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가 연방정부의 학자금대출 포트폴리오를 민간시장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의 학자금대출 총액은 약 1.6조 달러, 4,500만 명의 차용자가 걸려 있는 국가 최대 단일 채권자 구조다. 이 부채는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라, 미국의 고등교육 접근성과 사회적 이동성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적 장치다. 하지만 최근 교육부와 재무부 고위관료들이 이 부채 중 상환률이 높은 ‘우량 대출’을 월가의 투자자들에게 넘기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POLITICO는 복수의 정부 관계자와 금융업계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학자금대출 시장을 구조적으로 재편하려 한다”고 전했다. 이 계획은 단기적으로는 정부의 재무제표를 개선하고 행정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더 깊은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
작은 정부의 귀환
이 구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2기 들어 추진 중인 ‘작은 정부(small government)’ 실험의 일환이다. 그 핵심에는 ‘공공서비스를 정부가 아닌 시장이 수행해야 한다’는 공화당식 경제철학이 자리한다. 교육부(Department of Education)를 해체하거나 축소하겠다는 트럼프의 공약과도 맞닿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학자금대출 매각 외에도, 대출 관리권을 재무부로 이관하고 교육부의 관련 기능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구조는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내세웠던 ‘정부는 문제이지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의 재현처럼 보인다. 결국, 교육의 공공성을 ‘시장 효율성’으로 대체하려는 이념적 실험이 다시 시작된 셈이다.
연방정부가 보유한 학자금대출은 단순한 자산이 아니다. 이는 사회적 이동성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적 신용(public credit)이며, 이윤보다 교육기회의 평등을 우선하는 공공적 금융 시스템이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 부채를 시장의 수익논리에 따라 ‘재가치화(revaluation)’하려 하고 있다. The Guardian은 이를 “공공부채의 월가화(Wall Street-ization)”라고 표현했다. 민간 투자자들에게 학자금대출 채권이 팔리면, 상환관리·연체조정·채무불이행 처리 등 모든 과정이 시장 논리로 재편된다. 이때 부채는 더 이상 사회정책이 아니라, 단기수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금융상품으로 전환된다.
시장의 논리와 학생의 삶
정부가 관리하는 학자금대출에는 몇 가지 중요한 보호장치가 있다. 소득 기반 상환제(Income-Driven Repayment), 탕감 프로그램, 일시적 상환유예 등은 차용자의 생활안정과 교육 기회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민간 시장으로 이관되면 이런 제도는 유지될 보장이 없다. 사기업은 정부처럼 장기적 사회효과를 고려하지 않는다. 대출이 민영화되면, 상환기간 단축·이자율 상향·연체시 페널티 강화 등이 불가피하다. 결국, 경제적 취약계층이 더 높은 비용을 치르고, 학자금대출의 부담이 세대 간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매각 대상으로 삼은 것은 전액 상환 가능성이 높은 ‘고수익 채권(high-performing loans)’이다. 즉,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 직장을 가진 차용자들의 대출이다. 이는 정부가 위험이 큰 저소득층 대출만 떠안게 되는 구조를 만든다. 이렇게 되면, 정부의 대출 포트폴리오는 ‘사회적 리스크 풀’에서 ‘적자 계정’으로 전락한다. 민간은 이익이 나는 부채를 가져가고, 정부는 손실 가능성이 높은 채권만 남긴다. 이것은 단순히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과 민간의 책임 불균형을 초래하는 구조적 편향이다.
The Guardian은 이번 계획의 정치적 배경을 날카롭게 짚었다. 민간으로 대출이 넘어가면, 정부는 더 이상 ‘학자금탕감(student debt cancellation)’ 정책을 시행할 권한이 없다. 즉,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했던 부채탕감의 법적 근거 자체가 사라진다. 이는 단순한 재정조치가 아니라 정치적 봉쇄(political lock-in) 전략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학자금 정책의 소유권을 민간에 넘김으로써, 민주당 정부가 향후 다시 부채 감면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이동시키는 셈이다. 이것은 ‘작은 정부’가 아니라 ‘정책 권한의 사유화’로 볼 수 있다.
“월가가 이긴다”
진보 성향의 소비자단체 ‘Protect Borrowers’의 마이크 피어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또다시 월가의 이익을 위해 서민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의 지적처럼, 학자금대출 매각은 부채의 금융화(financialization)를 극대화하는 행위다. 정부는 채무를 팔아 단기 수익을 확보하지만, 시장은 이 채무를 자산화하여 수익상품으로 전환한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정부는 민간금융의 부실자산을 사들여 시장을 구제했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정부의 공공자산을 민간에게 넘겨주는 구조다. 즉, ‘위기 구제’가 아니라 ‘이익 이전’이다. 이것은 국가의 신용체계를 다시금 자본시장 중심으로 재편하는 위험한 전환점이다.
연방법은 교육부가 재무부와 협의해 학자금대출을 매각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 단서가 있다. “납세자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 문제는 시장이 정부가 설정한 장부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럼프 1기 때 이미 컨설팅 회사가 포트폴리오를 평가했으나, 결과는 정부 회계보다 훨씬 낮은 가치로 나타났다. 즉, 시장이 사려는 가격은 정부의 회계상 가치보다 적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를 추진한다면, 단기적 재정 착시 효과만 남고 실질적 손실은 납세자에게 귀속된다.
게다가 연방 학자금대출 제도는 단순한 금융서비스가 아니라 교육의 사회보장 장치로 설계되었다. 이를 시장에 넘기는 것은 복지국가의 근간을 해체하는 조치에 가깝다. 연방정부의 역할이 줄면, 저소득층 학생들은 신용점수나 담보가 없다는 이유로 더 높은 금리 혹은 대출 거부에 직면하게 된다. 이것은 교육의 기회균등 원리를 훼손하며, 고등교육이 다시 ‘가진 자의 특권’으로 회귀하는 신호일 수 있다. 결국 교육의 시장화는 사회적 이동성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이자, 미래 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정책이다.
고등교육 접근성의 후퇴
현재 미국 대학 등록금은 지난 20년간 2배 이상 상승했다. 그나마 연방 학자금대출이 이를 버티게 해주는 완충장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시장 논리에 따른 대출 구조에서는 ‘수익률이 낮은 학문’이 도태될 수 있다. 인문학·예술·사회복지 전공 학생들은 상환능력이 낮다고 평가받을 것이고, 이공계·의약계 중심으로 대출이 집중되며 학문 간 불균형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장기적으로 대학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사회 전체의 창의적 역량을 약화시킨다.
트럼프 행정부는 “학생과 납세자 모두의 장기적 이익을 고려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효율성’ 담론의 핵심은 공공서비스의 시장화다. 정부는 부채를 덜어내지만, 국민은 더 비싼 이자로 되갚는다. 효율성은 비용절감의 언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책임 전가의 수사다. 민간으로 이전된 채권은 공공적 책임에서 벗어나며, 정부의 사회정책은 단기회계의 장부 속으로 흡수된다. 그 결과, 효율성의 이름으로 사회적 안전망이 사라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이후 교육부 폐지를 재차 공언했다. 학자금대출은 교육부가 보유한 최대 재정자산이다. 따라서 이 포트폴리오를 민간에 넘기면, 교육부 존재 이유 자체가 사라진다. 이는 단순한 행정조직 개편이 아니라, 교육정책의 중심을 민간금융으로 이동시키는 정치적 프로젝트다. 교육을 복지정책이 아닌 ‘투자상품’으로 보는 시각, 그리고 그 논리를 정부가 공인하는 순간이다.

불평등의 고착
민간화의 결과는 단순히 ‘금리 인상’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미국의 학자금대출 구조는 이미 인종·소득·성별에 따라 상환율이 크게 다르다. 흑인과 라틴계 차용자는 같은 금액을 빌려도 평균 상환기간이 백인보다 1.5배 길다. 이런 불균형 구조에서 시장화가 진행되면, 금융기관은 신용위험을 이유로 특정 집단에 불리한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공공부채의 민영화는 차별의 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다.
비평가들은 이번 계획을 “2008년 금융위기의 반대 버전”이라고 지적한다. 그때는 정부가 민간의 부실채권을 사들여 시장을 안정시켰다. 이번에는 반대로 정부가 건전한 공공채권을 시장에 넘기려 한다. 이것은 국가의 신용력을 시장에 이전하는 행위다.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민간금융이, 교육을 포함한 사회정책의 핵심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면, 다음 위기의 불씨는 다시 정부가 아닌 국민이 짊어지게 될 것이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경제학자 프레스턴 쿠퍼는 “세금 납부자가 이익을 얻을 시나리오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정부가 대출을 팔면 단기 현금은 확보하겠지만, 채권의 실제가치보다 낮은 가격으로 거래될 가능성이 높다. 이익은 사라지고, 장기 리스크는 남는다. 그 결과 정부는 재정적자는 해소하지 못하고, 차용자들은 더 혹독한 조건 속에 놓인다. 이 구조를 ‘효율성’이라 부르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언어게임에 가깝다.
공공성과 시장성 사이
학자금대출의 문제는 단순히 재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공공성과 시장성의 균형을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가치 판단의 문제다. 트럼프 행정부의 선택은 그 균형을 일방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교육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공적 신용체계를 시장의 수익논리로 대체하는 것은, 결국 ‘사회적 신뢰’라는 무형의 자본을 훼손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정부가 교육을 시장에 넘길 때, 민주주의는 그 기초 자본을 잃는다.
만약 이 계획이 현실화된다면, 고등교육은 다시금 ‘투자 가능한 자본을 가진 사람들의 영역’으로 회귀할 것이다. 교육비용은 시장의 위험 프리미엄에 따라 달라지고, 대출의 조건은 신용등급과 소득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교육은 사회적 권리가 아닌 ‘투자 결정’으로 바뀐다. 이런 구조에서는 교육이 더 이상 평등의 통로가 아니라, 불평등의 증폭장치가 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학자금대출 매각 구상은, 단순한 예산조정이 아니라 정치경제 구조의 전환을 상징한다. 국가의 신용·교육·복지를 시장으로 이관하는 방향은, 공공영역이 가진 사회적 연대의 의미를 축소시키고 있다.이것은 단기적인 재정 절감이 아니라, 장기적인 사회적 부채를 남길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부채는 단지 회계장부가 아니라, 세대 간 기회 불평등이라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정부가 학자금대출을 시장에 넘길 때, 사실상 시민과의 계약을 수정하는 것이다. 연방 학자금제도는 “정부가 국민의 교육기회를 보장한다”는 신뢰에 기반한다. 이 신뢰가 깨지면, 사회는 교육을 통해 계층을 이동할 수 있다는 ‘미국식 약속’을 잃는다. 공공부채의 민영화는 기술적 조치가 아니라, 국가가 더 이상 국민의 교육적 권리를 보증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학자금대출 매각 구상은, 겉으로는 재정정책이지만 속으로는 공공성의 구조개편이다. 이 정책이 실행될 경우, 교육의 평등은 후퇴하고, 부채는 금융상품으로 재탄생한다. ‘정부의 역할 축소’는 곧 ‘국민의 부담 확대’를 의미한다. 학자금대출의 민영화는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교육의 권리, 세대 간 정의,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을 시험하는 정치적 사건이다. 부채를 누가 소유하느냐의 문제는 결국, 국가가 누구의 편에 서 있느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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