%. 졸업생 취업사례. 언제부터인가 대학 홍보 문구에서 이런 말이 자주 등장한다. 대졸 미취업자가 늘어나는 취업난 때문에 지금의 대학은 ‘졸업 후 무엇을 할 수 있게 해주는가’로 존재 의미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된 듯하다. 허황되거나 틀린 말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당연해서 오랫동안 무시되었던 이야기다. 고등교육의 목표가 단순히 지식 전달에만 있지 않다는 건 이제 누구나 안다. 문제는 우리가 아직도 대학 교육을 평가할 때 ‘강의실 안’에서만 머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폴란드에서 운영 중인 졸업생 추적 시스템(ELA)은 이 오래된 관점을 흔든다. 졸업생들이 노동시장에서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는지를 5년 단위로 추적하는 이 시스템은 교육의 질을 ‘결과로서’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ELA가 보여주는 건 명확하다. 교육의 진짜 효과는 강의실이 아니라, 학생이 사회에 나가서 받는 평가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과는 결국 다시 대학의 가치로 돌아온다.
한국의 대학은 지금 커다란 전환점에 서 있다. 학령인구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고, 등록금 인상은 쉽지 않고, 지역 불균형은 심화되고 있다. 대학은 이제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조직이 되었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대학은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 바로 학생이다. 학생이 자신의 삶에서 성공하고, 성취하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대학의 미래를 지켜낼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다.
ELA 시스템이 말해주는 것은 간단하지만 강력하다. ‘학생의 성장은 수치로 증명된다.’ 그 수치에는 구직 기간, 평균 임금, 실업률 등이 포함된다. 한국에서도 고용노동부나 통계청, 국민연금 데이터를 활용한 유사한 졸업생 추적 시스템이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은 연구용, 참고용에 머물고 있다. 이 데이터를 실제 대학 운영과 질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용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폴란드의 ELA 시스템은 실질적이다. ‘경영학과’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모두 같은 교육이 아니다. 어떤 대학의 경영학과는 졸업생들이 평균보다 두 배 높은 임금을 받고, 또 다른 대학은 지역 평균에도 못 미친다. 같은 이름, 다른 결과. 그렇다면 교육의 질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학생의 입장에서 보자면, 교육의 결과는 그들이 사회에서 어떤 자리에 설 수 있느냐에 있다.
이는 교육이 취업 사관학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취업은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그 결과조차 고려하지 않는 교육은 무책임하다. ‘좋은 교육’이란, 학생이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을 제대로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잠재력은 강의실에서 시작되지만, 진짜로 증명되는 곳은 사회다.
그래서 대학은 강의실을 바꿔야 한다. 교과목 이름을 조금 바꾸고,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캡스톤 디자인을 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교육과정이 학생의 진짜 삶을 준비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기업과 지역사회가 원하는 역량이 무엇인지, 시대가 요구하는 태도와 사고방식은 무엇인지, 그에 맞게 교실 안에서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되묻고 조정해야 한다.

학생이 졸업 후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디서 일하고 있는지, 임금은 어느 수준인지, 일과 삶의 균형은 어떠한지. 이런 정보가 ‘관리되고 있다’는 것은 단지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걸 넘어, 대학이 학생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책임감은 학생에게도, 학부모에게도, 사회에도 대학에 대한 신뢰로 돌아온다.
이제 한국의 대학도 진지하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학생들이 졸업한 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우리는 학생의 5년 후를 설계하며 수업을 구성하고 있는가? 우리는 졸업장을 건네는 순간부터 그 학생의 사회적 평판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
고등교육은 더 이상 캠퍼스 울타리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학문은 사회로 이어지고, 배움은 성과로 평가된다. 학생 한 명의 성취가 대학 전체의 명예가 되고, 학생 한 명의 실패가 대학의 방향을 묻게 되는 시대다. 그만큼 무겁고, 그만큼 절실하다.
학생이 성장해서 사회에서 자리 잡고, 인정받고, 보람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대학이 다시 새겨야 할 사명이며, 교육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제, 그 책임은 데이터로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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